도쿄 타워
미나모토 타카시 감독, 마츠모토 준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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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에는 자기합리화의 측면이 강하다. <도쿄 타워>를 보면서 느낀 점이었다. 자기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섹스라는 쾌락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누리고 싶다는 태도.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은 흔히 자기합리화를 한다. 속이고 있는 배우자를 배려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국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한 합리적인 자구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이고-개인적으로 국가가 개인사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간통죄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다.-최소한 윤리적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이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분명 소중한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소중하고 진실된 감정이라는 이면에는 이기적이고 일그러진 모습들이 숨어있다. 혹은 배우자의 희생 혹은 배신감 같은 감정적으로 일그러진 모습. 애써 그것을 마주치기를 피하는 것이기도 하고. 한가지 더. 사회적, 경제적으로 일정수준의 생활이 보장되어야만 불륜도 가능한 것 같다. 여기까지 쓰고 생각해보니, 내가 본 불륜 영화/드라마 중에서 거의 기억나지도 않는 <우묵배미의 사랑>을 제외하고는 불륜이라는 행위는 중상류 층의 이상의 삶에서 벌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도쿄 타워>는 이런 교훈을 거칠게 가르쳐 주는 반면교사의 영화였다. 내가 비뚤어진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컥하게 만드는 지점이 많았다. 영화를 보면서, 꽃미남 컴플렉스가 이렇게 심했나,  부르조아들의 풍요로운, 그렇지만 일그러진 삶에 대한 반감이 이렇게 심했나라는 질문을 영화 내내 던질 정도로 이 영화가 주는 정서적인 거부감은 컸다. 불륜영화의 핵심은 주인공들의 태도가 얼마나 공감이 가느냐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정말 꽝이다. 여자주인공은 거식증에 걸린 듯한 몸에 보톡스 과잉에 찌든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관하고, 남자주인공은 연기력이 부족한 꽃미남의 전형적인 태도에 어설픈 교급취향을 남발한다. 게다가 에쿠니 가오리의 원작에서 가져온 듯한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대사들이 결합하니 그야말로 우스움과 짜증 그 자체다. 맛없는 요리에 양념만 진하게 해논 격이라고 해야하나.  

게다가 영화는 별 내용도 없는 데 지루하기만 하니...더구나, 불륜에 필요하는 숨막히는 긴장감 따위는 찾아 볼 수가 없어서 더욱 지루하다. 여기 나오는 커플들은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둘이 있을 때는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 하고, 여럿이 있을 때는 무관심하는 이상한 태도로 일관한다. 저렇게 불륜하면, 누구든지 다 알겠다 싶을 태도로 일관한다. 그래놓고서는 알려질가봐 전전긍긍한다. 당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유일하게 건진 것이 있다면, <바이브레이터>의 여주인공이라고 소개된 배우의 연기력이었다. 그나마 이 영화를 살렸다. 상대역 역시 연기력이 부족한 꽃미남이라서, 계속 덜컹거렸지만, 이 커플은 설정상으로도 중반 이후부터는 여자가 남자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플라멩고 장면에서는 배우의 힘이 느껴지기도 했고...최소한 이쪽 커플은 위선적이긴 해도, 가식적이지는 않다. 이쪽 커플도 자기합리화의 측면이 강하지만, 이를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그나마 마음에 들었다.

더 이상 써봐야 짜증스럽게 보일 것 같아서, 이 쯤에서 그만 끄적거리련다.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다. 차라리 <냉정과 열정사이>가 몇백배 낫다. 정말 궁금한 것. 왜 이 영화는 <도쿄 타워>에서 시작해서 엉뚱한 곳에서 끝날까? 아니 <도쿄 타워>가 제목인 이유는 무엇인가?

