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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뒤로는 초록색 나는 것을 기르기가 여의치 않아 많이 나눠주고 집에 둔 것은 거의 없다시피하지만, 나름 얼치기 가드너로 살았던 세월을 돌이켜보면 화초를 죽이지 않고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이랄 것도 없는 방법은 꾸준히, 규칙적으로 관심을 두고 물을 주고, 하엽을 치워주고, 비료를 주고, 가끔씩 화분 방향을 돌려가며 볕을 고루 받게 해 주는 것이었다. 간헐적으로가 아니라 일관성 있게 조금씩 꾸준히.

그런데 이건 사람의 모든 삶의 모습에 담겨야 하는 태도다. 당연히 이상적으로 표현해서 그렇다는 뜻이지 실천 가능성은 뭐... 남말할 처지가 아닌 까닭에 말줄임표가 필요하다.

아이를 키울 때도 그런데, 어느 때는 폭포수처럼 사랑을 쏟아붓다가, 몸이 지치고 힘들다고 파리 쫓듯 손 휘저어 아이를 밀어내면 아이는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뭐... 비슷한 원리로다가 책을 읽다 말다 하는 자의 머릿속이 그닥 체계적일수가 없거니와 단정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여하간 그 뭣도 아닐 것이 분명함과 같다. 되다 만 밥 같달까. 아마도.

 

도저히 '꾸준함'을 삶의 기치로 내세울 수가 없다. 그저 '잊어버릴 만 하면 가끔 생각난 듯 한번쯤' 이 어울리겠다.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읽음이 읽지 않음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위안한다.

 

이민가방에 바리바리 넣어왔던 책 몇 권은 대부분 사회과학서라, 책꽂이를 보면 좀 메마른 기분이었다. 여기가 사막기후여서 그런 생각을 한 것만은 아닐 거다. 딱히 문학을 읽어야 사람이 사람같아지지... 라고 주장하며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설이 건네는 것은 역시 딱 자르는 마침표라기보다, '그리고,' 라고 얼굴을 돌려 바라보는 쉼표다. 이건 이렇습니다! 라는 선언문도 좋지만, 가끔은 ...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말을 거는 문장을 읽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도서관에 신간이 들어와 있었다. 지난번에 얼핏 봤을 때는 이승우 작가, 김중혁 작가, 박상영 작가의 책이 보였고, 그 중 압도적으로 김금희 작가의 책이 많아서(출간됐던 책들이 다 있어서 진심 놀람) 다음번에 아직 못 본 김금희 작가 책을 빌려와야지 마음먹고 갔는데 어째 이번엔 다 대출됐는지 안 보였다.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여기서는 어렵지 않게 그 누구도 빌렸던 흔적이 없는 깨끗한 새 책을 빌렸다. 뭘 먼저 읽을까 하다가 정세랑 작가의 책을 먼저 읽었다. 이름은 익히 알고, 작품은 하나도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낯을 익혔다. 그중에서도 <보늬>가 특히 좋았다. 황망한 헤어짐 뒤에 남은 이들이 불안하게 붙잡은 손에서 어설픈 위로를 건네고 받기보다, 고통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스스로 찾아내는 이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곁이고, 그 곁에게도 그의 고통을 표현할 언어가 필요하다는 이 말은 이 책에서 배웠다.

 

 

고통을 말할 수 없는 것이 고통의 참 본성이라는 아연한 사실은 마지막 텍스트에서 시선이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울부짖을 수밖에 없고 언어로 소통할 수 없으므로 곁을 지키는 사람들도 점차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잃어가는 까닭에 함께 피폐해져간다는 비통함은 현재 내게 당면한 일이 아님에도 단단하게 마음을 조였다. 마음에서 떠나가지 않는 물음이었는데, 완벽한 답이라고는 당연히 말할 수 없지만, 이 짧은 단편이 실마리를 준다. 그러니까 언어가 필요하다, 라는 선언에서 언어를 아주 좁은 새장 안에 가둬놓고 의미를 제한할 필요가 없지 않나 싶다. 슬픔과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책 얘기로 시작해서 계속 가지를 뻗어나가는 것도, 인터넷상에서 편한대로 끼적대는 잡기장이니까 가능한 얘기니까 이왕지사 이렇게 된 것 계속 마구 멋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자면, 예술이 바로 그런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화가 난다고 아무데나 물건을 집어던지고 고함을 질러대길 계속하면 누군들 버틸 재간이 있겠냐만 캔버스에 물감을 계속 엎어버리고 치덕치덕 칠하고 또 칠해도 뭐라 그럴 사람은 없을 거다. 

