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정혜윤PD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요즘에야 꽤 열심히 독서기록장을 써 두지만, 말 그대로 요즘 와서다. 예전에는 책을 읽으면 마지막 장을 덮기가 무섭게 잊기 시작했다. 아주 인상적인 몇 권이 아니고서야 망각의 바다로 사라지는 것도 운명이지 뇌까리면서(별로 자랑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혜윤의 이름 석 자를 마음 속 어딘가에 강하게 새기게 한 책은 지금도 알고 있다. 



이 책이 좋아서, 정말 너무 좋아서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을 모두 기억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얼마나 훌륭한지,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알아야 할 진리들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지만, 정작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실패해서 밤새 이불을 걷어찬 경험이 없을 사람은 없을 듯하니까, 내가 왜 말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할 필요는 없겠다. 


이 책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그리고 아래에서 언급할 다른 책은 또 왜 그렇게 좋았는지를 곰곰 생각하다가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자기 목소리를 낮추었기 때문이다. 글쓴이의 자아가 비대하게 튀어나온 책은 껄끄럽고 불편하다. 꼭 읽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땐 네에네에 하고 읽지만, 뭐 어쩌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우러나온다. 그런데 정혜윤의 책들은 희한케도 그런 톤이 없다. 그렇다고 글쓴이의 정체성이 없는가하면 그런 건 아닌데, 그림자처럼 행간에서 조용히 문장과 문장을 바느질해 이어붙이는 정도의 존재감만 있다. 줄여 말하자면 겸손하다. 그건 아마 그녀의 직업과 성격과도 관련이 있을 거다. 정혜윤은 기본적으로 타인과 그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경청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거기서 중요한 것을 건져 보기좋게 손질할 줄 아는 사람인 까닭에 정혜윤의 글들은 조용해도 힘이 있다. 정혜윤이 담은 타인들의 목소리가 책을 떠받치는 뿌리여서. 


질문은 같아도 대답은 다양하더라는 말이 아니야. 질문은 같아도 예상을 벗어나는 말은 늘 있었어. 우리의 타인에 대한 상상력은 늘 우리를 배신해. 타인은 우리의 상상력보다 클 수 있어. 나는 예측할 수 없음에 열광하게 되었어. -23쪽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지. 프로그램으로 기획력으로 청취율로. 아마 다들 사정이 비슷할 거야. 각종 인사고과 평가가 있고 각종 자격증이 요구되고. 이런 세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설명하고 자신을 방어하느라 정신이 없지. 그러나 증명이 우리를 끝없이 강박적으로 만든다면 반대로 우리를 끝없이 풍요롭게 만드는 세계가 있어. 그건 '발견'이야. 사람들의 목소리에서 놀라운 것을 발견할 때가 있어. -53~54쪽


우리는 어떤 가능성의 사람들일까?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는 누구일 수 있었을까? 혹시 내가 보고 있는 사람이 또 하나의 모차르트일 수도 있었을까? 기회를 갖지 못한 셰익스피어나 링컨일 수도 있었을까? 확실한 것은 말이야. 누군가를 알아본다는 것은 천국과도 같이 대단한 일일 거란 거야. 누군가에게 천국 한 채를 지어주는 거지-68쪽


그분은 이렇게 물었어요. '정 피디, 브람스 좋아해요? 브람스 교향곡 4번 4악장. 변주만 서른 번에 이르는 4악장. 파사칼리아의 무한한 변주. 정 피디는 정 피디 인생의 중요한 모티프를 서른 번 변주할 수 있나요?' -182쪽


우울증을 이겨낸 두 번쨰 방법은 동화책을 읽는 거예요. 어려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던 것들을 다시 꺼내서 읽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어린애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던 엄마의 마음이 다시 찾아와요. 동화책 읽을 때 제 자식 잘못되라고 읽어주는 사람 없잖아요. 제 자식 잘되길 바라는 사람은 자기 삶도 대충 살지 않잖아요. 내가 이러면 안 되잖아 생각하잖아요. 피곤해도 힘내잖아요. 그 마음이 살아나더라고요. -293쪽



이슬아는 그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에서 이 책의 어떤 페이지를 통째로 외웠다고 말했다. 그 부분이 너무 좋아서(그게 뭔지는 당연히 책에 나온다) 그렇게 했다고 한다. 사실「마술 라디오」에도 비슷한 이야기에 대한 언급이 프롤로그 부분에 나오기는 한다. 

