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쿨한 와카타케 나나미의 데뷔작이자 걸작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 번역되어 나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어서 나오자 마자 바로 구입.

 

어떤 특수한 상황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약간 불가사의한 이야기들. 굳이 미스터리라는 범주에 끼워 넣지 않아도 될 단편들도 있어서 다채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논리적인 수수께끼 풀이라든지 여고생들의 여름 여행 에피소드, 짝사랑 소동, 오싹한 괴담 등등) 게다가 각각의 완성도를 지닌 단편들이 모여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사건을 받쳐주는 독특한 구성이다. 매회 단편이 연재 될 때마다 따라 나오는 사내보의 목차 등등에도 복선이 깔려 있다. 이런 형식의 작품은 별로 많이 않아 신선한 느낌이 든다. 신인 작가의 데뷔작임에도, 그리고 나온 지 십몇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어색한 느낌이 별로 없다. 또한 단편들은 작자인 ‘나’가 서술한다는 점만 똑같을 뿐, 내용 자체의 연결성은 그다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되는 어떤 사건의 진상이 뒷통수를 치기는 하지만.

 

작품에서 각 단편의 수수께끼나 트릭을 풀어내는 사람은 있어도, 전체에 걸쳐 장치된 트릭을 풀어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 점이 독자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줄 테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일본에서는 문고본이 나온 96년부터 매해 쇄를 거듭하는 스테디셀러. 1992년의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에서 6위를 차지했다. 일상생활의 소소한 사건에 작가의 재치 있는 서술이 적절한 무게 중심을 잡고 있다. 매달 적절한 계절의 느낌을 맛볼 수 있으며 나름대로 유머러스한 사내보의 목차를 훑어보는 것도 쏠쏠하게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편은 '눈깜짝할 새에'와 '소심한 크리스마스케이크'다.

 

 

내용을 살펴보면,

 

(스포일러는 없지만 구구절절 썼으니 내용을 알고 싶지 않은 분은 패스하세요)

 

 

 

 

 

건설 컨설턴트 회사에 다니는 와카타케 나나미는 일이 슬슬 지겨워졌을 무렵, 상사로부터 사내보의 편집을 맡으라는 지령이 떨어진다. 딱딱한 분위기의 사내보가 아닌 오락면도 강조하고 싶으니, 매회 30~40매 가량의 단편 소설을 싣는 기획에, 와카타케는 현재 반 프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대학 시절의 선배에게 소설을 부탁한다. 선배는 자신보다 이 기획에 어울리는 친구를 소개해 주었는데, 이 사람의 요청은 익명으로 실어달라는 것뿐.

 

그뒤는 열두편의 개성있는 단편들이 이어진다.

 

벚꽃이 싫어

아시바 도코가 사는 아파트 ‘벚나무연립’에는, 멋진 벚나무가 심어져 있다. 그 아파트에서 일어난 작은 화재. 여행중인 가사이 씨의 방에서 불이 난 듯하나, 다행히 첫번째 발견자가 신속하게 대응을 하여, 별다른 피해는 불러오지 않았다. 불이 난 것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벚꽃을 싫어하는 보기 드문 종류의 사람이었는데, 웬일인지 그 사람의 신발 속에는 벚꽃잎이 들어가 있었다.

 

귀신

건강상의 문제로 회사를 그만둔 ‘나’는 카메라와 삼각대를 가지고 공원에서 식물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었다. 돈나무도 찍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나’에게 돈나무에 대해 물어본다. 그 후, 다시 공원에 들른 ‘나’는 전에 만난 그 여자가 돈나무를 마구 자르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여자는 돈나무에게 원한이 있다고 했다. 그 원한은 15년쯤 전의 그녀의 여동생의 죽음이다. 부모님을 여의고 여동생과 단 둘이 살아가던 유코는 집 주위에 수상쩍은 남자가 서성대는 것을 목격하고 불안해 한다. 유코가 일하는 동안 여동생 혼자 집에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정원에서 사람이 침입한 흔적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한 유코는 여동생에게도 문단속을 신신당부했다. 그 이후에는 별다른 사건이 없었고 새해를 맞은 자매는 신사에 참배를 간다. 거기서 다시 수상쩍고 인상이 나쁜 남자가 그 자매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알아챈 유코는 다시 불안해진다. 

 

눈 깜짝할 새에

‘나’의 중학시절의 동창인 사가와가 찾아왔다. 그는 다다마키 상점가의 한 야채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중인데, 이 상점가의 야구팀 다다마키 파이터즈는 라이벌인 모모야마 상점가 야구팀 모모야마 샤이닝과의 시합에서 올해들어 전적이 6전 6패이다. 이에 다다마키 멤버들은 팀내에  시합 때 정하는 사인을 누설하는 배신자가 있음을 눈치채고, 사가와를 시켜 은밀히 조사를 하게 한다. 사가와는 배신자로 지목된 다카기가 자주 들르는 프랑스 음식점의 웨이트리스인 고교동창 요코를 만나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다. 주인과 접촉하는 등의 행동은 전혀 없다. 조금 이상한 점은 좋아하지도 않는 개구리 요리를 시키거나, 지불은 그냥 사인하는 것 만으로 끝난다는 점. 그리고 사인할 때는 의미불명의 문구를 매번 적는다는 점뿐이다. 도저히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없는 사가와는 ‘나’에게 도움을 청한다.