벽면을 꽉 메운 유리함 안에 가늘게 찢어버린 종이쪼가리가 빽빽하게 가득 차 있다면, 더구나 거기에 어떤 감정을 환기시키는 타이틀이 붙어있다면, 나라면 압도당할 것 같다.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타인에게 도통 감정이입을 할 줄 모르고, 공감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굳이 설명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물리적으로 체험시켜주고 싶다고. 이를테면 밀도라든가, 질감이라든가, 소리라든가, 그 무엇이 되었든 본인이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낄 수밖에 없게끔 오감을 동원해서 타인도 나처럼 감정과 감각을 가진 인격체구나 하는 것을 몸으로 선명하게 깨닫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 그러나 그거슨 너무나 동물적인 발상이므로 이쯤해두고

 

여하간.

그래서 급 줄이자면 한국이든 여기든 예체능계열 과목을 자꾸만 축소하고 있는 것은 심히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싶다는 거.

갈수록 자기표현능력이 중요해질텐데 어째서 왜때문에 그런 스킬을 배양할 수 있는 (더불어 자기 감정조절도 배울 수 있고, 자기파괴적인 성향도 줄이고 창의성도 키우고 비판능력도 기를 수 있고, 뭐하나 빠트릴 게 없는) 과목은 자꾸 없애는가 이 말입니다...

잡담은 이쯤 접고

다시 본문으로 복귀해서,

 

사실 이 잡문을 쓰기 시작한 건 며칠 전이라 지금은 이미 세 권을 다 읽었는데, <시녀이야기>는 너무 현실적으로 충격적이고 암울해서 책을 손에서 떠나보낸 뒤에도 며칠간을 시름시름했다. <내게 무해한 사람>은 안타깝고 속상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 순간에는 모르고 지나간 다음에 상처를 후벼파는 쓰라림으로 복기했을 때야만 발견할 수 있는, 감정의 충돌 뒤꼍에 머무르다 느리게 걸어나오는 남은 마음들을 이렇게 잘 쓸 수가 있을까 싶다.

 

"전 그게 좋았어요. 주인공 둘이 작은 추억들을 나누는 장면이. 너무 이상주의적인이야기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을 같이 견뎠다는 게......" -39쪽

 

나도 알아, 그 마음. 윤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혼자를 견디지 못하고 사람을 찾게 될 때가 있잖아. 그게 잘못은 아니지. 외롭다는 게 죄는 아니지. -94쪽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97쪽

 

진희는 소설 속 주변 인물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는 걸 좋아했다. 주제와 핵심 제재를 파악하는 것이 독서의 전부인 줄 알았던 미주는 진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재미를 느꼈다. -192쪽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209쪽

 

특히,

지금 이 사람이 전적으로 내 편인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열심히 들어주고 있(는듯 보이)지만, 어쩌면 이 이야기를 가지고 후에 나를 상처입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도 말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지 않나... 이런 지점을 만나면, 꼭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여기저기 긁힌 기분이 된다. 그렇게, 걸려 넘어져 쉬어가는 곳이 많을수록 그 소설은 내게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로 마음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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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나서 너무 반가울 때, 주변에서 이상하게 쳐다보건 말건 팔을 붕붕 흔들어 여기, 여기! 하고 소리질러 불러본 적이 있습니다. 경험이 있거나 없거나, 대부분은 이 이야기를 하면 웃어요. 아 그거- 알지. 그렇게 동조해 줍니다.