정혜윤의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몇 가지 핵심 낱말들이 있는데, 정혜윤이 살아내는 낱말들의 목록의 최상위단에 올라있는 게 틀림없다. 그 중 다른 하나는 확장이다. 인간을 한 두마디의 낱말로 축소시키지 말자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남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음을 말한다. 타인과의 거리감을 좁히고 싶어한다. 타인도 나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열심히 설득하려 한다. 본질적인 것을 놓치지 말자고, 우리 안에 존재하는 타인과 타인에게 존재하는 나를 잊지 말자고. 


그래서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미래는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닮아가는 거야. 우리 자신이 보고싶은 미래 자체가 되어가는 거지. 그래서 내가 '가장 아름다운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할 때 내 마음속의 생각은 우리가 변화해야만 그날이 온다는 것이었어. 우리가 변화해야만 세상이 아름답게 바뀐다는 말이었어. 이것이 희망을 이 사이에 넣어둔다는 말이야. 희망은 별처럼 먼 곳에 있지만 그 별을 입으로 옮겨놓는 거야.

하지만 글이 여기서 종료된 것은 아니야. 아직도 할 말이 많아. 죽은 사람과 죽은 사람을 연결하는 우편배달부 역할을 했던 존 버거는 내게 영감을 줬어. 나는 '살고 싶어 하는 자'와 '살고 싶어 하는 자'를 연결하는 우편배달부가 되고 싶어. 우리는 아직은 오지 않은 아름다운 미래에서 다시 만나게 될 거야. -24쪽


해마다 우린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을 하지. 다시 시작하자는 말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 것처럼 그런 결단으로 다시 듣고 보고 행해보자는 말이야. '다시'라는 말 아름답지? 아름다움의 역사에 가장 먼저 포함시킬 만한 단어야. 우린 몇 번이고 반복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거야. 조금 더 자유롭게 조금 더 힘 있게. 우리가 맺는 관계가 바뀐다면, 혹은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바꾼다면, 세상도 바뀌어, 이건 진리야.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 눈을 뜨게 하는 관계로, 서로 쉼터가 되는관계로, 서로 안고 있는, 서로 팔베개를 해주는 관계로 존재한다면 그 미래는단지 미래뿐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까지도 바꿔놓을 거야.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미래를 가리키는 화살표, 이정표가 될 거야. -30쪽


그런데 이 말은 우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나에게는 수많은 눈이 있다. 그래서 외로울 틈이 없다'라고 고쳐도 됩니다. 수많은 눈이 있다는 것은 근심 걱정하고 슬퍼하고 기뻐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도 됩니다. 그런데 진짜 외로운 것은 나 말고 달리 걱정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나처럼 걱정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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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을 만나면 아마도 측두엽이 있으리라 짐작되는 부위를 지긋하게 누르는 순간이 온다. 마치 거기를 누르면, 파워램프가 깜빡이면서 기억해내라_빨리좀기억해내라고.pdf 파일이라도 불러올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책들은 책 자체로 기억되고, 어떤 책들은 다른 책들과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책들로 기억된다. 



나한테 이 책은 그런 책... 다시 말해 다른 어떤 책들에게 손을 뻗게 하는 책이었던가보다. 

『살면서 가끔 괴로울 때 그 책을 다시 읽는데 그냥 나한테는 그런 책』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게 하는 문장이다. 괴로울 때 다시 읽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 나한테는 뭘까. 



아... 마지막 책이 잘 안 보이네. 오지은 씨의 「익숙한 새벽 세 시」인데.