추신) 여주인공이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실락원>의 여주인공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절망했다. 세월의 무게를 거스르려다가 오히려 잘못된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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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06-05-2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심각히 보신 것 같군요... 소설이나 사회과학서적과 달리 영화의 8할 정도는 '스타일' 아닐까요? 스타일면에서 꽤 스타일리쉬한 괜찮은 영화입니다. 키미코 역의 테라지마 시노부 연기엔 절대 동감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5-2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심각하게 본건 아닌데, 제 리뷰가 좀 심각했나봅니다. 거부감이 좀 심했어요 ^^
 
에로스 (dts 2disc)
왕가위 외 감독, 공리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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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 옴니버스인데, 나머지 두 편은 소더버그 편은 거의 못봤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왕가위의 단편만으로 충분히 제 값을 한다. <화양연화> 이후로 포마드 기름을 머리에 바른 2:8 가르마의 정장차림의 신사가 왕가위의 페르소나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의 페르소나는 재단사이다. 그는 견습시절 고급 창녀 후아의 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후아의 노골적인 손길에 아찔한 감흥을 느끼고, 이후 그녀의 몰락을 바라보며, 그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다. 그러나 후아는 몰락하고, 병든 그녀 곁을 맴도는 재단사. 그리고 재단사 앞에 나타난 그녀의 손...

이 영화는 수줍은 듯이 공리를 쳐다본다. 특히 욕망의 대상인 공리를 보여줌에 있어서 카메라는 노골적으로 그녀의 성적매력을 훔쳐보기에 바쁘다. 화면에서 카메라는 공리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육체만 보여주거나, 거울을 통해 보여준다. 또는 시선의 중심에 그녀가 놓여있지 못하고 변죽만 울린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공리의 에로스적인 이미지이다. 그 매혹의 순간을 카메라는 계속해서 따라간다. 이는 재단사-카메라-관객이 그녀의 매력에 압도당한 나머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거나, 흥분을 자아내는 부위-공리의 하얀 손과 육감적인 다리를-에 집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끝가지 몰락하여 여관 꼭대기층에 살며 부두에 호객행위를 해야만 하는 절박하고도 순간에도 그녀를 훔쳐보는 나의 눈 속에는 비를 맞은 그녀의 다리, 그리고 병들어 누워있던 순간에도 하얗게 빛나던 그 기다란 팔이 더 들어오는 것은 왜일까?

어떻게 보면 패티시물을 보는 것과 같았다. 재단사는 과연 그녀를 사랑했을까? 그녀의 손, 그리고 손이 주는 아찔한 촉감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도 손으로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랬기에 손으로 그녀를 위한 옷을 만들었던 것일거고. 그리고 줄자가 없다는 핑계로 자신의 손을 그녀에게 대었던 것 같다. 어쩌면 후아도 그것을 알았기에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게 아닐까. 

이들의 행위는 <화양연화>보다 더 에로틱하지만, 더 애절하다. 후반부에 재단사에게 후아가 손을 내밀며 읊는 대사, 그리고 재단사가 입에 키스를 하려고 할 때 손으로 막는 후아의 동작하나하나가 가슴 아팠다. 왕가위의 탐미적인 감각은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노출이 없이도 에로틱한 화면을 연이어 보여주는 그의 연출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원초적 본능>이후로 이렇게 에로틱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내가 하얀 손과 팔을 좋아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을텐데, 아쉽게도 나는 손과 팔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리고, 공리의 매력과 연기력에 다시 한 번 빠져들 수 없었다. 초반의 압도적인 매력에서 후반부의 동정심을 자아내는 병자의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은 에로스 그 자체였다. 아무리 왕가위가 탐미적인 영상을 찍어댄다고 하더라도 에로스를 물신화한 공리의 매력과 연기력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빼빼마른 다른 중국여배우들과는 달리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고...입소문처럼 번지는 <게이샤의 추억>에서의 공리의 연기에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장첸도 언젠가는 양조위를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양조위는 너무 비슷한 이미지로 연기가 중첩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나머지 두 편은 평이 별로 좋지 않아서, 이 두 편을 위해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공리의 매력과 왕가위의 영상만으로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지는 그런 옴니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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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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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꾸준하게 소개된, 그리고 내가 꾸준하게 읽고 있는 작가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이다. 아는 분이 관여한다는 이유로 읽게된 <게임의 이름은 유괴>부터 <호숫가 살인 사건>, 아직까지 최고라고 생각하는 <백야행>까지. 감히 작년에 발견한 최대의 수확 중에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이고, 신작이 나오면 늘 기대하게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용의자 X의 헌신>으로 나오키 상을 수상하였고, <백야행>이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기 때문에 더 좋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올 것으로 기대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약간 낯간지럽게 찬사를 늘어놓는 이유는 짐작하겠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구성도 좋고, 게이고 특유의 세태를 포착하는 차분하지만 예리한 묘사, 흥미진진한 스토리 모두 괜찮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내가 기대하던 '그 이상'이 없는 범작이 되고 말았다.