 

며칠 걸러 한 번 정도 근처 도서관의 신간 서가 앞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책등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요조씨의 이 책을 발견했거든요. 책을 쓴 작가들의 이름 뒤에, 아무 저의없이 무의식적으로 어떤 호칭 또는 존칭이 갖다 붙곤 하는데 (제 경우) 요조씨라는 호칭이 그냥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네요. 팟캐스트에서 너무 자주 듣다보니 혼자 친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가 모를 일이지만요. 나이도 나보다 어리니까 안 되진 않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ㅎㅎ

 

 

엄밀히 말해서 출간일을 보면 신간 코너에 있는 게 의아할 지경이었지만 이 도서관에서는 신참일 수도 있긴 하죠. 그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닐 것 같고요. 이미 팔에는 과연 대출기간 안에 다 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걱정되는 분량의 책이 안겨 있었지만 한 권 더하나 빼나 무슨 차이겠나 싶어 이 한 권을 더 얹어 나왔습니다. 조금씩 나눠 읽기 좋아 보였으니까요. 일종의 쉼표처럼.

그렇게 읽기 시작했는데, 세 번째 글에 이런 문장들이 등장하는 거죠.

나는 아픈 것은 내 팔이고,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팔은 팔대로 스스로 나을 것이고, 나는 나대로 내 루틴을 평소처럼 이어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점점 내 팔의 문제가 내 문제가 되었다. 금방 지치고 피로해지고 예민해졌다.

(...)

이런 멍청한 생각을 계속하다가 결국 항복했다. 그리고 절절하게 깨달았다. 아프지 말아야 한다. 거창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아주 사소한 아픔이라도 있는 힘껏 피해야 한다.  -52~53쪽

!!! 요조 씨는 팔깁스를 한 적이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일상생활의 기본 1부터 100까지 하나같이 불편하지 않은 게 없었을 겁니다. 같은 경험을 했던 것, 그 경험이 몸에 남겼던 몇몇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생면부지(...라는 표현이 맞는건지 이 경우엔 좀 아리송하긴 하지만)의 타인을 순식간에 내 옆의 다정한 친구들과 같은 존재로 끌어당기는 순간은 바로 이럴 때입니다. 그거 저도 알아요. 환장하죠. 고생 많이 하셨겠어요. 지금은, 괜찮으시죠?

 

공감이라는 건 마음만 먹으면 너무 쉽게 만들 수 있는 무형의 교집합 같은 거잖아요.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라포를 형성한다는 웬지 친해지기 어려운 개념도 나오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면 여하간 간단히 인간 대 인간 사이의 친밀감을 만들어나가는 관계맺기의 기본을 이야기할 때 누구나 공감은 쉽게 떠올릴 수 있습니다. 저 사람과 내가 통할만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니까요.

흐릿한 '누군가'에게서 한 사람의 선명한 인간적인 모습을 읽는다는 건 다시 말해 언제 어느 순간에도 튀어나올 수 있는 공격성(또는 방어성)을 한 단계 낮추게도 해 주는만큼, 공감지수가 높아질수록 상호이해도가 높아지는 것도 당연하고요. 이해도가 높아지면 인내심의 폭도 커집니다. 사람들의 인내력이 전체적으로 상승하면... 뭐가 좋을까요?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스포츠 경기를 볼 때 눈물이 가장 많이 난다. 
... 
선수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그들의 표정에서 그 동안 겪은 시간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환호를 보며 울고 있으면 그들의 시간을 함께 이해한 듯한 느낌이 든다.
눈물이란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 대가로 내가 세상에 지불하는 동전인 셈이다. -67쪽

 

김중혁 작가님쯤 되면 공감의 아이콘일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에 대해 너그럽고 타인을 이해하는 스케일이 크다면 걱정할 게 뭐가 있겠어요. 남의 일이 곧 내 일처럼 느껴질텐데.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의 이분의 일쯤은 이런 이유가 있고요.

 

 

 

 

 

 

 

 

 

 

 

 

 

 

 

 작가에게도 글쓰기가 주는 기쁨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이 공감이라고 한다.

누군가 "당신은 바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군요" 또는 "이 책은 바로 나예요"라고 말해 줄 때라는 아니 에르노의 말처럼 말이다. -59쪽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까닭이겠죠.

