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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몬스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r님의 블로그에 본 서평이 재미있어서였다. 지금은 r님의 글이 재미있었던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호기심이 확 일어났었다. 추리소설만 읽는 것 같아서 약간의 환기도 필요했고...
처음 읽었을 때 '이 누나 조낸 쿨해요.'류의 감탄이나 '에라~이 XX야'의 극단적인 비난을 기대했었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내 마음 속이 무덤덤한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예전에 이렇게 썼다가 지웠다.) 그런데 웃긴건 그냥 놓아두기에는 괜시리 찝찝해졌다는 거다. 괜히 빛진것도 아닌데. 그래서, 다른 책들 사이에서도 틈틈이 읽었다. 재미있었다.
왜 나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을까? 부끄럽지만, 김경이 펜으로 펼쳐놓은 공간은 조선시대 사람이 '컴퓨터 매뉴얼'을 보는 느낌이었음을 고백해야는게 맞는 것 같다. 그녀와 나는 같은 시간 대에서 숨쉬고 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나에게서는 신기원이었다. '버킨 백'은 고사하고 BAZAAR라는 잡지가 있었다는 것도 그녀의 약력 덕분에 겨우 기억해낸 내게, 그녀가 보여주는 별난 신세계를 이해하기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였다. 게다가 개성 제로의 지오다노 스타일의 남자가, 더욱이 집안이 가난해서 명품을 선물한 여자친구는 사귈 능력이, 아니 그녀들이 눈꼽만치도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전무한 남자에게는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기껏 소재의 유사성을 찾으라면 '청담동 댄디 보이'일텐데, 그래봐야 내 주위에는 눈씻고 찾아봐도 그리 친하지 않은 청담동 출신의 컨설턴트나 IB 종사자가 몇 명 있을 뿐이니.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김경 플래닛의 청담동/패션/주류 투어 가이드와 비슷했다. 와~이런 사람이 있었네. 오호~이런 카페도 있었군. 그러니 처음 읽었을 때 신선했지만 무덤덤 할 수 밖에 없지.
엉뚱한 이야기는 집어치고, 몇 번 더 읽은 그녀의 책은 그녀도 순순히 인정했듯이 매력적이고 모순적이다. 모든 것이 모순적으로 보여야한다고 해야할까. 장정일의 서문과 본문을 보는 듯한, 극도의 자조적인 서문과 극도로 자아도취적인, 어쩌면 허영덩어리의 본문. 그 속에서 등장하는 댜양한 군상들에 대한 그녀의 애증이 섞인 태도. 별로 아쉽지 않은 척하지만, 그녀가 인용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잘 나가는 사람들이다. 어디 그뿐이랴. 인용자에게 붙여준 수식어는 나 뛰어난 사람들 많이 알아라는 호가호위성의 치기가 보인다.(솔직이 아무리 좋아하려고 해도 눈에 거슬렸다.) 인용의 목적이 출처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용자의 위력을 강화시켜준다고 해야할까. 비주류에 대한 솔직한 그녀의 표현는 '컬티즌의 이영재라는 자'라는 문구로 대략 느낌이 왔다. 그렇지만 멋져 보이는 그녀의 삶과 그것을 더욱 매력적으로 그려낼 줄 아는 문체. 설사 속빈 강정일지라도 드러나는 반짝반짝한 자신감을 모른척 지나갈 수는 없었다. 피해안가는 약자만 까는게 아닌가 의심이 들었지만, 어찌되었건 유쾌하게 잘근잘근 씹어대면서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설파하지 않는가?
그래서, 너그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만약 그녀가 전여옥이었다면, 나는 눈에 불을 키고, 앞장과 다음장의 여백사이의 모순을 찝어내느라 열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멋지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전여옥에 대한 그녀의 글은 정말 푸하하하 웃으면서 읽었다.) 누구나 자기합리화를 하고, 약간의 허영이 있으며, 돈없지만 재능이 충만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회주의적 속성을 그녀는 통제가능한 범위에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적절하게 이용했을 뿐이다. 마치 그녀가 좋아하는 미디엄 바디 와인처럼 말이다. 풀 바디도 아니고 샴페인도 아닌 미디엄 바디 와인처럼.
그게 포인트였다. 마치 비계사이의 속살을 파고들듯 예쁘게 파고드는 그녀의 경계인적인 삶과 글쓰기는 솔직이 나의 기본적인 그것과 비슷할 터...그녀의 재능, 솔직함, 그리고 적극적인 구애활동에 나같은 사람은 그저 부럽고 감탄할 뿐이다. 다른거 다 제끼고, 글솜씨-지금까지 쓴 칙칙한 리뷰만으로도 그녀와 나의 차이는 아득해 보인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상식과 마음가짐에서도 배울 것이 많았고. 어디에서 내가 쉬크, 버킨 백 등의 용어와 그 속에 담긴 단어를 배울 것인가?
그녀는 A0다. A+이 되기에는 가진 것 없고, 속물이고, 교활하지만 A-가 되기에는 솔직하고 당당하다. 그녀의 책도 마찬가지다. 별 5개를 주자니 그녀의 모순적인 태도가 걸리고, 별 3개를 주자니 그녀의 당당한 태도와 빛나는 개성이 아깝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별 4개가 최고의 찬사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도 힘닿는데 까지 즐겁게 살아가시길~
추신) 그녀의 인터뷰집, 최소한 BAZZAR 과월호를 은행에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을 봐서는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세상을 비슷한 마인드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써의 동질감? 천만에. <너는 내 운명>에서 황정민이 전도연을 처음 봤을 때의 그 느낌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