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알고 있다 - 제3회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니키 에츠코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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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라 불리는 니키 에츠코 여사의 데뷔작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에도가와 란보 걸작선에 수록된 두편의 단편으로 인해, 출간을 손꼽아 기다렸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데뷔작답게, 장점과 단점이 고루 묻어나는 좋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옥문도>의 거창하고 기이한 대작같은 분위기와는 대척점에 있는 깔끔하고 발랄한 소품입니다. 연쇄살인이 일어나면서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작품이라고 할까요? 작품의 재미와는 무관하게 읽고 나서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본의 크리스티라는 말을 믿고 읽었는데, 읽고난 제 느낌은 반 다인이나 네로 울프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트릭이나 범죄 동기의 묘한 느낌은 반 다인의 그것과, 니키 남매의 활동상은 마치 울프-굿윈 콤비의 쇼를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티 여사께서 보여주시는 인간 군상에 대한 통찰이나 복잡함이 이 작품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오로지 추리만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갑니다. 심지어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에 대한 소개도 별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엉뚱한, 어쩌면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먼저 읽은 두 편의 단편은 이미 작가로써 완숙기에 접어든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릭 못지 않게 삶에 대한 완숙한 통찰이 작품에 배어나올 수가 있었겠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니키 에츠코는 갓 데뷔한 20대의 신인작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동화를 좋아하고 오빠를 전쟁에 잃은 거동이 불편한 20대 신인작가를 떠올리니 하나둘씩 이해가 되더군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데뷔작에는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집어넣게 됩니다. 니키 에츠코 여사가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반 다인, 엘러리 퀸 등의 고전기 거장들이 활동할 때입니다. 추리소설 애독자였던 니키 에츠코 여사가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죠. 그래서 그들의 영향이 강하게 묻어나겠는 것도 어느 정도 당연하겠죠. 게다가 어린 시절 닥친 질병으로 인해 보행조차 불편했던 그녀에게는 책 등을 통한 간접경험이 그녀가 가지는 소설쓰기의 자양분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른 자양분이 부족했을 것 같은 그녀에게 완숙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작품이 가지는 얇은 느낌이 이해가 갑니다. 그렇게 너그럽게 보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또한 추리소설애호가라면, 레시피를 보고 재료를 추측하는 재미도 가질 수 있을 것 같구요.      

저에게 이 작품은 <인간의 증명>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특정 시대를 너무나도 잘 반영하고 있어서, 그리고 작품이 가지는 뚜렷한 한계 때문에 시대를 초월하지 못하는 수작. 황금기의 반 다인이나 엘러리 퀸의 약간 허망한 트릭이라던가, 더 허무한 범죄동기, 니키 에츠코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종잇장처럼 얇은 인간들의 등장, 탐정의 등장-살인사건-조사-의외의 범인 식의 추리소설의 도식 밖에 존재하지 않는 앙상한 구조 등의 단점들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니키 에츠코 여사가 데뷔했던 시대를 대표할만한 수작인것은 분명합니다. 단지 세월이 흘러 약간 바래진 것이지요.

추신) 작품의 화자이자 탐정인 니키 에츠코의 말투나 생각. 니키 에츠코의 말투가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 처럼 귀엽고 생생합니다. (남자 번역자가 했다면 살리지 못했을) 니키 에츠코의 귀엽고 발랄한 느낌을 더 잘 살려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 들더군요.   

추신2) 시공사의 좋은 점은 책을 잘만든다는 점입니다. <옥문도>, <밤 그리고 두려움>에 이어서 책 자체로는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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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깡 2006-06-2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원님, 리뷰정말 감사드려요 (_ _)

상복의랑데뷰 2006-06-2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말씀을 ^^;

oldhand 2006-06-2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어제 읽었다. 미스터리 출판계에 유행이라고 해도 좋을 현대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이 속속 번역되고 있는 요즈음에, 일본 미스터리의 고전에 속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 시공사의 기획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인것 같다. 작품의 수준이나 흥행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상복의랑데뷰 2006-06-2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공사는 전문추리소설출판사는 아니지만, 애호가들의 구미에 걸맞는 좋은 책들을 내놓는 것 같습니다. ^^
 