 

 

 

 

 

 

 

 

 

 

 

 

 

 

 

"<와이키키>를 보고 나서 지하철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들, 청소하는 미화원들, 먹이를 찾아서 길거리를 헤매는 비둘기 같은 존재들에 대해서 다시 보게 됐다"고요. 제가 영화를 통해서 관객에게 받고 싶은 피드백은 아마 이런 종류일 것 같아요. 관객들이 제 영화를 보고서, 나와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 연민을 갖거나 이해의 폭을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영화를 만들면 만들수록 그게 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애초에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생각은 그런 거예요. -110쪽

 

 

 

 

 

 

 

 

 

 

 

 

 

 

 

보여주기 민망하다고, 이런 게 무슨 글이냐고, 제대로 풀어낼 자신이 없다고 굳이 내어놓지 않는다. 그러나 타인에게는 그 쉼표의 위치와 마침표의 개수까지 모두가 소중한 기록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닌 타인의 세계를 상상하는 가장 큰 단서가 된다. 나를 고백함으로써 나의 세계를 드러내고 타인의 지평을 넓혀줄 수 있다. 이해, 공감, 소통, 이러한 모호하지만 사회를 지탱하는 감각들은, 서로의 몸에 새겨진 언어를 공유하는 데서 비로소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나를 쓰고, 타인을 읽어야 할 의무가 있다. -10쪽

 

나와 관계가 없다면 없을 타인들의 일을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마음.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까지는 무리더라도 그 마음의 결을 최소한 따라 짚을 수는 있는 마음.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무리' 대신 '개인'을 읽으면 좀 더 쉬워져요. 그 일을 해낸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그 이름은 오스카 쉰들러라고 하죠. 물론 그가 어떤 인류애적 비전을 갖고 그렇게 한 건 아니라는 게 아이러니이긴 합니다만.

 

 

 

 

 

 

 

 

 

 

 

 

 

 

쉰들러는 히틀러나 괴벨스처럼 악랄한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유대인에게 무관심했고, 그들을 자기 이익을 위해 손쉽게 수탈해도 되는 익명의 대중으로 보았다. 1940년까지, 그가 전쟁이 끝날 무렵이면 목숨을 걸고 거액의 뇌물을 바치면서까지 자기 공장의 유대인 노동자들을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지 않고 지키는 사람이 되리라고 예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이 같은 급격한 전환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사이의 어느 시점에 아주 재미있는 일이 쉰들러에게 일어났다. 유대인을 인간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은 그의 회계사인 유대인 이츠하크 스턴에게서 비롯했다. -101쪽

내 바깥의 세계를 집단화해서 바라보는 시각은 의외로 선량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에게서도 흔히 발견돼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말하기는 어려워요. 결국 사회 시스템 안에서 생존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는 절대 지양해야 할 경향성인데도.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 이것이 참 힘듭니다. 특히 아이에게 영향력이 큰 주변 어른들 중 어떤 사람이 '더할 나위없이 선량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특정 대상을 쉽게 집단화하는 발언을 하는 성향이 있을수록 어렵습니다. 말한 사람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이것을 교육적으로 바로잡는 데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가, 그런 고민을 하는 요즈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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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완벽주의자들 - 대한민국 최상위권 학생들은 왜 행복하지 못한가?
장형주 지음 / 지식프레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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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억지로 발견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발견보다 발명에 가까운, 굳이 없는 것을 빚어 형태를 만들고 이름을 붙여 '난 이게 문제야'라고 등에 둘러메고 다니는 사람들. 그들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속칭 문제를 '더불어 함께'와 짝짓는 이도 있을 것이고, '어떻게든 소거'하려는 사람도 있겠죠. 저는 문제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다들 그냥저냥 같이 사는 거지... 하고 적당주의로 타협하고 사는 사람인줄만 알았는데, 그런 유리장 같은 믿음이 이 책으로 인해 와장창 깨져 나갔어요. 전혀 짐작조차 못했었는데, 저는 완벽주의자까지는 아니어도 그것을 상당 부분 추구하고 지지하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완벽주의자 워너비라고나 할까.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에 대해 거대한 오해를 간혹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제가 그 자기기만의 벽을 부숴야 할 차례였던가 보더라고요. 아, 맙소사.

 

완벽주의자란 뭘까요?

말만 들어서는 되게 좋은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죠. 간단히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 증상들을 한두 번쯤 느껴봤다면 완벽주의 신드롬을 의심해봐도 괜찮겠습니다.

