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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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돈 카밀로와 뻬뽀네, 일명 신부님 신부님 우리신부님 시리즈가 추천도서나 혹은 권장도서 목록에 올라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어릴 때는 일종의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시리즈였다. 덕분에 나도 별 생각 없이 읽었다. 나는 ㄷ사의 ACE를 통해 읽었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참 재미있게 읽었다. 예수님도 멀게 느껴지지 않고, 공산당=(잔인한) 빨갱이었던 네게 삐뽀네의 모습은 사람냄새가 나는 코메디언같은 느낌이었고, 그리고 신부님=김수환이던 내게 돈 카밀로는 신부복을 입은 효도르 같은 충격적인 느낌이었다. 그 밖의 마을 사람들이 등장해서 벌이는 촌극에서는 우습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사랑의 학교(쿠오레), <추억의 학교(나의 학교 나의 선생)>과 더불어 어린 시절에 읽은 최고의 이탈리아 소설이라고 하면 과찬이려나...

<까칠한 가족>은 이 돈 카밀로와 뻬뽀네 시리즈를 쓴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가족의 삶을 다룬 연작 에세이-소설집이다. 굳이 따지자면 사소설 정도 되려나? 소설로 보기에는 가족의 냄새가 진하고, 에세이라고 보기에는 저널리스트였던 죠반니노의 각색의 냄새가 진하다. 모 어느쪽이던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연작이지만, 내용의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부담없이 재미있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마 우리의 일상적인 가족과는 다른 느낌이기에, 그 엉뚱함 때문에 입가에 미소를 지을 것이다. 화도 잘 내지만, 가족들의 말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 현실 감각이 부족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어머니, 조숙하지만 사려깊은 아들과, 영리하면서도 약간은 이기적인 딸의 4중주가 계속해서 펼쳐진다. 아무래도 우리와는 가치관과 생활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A가 당연한 대답일 듯한 상황도 B,C,D가 나올 때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신문이나 잡기에 기고된 글 위주다 보니 가볍게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그 가족 내에 흐르는 따뜻함과 상호 존중과 관용의 넉넉한 마음씨에 감동하게 된다. 엄격한 부모를 당연하게 여기셨던 나의 부모님들, 그리고 중동에 오래 계셔서 아버지의 부재를 아쉬움으로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는 참 부러운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교육을 통해 완성된 인격체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부럽기까지 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답을 강요하거나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는, 그 이전에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부모와 물어볼 생각을 하지않는 자식들을 보면서 커온-나도 이 범주에 어느정도 포함될 것이다.-나로써는 부럽기만 했다.

내가 언제 어떤 이와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게 된다면, 최대한 비슷해지려고 노력해보리라 싶은 모습들이 군데군데 묻어나온다. 이 책은 지금 읽어도 좋겠지만, 보관해 두었다가 내 가족이 생겼을 때 두고두고 꺼내두면서 읽고 싶다. 이렇게 재미있는 지침서를 놔두고 어려운 책을 굳이 읽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가볍게 쓴 척 하지만, 배어나오는 깊이는 오래오래 갈 듯한 괜찮은 책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 다시 펼쳤을 때는 여기 묘사된 죠반니노 가족의 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보다는 인격적으로 성숙했음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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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철리 여자 동서 미스터리 북스 46
로스 맥도날드 지음, 김수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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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마이 네임 이스 아처>라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썼다.

"배경은 언제나 끈끈하고 화려함이 없으며, 대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계가 있는 이야기로, 류 아처 탐정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영감스러워지고 화려한 액션도 없고, 유머의 질도 챈들러 같은 사람에 비해서 빈약한 느낌이 든다."

