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 멕베인이 1968년에 발표한 87분서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한 바로는 21번째 작품입니다. 68년에 21번째니 정말 정력적으로 집필활동을 하셨군요 -_-;;;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것만으로 따지면 10+1과 <찢겨진 사진>의 사이에 출간된 작품입니다. 우연히 숨어있는 책에서 구입하고 2주간 끙끙대면서 읽었습니다.

(제 영어 실력상 오독의 여지가 있고, 10+1에 대한 일부 언급이 있습니다. 스포일러까지는 아닙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사건을 바탕으로 진행됩니다. 첫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무실에 불청객이 앉아 있습니다. 사장도 여비서도 왜, 누구 때문에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용기를 내어 물어본 여비서는 험한 소리를 듣고, 이에 겁을 먹은 여비서는 사장에게 보고합니다. 사장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삿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밖으로 나가서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경찰 입회 하에서 용건을 묻자 어떤 사람을 찾아왔다고 합니다만, 그 사람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에 옥신각신하다가 경찰이 개입하려하자, 이 불청객은 경찰을 개패듯이 패고, 비명을 지르는 비서를 남기고 사라지게 됩니다.

이에 87분서의 히죽남 버트 클링이 출동합니다. 사건을 조사하러 간 클링은 당황하게 되는데, 그 불청객이 만나려고 했던 여자가 10+1에서 자신과 한바탕 소동을 벌였던 신시아 포레스트였던 것입니다. 신시아는 10+1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에,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꾸어서 현재 인사팀에서 면접 보조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2년 반이 흘렀지만, 그녀녀는 버트 클링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카렐라가 친절하다는 등의 구박을 해댑니다. 부담감을 느낀 클링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번즈 경감에게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배치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번즈 경감은 살인자는 처형되었지만, 유족을 노리는 다른 테러일지 모른다면서 그녀를 계속 따라다닐 것을 명령합니다. 그녀를 보호함과 동시에 굴에 연기를 피워 토끼를 굴 밖으로 내쫓으려는 생각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클링과 포레스트는 원치 않는 보호관계에 들어서게 되면서 티격티격 대지만, 그 불청객은 클링이 경찰이라는 것을 알고 더 무서운 행동에 들어서게 되는데......

다른 한편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TV쇼 진행자에 관련된 이야기 입니다. Stan Gifford라는 인기있는 쇼진행자가 있습니다. 그가 진행하는 쇼는 2천만 가구의 4천만 명의 8천만 눈동자가 시청하는 인기 쇼입니다. (이 표현은 소설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제목의 유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격무에 시달리느라 TV 볼 시간이 없는 스티브 카렐라 형사도 이 쇼를 즐겨 봅니다. (참고로 테디는 말을 들을 수 없어서 판토마임만 본다는 군요.) 어느 날 이 쇼를 보고 있는데, 방송 중에 그만 Stan Gifford가 사망합니다. 갑작스런 사망으로 인해 난장판이 된 스튜디오에 마이어 마이어와 카렐라 콤비가 출동하고, 부검결과 독살로 밝혀집니다. 

정황상 사망 직전의 광고시간 전후로 독이 든 캡슐을 삼킨 것으로 추정한 두 콤비는 그 때 의상실에서 그와 함께 있었던 스태프와 그의 부인, 그리고 주치의를 수사합니다. 각각의 스태프에게서는 석연찮은 점이 발견됩니다. 의상담당은 죽은 진행자가 해고를 프로듀서에게 건의한 상태였고, 보조작가는 자신이 쓴 대본에 대한 악평 때문에 언쟁이 있었고....이런 혐의점와 더불어 서로의 진술이 엇갈리기 시작합니다. 또한 그의 부인은 첫 조사에서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그러나 알리바이 검증과와 대질심문을 통해 일단 모두에게 혐의가 없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범인일까요? 두 형사는 사건이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에 못지 않게 마이어의 감기도 점점 심해지는 것을 깨닫게 되구요.)