 

1. 자신이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2. '문제없음'에 대한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

3. 좀 더 노력하면 될 거라고 믿는다.

4. '잘해야 한다'에 집착한다.

5. 장점보다 단점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6.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예요'등의 당위성을 따지는 표현을 주로 쓴다.

7. 감정을 잘 묘사하지 못한다. 주관적 감정표현보다 객관적 시점에서 평가하는 말을 주로 한다.

8. 타인의 시선에 매우 몹시 아주 민감하다.

9. 계산적이다.

 

완벽주의의 덫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이 걸릴 것 같은 질문들이죠. 이상적인 기준을 갖는 게 뭐가 나쁘냐고 되물을 수 있어요. 완벽주의가 나쁜 이유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결국 없는 것을 찾아다니는 행위 자체가 힘을 내기 위한 에너지원으로 스스로를 갉아먹기 때문에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 완벽주의가 아주 예외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통하는 곳이 우리나라의 학교 시스템이라는군요.

즉, 어린 시절에 본인이 완벽주의(완벽한 성적, 아마도?)를 성취하거나 못하거나에 관계없이 완벽주의가 통용된다는 것을 학습한 아이들이 12년의 완벽주의 통치기를 벗어나서도 그 시스템의 유령에 계속 붙잡혀 있기 때문에 진짜 문제가 발생한다는 거예요.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가 아닌 것'을 굳이 '문제'라고 범주화시키는 쪽이겠습니다만.

 

여기까지가 문제 제기와 현 상황에 대한 짚어보기가 됩니다만 여기까지만 설명하고 책을 끝냈다면 '어쩌라고!!!!!!!!!!!'하고 싶어지죠. 농담입니다만 "책이라는 게, 거창한 화두를 던져놨으면 뭐 자기가 생각하는 해결방안 같은 거라도 제시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 할 수도 있는 거구요. (더이상은 이런 방식으로 말하지 말아야겠어요... -_-)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간단한 자기치료법이 한 챕터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저렇게 붙인 게 분명해 보이지만 '완벽주의를 극복하는 완벽한 방법'이라니 말장난이 도가 지나치십니다... 이쯤되면 자기부정.

 

여튼, 문제 제기를 거국적으로 하면서 생각은 니네가 하셔야죠~ 하는 책들이 난무해서 종종 홧병을 일으키지만, 그래도 이 분은 전체분량의 대략 1/4 정도를 해결책 제시에 할애하고 있습니다. 솔루션 제안이기도 하고 저자 본인의 굳건한 신념이기도 할 겁니다. 책 전반에 흐르는 정서가 안타까움과 공감으로 채색돼 있어요. 도닥여주는 손의 온도가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우리 사회의 희소자원인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해지기를, 그래서 결국 사회 전체가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키를 잡아나가기를 바라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 뱀발

 

유사한 이슈에 대해 본문중에 조금씩 논하고 있어 크로스되는 책들이 몇 권 있지만 그 중 생각나는 책은 엄기호/하지현 선생님의 대담집인 『공부중독』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이 책과 가깝게 맞닿아 있다고 느껴진 부분만 인용해 볼게요.

 

아이들이 망가지고 있어요. 계속 벽에 부딪히면서 금이 가다가 부서져버리는 것 같아요. 서울대에서 수능 만점자는 흔하대요. 고등학교 3년 내내 하나도 틀리지 않는 연습을 하다 오는 거죠. 완벽을 기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만점이 흔하게 되면 생기는 문제가 틀리는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생기는 거예요. 십여 년 공부 생활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덧 그 방식이 삶의 기본 태도가 될 가능성이 많아요. -18쪽

 