내가 게이고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한 번 읽고 마는 전형적인 소설을 쓰는 듯 하면서도 '그 이상'의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게이고는 독자와의 게임을 즐긴다. 제목부터 많은 정보를 누출하고 있으며, 자못 도전적이기까지 하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서 책을 읽지 않고도 우리는 이 이야기가 유괴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을 안다. <호숫가 살인 사건>의 주된 내용은 호숫가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다. 그러나 작가의 도전적인 태도는 작가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지껏 읽은 그의 소설은 일단 잡게 되면 손을 놓게 되지 못하고 끝까지 읽게 되는 저력이 있다. 그 저력은 게이고 특유의 묘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내용이던, 형식이던 트릭이던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초반부에 게이고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정도에서 매듭을 짓겠지'라고 한다면, 얄밉게도 게이고는 나의 바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한 발자욱을 더 디딘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서 중반 이후에 벌어지는 사건들, <호숫가 살인 사건>에서의 결말부의 비틀림, <백야행>에서의 외부묘사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레몬>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메디컬 스릴러에 편견이 있는 나로써는, 게이고가 의학적인 지식을 과다하게 나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런 면에서는 담백했다. 그러나 트릭의 전형성이 과도한 편이긴 했지만, 예측했던 결말에서 조금도 빗나가지 않을 줄은 몰랐다. 읽으면서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 한 편을 떠올렸었고, 결말도 비슷할 거라 예측했는데, 정확해서 오히려 아쉬웠다. 물론 10여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고, 내용의 무게상 그 이상을 다루기 어렵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하지만 정말 아쉬운 부분은 따로 있다. 게이고는 상당히 가볍게 주제를 다루는 척 하지만, 그 주제가 결고 가벼운 울림으로 끝나지 않는다. <호숫가 살인 사건>에서 드러난 일본가정의 비틀린 교육열을 예로 들어보자. 직접적인 언급은 초반부에 등장하는 학부모의 대화에서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과도한 교육열이 주는 무거운 분위기는 호숫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정서적인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다. <레몬>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의 묘사가 조금 더 깊었다던가 감정적인 호소력을 발휘했더라면, 후반부의 모범생같은 결말이 조금은 용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이고는 특유의 가벼운 화법으로 그냥 지나쳐 버렸다.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 특히 아쉬운 것은 소재가 주는 윤리적인 차원의 문제를 뛰어넘어 어찌보면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 혹은 젊음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집어낼 수 있음직한 부분이었는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호숫가 살인 사건>에서의 초반부의 대화나 <백야행>에서의 료지의 독백을 이끌어냈던 게이고의 필력이라면 더 넓게 파문을 일으킬 수 있었을텐데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

