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천재들
김병기.신정일.이덕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이후 대중적 글쓰기, 혹은 특정한 교양서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커졌고, 그에 걸맞게 다양한 분야의 필진들이 등장했다.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역사 부분에서 대표적인 저자를 손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이덕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1, 2>,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거칠 것이 없어라: 김종서 평전> 등은 상당히 뛰어난 교양서였다. 이미 사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를 잘 정리한 수준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지만, 워낙에 굴곡진 현대사와 역사인식에서의 보수성 때문에 그의 도전적인 자세, 그리고 깔끔한 필치 등으로 인해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 주욱 이어질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이덕일 선생에 대한 기대치는 높은 편이다. 

그러나 <한국사의 천재들>은 실망스러웠다. 내가 알던 그 이덕일 선생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구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나귀님도 지적하셨지만, 이 세 분의 공동저자가 가지고 있는 '천재'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은 일단 유보하자. 부족하지만,  서문의 제목대로 '진정한 천재란 시대의 상식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다.'라는 표현이 이들이 정의한 천재라는 가정 하에 검토해 보자. 상당수의 위인이 탈락감이다.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려고 해도 서희, 이규보, 정철, 황현 등은 결코 포함될 수가 없다. 명문세가인데 외교에 특출났던 서희가? 시대의 상식은 강호은거였는데, 권력욕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사화를 일으키거나(정철) 무신정권에 곡학아세를 했음(이규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시가를 남기면 천재인가?(훗날 서정주의 예를 보면 씁쓸하기 까지 하다.) 워낙 친일파가 넘쳐서 시대의 상식이었던 친일에 자살로 저항한 황현이 천재인가? 저자들이 정의한 '천재'라는 개념에 동의하느냐의 여부 이전에 이들이 선정한 위인들에 동의할 수가 없다.

인물선정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다 보니 구성도 엉성하기 짝이 없다. 이 책의 목차를 보자. 

1부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2부 하늘이 내려준 천재, 3부 시대와의 불화, 4부 신기의 문장, 글로써 세상을 아우르다.

순서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는데, 제목만 그럴 듯하지 전형적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나열이다.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는 하늘이 내려준 천재가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시대와의 불화를 겪은 천재는 시대를 뛰어넘었거나 하늘이 내려준 천재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엉뚱하게 4부에는 필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앞에 등장한 이이나 김시습 등은 문장력이 없었을까?

너무 멋을 부렸다. '한국사의 숨겨진 13명의 위인' 식의 가나다나 시대 순으로 나열했다면 이렇게까지 실망스럽지 않았을텐데, 보기 좋게 하려고 억지로 분류하고 억지로 꿰어맞추다 보니, 오히려 난잡해졌다.

더욱 실망스러웠던 것은 이 책의 서술이 보여주는 '지나친 묽음'이었다. 학술논문이 아닌 이상, 어렵고 딱딱한 글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서술 수준은 딱 국사 교과서 수준이다. 더도말고 덜도 말고 알려진 만큼만 보여주는. 그러면서 교양서를 자칭하는 것은 독자에 대한 실례다. (묽음을 자랑하듯이 참고문헌조차 없는 얄팍함-출판사의 얄팍함이겠지만-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왜 천재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고, 이들의 삶을 연대기적 구성을 통해 약술할 뿐이다.

물론, 유득공, 이가환, 이상설, 이벽 등과 같은 인물들은 비교적 홀대받았던 인물들이니 연대기를 서술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치원, 김시습, 서희, 장영실, 이이 등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유명한 위인일수록 위인전 요약의 수준을 보인다. 장영실을 다룬 글에서 가계에 대한 연구를 덧붙였던 것처럼 일반인의 상식 밖의 내용을 추가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굳이 여기서 그들의 요약된 삶을 읽을 필요가 없다. 너무 큰 기대인지도 모른다. 해당 위인이 왜  저자들이 정의에 걸맞는 천재인지조차도 설명되지 않은 글에 그 이상의 재미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처럼, 한국사에서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의 열전이었다면 이렇게 실망하지 않았으지도 모르겠다만, 이래저래 영 실망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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