87분서는 각 작품별의 재미와 전체 시리즈 속에서의 이어지는 재미가 어우러지는 것이 묘미인 셈인데, 특히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던 10+1의 뒷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두찬이에 따르면 버트 클링의 두 번째 애인인 신시아 포레스트와 맺어지는 계기가 되는 작품인 셈이죠. 역시 에드 멕베인 옹의 필력은 대단합니다. 영어로 읽었기 때문에 번역된 것보다 더 집중해서 읽은 탓도 있지만, 2주 정도 걸쳐 띄엄띄엄 읽으면서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내용상 트릭의 독창성이나 범인찾기의 어려움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게 되는 것은 멕베인 옹의 필력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87분서를 읽으면서 이런 부분을 기대하지는 않겠지만요. 많이 읽어보지 못해서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만, 확실히 초기의 멕베인 옹의 필력은 소박한 느낌입니다. 문장의 길이가 짧고, 대화가 많고, 단어의 폭이 적은 대신에 상대적으로 특정 어휘의 사용빈도가 높습니다. 이에 비교하면 후반기 작품, 얼추 1980년대 이후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각 문장의 길이도 길어지고, 내용도 길어지면서 읽기가 훨씬 어렵더군요.(써놓고 보니 21번째 작품이니 초기작이라고 하기도 어색하네요. ^^)

그렇지만, 그 단순함 속에 순간순간 스쳐지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스크루볼 코메디에 가까운 버트 클링과 신시아 포레스트의 욱신각신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나 다른 작품에서도 멋진 개그 콤비였던 카렐라-마이어의 수사 상에서 주고받는 개그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입니다. 특히 마이어의 활약은 대단합니다. <살의의 쐐기>에서의 활약으로 우중충한 허무개그의 달인으로 각인된 마이어 마이어는 이번 작품에서는 10월이 배경인 관계로 감기가 걸립채 등장합니다. 그래서 카렐라가 진지하게 수사하고 있으면, 옆에서 코를 훌쩍거리거나 기침하는 등 온갖 꾸리한 상황을 연출합니다. 그리고 마이어 특유의 썰렁한 한 마디 던지기까지...보고 있자니 웃음과 함께 안쓰러운 생각이 동시에 들더군요. 어느 작품에서 마이어가 과연 멋지게 나올 것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더군요. 그리고 멕베인 특유의 짧지만 강렬한 단편적인 묘사도 여전히 돋보입니다. 첫 번째 사건의 불청객이 저지르는 폭행들의 묘사는 마치 액션영화를 보는 듯 강렬하며, 카렐라가 진행자 Stan의 죽음을 목격하기 전까지 묘사되는 쇼의 전개는 저의 영어실력이 부족함이 아쉬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특히 판토마임을 묘사하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영어로 읽은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스산한 10월 거리를 묘사하는 장면이나, 버트 클링이 수사를 위해 방문한 부둣가의 풍경묘사도 맥베인 답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멕베인 특유의 여성들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등장하는 대부분의 여인들이 육감적이죠.-도 여전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맥베인 옹의 구성방식에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내용상 두 가지의 이야기가 병렬로 진행되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이 두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묘한 재미를 줍니다. 예를 들어 초반부에 클링-포레스트 라인은 심각하다가 러브러브라인으로 빠지게 되는데, 반대로 카렐라-마이어 라인은 재미있는 쇼의 묘사가 지나고 나면 점점 수가가 미궁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편의 이야기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아줍니다. 마치 두 묶음의 카드를 들고 있는 상대와 포커를 치는 기분이랄가요. 카렐라-마이어가 사건이 안 풀리고 경찰의 애환을 다루고 나면-간만에 집에 들어와서 애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하는데, 전화가 걸려서 카렐라는 다시 나가야만 하죠-둘이서 티격티격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또한 불청객으로 인해 클링-포레스트 라인이 심각해지면, 카렐라-마이어가 본격적으로 개그를 하고 사건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주된 이야기는 카렐라와 마이어가 수사하는 이야기입니다만, 클링과 포레스트의 연애담도 비중에 비해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뭐랄까 1+1=3,4,5,...를 만들어 내는 느낌이랄까요? 맥베인의 작품을 읽으면 읽을수록 평범한 일상들 사이에서 엮이면서 발생하는 재미나, 단편처럼 등장하는 삶의 여러 모습들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면 사건이 해결되는데, 사건이 해결되는 것 자체는 이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건 자세히 말씀드리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만, 결말부분의 다양한 결말들은 결국 에드 멕베인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이 아닐까라고 추측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일부 있었습니다. 우선 제목과는 다르게 쇼 비지니스의 내부를 들여다볼 정도의 내용이 없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유명 진행자가 생방송 중에 죽었다라면 기대할법한 내용이 의외로 적습니다. Eighty Million Eyes라는 제목과 초기 도입부를 보고 쇼 비지니스의 추악한 면을 수사 과정에서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아쉽지만 소재 차원에서 그치고 맙니다. 물론 반드시 쇼 비지니스를 보여줘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아쉬운 마음이 드네요. 멕베인 옹의 필력이라면 날카롭게 파헤칠 법도 한데 말이죠. 그리고 중심축이 되는 이야기의 범인과 트릭이 평이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결말 부분에 카렐라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건 초반에 확인하면 알 수 있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경천동지할 트릭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의 트릭과 해결방법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살의의 쐐기>랑 비교하면 확실히 부족한 느낌입니다.