지금까지 아쉬움을 진하게 언급했지만, 게이고나 혹은 이 작품이 태작이라거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게이고가 견지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문학관에 대해서 별 거부감이 없는 나로써는 그다지 반감을 가질만한 흠은 없다. 읽는 내내 즐겁게 읽었다. 게이고의 장점인 세태묘사는 군데군데 살아있으며-주인공이 도시락을 놓고 공원에 앉아있는 부분의 묘사가 가장 눈에 띄었다.-다른 작품과는 달리 형식적인 특이성도 눈에 띤다. 너무도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일정 수준 이상의 긴장감을 유도해내는 구성도 인정해주고 싶고. 다만 이 작품을 다른 작가가 썼다면 사심없이 좋아했을 텐데, 더 좋은 맛을 본 사람으로써 아쉬움을 토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추신) 번역은 좋았다는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면 우습고 안하면 어색하지만, 번역 문제로 말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 굳이 덧붙인다. 솔직이 나는 권일영 선생님의 번역을 선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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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26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이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생기는 문제더군요,

상복의랑데뷰 2006-02-26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아무래도 이 작품이 좀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이드 2006-09-15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게이고...는 왜이렇게 정이 안가는걸까요.. 라고 말하지만. 매번 책 읽을때는 완전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으니, 히가시노 게이고.가 나같은 독자 보면 억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레몬' 어제 다 읽고, 슬 리뷰 쓸까 들어와 구경하고 있어용.

상복의랑데뷰 2006-09-1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왜 하이드님의 덧글이 계속 안보였을까용. 알라딘 서재도 이상하네요. 늦게 답변드려 죄송합니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손꼽히는 페이지 터너인 것 같은데, 하이드님이 좋아하실 만한 어떤 임펙트가 부족해 보이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고만고만하게 잘하는 작가라고 할까요. '레몬'은 어떠셨는지 하이드님의 멋진 리뷰가 기대되네요 ^^
 
또 다른 나 - 시드니 셀던 자서전
시드니 셀던 지음, 최필원 옮김 / 북앳북스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홍보용으로 실린 외국신문의 리뷰는 잘 안 믿는 평이지만, 이 자서전 만큼은 동의하게 되더군요.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습니다. 차 안에서 읽다가 밤을 새면서 다 읽어버렸습니다. --;; 이제는 시드니 셀던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잘 팔리는 작가도 아니고 이미지도 별로 좋지 않죠. 전성기에 무분별한 중복출간으로 이미지가 많이 훼손된 점이 가장 클 것입니다. 헌책방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들은 시드니 셀던의 팬일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으니까요. 책을 읽고 나서는 헐리우드의 고전기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 쓴 작품이 지금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는 느낌입니다. 어찌되었건 시드니 셀던이 8~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에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흥미진진한 그의 인생을 보면서, 단순히 베스트셀러 공장장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나 3억부를 팔 수 있는 것은 아니죠. 당연한 이야기인데 늘 잊어먹는 것 같습니다. 처절한 가난, 육체적 정신적 질병에 맞써 싸우는 그의 일대기를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못해 슬프기까지 합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을 했다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구요.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마치 자랑하듯이 일 이야기만 늘어놓아서 거부감이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시드니 셀던의 삶에서 과연 개인적인 부분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50세 이전에는 계속 부침을 거듭했으니, 일중독도 보통 중독이 아니었겠지요. 잘 나가는 시절에도 불안에 떨어야 했구요. 

또, 책의 주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드니 셀던의 삶이 헐리우드의 변화에 따라 흘러가기 때문에, 지금은 전설 속의 배우들이 된 캐리 그랜트, 도리스 데이, 버스터 키튼, 프랭크 시내트라, 데이빗 셀즈닉, 진 켈리, 프레드 아스테어, 심지어는 커크 더글라스 까지...수많은 등장인물을 보면서 헐리우드 기록필름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드니 셀던의 노력과 맞물려 참 흥미진진하더군요. 그리고 더 놀랐던 점은 작가로서의 삶의 출발은 50세 이후라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읽은 소설에서의 시드니 셀던은 상당히 젊고 트랜디한 작가의 느낌이었는데, 그 때 이미 인생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어느정도 이루어진 완숙된 경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당대 미국인들 그리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소설가' 시드니 셀던의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분명 그의 모르는 부분을 알게 되서 좋긴 하지만, 소설가로써의 셀던을 알고 싶은 마음도 컸는데, 그 부분이 <벌거벗은 얼굴>의 출판까지만 이루어지는 것이 영 아쉽습니다.

