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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 (dts 2disc)
왕가위 외 감독, 공리 외 출연 / 스타맥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편의 옴니버스인데, 나머지 두 편은 소더버그 편은 거의 못봤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왕가위의 단편만으로 충분히 제 값을 한다. <화양연화> 이후로 포마드 기름을 머리에 바른 2:8 가르마의 정장차림의 신사가 왕가위의 페르소나가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의 페르소나는 재단사이다. 그는 견습시절 고급 창녀 후아의 집에 심부름을 갔다가 후아의 노골적인 손길에 아찔한 감흥을 느끼고, 이후 그녀의 몰락을 바라보며, 그녀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간직한다. 그러나 후아는 몰락하고, 병든 그녀 곁을 맴도는 재단사. 그리고 재단사 앞에 나타난 그녀의 손...
이 영화는 수줍은 듯이 공리를 쳐다본다. 특히 욕망의 대상인 공리를 보여줌에 있어서 카메라는 노골적으로 그녀의 성적매력을 훔쳐보기에 바쁘다. 화면에서 카메라는 공리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육체만 보여주거나, 거울을 통해 보여준다. 또는 시선의 중심에 그녀가 놓여있지 못하고 변죽만 울린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화면을 지배하는 것은 공리의 에로스적인 이미지이다. 그 매혹의 순간을 카메라는 계속해서 따라간다. 이는 재단사-카메라-관객이 그녀의 매력에 압도당한 나머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거나, 흥분을 자아내는 부위-공리의 하얀 손과 육감적인 다리를-에 집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끝가지 몰락하여 여관 꼭대기층에 살며 부두에 호객행위를 해야만 하는 절박하고도 순간에도 그녀를 훔쳐보는 나의 눈 속에는 비를 맞은 그녀의 다리, 그리고 병들어 누워있던 순간에도 하얗게 빛나던 그 기다란 팔이 더 들어오는 것은 왜일까?
어떻게 보면 패티시물을 보는 것과 같았다. 재단사는 과연 그녀를 사랑했을까? 그녀의 손, 그리고 손이 주는 아찔한 촉감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도 손으로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랬기에 손으로 그녀를 위한 옷을 만들었던 것일거고. 그리고 줄자가 없다는 핑계로 자신의 손을 그녀에게 대었던 것 같다. 어쩌면 후아도 그것을 알았기에 마지막으로 '손을 내민'게 아닐까.
이들의 행위는 <화양연화>보다 더 에로틱하지만, 더 애절하다. 후반부에 재단사에게 후아가 손을 내밀며 읊는 대사, 그리고 재단사가 입에 키스를 하려고 할 때 손으로 막는 후아의 동작하나하나가 가슴 아팠다. 왕가위의 탐미적인 감각은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노출이 없이도 에로틱한 화면을 연이어 보여주는 그의 연출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원초적 본능>이후로 이렇게 에로틱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내가 하얀 손과 팔을 좋아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였을텐데, 아쉽게도 나는 손과 팔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리고, 공리의 매력과 연기력에 다시 한 번 빠져들 수 없었다. 초반의 압도적인 매력에서 후반부의 동정심을 자아내는 병자의 모습으로 바뀌는 과정은 에로스 그 자체였다. 아무리 왕가위가 탐미적인 영상을 찍어댄다고 하더라도 에로스를 물신화한 공리의 매력과 연기력이 없었다면 이 영화의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빼빼마른 다른 중국여배우들과는 달리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서 좋았고...입소문처럼 번지는 <게이샤의 추억>에서의 공리의 연기에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다. 장첸도 언젠가는 양조위를 대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양조위는 너무 비슷한 이미지로 연기가 중첩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나머지 두 편은 평이 별로 좋지 않아서, 이 두 편을 위해 다시 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공리의 매력과 왕가위의 영상만으로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지는 그런 옴니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