내가 하루키의 대단한 팬은 아니지만, 이 문장을 보고 <움직이는 표적>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또렷하게 떠올라서 쿡쿡 웃었다. 아마도 이 책까지 읽은 추리소설독자들의 모든 고백은 대부분 한결같다. <움직이는 표적>(과 <마의 풀>)은 별로였는데, <위철리 여자>, <소름>, <지하인간>으로 이어지는 3부작에서 아처, 혹은 로스 맥도날드의 가치를 발견하고 놀랐다라는 식의...100만 21번째 고백같지만 나도 그렇다. <움직이는 표적>의 아처는 해밋과 챈들러의 큰 그늘에서 아직 벗어나오지 못한 데다가, 맨날 얻어터지고 납치나 실신 따위를 당하는 멋대가리 없는 지친 탐정을 좋아하기란 쉽지 않다.(<위철리 여자>에서도 이 경향은 그리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위철리 여자>를 읽으면서 가슴 한 구석이 찡해졌다. 위철리 가를 둘러싼 비극적인 가족사가 충격적이서가 아니다. 루 아처의 진심이 사골국물처럼 절절하게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루 아처는 샘 스페이드처럼 위악적이지도 않고, 필립 말로처럼 고독한 영웅도 아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서 보기 힘든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다.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금씩 밝혀지는 등장인물들의 비루한 삶과 욕망들. 그것이 조금씩 실체를 드러낼수록 아처는 현실에 지치고 절망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아처는 분노나 실망감을 표시하지 않고, 오히려 동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결말부분에서의 대화는 압권이다.) 

 "거짓말도 자꾸 되풀이하다 보면 정신에 기묘한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이와 같이 몇 번씩 되풀이하다 보면 일시적으로 진실이 된다, 나는 휘비가 내 딸이라고 믿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만일 휘비가 죽었다면 위철리가 슬퍼하는 만큼 나도 슬퍼하게 될 것 같다. 아내에 대한 위철리의 감정을 나는 이미 얼마쯤 나누어 갖고 있지 않은가."  

이런 따스함이 좋다. 넉넉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현실에 지치고 버거워하면서도 따스함을 잃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맨날 얻어터지고 납치나 당하는' 것도 사실은 가급적 완력으로 해결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샘 스페이드나 마이크 해머였으면 완력으로 해결할 법한 상황도 그는 묻고, 설득하면서 돌아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인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다. 잘못 이해간 것일 수도 있지만, 필립 말로라면 독설을 퍼부으면서 인정할 수 없었을 법한 상황도 그는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는 희망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 사건 해결에 대한 희망이건 등장인물들에 대한 희망이건 간에. 다만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분만 묵묵히 수행해 나간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마음 속에 드는 의문을 탐문수사를 통해 조금씩 조각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에서 어느 한 중년 남자의 자기성찰이 보인다. 비록 위대한 영웅이나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성찰과 노력을 통해 세상을 볼 줄 아는 통찰력과 이를 통해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게 된 남자의 담담하지만 깊은 매력이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최대의 미덕이다. 로스 맥도널드가 별로라던가, 하드 보일드의 지나친 남성성에 질린 독자들에게 반드시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추신) 내가 이 책, 그리고 로스 맥도날드의 국내 출간작을 순서대로 읽기로 한 계기 역시 같은 에세이에 있는 구절 때문이었다. 평론가들에 따르면 가장 과대평가된 소설가 1위라지만, 오히려 나는 하루끼가 너무 많이 소개되어 오히려 과소평과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도 가지게 된다. 

"어느 페이지를 펼처 보아도, 인간이 살아 나가는 데서 빚어지는 안쓰러움을 억제된 필치로 잘 그려 낸 걸 엿볼 수 있다. 등장 인물은 모두 검은 모자를 쓴 느낌이고, 각자가 불행으로서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 아무도 행복하게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계속 걸어가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로스 맥도널드는 계속 외쳐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남자의 묵묵한, 그렇치만 따뜻한 외침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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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천재들
김병기.신정일.이덕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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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이후 대중적 글쓰기, 혹은 특정한 교양서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커졌고, 그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의 필진들이 등장했다.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역사 부분에서 대표적인 저자를 손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이덕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2>,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거칠 것이 없어라: 김종서 평전> 등은 상당히 뛰어난 교양서였다. 이미 사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를 잘 정리한 수준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지만, 워낙에 굴곡진 현대사와 역사인식에서의 보수성 때문에 그의 도전적인 자세, 그리고 깔끔한 필치 등으로 인해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주욱 이어질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덕일 선생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 편이다. 