개인적으로 <신들의 풍차>, <내일이 오면>, <게임의 여왕>은 상당히 재미있었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범작이었습니다. 가장 평이 좋다는 <천사의 분노(Rage Angels)>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기회가 되면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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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진 1 - 완전판
다카하시 츠토무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우연히 들른 만화방에서 본 만화. 예전 모 님의 블로그에서 칭찬과 함께 암울한 느낌의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서 머리 한 구석에 기억해놓고 있었다.

우울한 분위기가 더해진 87분서와 같은 형사'들'의 팀플레이를 기대했으나, 처음부터 끝가지 이 만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 이이다 쿄야의 피에 물든 활약상 뿐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쿄야는 파트너와 함께 범인을 쫓고, 유혈과 함께 사건은 종료된다. 내내 이 패턴이 반복된다.

이 단조롭고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뭘까? 일단 주인공 교야의 압도적인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교야는 비정하다 못해 무정한 형사다. 손에 쥐어진 총은 분명 그의 업보일 것이다. 앞모습이 싸늘해 보이다가도, 뒷모습이 지치고 서글퍼 보이는 것은 살인의 업보일 것이다. 그는 기계적으로 범인을 추적하고 죽인다. 생각해보니 그는 결코 범죄자를 살려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마음과 태도는 겨울호수과 같이 고요하고 서늘하다. 그 묘한 이중성이 가장 큰 매력이다.

아마도 그는 어렸을 때 입은 마음의 상처로 세상과의 감정적 소통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만큼 상처가 컸고, 상처가 두려운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래서 그를 사랑하는 것보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도 나온다.) 그래서 그를 보고 있으면 압도적인 카리스마에 감탄을 표하다가도 손에 피를 묻힌 채 마음의 문을 닫고 홀로 있는 모습을 보면 서글프다. 작가가 주화입마에 걸려서 숨겨진 이야기를 다 풀지 못하고 끝을 맺은건지, 아니면 원래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교야의 성격형성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적어서, 오히려 교야의 성격이 뚜렷하게 들어나고 동정의 여지가 적어져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난 교야처럼 살 사진은 없다. 그처럼 살기에는 마음이 모질지 못하거나 그보다 받은 상처가 작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가지는 세상에 대한 태도나 그런 태도를 지탱하게 해주는 B급의 전문가주의-백발백중의 명사수, 노련한 수사관, 카리스마-는 흠모하게 된다. 안쓰럽게 쳐다보는 주위인물들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감정이입이 쉽게 되는 캐릭터가 아니고, 원래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 작품은 감정이입 대신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나도 주변사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무심하다라는-남의 일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한다라는 표현을 숟하게 들은 나로써는...-생각도 많이 하고, 나도 상처받기 싫어서 누군가의 관심list에 오르내리기를 싫어한다.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적당한 무관심'을 꿈꾸니까. 내 밥벌이가 걱정없고, 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다면, 드러나는 표면은 다르겠지만 나도 쿄야의 삶의 방식을 따라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할 사진은 없다. 세기의 차이가 크다. 내가 루키라면 그는 메이저리거이다. 아마도 그는 배리 본즈일 것이다.  
 