에드 멕베인은 늘 그렇듯이 실망을 주지 않는 작가입니다. 특히 초기작은 그렇습니다. 후기작은 번역탓도 있겠지만, 조금 실망스러운 면도 있었죠. 매년 한두작품씩 내면서, 그리고 다른 일도 병행하면서 꾸준하게 수준작을 낸다는 것은 대단하죠. 이러쿵 저러쿵 써놓고 보니, 이 작품만의 감상을 썼다기 보다는 다른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는 에드 멕베인의 장점을 이제야 발견한 듯 쓴 것 같은 느낌이네요. 오랫만에 영미작가의 수작을 읽어서 흡족한 느낌입니다.

추신1) 작품 중간에 버트 클링이 신시아 포레스트에게 새로 나온 히치콕 영화를 보자고 합니다. 작품출간년도가 1968년이니 이론상으로는 1967년이나 1968년 영화겠죠? 시기가 비슷한 히치콕 영화는 1966년에 개봉된 폴 뉴먼와 줄리 앤드류스가 주연의 <찢겨진 커튼(Torn Curtain)>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새로 나온 히치콕 영화는 전 작품인 <마니(Marnie)>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에드 맥베인은 1963년에 개봉한 <새(The Birds)>의 극본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합니다. 하지만 에드 맥베인은 이전에 57~59년 사이에 Alfred Hitchcock Presents에 세 개의 에피소드를 각색합니다만, 그 때는 히치콕을 만나서 작업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을유문화사의 <히치콕>을 읽어보면, 뒤 모리에의 원작을 각색할 사람으로 히치콕은 에드 맥베인을 고용하고, 히치콕 특유의 완벽주의로 맥베인의 각색을 다 고쳐서 영화를 찍습니다. 당연히 맥베인 옹이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합니다. 결말이나 중요한 부분등을 다 고쳤으니 기분 나쁠만도 하죠.그러나 히치콕은 맥베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차기작인 <마니(Marnie)>의 각색도 맡깁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주인공이 XX당한다는 설정 등에 대한 이견 차이로 맥베인이 쓴 초고는 기각되고, 히치콕은 에이전트에게 해고를 통보합니다. 이래저래 맥베인 옹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겠죠. 나중에 <나와 히치(Me and Hitch)>라는 회고록까지 쓴 걸 보면 화가 상당히 났던 모양입니다. <히치콕>에서 읽은, <나와 히치(Me and Hitch)>에서 인용된 에드 멕베인의 이야기들이 그리 고운 표현들이 아니었습니다. 하긴 그정도 곤조 없이 작가를 할 수 없겠죠. 그래서 새 히치콕 영화를 굳이 보자고 하는건 내가 쓴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썼나 보자라는 식의 곤조가 느껴집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상상입니다...^^ 

제가 길게 쓴 이유는 이 작품의 초반에 등장하는 TV 프로듀서는 히치콕을 모델로 쓴 티가 나기 때문입니다. 히치콕의 악명높은 명언인 배우를 가축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표현도 직설적으로 등장하고, 히치콕의 음담패설성 농담도 그대로 재현됩니다. 여자의 특정부위를 운운하면서 자기과시적인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음흉함은 히치콕의 그것과 유사하죠. 솔직히 이렇게까지 말하면 안되겠지만, 추레한 히치콕과는 정 반대의 외모를 가지신 분을 설정한 것 자체가 의심스럽긴 합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어느 독자의 망상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

추신2) 다음 작품이 Fuzz군요. 이번에 뜬금없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87분서는 정말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겠다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았습니다. 이 책을 헌책방에서 본 것 같은데, 사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추신3) 방금 집에 와서 책을 확인해보니, 출간일자가 66년이네요. 공식 홈피에 68년으로 되어있어서 그렇게 추정했는데, 아마 페이퍼백 기준인 모양입니다. 하드커버 초판은 66년에 나왔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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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1-1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부러워요 ㅜ.ㅜ

상복의랑데뷰 2006-11-1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물만두님이 더 부러운데요 ^^;

2007-03-15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