어디서나 참 많이도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이 책이 열 여섯살의 나를 지금까지 독서가로 살게 한 책이면서, 힘들고 가라앉을 때마다 다시 읽게끔 하는 그냥 그런, 일 번 책이다. 페넬로프 킬링 부인에게는 세 남매가 있다. 대놓고 속물적이고, 조금 뻔뻔하고, 툭하면 자기연민에 빠지고 감정에만 충실하게 사느라 자식들로부터도 남편에게서도 그닥 존중받지 못하고 사는 중년의 맏딸 낸시, 항상 엄마의 편에서 엄마를 이해하려고 하는 둘째 올리비아, 아버지를 꼭 닮아 삶의 겉쪽에 치중하고 사는 듯 보이는 막내 노엘. 어느 날 페넬로프는 자신의 삶 전체라고 해도 좋을 아버지의 유작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로 인해 빚어진 가족간의 갈등과 페넬로프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는 에지간한 자기계발서나 행복전도서보다 낫다, 고 나는 생각한다. 치에코 씨와 사쿠 짱은 아이 없이 둘만 사는 부부다. 그들도 딱히 유별난 삶을 사는 건 아니어서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다투기도 하고 밥 먹으러 나가 처음 가 본 식당에서 메뉴를 성공적으로 고른 것으로 굉장히 기뻐하면서, 그렇게 우리와 비슷하게 소소하고 시시하게 (!) 산다. 

그러나 치에코 씨에게는 대단한 재능이 있다. 소소시시한 일상에서 항상 뭔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거리를 찾아낸다. 내지는 뭉클해할만한 것을 찾아내고 아주 잠깐, 감동한다. 그러라고 가르쳐 주는 책을 보면 웬지 반감이 들지만, 치에코 씨가 행복해하고 감격하는 모습을 보면 같이 즐거워진다. 



오지은 씨를 TV에서 봤을 때, 굉장히 명랑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활기찬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후에 이 에세이를 읽었을 때 그만큼 역으로 놀랐다. 누구에게나 그림자가 있지만, 이 사람의 그림자는 유난히 불투명하게 짙은 회색이고, 아주 두꺼웠겠구나... 그렇지 않았을까 싶었다. 덮어놓는 방법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덮어 가리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오지은 씨는 밝은 곳에서 직시하는 쪽을 골랐다. 이제는 바삭바삭하게 말라서 어쩌면 얇아졌을 수도, 투명해졌을수도 있겠다. 책을 덮고 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냥 다시 펼쳐보기에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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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었던 그래픽 노블 세 권을 기억하며 한데 묶는다.



어린 시절 우리는 그런 환상을 갖는다. 내 제일 친한 친구는, 어쩌면 나하고 영혼도 나눠가졌을 거라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그 친구도 반드시 좋아할 거고, 내가 즐기는 취미는 당연히 그 친구도 함께 즐길 것이라고. 우리는 마치 하나였던 것처럼 그 모든 것을 공유하고 나눌 것이라고. 당연하게도 그 유아기적 환상은 오래가지 않아 깨진다. 다만 누구에게나 그렇듯 아프게 깨어진다. 그리고 우정이라 믿었던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 않아야 할 이기성을 깨닫는 그 순간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그 과정을 직접 겪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간접적으로 체험해서 항체를 생성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 겉으로는 한없이 순진무구해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보이지 않는 손톱을 잘 접어 감추고 있는지 그녀들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른다. 롤러 걸도 아마도 그랬지 싶지만, 섀넌 헤일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이 책들은 한 번에 다 읽기가 쉽지 않다. 마음이 힘들어서. 그리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현재진행형으로 섀넌처럼 힘든 유년기를 보내고 있을 아이들이 있다면(있겠지만), 꼭 이 책을 쥐어주고 싶다. 



이것도 사실 읽기가 쉽진 않다. <진짜 친구>에서보다 나이를 좀 더 먹어 사춘기에 진입한 섀넌이 겪었던 일들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또래 압력이다. 본인이 전혀 원하지 않는 일들을, 또는 하고 싶었어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친구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척' 하면서 그 무리 안에서 버텨야 했던 시기의 고단함은 마찬가지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아이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특히 책 말미에 실린 부록이라고 해야 할지 본인의 이야기임을 확증하는 증거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 자필 원고와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그 험난한 시기를 잘 견뎌내고 훌륭한 작가로 살아남은 작가에게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주인공과 같은 학년인 둘째아이에게 어느 책을 가장 추천하겠냐고 물어보니 <진짜 친구>란다. 심적으로 덜 무리간다고. 하기사 이미 저 시기를 오래 전에 지나온 나로서도 쭉 읽어나가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딱 그 나이인 아이 입장에서는 괴롭기도 했겠다. 