이 책은 솔루션보다는 현실을 냉엄하게 짚는 데 무게를 더 실었더라고요. 속시원한 해결법 같은 것은 없지만(애초에 그런 게 존재할 수가 없겠지만), 굉장히 넓고 치밀한 분석이 주를 이룹니다. 얇지만 가볍지 않은 책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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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2세인 큰아이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사춘기가 찾아오지 않아 여전히 세상에서 최고 좋은 사람이 엄마이고, 간혹 잔소리를 하긴 하지만 엄마가 다 저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고 더불어 함께 믿고, 엄마하고 수다 떠는게 너무 즐겁다고 말해주는 아이이다. 이 애의 특이함(??)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그 중 흉은 아니지만 화제로 올리면 재미난 것 하나만 말하자면 입맛이 너무너무 토속적이라는 거다. 주위 어른들이 아이 입맛을 두고 한 마디로 딱 잘라 표현하는데 그 말이 재미있다. 기사식당. 기사식당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그 메뉴가 바로 이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스타일의 식단이기 때문이다. 그 별난 입맛이 이미 두 살때 증명됐는데, 그것도 순대국밥집에서였다. 어른들이 먹고 있는 시뻘건 국물을 보고 입맛을 다시더니, 식사를 마쳐갈 즈음에는 저는 안 준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혼 좀 나봐란 심정으로 매운 국물에 밥을 말아 입에 넣어줬더니 코를 박고 그릇을 핥았던 역사가 있다.

 

초콜릿을 입이 달다고 한 조각 이상 못 먹고, 케이크는 생일날 한 번 먹으면 족하고, 고기는 한두 점 먹으면 됐으며(몹시 질이 좋은, 숯불에 구운 소고기는 예외로 하고), 최고로 치는 반찬은 유채나물 무친 것이다. 요즘 아이 치고는 나물 맛을 썩 잘 구별한다.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을 읊은 이유는 오늘 아이가 한 말이 너무 기억에 남아서인데, 그 말이 나온 배경과 말이 타고 나온 목소리의 결이 어땠는지를 이야기하려면 그 입맛을 설명하지 않고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후가 되도록 저녁엔 또 뭘 해먹어야 하나 고민을 거듭하다가 결국 알배추를 뜯어넣어 멸치육수에 된장과 마늘, 대파만 좀 풀어넣고 배추가 흐물거리도록 국을 끓이고 매운 코다리조림을 만들었다. 점심에 떡볶이를 과하게 먹어서 속이 안 좋다던 아이는 저녁 밥상을 보고 반색을 하더니 축 늘어진 배추를 호로록 호로록 연달아 건져먹었다. 그러고선,

 

엄마, 5학년때 학교에서 순우리말로 맛을 표현하는 여러 종류의 단어를 배우거든요? 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랬었구나, 근데?

거기에 달보드레하다는 말이 나와요.

아, 엄마도 그거 알아. 어감도 되게 예쁘지.

근데요, 지금 이 배추 맛이 딱 그거예요. 설탕 같은 걸 넣어서 낸 인공적인 단맛은 하나 먹으면 끈적거려서 더 먹기 싫거든. 근데 배추가 되게 달아. 이게 바로 달보드레한 이야.

그러고선, 엄청스레 행복한 얼굴로 한 그릇을 싹 비웠다.

 

올 겨울방학에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이미 정해놓고 열심히 독서하고 있지만, 오늘 있었던 작은 일로 사전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어졌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멋진 책도 있고,

 

사전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쓴 훌륭한 책도 있다.

 

아래의 두 책은 지금 나이로 읽기엔 여러가지로 어렵거나 조금 이르거나 한 구석이 없지 않아서 좀 나중으로 미뤄야할지도 모르지만 말이지... 저녁 먹으면서 네가 했던 짧은 한 마디로, 이런 책들을 또 이렇게 얼기설기 모아봤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어쩌면 질린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고, 엄마 정말 못말려 하면서 피식 웃을지도 모르고. 설마 이걸 나더러 다 읽으라는 건 아니지? 할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엄마는 오늘 네가 관념의 세계 어딘가에 머물러 있던 단어 하나를 현실로 만난 순간의 감동을 아주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

이것이 바로 그것이구나, 라는 걸 깨닫고 얼굴에 함박미소를 떠올린 네게 이런 행복한 배움이 많아지기를, 학교에서, 책에서 머릿속에 심어 준 많은 씨앗들이 실제로 떡잎을 내미는 때는 바로 이런 순간들이라는 걸, 이게 진짜 공부라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다. 현실에서 진짜를 발견하는 그 기쁨을, 너도, 다른 아이들도 많이많이 누릴 수 있기를. 그건 아이들의 특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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