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완벽주의자들 - 대한민국 최상위권 학생들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
장형주 지음 / 지식프레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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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억지로 발견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발견보다 발명에 가까운, 굳이 없는 것을 빚어 형태를 만들고 이름을 붙여 '난 이게 문제야'라고 등에 둘러메고 다니는 사람들. 그들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속칭 문제를 '더불어 함께'와 짝짓는 이도 있을 것이고, '어떻게든 소거'하려는 사람도 있겠죠. 저는 문제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다들 그냥저냥 같이 사는 거지... 하고 적당주의로 타협하고 사는 사람인줄만 알았는데, 그런 유리장 같은 믿음이 이 책으로 인해 와장창 깨져 나갔어요. 전혀 짐작조차 못했었는데, 저는 완벽주의자까지는 아니어도 그것을 상당 부분 추구하고 지지하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완벽주의자 워너비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에 대해 거대한 오해를 간혹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제가 그 자기기만의 벽을 부숴야 할 차례였던가 보더라고요. 아, 맙소사.

 

완벽주의자란 뭘까요?

말만 들어서는 되게 좋은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죠.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 증상들을 한두 번쯤 느껴봤다면 완벽주의 신드롬을 의심해봐도 괜찮겠습니다.

 

1. 자신이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2. '문제없음'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

3. 좀 더 노력하면 될 거라고 믿는다.

4. '잘해야 한다'에 집착한다.

5.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6.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예요'등의 당위성을 따지는 표현을 주로 쓴다.

7. 감정을 잘 묘사하지 못한다. 주관적 감정표현보다 객관적 시점에서 평가하는 말을 주로 한다.

8. 타인의 시선에 매우 몹시 아주 민감하다.

9. 계산적이다.

 

완벽주의의 덫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이 걸릴 것 같은 질문들이죠. 이상적인 기준을 갖는 게 뭐가 나쁘냐고 되물을 수 있어요. 완벽주의가 나쁜 이유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결국 없는 것을 찾아다니는 행위 자체가 힘을 내기 위한 에너지원으로 스스로를 갉아먹기 때문에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완벽주의가 아주 예외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통하는 곳이 우리나라의 학교 시스템이라는군요.

즉, 어린 시절에 본인이 완벽주의(완벽한 성적, 아마도?)를 성취하거나 못하거나에 관계없이 완벽주의가 통용된다는 것을 학습한 아이들이 12년의 완벽주의 통치기를 벗어나서도 그 시스템의 유령에 계속 붙잡혀 있기 때문에 진짜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예요.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가 아닌 것'을 굳이 '문제'라고 범주화시키는 쪽이겠습니다만.

 

여기까지가 문제 제기와 현 상황에 대한 짚어보기가 됩니다만 여기까지만 설명하고 책을 끝냈다면 '어쩌라고!!!!!!!!!!!'하고 싶어지죠. 농담입니다만 "책이라는 게, 거창한 화두를 던져놨으면 뭐 자기가 생각하는 해결방안 같은 거라도 제시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할 수도 있는 거구요. (더이상은 이런 방식으로 말하지 말아야겠어요... -_-)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간단한 자기치료법이 한 챕터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저렇게 붙인 게 분명해 보이지만 '완벽주의를 극복하는 완벽한 방법'이라니 말장난이 도가 지나치십니다... 이쯤되면 자기부정.

 

여튼, 문제 제기를 거국적으로 하면서 생각은 니네가 하셔야죠~ 하는 책들이 난무해서 종종 홧병을 일으키지만, 그래도 이 분은 전체분량의 대략 1/4 정도를 해결책 제시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솔루션 제안이기도 하고 저자 본인의 굳건한 신념이기도 할 겁니다. 책 전반에 흐르는 정서가 안타까움과 공감으로 채색돼 있어요. 도닥여주는 손의 온도가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 사회의 희소자원인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그래서 결국 사회 전체가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키를 잡아나가기를 바라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 뱀발

 