 

상자 속의 벌레

사촌동생인 나쓰미에게 들은 이야기. 고교시절 나쓰미는 문예부원들과 여름방학을 틈타 하코네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하코네로 가는 열차 안에서 들은 ‘상자의 벌레’라는 괴담 때문에 일행은 모두 오싹한 기분이었다. 열차에서 내려 숙소를 찾아가 짐을 푼 나쓰미 일행은 케이블카를 타러 가서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를 만난다. 케이블카 속에서 우연히 노인 두 사람이 하던 묘한 이야기를 들었고, 게다가 노인들이 상자와 이파리를 남기고  케이블카에서 사라지자 나츠미 일행은 이것을 상자의 벌레 괴담과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된다.

 

사라져가는 희망

고교동창인 다키자와는 ‘나’를 찾아와 노이로제에 걸렸다고 한다. 실제로 다키자와는 무척 말라 있었고, 혈색도 나빠 보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매년 여름만 되면 꿈에 나팔꽃 여인이 나와서 안아달라고 한다고 했다. 꿈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데, 해가 바뀔수록 나팔꽃 여인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희미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다키자와의 방에서 묵은 친구들도 나팔꽃 여인의 꿈을 꾼다고 했고, 다키자와도 점점 미칠 지경이 되어 갔다. 나팔꽃 때문에 여자친구와 헤어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후 다키자와는 죽었고, 사람들은 나팔꽃 여인의 꿈 노이로제 때문에 미쳐서 자살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뭔가 개운치 못한 느낌이었다.

 

길상과의 꿈

고야산의 절에서 만난 사람인 기시모토 가즈코. 그녀는 여기에 수행하러 왔다고 한다. 둘째 아이를 유산한 후 그녀는 신기한 체험을 많이 한다고 했다. 그녀가 이혼하고 돌아간 고향집 근처의 기노시타 산부인과는 왠지 음울한 느낌이었다. 하루는 가즈코가 그 병원 앞을 지나가는데, 웬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살려줘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패닉상태가 된 가즈코. 그런 그녀 앞에 사토코라는 여자가 지나가다가 캔에 든 주스를 사주며 잠시 옆에 앉아 진정하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사토코를 보니 순산기원 부적을 몸에 주렁주렁 걸고 있다. 그후, 다시 기노시타 병원을 지나가던 가즈코는 병원에서 거무스름한 물체가 황급히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병원에는 누군가가 신생아실의 창문을 깨려고 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병원 바닥에는 사토코가 걸고 있던 순산 기원 부적이 떨어져 있었다. 병원 간호사에게 들은 바 사토코는 불임이라 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에 가즈코는 거리로 나와 두리번거리다가 사토코를 발견한다. 사토코는 칼을 들고 어린아이를 찌르려 하고 있었다.

 

래빗 댄스 오텀

회사를 그만두고 요양 중이던 ‘나’에게 선배인 마루야마가 자기 회사의 아르바이트를 주선해 주었다. 선배의 회사는 건축자재의 업계지를 만드는 회사였다. 나름 즐겁게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아오키라는 직원의 너무나 지저분한 책상정리를 맡게 되었다. 온갖 쓰레기와 쓸데없는 것들을 정리해서 다 버렸다. 그리고 나니, 아오키와 마루야마 선배가 와서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작년 캘린더를 찾는다. 버렸다고 하니 난리가 났다. 5단짜리 광고를 정가에 팔 수 있는 힌트가 적힌 캘린더였다고 한다. 거래처의 부장인 사이토 씨의 딸의 이름을 맞추는 문제였다. ‘나’는 선배와 아오키 씨에게 자세한 정황과 사이토 씨가 던져준 힌트를 조합해 사이토 씨의 딸 이름을 추리해 본다. 힌트는 간토(關東)에서 다섯 번 째 현(県)의 꽃과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판화 속 풍경

대학 선배인 마쓰타니가 도둑으로 몰렸다. 미술잡지 편집부에 근무하는 그녀는 유명한 판화가인 유키 도게쓰의 담당이라고 한다. 그런데 선생의 최신작인 ‘심해 풍경’을 누가 훔쳐가 버렸다고 한다. 판화는 물론, 판화의 원판까지 없어져 버렸다. 공교롭게도 판화 및 원판이 없어졌다고 의심되는 시간에 마쓰타니는 유키 선생의 집을 방문했고, 그녀가 유키 선생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 소동을 틈타 작품은 사라졌고 그 시간에 집에 있었던 사람은 마쓰타니와 또 다른 대학동창인 유키 선생의 제자 노노무라 뿐이었다. ‘나’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마쓰타니 선배의 웃는 얼굴을 되찾기 위해 사건해결을 위해 머리를 굴려본다.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나’의 친구인 아라이의 이야기. 12년 전 아라이는 지금은 도쿄 중심부이지만, 그때만 해도 외곽지역이던 곳에 살았다. 당시 아라이의 언니는 임신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옆집으로 이사 와서 친구가 된 사카이 유스케. 같은 학교를 다녔고 바로 이웃이라서 아라이는 유스케와 친하게 지냈다. 크리스마스 날, 유스케가 선물한 케이크를 먹은 언니가 갑자기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게 된다. 다행히 별일은 없었지만, 유스케에게 케이크에 시클라멘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듣고, 아라이는 유스케를 멀리하게 된다. 시클라멘을 먹으면 유산된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라이는 유스케가 언니를 짝사랑해서 벌어진 소동이라고 계속 생각해 왔는데...