그러나 <한국사의 천재들>은 실망스러웠다. 내가 알던 그 이덕일 선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구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나귀님도 지적하셨지만, 이 세 분의 공동저자가 가지고 있는 '천재'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은 일단 유보하자. 부족하지만,  서문의 제목대로 '진정한 천재란 시대의 상식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다.'라는 표현이 이들이 정의한 천재라는 가정 하에 검토해 보자. 상당수의 위인이 탈락감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려고 해도 서희, 이규보, 정철, 황현 등은 결코 포함될 수가 없다. 명문세가인데 외교에 특출났던 서희가? 시대의 상식은 강호은거였는데, 권력욕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사화를 일으키거나(정철) 무신정권에 곡학아세를 했음(이규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시가를 남기면 천재인가?(훗날 서정주의 예를 보면 씁쓸하기 까지 하다.) 워낙 친일파가 넘쳐서 시대의 상식이었던 친일에 자살로 저항한 황현이 천재인가? 저자들이 정의한 '천재'라는 개념에 동의하느냐의 여부 이전에 이들이 선정한 위인들에 동의할 수가 없다.

인물선정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다 보니 구성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의 목차를 보자. 

1부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2부 하늘이 내려준 천재, 3부 시대와의 불화, 4부 신기의 문장, 글로써 세상을 아우르다.

순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는데, 제목만 그럴 듯하지 전형적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나열이다.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는 하늘이 내려준 천재가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대와의 불화를 겪은 천재는 시대를 뛰어넘었거나 하늘이 내려준 천재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엉뚱하게 4부에는 필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앞에 등장한 이이나 김시습 등은 문장력이 없었을까?

너무 멋을 부렸다. '한국사의 숨겨진 13명의 위인' 식의 가나다나 시대 순으로 나열했다면 이렇게까지 실망스럽지 않았을텐데, 보기 좋게 하려고 억지로 분류하고 억지로 꿰어맞추다 보니, 오히려 난잡해졌다.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이 책의 서술이 보여주는 '지나친 묽음'이었다. 학술논문이 아닌 이상, 어렵고 딱딱한 글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서술 수준은 딱 국사 교과서 수준이다. 더도말고 덜도 말고 알려진 만큼만 보여주는. 그러면서 교양서를 자칭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실례다. (묽음을 자랑하듯이 참고문헌조차 없는 얄팍함-출판사의 얄팍함이겠지만-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왜 천재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이들의 삶을 연대기적 구성을 통해 약술할 뿐이다.

물론, 유득공, 이가환, 이상설, 이벽 등과 같은 인물들은 비교적 홀대받았던 인물들이니 연대기를 서술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치원, 김시습, 서희, 장영실, 이이 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유명한 위인일수록 위인전 요약의 수준을 보인다. 장영실을 다룬 글에서 가계에 대한 연구를 덧붙였던 것처럼 일반인의 상식 밖의 내용을 추가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굳이 여기서 그들의 요약된 삶을 읽을 필요가 없다. 너무 큰 기대인지도 모른다. 해당 위인이 왜  저자들이 정의에 걸맞는 천재인지조차도 설명되지 않은 글에 그 이상의 재미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처럼, 한국사에서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의 열전이었다면 이렇게 실망하지 않았으지도 모르겠다만, 이래저래 영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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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조국
로버트 해리스 지음, 김홍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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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고려원에서 나왔던, fatherland가 <당신들의 조국>이란 이름을 달고 랜덤하우스에서 다시 나왔다. 일단, 번역제목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올해 최고의 제목이 아닌가 싶다. '당신들의' 이란 말투가 주는 묘한 비감이 있다. 바로 국가가 구성원들을 타자화시키는 서글픈 모습이라고 해야할까. 책에 묘사된 엄청난 크기의 회랑이 암시하고 있는 국가의 외형적 성장에 비해,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감시 하에서 두려움에 가득찬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인 셈이다. 그리고 당신이 될 수 없는 마르코의 슬픈 운명을 암시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비슷한 제목으로 떠올릴 수 있는  박노자 선생의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유사한 어감이다, 차이가 있다면 박노자 선생은 그래도 조국을 사랑하지만, 마르코는 그럴 수조차 없었다는 점이겠지만.) 그래서 '당신들'이라는 표현을 곱씹으면서 이 책을 읽었고 더욱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9개의 진실 속에서 1개의 거짓을 섞어넣는 정교함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후기를 읽으면서 전부다 창작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의 대부분이 역사적인 진실임을 알고 놀랐다. '딱 하나만 거짓이었구나.'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의 차원을 넘어서 거의 일어날 뻔한 일이었던 셈이다. (어떤 측면에선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긴 하다.)  

