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미나모토 타카시 감독, 마츠모토 준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불륜에는 자기합리화의 측면이 강하다. <도쿄 타워>를 보면서 느낀 점이었다. 자기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섹스라는 쾌락 혹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누리고 싶다는 태도.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은 흔히 자기합리화를 한다. 속이고 있는 배우자를 배려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국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한 합리적인 자구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이고-개인적으로 국가가 개인사에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간통죄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다.-최소한 윤리적으로는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이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분명 소중한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소중하고 진실된 감정이라는 이면에는 이기적이고 일그러진 모습들이 숨어있다. 혹은 배우자의 희생 혹은 배신감 같은 감정적으로 일그러진 모습. 애써 그것을 마주치기를 피하는 것이기도 하고. 한가지 더. 사회적, 경제적으로 일정수준의 생활이 보장되어야만 불륜도 가능한 것 같다. 여기까지 쓰고 생각해보니, 내가 본 불륜 영화/드라마 중에서 거의 기억나지도 않는 <우묵배미의 사랑>을 제외하고는 불륜이라는 행위는 중상류 층의 이상의 삶에서 벌어졌던 것 같다.

하지만, <도쿄 타워>는 이런 교훈을 거칠게 가르쳐 주는 반면교사의 영화였다. 내가 비뚤어진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컥하게 만드는 지점이 많았다. 영화를 보면서, 꽃미남 컴플렉스가 이렇게 심했나,  부르조아들의 풍요로운, 그렇지만 일그러진 삶에 대한 반감이 이렇게 심했나라는 질문을 영화 내내 던질 정도로 이 영화가 주는 정서적인 거부감은 컸다. 불륜영화의 핵심은 주인공들의 태도가 얼마나 공감이 가느냐라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정말 꽝이다. 여자주인공은 거식증에 걸린 듯한 몸에 보톡스 과잉에 찌든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관하고, 남자주인공은 연기력이 부족한 꽃미남의 전형적인 태도에 어설픈 교급취향을 남발한다. 게다가 에쿠니 가오리의 원작에서 가져온 듯한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대사들이 결합하니 그야말로 우스움과 짜증 그 자체다. 맛없는 요리에 양념만 진하게 해논 격이라고 해야하나.  

게다가 영화는 별 내용도 없는 데 지루하기만 하니...더구나, 불륜에 필요하는 숨막히는 긴장감 따위는 찾아 볼 수가 없어서 더욱 지루하다. 여기 나오는 커플들은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둘이 있을 때는 세상의 시선을 두려워 하고, 여럿이 있을 때는 무관심하는 이상한 태도로 일관한다. 저렇게 불륜하면, 누구든지 다 알겠다 싶을 태도로 일관한다. 그래놓고서는 알려질가봐 전전긍긍한다. 당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유일하게 건진 것이 있다면, <바이브레이터>의 여주인공이라고 소개된 배우의 연기력이었다. 그나마 이 영화를 살렸다. 상대역 역시 연기력이 부족한 꽃미남이라서, 계속 덜컹거렸지만, 이 커플은 설정상으로도 중반 이후부터는 여자가 남자를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았다. 플라멩고 장면에서는 배우의 힘이 느껴지기도 했고...최소한 이쪽 커플은 위선적이긴 해도, 가식적이지는 않다. 이쪽 커플도 자기합리화의 측면이 강하지만, 이를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그나마 마음에 들었다.

더 이상 써봐야 짜증스럽게 보일 것 같아서, 이 쯤에서 그만 끄적거리련다.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은 영화다. 차라리 <냉정과 열정사이>가 몇백배 낫다. 정말 궁금한 것. 왜 이 영화는 <도쿄 타워>에서 시작해서 엉뚱한 곳에서 끝날까? 아니 <도쿄 타워>가 제목인 이유는 무엇인가?

추신) 여주인공이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실락원>의 여주인공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절망했다. 세월의 무게를 거스르려다가 오히려 잘못된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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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 2006-05-22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관점에서 심각히 보신 것 같군요... 소설이나 사회과학서적과 달리 영화의 8할 정도는 '스타일' 아닐까요? 스타일면에서 꽤 스타일리쉬한 괜찮은 영화입니다. 키미코 역의 테라지마 시노부 연기엔 절대 동감입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05-22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심각하게 본건 아닌데, 제 리뷰가 좀 심각했나봅니다. 거부감이 좀 심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