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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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편차가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유명세에 비해 잘 안 읽게 되는 작가가 있다. 속된 말로 '아니 아직도 이 작가 책 안 읽어봤어요?' 하고 고전이나 유명 작가의 작품들 말이다. 아직 초보독자인 나는 언급한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추리 소설의 영역에 놓고 보면 대표적으로 로스 맥도널드가 해당된다. 아직 한 권도 완독해 본 적이 없다. <움직이는 표적>과 <마의 풀>을 읽다가 만 정도랄까...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스티븐 킹도 그러하다. 꽤 많은 영화와 TV 시리즈도 재미있게 보았고, 나름 책도 몇 권 가지고 있었는데, 유독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른 작가의 비슷한 공포 소설이 내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고, 워낙 다작가다 보니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몰라서기도 하고...그러다가 우연히 읽게 된 <유혹하는 글쓰기>를 보고, 그의 솔직하면서도 장인의 숙련된 글솜씨에 호감을 느꼈고, 용기를 내서 읽기로 결심한 작품은 바로 이것이었다. 장편에 비해 분량도 적었고, 설사 재미가 없더라도 단편집이라서 쉬엄쉬엄 읽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읽게 되었다.  

핑계는 이정도로 하고, 미루고 미루다 읽게된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는 그런 면에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85년에 출간된 작품이니 20년의 세월이 흐른 작품이라 일부는 빛이 바랜 느낌이 들지만, '공포의 제왕'인 킹이 창조해내는 솜씨는 세월이 지나도 대단하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유혹하는 글쓰기>에서 글쓰기에 대한 강의를 보고 그런 점에 유의해서 읽었는데, 번역을 감안하더라도 문장을 깔끔하게 쓴다.-이 빚어내는 일상의 공포는 초심자에게도 충분히 흥미진진하고, 스릴넘쳤으며, 그리고 무서웠다. 

비판적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단편은 '평온한 일상이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위협받고, 그 안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인간심리'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감히 한 줄로 요약한 내용을 스티븐 킹은 다양한 변주를 통해 섬뜩하게 그려낸다. 재료는 하나지만, 수천만가지의 레시피로 다양한 요리를 맛깔나게 만들어내는 요리사랄까.

스티븐 킹이 위대하면서 동시에 교묘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가해자의 실체가 두리뭉실하다는 점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묘사를 통해 외연만 보여질 뿐, 실체나 특성 등에 대한 설명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물론, 실체를 묘사한다면 초자연적인 묘사가 아닐 수도 있다.) 초창기 공포영화의 발전에 위대한 공헌을 한 발 루튼의 지론처럼 '안 보이는 게 더 무섭다'는 점을 스티븐 킹은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화에 실패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각 단편에 등장하는 생생한 심리묘사는 역시 스티븐 킹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길이의 제약을 심하게 받는 단편에서도 비교적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성공하고 있다. <안개>는 단편이라 보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원숭이>나 <뗏목>에서 보여지는 정교하면서도 공감이 가는 심리묘사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스티븐 킹의 멋진 서문. 서비스 정신에 충실한 작가 답게, 웬만한 소설보다 재미있게 장광설을 늘어놓으면서 이 책이 나온 경유를 설명하는 서문도 재미있다. 단편을 잘 써야 장편도 잘 쓰게 되는지, 단편과 장편은 창작 방법 부터 다른지는 잘 모르겠지만, 스티븐 킹은 전자의 입장(자기 단련)+독자를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장편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이 정도의 별미라면 충분할 것이다.      

나보다 먼저 이 소설을 읽고 좋은 리뷰를 써주신 분들의 말씀처럼 이 작품은 더위를 이겨내는 데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부메의 여름>이나 <망량의 상자>같은 작품이 찬물을 뒤집어쓴 느낌이라면, 이 작품은 팥빙수를 한입한입 떠먹는 느낌이라고 할까. 각 단편들이 주는 재미와 서늘함, 그리고 유머-스티븐 킹은 유머작가로서도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를 천천히 맛보다 보면, 무더위을 잊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로는 <안개>가 제일 마음에 들었고, 두려운 면에서는 <원숭이>와 <뗏목>, 단순한 재미로는 <카인의 부활>과 <토드 부인의 지름길>이 좋았다. 특히 <토드 부인의 지름길>의 결말 부분의 환상적인 느낌은 과연 킹인가 싶을 정도로 좋았다. 살짝 인류의 효율에 대한 집착을 풍자하는 듯한 느낌도 좋았고. <조운트>나 <결혼 축하 연주>는 심심한 편이었고... 

