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알고 있다 - 제3회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니키 에츠코 지음, 한희선 옮김 / 시공사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일본의 애거서 크리스티라 불리는 니키 에츠코 여사의 데뷔작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에도가와 란보 걸작선에 수록된 두편의 단편으로 인해, 출간을 손꼽아 기다렸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데뷔작답게, 장점과 단점이 고루 묻어나는 좋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옥문도>의 거창하고 기이한 대작같은 분위기와는 대척점에 있는 깔끔하고 발랄한 소품입니다. 연쇄살인이 일어나면서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작품이라고 할까요? 작품의 재미와는 무관하게 읽고 나서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본의 크리스티라는 말을 믿고 읽었는데, 읽고난 제 느낌은 반 다인이나 네로 울프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트릭이나 범죄 동기의 묘한 느낌은 반 다인의 그것과, 니키 남매의 활동상은 마치 울프-굿윈 콤비의 쇼를 보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크리스티 여사께서 보여주시는 인간 군상에 대한 통찰이나 복잡함이 이 작품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오로지 추리만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달려갑니다. 심지어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에 대한 소개도 별로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엉뚱한, 어쩌면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먼저 읽은 두 편의 단편은 이미 작가로써 완숙기에 접어든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트릭 못지 않게 삶에 대한 완숙한 통찰이 작품에 배어나올 수가 있었겠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니키 에츠코는 갓 데뷔한 20대의 신인작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동화를 좋아하고 오빠를 전쟁에 잃은 거동이 불편한 20대 신인작가를 떠올리니 하나둘씩 이해가 되더군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데뷔작에는 자기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집어넣게 됩니다. 니키 에츠코 여사가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반 다인, 엘러리 퀸 등의 고전기 거장들이 활동할 때입니다. 추리소설 애독자였던 니키 에츠코 여사가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죠. 그래서 그들의 영향이 강하게 묻어나겠는 것도 어느 정도 당연하겠죠. 게다가 어린 시절 닥친 질병으로 인해 보행조차 불편했던 그녀에게는 책 등을 통한 간접경험이 그녀가 가지는 소설쓰기의 자양분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다른 자양분이 부족했을 것 같은 그녀에게 완숙함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작품이 가지는 얇은 느낌이 이해가 갑니다. 그렇게 너그럽게 보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또한 추리소설애호가라면, 레시피를 보고 재료를 추측하는 재미도 가질 수 있을 것 같구요.      

저에게 이 작품은 <인간의 증명>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특정 시대를 너무나도 잘 반영하고 있어서, 그리고 작품이 가지는 뚜렷한 한계 때문에 시대를 초월하지 못하는 수작. 황금기의 반 다인이나 엘러리 퀸의 약간 허망한 트릭이라던가, 더 허무한 범죄동기, 니키 에츠코의 경험 부족으로 인한 종잇장처럼 얇은 인간들의 등장, 탐정의 등장-살인사건-조사-의외의 범인 식의 추리소설의 도식 밖에 존재하지 않는 앙상한 구조 등의 단점들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니키 에츠코 여사가 데뷔했던 시대를 대표할만한 수작인것은 분명합니다. 단지 세월이 흘러 약간 바래진 것이지요.

추신) 작품의 화자이자 탐정인 니키 에츠코의 말투나 생각. 니키 에츠코의 말투가 마치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 처럼 귀엽고 생생합니다. (남자 번역자가 했다면 살리지 못했을) 니키 에츠코의 귀엽고 발랄한 느낌을 더 잘 살려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 들더군요.   

추신2) 시공사의 좋은 점은 책을 잘만든다는 점입니다. <옥문도>, <밤 그리고 두려움>에 이어서 책 자체로는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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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깡 2006-06-2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원님, 리뷰정말 감사드려요 (_ _)

상복의랑데뷰 2006-06-2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말씀을 ^^;

oldhand 2006-06-26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어제 읽었다. 미스터리 출판계에 유행이라고 해도 좋을 현대 일본 작가들의 작품들이 속속 번역되고 있는 요즈음에, 일본 미스터리의 고전에 속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 시공사의 기획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인것 같다. 작품의 수준이나 흥행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상복의랑데뷰 2006-06-2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공사는 전문추리소설출판사는 아니지만, 애호가들의 구미에 걸맞는 좋은 책들을 내놓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