솔직히 이 작품이 소재로 삼는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막연할 뿐이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동일한 맥락의 사건들을 겪은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떠올라 관련 서적을 더 읽어보게 했으니, 복거일 선생의 추천사는 그런 면에서 사실인 셈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진실은 언젠다는 더 큰 댓가를 치루게 하는 법이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이, 이 소설은 조지 오웰의 1984와 비교할만한 구석이 많다. 그러나, 난 마틴 크루즈 스미스의 <고리키 공원(Gorky Park)>과 비교할만한 소설이라고 보여진다. 냉전의 반대편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 주인공의 상황-중년의 이혼남, 붕괴된 가족과 인간관계, 그리고 체제에 대한 마음 한 구석의 의문-그리고 품고 있는 진실과 결말까지 이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비슷한 구조로 되어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더 높게 보고 싶은데, <고리키 공원(Gorky Park)>는 실재하는 적대국을 묘사하다 보니 소설 중간중간에 필요 이상으로 소비에트 권력층의 부패를 과장해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딱 잘라서 구분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미국 사람이 쓴 소련 이야기의 함정'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속된 말로 '센세이셔널리즘'이 구석구석 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유혹에서 상당부분 벗어나고 있다. 가상역사소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열위를 과장해서 우리의 우위를 강조할 필요가 없던 것도 있겠지만,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꼼꼼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인물 구성이나 대화 그리고 특유의 드라이한 문체가 주는 차분함이 좋았다. 특히 비분강개하거나 과도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차분한 묘사는 역설적으로 마르코 개인의 비극을 가깝게 한다. 또한 전자는 시리즈로 이어가기 위한 술수(?)가 보이는 반면에, 이 작품은 자기완성성을 띄고 있다는 점도 말해두고 싶다.   

냉정하게 말해서 추리소설로만 놓고 본다면 잘 쓰여졌다 이상의 평을 주기는 어려운 느낌도 든다. 교활한 추리소설독자라면 '아웃사이더 중년남의 사건해결분투기'는 필립 말로 등장 이후로 골백번도 더 써먹은 소재 아닌가? 중간에 벌어지는 로맨스나 결말 부의 비틀어짐, 그리고 이 소설이 파헤치려는 주제는 조금만 생각한다면 쉽게 알만한 내용이긴 하다. 하지만 '무엇' 못지 않게 '어떻게'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게 구현해냈다는 점과, 1950년대 이후의 한국현대사가 걸어간 비슷한 병영국가의 길을 떠올린다면, 이 소설이 주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리고 그 와중에 소설 본연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꺼이 추천할만 하다. 에듀테인먼트라고 하면 경박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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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2-0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조지 오엘과의 비교는 좀 아니라고 봤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12-0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의 1984랑은 좀 다른 느낌이었죠. ^^; 간만에 읽은 묵직한 책이었습니다. 좋더라구요.
 


에드 멕베인이 1968년에 발표한 87분서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한 바로는 21번째 작품입니다. 68년에 21번째니 정말 정력적으로 집필활동을 하셨군요 -_-;;;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것만으로 따지면 10+1과 <찢겨진 사진>의 사이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우연히 숨어있는 책에서 구입하고 2주간 끙끙대면서 읽었습니다.