유사한 이슈에 대해 본문중에 조금씩 논하고 있어 크로스되는 책들이 몇 권 있지만 그 중 생각나는 책은 엄기호/하지현 선생님의 대담집인 『공부중독』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이 책과 가깝게 맞닿아 있다고 느껴진 부분만 인용해 볼게요.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어요. 계속 벽에 부딪히면서 금이 가다가 부서져버리는 것 같아요. 서울대에서 수능 만점자는 흔하대요. 고등학교 3년 내내 하나도 틀리지 않는 연습을 하다 오는 거죠. 완벽을 기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만점이 흔하게 되면 생기는 문제가 틀리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십여 년 공부 생활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덧 그 방식이 삶의 기본 태도가 될 가능성이 많아요. -18쪽

 

이 책은 솔루션보다는 현실을 냉엄하게 짚는 데 무게를 더 실었더라고요. 속시원한 해결법 같은 것은 없지만(애초에 그런 게 존재할 수가 없겠지만), 굉장히 넓고 치밀한 분석이 주를 이룹니다. 얇지만 가볍지 않은 책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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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3월은 사람에 체하는 달이다. 희한하게 위장에 뭐가 잘못 들어가서만 막히는 게 아니라, 감각기관으로 지나치게 많은 자극이 들어와도 체기가 든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멀미가 난다는 사람도 흔히 있으니까. 사람의 성향이라는 게 한 방향으로만 자라는 건 아니라 나면서부터 깔려 있는 기본 바탕에 물 주고 볕 주는 방향으로 겹겹이 시간이 쌓이면서 어떤 특질들이 두드러지게 자란다고 믿어왔다. 남들은 처음 보는 나를 사람 좋아하고 바깥에서 에너지를 얻곤 하는 외향적인 인간형으로들 생각하지만 본바탕은 혼자 조용히 있으면서, 혼자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만 충전이 되는 타입인 까닭에 학부모 이름표를 단 이래로 매년 신학기 초가 되면 다른 의미로 사람앓이를 하는 날이 잦아진다.

 

지난 주에 두 건의 입학식을 치르고, 세 아이들의 학부모 모임들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던 이들과의 개학 자축 모임(이라고 하니 어쩐지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은 이 죄책감 뭘까) 약속 등등은 오늘과 내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라 거의 일 주일이 넘게 원치않게 사람들과 계속 어울려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반 정도는 내가 먼저 벌인 일이라 빼도박도 할 수 없는 데다가 원래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만날 약속이 기다려져야 하는 게 맞다. 원래의 컨디션이라면. 그러나 지금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아침에 집을 대충 치워두고 옷을 갈아입는 그 순간부터 미치도록 배깔고 엎드려 책이나 뒤적거리고 싶은 마음이 이미 배밖으로 튀어나온지 오래인 것이지. 이 비극을 어째야 하는가!

오늘도 그랬다. 몸은 어찌저찌 외출 준비를 마쳤는데 그림자는 눌어붙어 죽어라 안 떨어지는 누룽지마냥 마룻바닥에 있는 힘을 다해 들러붙어 나갈 생각을 안 해... 저거슨 그림자인가 그림자의 탈을 뒤집어쓴 본심인가...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주절거리면서 간신히 현관문을 열고 나갔는데 약속장소에 앉은 순간부터 사람들의 웃는 얼굴 뒤에 따라나오는 의례적인 얘기들에 속이 울렁거렸다. 모임 회원들이 잘못하신 건 아무것도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다만 나 자신의 피로관리를 제대로 안 한 매니저에게 화가 날 뿐. 그런데 그게 나야...

아, 미치겠다. 진짜.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그냥 무슨 핑계든 갖다 붙이고 집에서 쉴 걸. 후회해봤자 늦었어.

 

수요일까지 며칠 남았나 세어 봤다. 내일 모레가 수요일이다. 수요일이 되면 드디어 쉴 수 있다. 아무도 안 만나고 누구의 전화도 안 받고 핸드폰은 비행모드로 돌려버리고 칩거해야지.

금요일은 무려 중학교 학교 설명회가 있다... 그것도 안내문 온 걸 보니 예상 소요시간은 무려 세 시간이다아아아아아아!!!!! 일일 알바 엄마를 구하고 하루 오프를 내고 싶은 이 마음을 남편인지 내편인지는 알려나?