 

정월 탐정

한밤중에 친구인 보노 쇼고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이 쇼핑강박증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아침에 눈을 뜨면 자기 방에는 본적도 없는 많은 물건들이 쇼핑백에 든 채 놓여있다고 했다. 쇼핑한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쇼고가 정말 쇼핑강박증인지 확인하러 그가 쇼핑하러 가는 것을 몰래 미행하게 된다. 미행하러 간 ‘나’는 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한 쇼고의 뒤를 좇는다. 닥치는 대로 마구 사들이던 쇼고는 백화점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전화를 해보니 쇼고는 정신이 흐리멍덩하다고 했다. 쇼고의 집으로 찾아간 ‘나’는 그에게 이것저것 캐물어, ‘쇼핑강박증’이 아닐까라고 처음에 쇼고에게 이야기한 것은 회사 동료이자 옆집에 사는 야마자키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야마자키는 설을 쇠러 고향집에 갔다고 한다. 야마자키가 의심스러운 ‘나’는 쇼고와 함께 옆집 야마자키의 방에 무단으로 들어갔는데, 방에는 짐이 하나도 없이 깨끗했고, 복권당첨기사에 줄이 그어진 신문이 한 부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밸런타인 밸런타인

예전에 가정교사로서 가르쳤던 제자인 미나코로부터 전화가 왔다. 초콜렛 파는 곳에서 기묘한 여자를 보았다고 한다. 그 여자는 판 초콜렛을 사서, 바로 안을 확인하고는 마음에 안 든다고 카운터에 돌려주고는 다시 다른 초콜렛을 사더라고 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걸린 나의 제자는 여자가 산 초콜렛을 먹어보고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돌려준 쪽은 별로 맛이 없었다고 했다. 그 여자는 맛을 눈으로 투시하는 능력이 있었던 걸까? 그녀가 마음에 걸린 미나코는 그녀의 뒤를 밟다가, 신기한 장면을 보게 된다. 그녀가 손짓하자 앞에 서 있던 순경 아저씨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는 것이 아닌가! ‘나’와 미나코는 그 장면에 대해 나름의 추리를 펼쳐나간다.

 

봄의 제비점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책을 읽던 나는 대학시절 세미나에서 알게 된 미치코와 우연히 만났다. 이야기하다가 그녀로부터 실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의 전 남자친구 미쓰히로를 처음 만난 것은 여행으로 갔던 중국 샹하이. 미쓰히로의 형인 고이치로가 우연히 미치코에게 말을 걸어 동석한 식사자리에서 동생인 미쓰히로를 만난 것이다. 일본에 돌아와서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어, 사귀기 시작했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는 제비점이 취미였고, 뽑은 제비는 파일로 만들어 저장해 두었다고 한다. 미치코는 미쓰히로의 집에도 자주 드나들게 되어, 또 다른 형인 고지 및 가족들과도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츠히로는 갑자기 이별을 선언한다. 이별의 이유는 제비점. 각각 다른 신사에서 뽑은 제비가 여덟 장 연속으로 ‘흉(凶)’이 나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것을 보고 궁합이 너무나 안 좋아서 더 이상 사귈 수 없다고 했다. 미치코는 이해할 수 없어서 집으로 찾아갔는데 미쓰히로는 집에 없어서 형인 고지에게 사정을 말했다. 그 후 미쓰히로가 돌아왔고 형인 고지와 고함이 오가는 말 싸움을 벌였고, 미치코는 제비점 종이를 넣어둔 파일 근처에 떨어진 쪽지를 주웠다. 거기에는 ‘미쓰히로 건은 살리지 마’ 라고 쓰여 있었는데…….

 

 

1년 동안 12회의 연재가 모두 끝났고, 와카타케는 익명작가를 소개해준 선배에게 부탁해 그 익명작가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다. 두근두근하며 익명작가의 집을 방문한 와카타케는 1년 동안 그의 단편들을 몇 번이고 보면서 추리한 하나의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결론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외에도 앞으로 작가의 여러 작품이 소개될 예정이라고 들었다. 이번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의 번역도 무척 좋았고, 때문에 앞으로 나올 작품들도 벌써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암튼 이 작품이 많이 알려져서 와카타케 나나미의 팬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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