다만 아쉬운 점은 교열을 안본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오탈자가 많다는 것.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찌 실수가 없겠느냐만, 나같이 둔한 독자의 눈에도 많다 싶을정도는 곤란하지 싶다. 다른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하)가 더 많은 듯 해서 걱정이다. 그래도 킹이 펼처놓은 세상이라면 기꺼이 무서워하면서 들어가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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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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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와 <화차>로 유명한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 두 작품을 읽지 못한 나에게는 미유키 여사님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얽혀있다.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 사이킥 소년과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에게 오는 의문의 협박장을 둘러싼 이야기.

먼저 사이킥 탐정에 대한 이야기는 말로만 듣던 미유키 여사의 따뜻함과 꼼꼼한 묘사가 돋보였다. 제목이 묘사하듯 사이킥이란 단순하게 우리가 동경할 능력만은 아니라는 태도. 그들의 숨겨진 아픔에 대해서 한번쯤 고민해봤으면 하는 따뜻한 마음씀씀이가 가슴에 와닿았다. 어쩌면 사이킥이라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맥거핀일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 즉 잠들어 있는 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타인에 대해서 쉽게 판단하고, 동경하거나 혹은 경멸하는 것은 않을까? 어쩌면 미유키 여사가 하고 싶은 부분도 능력자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세칭 '일반인'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호소인 듯 싶었다. 벙어리로 등장하는 나나에도 그렇고. 작품 전체적으로도 그렇지만, 화자와 사이킥 탐정에 대한 이야기는 성장소설의 느낌이 담뿍 배어있다. 신지의 고민은 '자신만의 용을 깨우고 키워야 하는' 보통 청소년들의 고민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후자의 이야기가 빈약한 것은 조금 아쉽다. 작품의 주된 소재이자 주제인 사이킥 탐정 이야기에 비해 일정 부분 흥미를 유발하기 힘들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본인의 협박장에 대해서 별 감흥없이 대처하는 화자의 태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하다. 아무리 사이킥 탐정 취재에 호기심을 가졌다지만,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협박장을 보내온다면, 화자보다는 더 긴장하지 않았을까. 또한 전체적으로 미유키 여사의 따뜻한 눈길 때문인지, 악인들마져도 무딘 느낌이 들어서 작품에 필요한 긴장감이 떨어진다. 너무 쉽게쉽게 넘어간달까. 그리고 두 이야기가 합쳐지는 순간의 결말은 솔직히 난삽하고 심심하다. 갸우뚱갸우뚱거리면서 온 결말치고는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초기작이다 보니 좋은 결말이라고 보기에는 아쉬운 느낌도 많이 든다.

하지만, 미유키 여사님과의 첫 만남으로는 별 무리없는 작품이었다. <화차>, <이유>와의 만남이 기대가 된다.

추신) 이 작품은 이상하게도 필립 말로의 냄새가 난다. 내가 얼치기 팬이라서 그런가. 주인공의 태도, 미유키가 구축해놓은 설정, 특히 나나에와 가나코는 빅 슬립의 스턴우드 자매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언니격인 나나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나 그  과정, 결말 부분의 트릭의 난삽함은 <빅 슬립>과 유사한 면이 있다.

그리고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대화들.

"그렇지, 얼굴이 알려지면 사이킥 탐정이고 뭐고 있을 수가 없잖아. 마치 연예인처러 피해 다녀야 할걸."
"사이킥 탐정?" 신지는 중얼거리며 또 말을 흔들었다.
"멋있잖아?"
"전혀, 전혀 멋없어. 필립 말로와는 다른걸."(어린 애가 벌써...저 자리에는 셜록 홈스가 들어가야 할 듯 한데...)

사실 '정상'이라는 말은 마땅치 않은 표현이다. 정신이 썩은 인간이라도 사지만 멀쩡하면, '정상'이라는 얘기니까.
 
