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조국
로버트 해리스 지음, 김홍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 고려원에서 나왔던, fatherland가 <당신들의 조국>이란 이름을 달고 랜덤하우스에서 다시 나왔다. 일단, 번역제목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올해 최고의 제목이 아닌가 싶다. '당신들의' 이란 말투가 주는 묘한 비감이 있다. 바로 국가가 구성원들을 타자화시키는 서글픈 모습이라고 해야할까. 책에 묘사된 엄청난 크기의 회랑이 암시하고 있는 국가의 외형적 성장에 비해, 서로를 믿지 못하고 감시 하에서 두려움에 가득찬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인 셈이다. 그리고 당신이 될 수 없는 마르코의 슬픈 운명을 암시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비슷한 제목으로 떠올릴 수 있는  박노자 선생의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유사한 어감이다, 차이가 있다면 박노자 선생은 그래도 조국을 사랑하지만, 마르코는 그럴 수조차 없었다는 점이겠지만.) 그래서 '당신들'이라는 표현을 곱씹으면서 이 책을 읽었고 더욱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9개의 진실 속에서 1개의 거짓을 섞어넣는 정교함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후기를 읽으면서 전부다 창작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의 대부분이 역사적인 진실임을 알고 놀랐다. '딱 하나만 거짓이었구나.'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의 차원을 넘어서 거의 일어날 뻔한 일이었던 셈이다. (어떤 측면에선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긴 하다.)  

솔직히 이 작품이 소재로 삼는 내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막연할 뿐이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동일한 맥락의 사건들을 겪은 우리나라의 현대사가 떠올라 관련 서적을 더 읽어보게 했으니, 복거일 선생의 추천사는 그런 면에서 사실인 셈이다. 우리가 잊고 있는 진실은 언젠다는 더 큰 댓가를 치루게 하는 법이다.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이, 이 소설은 조지 오웰의 1984와 비교할만한 구석이 많다. 그러나, 난 마틴 크루즈 스미스의 <고리키 공원(Gorky Park)>과 비교할만한 소설이라고 보여진다. 냉전의 반대편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 주인공의 상황-중년의 이혼남, 붕괴된 가족과 인간관계, 그리고 체제에 대한 마음 한 구석의 의문-그리고 품고 있는 진실과 결말까지 이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비슷한 구조로 되어있다.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더 높게 보고 싶은데, <고리키 공원(Gorky Park)>는 실재하는 적대국을 묘사하다 보니 소설 중간중간에 필요 이상으로 소비에트 권력층의 부패를 과장해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딱 잘라서 구분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미국 사람이 쓴 소련 이야기의 함정'을 피해가지는 못한다. 속된 말로 '센세이셔널리즘'이 구석구석 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런 유혹에서 상당부분 벗어나고 있다. 가상역사소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열위를 과장해서 우리의 우위를 강조할 필요가 없던 것도 있겠지만,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들이 그러하듯이, 꼼꼼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인물 구성이나 대화 그리고 특유의 드라이한 문체가 주는 차분함이 좋았다. 특히 비분강개하거나 과도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차분한 묘사는 역설적으로 마르코 개인의 비극을 가깝게 한다. 또한 전자는 시리즈로 이어가기 위한 술수(?)가 보이는 반면에, 이 작품은 자기완성성을 띄고 있다는 점도 말해두고 싶다.   

냉정하게 말해서 추리소설로만 놓고 본다면 잘 쓰여졌다 이상의 평을 주기는 어려운 느낌도 든다. 교활한 추리소설독자라면 '아웃사이더 중년남의 사건해결분투기'는 필립 말로 등장 이후로 골백번도 더 써먹은 소재 아닌가? 중간에 벌어지는 로맨스나 결말 부의 비틀어짐, 그리고 이 소설이 파헤치려는 주제는 조금만 생각한다면 쉽게 알만한 내용이긴 하다. 하지만 '무엇' 못지 않게 '어떻게'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게 구현해냈다는 점과, 1950년대 이후의 한국현대사가 걸어간 비슷한 병영국가의 길을 떠올린다면, 이 소설이 주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리고 그 와중에 소설 본연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꺼이 추천할만 하다. 에듀테인먼트라고 하면 경박할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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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2-0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조지 오엘과의 비교는 좀 아니라고 봤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6-12-0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의 1984랑은 좀 다른 느낌이었죠. ^^; 간만에 읽은 묵직한 책이었습니다.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