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요즘도 돈 카밀로와 뻬뽀네, 일명 신부님 신부님 우리신부님 시리즈가 추천도서나 혹은 권장도서 목록에 올라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어릴 때는 일종의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시리즈였다. 덕분에 나도 별 생각 없이 읽었다. 나는 ㄷ사의 ACE를 통해 읽었는데, 당연한 이야기지만 참 재미있게 읽었다. 예수님도 멀게 느껴지지 않고, 공산당=(잔인한) 빨갱이었던 네게 삐뽀네의 모습은 사람냄새가 나는 코메디언같은 느낌이었고, 그리고 신부님=김수환이던 내게 돈 카밀로는 신부복을 입은 효도르 같은 충격적인 느낌이었다. 그 밖의 마을 사람들이 등장해서 벌이는 촌극에서는 우습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사랑의 학교(쿠오레), <추억의 학교(나의 학교 나의 선생)>과 더불어 어린 시절에 읽은 최고의 이탈리아 소설이라고 하면 과찬이려나...

<까칠한 가족>은 이 돈 카밀로와 뻬뽀네 시리즈를 쓴 죠반니노 과레스끼의 가족의 삶을 다룬 연작 에세이-소설집이다. 굳이 따지자면 사소설 정도 되려나? 소설로 보기에는 가족의 냄새가 진하고, 에세이라고 보기에는 저널리스트였던 죠반니노의 각색의 냄새가 진하다. 모 어느쪽이던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연작이지만, 내용의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부담없이 재미있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마 우리의 일상적인 가족과는 다른 느낌이기에, 그 엉뚱함 때문에 입가에 미소를 지을 것이다. 화도 잘 내지만, 가족들의 말을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아버지, 현실 감각이 부족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어머니, 조숙하지만 사려깊은 아들과, 영리하면서도 약간은 이기적인 딸의 4중주가 계속해서 펼쳐진다. 아무래도 우리와는 가치관과 생활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A가 당연한 대답일 듯한 상황도 B,C,D가 나올 때는 웃음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신문이나 잡기에 기고된 글 위주다 보니 가볍게 읽기에도 부담이 없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그 가족 내에 흐르는 따뜻함과 상호 존중과 관용의 넉넉한 마음씨에 감동하게 된다. 엄격한 부모를 당연하게 여기셨던 나의 부모님들, 그리고 중동에 오래 계셔서 아버지의 부재를 아쉬움으로 간직하고 있는 나에게는 참 부러운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교육을 통해 완성된 인격체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에 부럽기까지 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정답을 강요하거나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는, 그 이전에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부모와 물어볼 생각을 하지않는 자식들을 보면서 커온-나도 이 범주에 어느정도 포함될 것이다.-나로써는 부럽기만 했다.

내가 언제 어떤 이와 결혼을 하고 자식이 생기게 된다면, 최대한 비슷해지려고 노력해보리라 싶은 모습들이 군데군데 묻어나온다. 이 책은 지금 읽어도 좋겠지만, 보관해 두었다가 내 가족이 생겼을 때 두고두고 꺼내두면서 읽고 싶다. 이렇게 재미있는 지침서를 놔두고 어려운 책을 굳이 읽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가볍게 쓴 척 하지만, 배어나오는 깊이는 오래오래 갈 듯한 괜찮은 책이다. 내가 나이가 들어 다시 펼쳤을 때는 여기 묘사된 죠반니노 가족의 모습을 보며, 내가 지금보다는 인격적으로 성숙했음을 느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