나나에를 껴안고 불을 끄자, 방 안에 어둠이 가득 찼다. 이 어둠 속에는 적의도, 위험도 없다. 생각할 필요마저 없다. 나머지는 그저 머릿속에서 밤이 흘러넘치도록 내버려두면 되는 일이다.
 
날이 밝자 도시는 잠에서 깨어나고, 창밖에서는 다양한 소음들이 들려온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 집 안에서는 목숨이 걸린 대화를 위해 사람들과 장비가 대기하고 있는데 거리는 아무련 변화도 없다.

추신2) 이 작품이 자기계발서였다면, <내 안에 잠든 용을 깨워라>라는 제목이 어울였을 것 같다. ^^ 

추신3) 당분간 일본 여성작가들을 읽게 될 것 같다. 죽도록 찾아해매던 기리노 나쯔오의 <얼굴의 흩날리는 비>도 구했고, 조만간 나올 <아임 소리 마마>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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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콕 - 서스펜스의 거장 현대 예술의 거장
패트릭 맥길리건 지음, 윤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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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산 것은 <젠틀 매드니스> 이후 두 번째인데, 이 책은 <젠틀 매드니스>보다는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대가답게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추리소설 작가의 이름들이 정겹다. 히치콕이 만든 영화의 원작자인 퍼트리셔 하이스미스, 로버트 블록, 서머셋 모옴, 코넬 울리치 등은 물론이고, 레이몬드 챈들러. 이든 필포츠-책에서는 에덴 필포츠로 나온다.-프랜시스 아일즈, 에반 헌터(에드 멕베인), 제임스 힐튼 등이 나온다. 괜히 정겹고 신기하더라.

하지만, 재미만큼이나 꺼려지는 것이 각 영화의 결말을 언급해서 보지 않은 영화의 제작과정에 얽힌 이야기를 읽기가 두렵다는 점이다. 뒤 모리에의 <레베카>, 버칸의 <39계단>에서 한 방 맞았다. ㅠ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떠난 뒤에는-영국에서 제작한 영화들을 구해보기는 힘들기 때문에-내가 본 영화들에 관한 일화만 보고 있는데도 재미있다. 히치콕이라는 사람은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안에서 '그 이상'을 집어넣을 줄 알았던 전문가적 혁명가였다는 점이다. 전자였다면, 매끈한 범작 영화들만 만들다가 시대가 지난후 잊혀졌을 것이고, 후자였다면, 오손 웰즈와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까. 하지만 히치콕에게 느껴지는 것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고, '최선'을 '최상'으로 만들줄 아는 현실적힌 지혜였다. 그 점만큼은 배우고 싶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나에게는 매력적인 모습이였다. 그만큼의 재능과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논외로 치고 말이다.

추신) 이 리뷰를 책을 다 읽지 않았음에도 쓴 이유는 내가 본 영화들을 다 봤기 때문이다. 차근차근 영화들을 다 보고 먼 훗날에 읽을지, 이야기의 재미에 빠저 결말을 알게 되는 것을 감수하고 볼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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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2007-10-0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책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상복의랑데뷰 2007-10-01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말씀을....^^ 즐거운 독서 되시면 좋겠습니다.
 
뷰티풀 몬스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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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r님의 블로그에 본 서평이 재미있어서였다. 지금은 r님의 글이 재미있었던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호기심이 확 일어났었다. 추리소설만 읽는 것 같아서 약간의 환기도 필요했고...

처음 읽었을 때 '이 누나 조낸 쿨해요.'류의 감탄이나 '에라~이 XX야'의 극단적인 비난을 기대했었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내 마음 속이 무덤덤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예전에 이렇게 썼다가 지웠다.) 그런데 웃긴건 그냥 놓아두기에는 괜시리 찝찝해졌다는 거다. 괜히 빛진것도 아닌데. 그래서, 다른 책들 사이에서도 틈틈이 읽었다. 재미있었다.