(제 영어 실력상 오독의 여지가 있고, 10+1에 대한 일부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일러까지는 아닙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사건을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첫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무실에 불청객이 앉아 있습니다. 사장도 여비서도 왜, 누구 때문에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용기를 내어 물어본 여비서는 험한 소리를 듣고, 이에 겁을 먹은 여비서는 사장에게 보고합니다. 사장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삿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서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경찰 입회 하에서 용건을 묻자 어떤 사람을 찾아왔다고 합니다만, 그 사람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에 옥신각신하다가 경찰이 개입하려하자, 이 불청객은 경찰을 개패듯이 패고, 비명을 지르는 비서를 남기고 사라지게 됩니다.

이에 87분서의 히죽남 버트 클링이 출동합니다. 사건을 조사하러 간 클링은 당황하게 되는데, 그 불청객이 만나려고 했던 여자가 10+1에서 자신과 한바탕 소동을 벌였던 신시아 포레스트였던 것입니다. 신시아는 10+1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에,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꾸어서 현재 인사팀에서 면접 보조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2년 반이 흘렀지만, 그녀녀는 버트 클링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카렐라가 친절하다는 등의 구박을 해댑니다. 부담감을 느낀 클링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번즈 경감에게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배치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번즈 경감은 살인자는 처형되었지만, 유족을 노리는 다른 테러일지 모른다면서 그녀를 계속 따라다닐 것을 명령합니다. 그녀를 보호함과 동시에 굴에 연기를 피워 토끼를 굴 밖으로 내쫓으려는 생각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클링과 포레스트는 원치 않는 보호관계에 들어서게 되면서 티격티격 대지만, 그 불청객은 클링이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더 무서운 행동에 들어서게 되는데......

다른 한편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TV쇼 진행자에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Stan Gifford라는 인기있는 쇼진행자가 있습니다. 그가 진행하는 쇼는 2천만 가구의 4천만 명의 8천만 눈동자가 시청하는 인기 쇼입니다. (이 표현은 소설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제목의 유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느라 TV 볼 시간이 없는 스티브 카렐라 형사도 이 쇼를 즐겨 봅니다. (참고로 테디는 말을 들을 수 없어서 판토마임만 본다는 군요.) 어느 날 이 쇼를 보고 있는데, 방송 중에 그만 Stan Gifford가 사망합니다.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난장판이 된 스튜디오에 마이어 마이어와 카렐라 콤비가 출동하고, 부검결과 독살로 밝혀집니다. 

정황상 사망 직전의 광고시간 전후로 독이 든 캡슐을 삼킨 것으로 추정한 두 콤비는 그 때 의상실에서 그와 함께 있었던 스태프와 그의 부인, 그리고 주치의를 수사합니다. 각각의 스태프에게서는 석연찮은 점이 발견됩니다. 의상담당은 죽은 진행자가 해고를 프로듀서에게 건의한 상태였고, 보조작가는 자신이 쓴 대본에 대한 악평 때문에 언쟁이 있었고....이런 혐의점와 더불어 서로의 진술이 엇갈리기 시작합니다. 또한 그의 부인은 첫 조사에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그러나 알리바이 검증과와 대질심문을 통해 일단 모두에게 혐의가 없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범인일까요? 두 형사는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에 못지 않게 마이어의 감기도 점점 심해지는 것을 깨닫게 되구요.)

87분서는 각 작품별의 재미와 전체 시리즈 속에서의 이어지는 재미가 어우러지는 것이 묘미인 셈인데, 특히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던 10+1의 뒷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두찬이에 따르면 버트 클링의 두 번째 애인인 신시아 포레스트와 맺어지는 계기가 되는 작품인 셈이죠. 역시 에드 멕베인 옹의 필력은 대단합니다. 영어로 읽었기 때문에 번역된 것보다 더 집중해서 읽은 탓도 있지만, 2주 정도 걸쳐 띄엄띄엄 읽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내용상 트릭의 독창성이나 범인찾기의 어려움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되는 것은 멕베인 옹의 필력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87분서를 읽으면서 이런 부분을 기대하지는 않겠지만요. 많이 읽어보지 못해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확실히 초기의 멕베인 옹의 필력은 소박한 느낌입니다. 문장의 길이가 짧고, 대화가 많고, 단어의 폭이 적은 대신에 상대적으로 특정 어휘의 사용빈도가 높습니다. 이에 비교하면 후반기 작품, 얼추 1980년대 이후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각 문장의 길이도 길어지고, 내용도 길어지면서 읽기가 훨씬 어렵더군요.(써놓고 보니 21번째 작품이니 초기작이라고 하기도 어색하네요. ^^)