 

 

 

 

 

 

 

 

 

 

 

 

 

 

이 책들을 작업테이블(???)화한 식탁에 올려놓고 번갈아가며 읽고 있다. 이런 갈짓자 읽기 방식에 병렬독서법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붙였던 어느 일본 작가분... 복 받으실 것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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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희은수네 2019-03-2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4권의 책을 돌려읽고 있어요.^^.글을 맛깔나게 쓰시네요.부럽부럽합니다^^

라영 2019-03-27 10:58   좋아요 0 | URL
역시 책 읽는 사람들은 비슷하구나 하는 모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되는군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개인 선택이기 때문에 기러기 아빠 현상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어요. 그러나 한국에서 대학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수들이 이 현상의 선두에 서 있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에요. 왜냐?

(...)

우리 교육 씨스템의 정점에서 일하면서 자기 자녀는 외국 교육 씨스템에 맡기는 거죠. 말이 안 돼요.

첫째, 남의 자식에게 한국 대학교육이 괜찮다고 얘기하려면 자기 자식도 거기서 교육을 받게 해야죠,

둘째, 자식을 외국에 맡겨놓은 상태에서 과연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의 교육, 대입제도, 대학원생의 미래에 혼신의 힘을 쏟을 수 있을까요?

셋째, 교수들은 대개 자신이 학위를 받거나 연구했던 동네에 자녀를 보내요. (...) 지도교수랑 공동연구를 많이 하는 것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아요. 지도교수는 필요할 때 언제든 초청장을 써주니까요. 당연히 우리 연구나 학문이 해외에 종속되는 거예요.

넷째, 학문과 직접 관련은 없을 수 있지만 그 자녀들이 나중에 미국 시민으로서 완전히 합법적인 병역기피를 하게 돼요. 그게 위화감을 조성하고요.

 

"우리 아들은 미국 명문대학을 다녀요. 그런데 당신 애는 한국의 우리 학교에 보내주세요."

이율배반이고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153쪽

 

읽다보면 덩달아 분통이 터졌다가 웃겼다가 격한 공감을 하게 됐다가, 나라는 인간에게 이렇게 다이나믹한 감정선이 존재했던가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책이다. 갖은 기분을 다 느끼게 하지만, 전반적으로 씁쓸해진다. 오늘 책모임에서 할까말까 백번쯤 망설이다가 "사교육과 입시에 정열을 불태우시는 엄마들의 반만 그 열정을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투자해도 우리나라는 훨씬 좋아지지 않을까, 막연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안다. 그렇지만 여기 있는 분들만이라도 세상을 함께, 넓게 보면 좋겠다"는 말을 했는데 얼마나 진정성있게 들렸을지는 미지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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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잡아먹어도 될까요? - 마음 약한 늑대 이야기 베틀북 그림책 24
조프루아 드 페나르 글.그림, 이정주 옮김 / 베틀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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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매일 저녁을 해야 하는 줄 알았으면 절대 결혼 같은 건 안 했다고 구시렁거리다가 겨우겨우 저녁을 차리던 날, 식탁에서 가족의 대화를 듣다가 웃었고, 블로그에 남겼고, 나중에 읽으면서 또 웃었다.

(...)

나는 이중인격자인 걸까. 남에게 더 즐겁게 사는 척 보이고 싶었던 걸까.

아니, 나는 찾아내고 있었다. 내 인생을 가능한 밝게 색칠할 수 있는 색깔들을. 내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순간 붕 뜨게 해줄 재료들을. 그 장면에 흐를 신나는 BGM을.

그리고 그렇게 유쾌한 순간들을수집하고 기록하면서 나도 내 글의 캐릭터를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망친 요리를 웃음으로 승화하는 주부, 아이와 랩 배틀을 벌이는 엄마,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꿈인 번역가. -182쪽

 

행복을 찾아 자신이 개척한 오솔길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좋다. 천천히 느긋하게 산보하듯 가면서 그 길에 놓여있는 것들을 말이나 글로 그려가며 남들과 공유해주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지금 당장은 내가 뭘 어쩌지 못해도 그곳에 가는 많은 지도들을 손에 쥐고 있는 느낌은 좀 다르니까. 언제고 나도 나만의 지도를 그려보고 싶다. 저는 이렇게 해보니까 찾아졌어요, 하고. 그건 제법 보물지도 같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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