왜 나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까? 부끄럽지만, 김경이 펜으로 펼쳐놓은 공간은 조선시대 사람이 '컴퓨터 매뉴얼'을 보는 느낌이었음을 고백해야는게 맞는 것 같다. 그녀와 나는 같은 시간 대에서 숨쉬고 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나에게서는 신기원이었다. '버킨 백'은 고사하고 BAZAAR라는 잡지가 있었다는 것도 그녀의 약력 덕분에 겨우 기억해낸 내게, 그녀가 보여주는 별난 신세계를 이해하기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였다. 게다가 개성 제로의 지오다노 스타일의 남자가, 더욱이 집안이 가난해서 명품을 선물한 여자친구는 사귈 능력이, 아니 그녀들이 눈꼽만치도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전무한 남자에게는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기껏 소재의 유사성을 찾으라면 '청담동 댄디 보이'일텐데, 그래봐야 내 주위에는 눈씻고 찾아봐도 그리 친하지 않은 청담동 출신의 컨설턴트나 IB 종사자가 몇 명 있을 뿐이니.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김경 플래닛의 청담동/패션/주류 투어 가이드와 비슷했다. 와~이런 사람이 있었네. 오호~이런 카페도 있었군. 그러니 처음 읽었을 때 신선했지만 무덤덤 할 수 밖에 없지.

엉뚱한 이야기는 집어치고, 몇 번 더 읽은 그녀의 책은 그녀도 순순히 인정했듯이 매력적이고 모순적이다. 모든 것이 모순적으로 보여야한다고 해야할까. 장정일의 서문과 본문을 보는 듯한, 극도의 자조적인 서문과 극도로 자아도취적인, 어쩌면 허영덩어리의 본문. 그 속에서 등장하는 댜양한 군상들에 대한 그녀의 애증이 섞인 태도. 별로 아쉽지 않은 척하지만, 그녀가 인용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어디 그뿐이랴. 인용자에게 붙여준 수식어는 나 뛰어난 사람들 많이 알아라는 호가호위성의 치기가 보인다.(솔직이 아무리 좋아하려고 해도 눈에 거슬렸다.) 인용의 목적이 출처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용자의 위력을 강화시켜준다고 해야할까. 비주류에 대한 솔직한 그녀의 표현는 '컬티즌의 이영재라는 자'라는 문구로 대략 느낌이 왔다. 그렇지만 멋져 보이는 그녀의 삶과 그것을 더욱 매력적으로 그려낼 줄 아는 문체. 설사 속빈 강정일지라도 드러나는 반짝반짝한 자신감을 모른척 지나갈 수는 없었다. 피해안가는 약자만 까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어찌되었건 유쾌하게 잘근잘근 씹어대면서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설파하지 않는가?  

그래서,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그녀가 전여옥이었다면, 나는 눈에 불을 키고, 앞장과 다음장의 여백사이의 모순을 찝어내느라 열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멋지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전여옥에 대한 그녀의 글은 정말 푸하하하 웃으면서 읽었다.) 누구나 자기합리화를 하고, 약간의 허영이 있으며, 돈없지만 재능이 충만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그녀는 통제가능한 범위에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적절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마치 그녀가 좋아하는 미디엄 바디 와인처럼 말이다. 풀 바디도 아니고 샴페인도 아닌 미디엄 바디 와인처럼.

그게 포인트였다. 마치 비계사이의 속살을 파고들듯 예쁘게 파고드는 그녀의 경계인적인 삶과 글쓰기는 솔직이 나의 기본적인 그것과 비슷할 터...그녀의 재능, 솔직함, 그리고 적극적인 구애활동에 나같은 사람은 그저 부럽고 감탄할 뿐이다. 다른거 다 제끼고, 글솜씨-지금까지 쓴 칙칙한 리뷰만으로도 그녀와 나의 차이는 아득해 보인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상식과 마음가짐에서도 배울 것이 많았고. 어디에서 내가 쉬크, 버킨 백 등의 용어와 그 속에 담긴 단어를 배울 것인가?  

그녀는 A0다. A+이 되기에는 가진 것 없고, 속물이고, 교활하지만 A-가 되기에는 솔직하고 당당하다. 그녀의 책도 마찬가지다. 별 5개를 주자니 그녀의 모순적인 태도가 걸리고, 별 3개를 주자니 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빛나는 개성이 아깝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별 4개가 최고의 찬사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힘닿는데 까지 즐겁게 살아가시길~

추신) 그녀의 인터뷰집, 최소한 BAZZAR 과월호를 은행에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봐서는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상을 비슷한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써의 동질감? 천만에.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이 전도연을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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