하지만, 더 서글픈 것, 역설적으로 더 흥미로운 것은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일본의 일그러진 얼굴상이다. 작가의 공들인 그리고 우울한 그림체는 <프리스트>와 <베르세르크> 이후로 마음에 들었다. 흑백이 주는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좋다. 처절하게 묘사해냈다. 제목 '지뢰진'은 지뢰밭이란 뜻이라고 한다. 지뢰밭이라. 마음 편하게 한발한발 내딜 수 없는 곳이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일본일까? 작가가 보여주는 일본의 지뢰밭은 지옥도 그 자체다. 밀입국자, 스토커, 정신이상, 과잉팬덤, 매스컴 중독....에피소드 하나하나가 흡혈귀가 살고 있는 것처럼 피를 원하고, 정상인 사람은 먼저 죽어나간다. 그럼 비정상은? 나중에 죽어나간다. 바로 옆 나라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에는 우리나라도 점점 지뢰진의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문득 들었다. 에피소드의 잔혹성만으로는 'A'가 가장 처절했다. 인터넷 강국이라고 소문난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기에...

작가는 매 에피소드마다 지옥도를 그려놓고,  희망이 있냐고 질문을 던진다. 교활하게도 지옥도와 절망에 지쳐 포기할 때 쯤이 되면, 희망의 한자락을 슬몃 보여준다. 형사후배가 아이를 낳고, 새로 들어온 신참형사가 잠시나와 애인과 연애를 하고, 하지만, 자락이다. 다시 작가는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가 새로운 지옥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말까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나요?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렇게 나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 만화만 놓고 보자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감당해야할 절망의 무게가 지나치게 크다. 희망과 절망의 진폭이 커서 마치 운동장의 끝과 끝을 끝없이 돌면서 뺑뺑이 도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앞에서 A에피소드 이야기를 했는데, 비단 A뿐일까. 모든 에피소드가 우월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우울하지만, 최고로 우울했던,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세 가지, 교야를 사랑하던 여자. 교야를 따르던 후배가 자식을 가지게 되는 에피소드, 그리고 마지막 에피소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에피소드인데, 그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펼쳐놓은 절망의 무게가 너무 크다. 그래서 너무 슬프다. 마치 가까운 사람이 죽은 사람한테 가서, '희망을 가지세요.' 혹은 실연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이 해결해 줄거야'하고 말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특히 그랬다. 경찰이 되면, 사람을 죽이게 되면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그들도 사람인데...

일본의 하드 보일드는 어떤 의미에서는 극단의 하드 보일드다. 단어 자체의 의미에 지나치게 충실하다고 할까. 이 작품도 그런 면이 있다.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과 함께, 가장 폭력적이면서도 가장 우울한 어조의 하드 보일드. 두 주인공이 만났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우울하지만, 속으로는 흥미가 생긴다.

추신)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면서, 문득 작년에 서거하신 에드 멕베인의 유작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에드 멕베인 옹은 생전에 87분서의 마지막 권을 미리 집필해놓고, 사후에 출간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과연 어떤 내용일까? 내가 추측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데뷔작인 <경찰혐오자>의 속편. 다시 경찰들이 죽어나간다. 맨 마지막 희생자는? 카렐라이다. 혹은 카렐라가 범인인 에피소드. 이 두 가지가 결합한 내용일 수도 있고......너무 우울한가?

추신2) 대화 한 토막 : 업보를 짊어진 자의 슬픔

"살아있는 사람에겐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 그건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지. 하지만 사람마다 그림자 색깔은 모두 달라. 빨간 사람도 있고 파란 사람도 있다. 난 사람을 볼 때 반드시 그림자를 본다. 범죄자의 그림자는 한없이 어둡지..."

"선배님 그림자는 무슨 색일까요?"

"내 그림자? 내 그림자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냐. 다른 사람의 영혼을 너무나도 많이 짊어져서 밝은 색인지 어두운 색인지 구별도 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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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0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암울해 더 못본 만홥니다 ㅠ.ㅠ 쿄야가 불쌍할것같아서요.

상복의랑데뷰 2006-02-05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에피소드 때문이라도 꼭 끝까지 보시길 권합니다. 근데 저도 감당이 잘 안되네요. 기분이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