그렇지만, 그 단순함 속에 순간순간 스쳐지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스크루볼 코메디에 가까운 버트 클링과 신시아 포레스트의 욱신각신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나 다른 작품에서도 멋진 개그 콤비였던 카렐라-마이어의 수사 상에서 주고받는 개그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특히 마이어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살의의 쐐기>에서의 활약으로 우중충한 허무개그의 달인으로 각인된 마이어 마이어는 이번 작품에서는 10월이 배경인 관계로 감기가 걸립채 등장합니다. 그래서 카렐라가 진지하게 수사하고 있으면, 옆에서 코를 훌쩍거리거나 기침하는 등 온갖 꾸리한 상황을 연출합니다. 그리고 마이어 특유의 썰렁한 한 마디 던지기까지...보고 있자니 웃음과 함께 안쓰러운 생각이 동시에 들더군요. 어느 작품에서 마이어가 과연 멋지게 나올 것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멕베인 특유의 짧지만 강렬한 단편적인 묘사도 여전히 돋보입니다. 첫 번째 사건의 불청객이 저지르는 폭행들의 묘사는 마치 액션영화를 보는 듯 강렬하며, 카렐라가 진행자 Stan의 죽음을 목격하기 전까지 묘사되는 쇼의 전개는 저의 영어실력이 부족함이 아쉬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특히 판토마임을 묘사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영어로 읽은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스산한 10월 거리를 묘사하는 장면이나, 버트 클링이 수사를 위해 방문한 부둣가의 풍경묘사도 맥베인 답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멕베인 특유의 여성들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인들이 육감적이죠.-도 여전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맥베인 옹의 구성방식에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내용상 두 가지의 이야기가 병렬로 진행되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묘한 재미를 줍니다. 예를 들어 초반부에 클링-포레스트 라인은 심각하다가 러브러브라인으로 빠지게 되는데, 반대로 카렐라-마이어 라인은 재미있는 쇼의 묘사가 지나고 나면 점점 수가가 미궁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편의 이야기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아줍니다. 마치 두 묶음의 카드를 들고 있는 상대와 포커를 치는 기분이랄가요. 카렐라-마이어가 사건이 안 풀리고 경찰의 애환을 다루고 나면-간만에 집에 들어와서 애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전화가 걸려서 카렐라는 다시 나가야만 하죠-둘이서 티격티격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또한 불청객으로 인해 클링-포레스트 라인이 심각해지면, 카렐라-마이어가 본격적으로 개그를 하고 사건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주된 이야기는 카렐라와 마이어가 수사하는 이야기입니다만, 클링과 포레스트의 연애담도 비중에 비해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뭐랄까 1+1=3,4,5,...를 만들어 내는 느낌이랄까요? 맥베인의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평범한 일상들 사이에서 엮이면서 발생하는 재미나, 단편처럼 등장하는 삶의 여러 모습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면 사건이 해결되는데, 사건이 해결되는 것 자체는 이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건 자세히 말씀드리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만, 결말부분의 다양한 결말들은 결국 에드 멕베인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일부 있었습니다. 우선 제목과는 다르게 쇼 비지니스의 내부를 들여다볼 정도의 내용이 없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유명 진행자가 생방송 중에 죽었다라면 기대할법한 내용이 의외로 적습니다. Eighty Million Eyes라는 제목과 초기 도입부를 보고 쇼 비지니스의 추악한 면을 수사 과정에서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아쉽지만 소재 차원에서 그치고 맙니다. 물론 반드시 쇼 비지니스를 보여줘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멕베인 옹의 필력이라면 날카롭게 파헤칠 법도 한데 말이죠. 그리고 중심축이 되는 이야기의 범인과 트릭이 평이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결말 부분에 카렐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건 초반에 확인하면 알 수 있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경천동지할 트릭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의 트릭과 해결방법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살의의 쐐기>랑 비교하면 확실히 부족한 느낌입니다.

에드 멕베인은 늘 그렇듯이 실망을 주지 않는 작가입니다. 특히 초기작은 그렇습니다. 후기작은 번역탓도 있겠지만, 조금 실망스러운 면도 있었죠. 매년 한두작품씩 내면서, 그리고 다른 일도 병행하면서 꾸준하게 수준작을 낸다는 것은 대단하죠. 이러쿵 저러쿵 써놓고 보니, 이 작품만의 감상을 썼다기 보다는 다른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는 에드 멕베인의 장점을 이제야 발견한 듯 쓴 것 같은 느낌이네요. 오랫만에 영미작가의 수작을 읽어서 흡족한 느낌입니다.

추신1) 작품 중간에 버트 클링이 신시아 포레스트에게 새로 나온 히치콕 영화를 보자고 합니다. 작품출간년도가 1968년이니 이론상으로는 1967년이나 1968년 영화겠죠? 시기가 비슷한 히치콕 영화는 1966년에 개봉된 폴 뉴먼와 줄리 앤드류스가 주연의 <찢겨진 커튼(Torn Curtain)>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새로 나온 히치콕 영화는 전 작품인 <마니(Marnie)>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에드 맥베인은 1963년에 개봉한 <새(The Birds)>의 극본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합니다. 하지만 에드 맥베인은 이전에 57~59년 사이에 Alfred Hitchcock Presents에 세 개의 에피소드를 각색합니다만, 그 때는 히치콕을 만나서 작업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을유문화사의 <히치콕>을 읽어보면, 뒤 모리에의 원작을 각색할 사람으로 히치콕은 에드 맥베인을 고용하고, 히치콕 특유의 완벽주의로 맥베인의 각색을 다 고쳐서 영화를 찍습니다. 당연히 맥베인 옹이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합니다. 결말이나 중요한 부분등을 다 고쳤으니 기분 나쁠만도 하죠.그러나 히치콕은 맥베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차기작인 <마니(Marnie)>의 각색도 맡깁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주인공이 XX당한다는 설정 등에 대한 이견 차이로 맥베인이 쓴 초고는 기각되고, 히치콕은 에이전트에게 해고를 통보합니다. 이래저래 맥베인 옹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죠. 나중에 <나와 히치(Me and Hitch)>라는 회고록까지 쓴 걸 보면 화가 상당히 났던 모양입니다. <히치콕>에서 읽은, <나와 히치(Me and Hitch)>에서 인용된 에드 멕베인의 이야기들이 그리 고운 표현들이 아니었습니다. 하긴 그정도 곤조 없이 작가를 할 수 없겠죠. 그래서 새 히치콕 영화를 굳이 보자고 하는건 내가 쓴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썼나 보자라는 식의 곤조가 느껴집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상상입니다...^^ 

제가 길게 쓴 이유는 이 작품의 초반에 등장하는 TV 프로듀서는 히치콕을 모델로 쓴 티가 나기 때문입니다. 히치콕의 악명높은 명언인 배우를 가축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표현도 직설적으로 등장하고, 히치콕의 음담패설성 농담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여자의 특정부위를 운운하면서 자기과시적인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음흉함은 히치콕의 그것과 유사하죠. 솔직히 이렇게까지 말하면 안되겠지만, 추레한 히치콕과는 정 반대의 외모를 가지신 분을 설정한 것 자체가 의심스럽긴 합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어느 독자의 망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

추신2) 다음 작품이 Fuzz군요. 이번에 뜬금없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87분서는 정말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겠다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았습니다. 이 책을 헌책방에서 본 것 같은데, 사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추신3) 방금 집에 와서 책을 확인해보니, 출간일자가 66년이네요. 공식 홈피에 68년으로 되어있어서 그렇게 추정했는데, 아마 페이퍼백 기준인 모양입니다. 하드커버 초판은 66년에 나왔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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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1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부러워요 ㅜ.ㅜ

상복의랑데뷰 2006-11-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물만두님이 더 부러운데요 ^^;

2007-03-15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