다만 우리나라 정서와 조금 안 맞는 부분도 있긴 한데, 잘린 컷 없이 들어갔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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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먹는 일이 힘들면서 소중한(...) 시절을 보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는, 감사하게도. 뉴스에 보도되는 것만큼 자극적으로 어려운 건 아니지만, 심정적으로는 전시상황만큼은 아니더라도 평상시의 마음으로 살기는 쉽지 않은 곳에서 버티는 느낌이다. 배급표 받으러 줄 서는 기분으로 서서 기다리다보면 마켓 입장이 허용되고, 그나마도 물건이 뭐 그렇게 넉넉한 것도 아니고. 사재기가 너무 심한 품목들 밑에는 품목당 1개씩만 구입 가능, 이런 딱지가 붙어 있고... 식사 때면, 아이들한테 툭하면 난 이거 좋아하는데 못 먹는 건데 같은 사치스러운 소리 하지 말라고 야단치고. 아이고, 머리야.



맛을 생각하면서 음식을 먹기보다 생존을 위해 먹는다는 의미가 더 부각되는 요즘에 더 생각나는 글이다. 히라마쓰 요코의 글은 눈으로 읽다 보면, 먹은 것도 아닌데 글따라 맛이 당겨올라와 입 안에 머무르는 신묘한 체험을 하게 한다. 이건, 정말 먹는 일을 사랑하고 맛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이다. 다이어터라면 히라마쓰 요코의 책은 금서다. 



히라마쓰 요코보다는 좀 더 가볍고, 댄디한 느낌의 글을 쓰는 작가. 사실에 근거한 배경지식을 얻는 용도로 읽으면 안 된다. 재기발랄한 상상을 구경하고 읽고 깔깔 웃기에 딱 좋다. 책이라도 덜 무겁고 즐겁게 읽고 싶은 요즘엔 딱이랄까.



최근의 아만다와 미스터 라떼,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의 사진을 우연히 봤다. 미스터 라떼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진 밑에 누군가가 미스터 라떼, 당신이 이렇게 나이가 들다니! 우리가 나이를 먹었군요... 라고 댓글을 단 걸 보고 순식간에 이 책이 기억났다. 아, 정말 유쾌하게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라서 더 그럴수도. 



몰리의 책도 아만다의 책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면이 있는데, 아만다에 비해 몰리는 자신의 인생 전반부를 그녀의 인생과 얽힌 음식들과 엮어 회고한다. 너무 가볍지는 않고, 그렇다고 또 너무 진지한 것은 아니고. 적당히 무게중심을 잘 잡고 있는 유쾌한 책. 몰리의 책은 더 있는데 번역돼 나온 건 이것밖에 없는 듯. 



몰리의 책처럼 지향하는 바는 비슷한데(인생 전체를 본인과 가족의 추억 속의 음식들과 함께 기억하고 돌이켜보는), 조금 더 진중하다. 짠하고, 마음 아프고, 박장대소하게 되고, 그녀가 쓰면서 울었을 것 같은 대목에서 같이 훌쩍거리게 되고. 캐슬린의 책 속에서 등장하는 가족들이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졌는지 마치 실제 옆집 사는 이웃 같기도 하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됐으면 좋겠다. 일일이 사전 찾아보기 귀찮아서, 대충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 대목들의 디테일 (특히 대공황 시절(이었던가?) 관련해서 -_- ...)이 궁금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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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좋아해서, 많이 갖고 있기도 하고 도서관에서도 종종 빌려오기도 한다. 어떤 책들은 그냥 휘리릭 넘겨보고 어떤 책들은 좀 더 꼼꼼히 훑어보고, 또 어떤 책은 온라인 서점 검색창을 열어 다른 사람들의 리뷰도 찾아 읽어본다. 마음에 들어온 책일수록 남들의 느낌도 궁금해지기 마련이라... 남들도 나처럼 생각하는지, 아예 다르게 생각하는지. 



혹시나하고 찾아봤는데 번역본이 나와 있었네...


엄밀히 말하면 이것도 번역본이기는 한 게 작가는 원래 프랑스어로 낸 책이다. 그런 까닭에 원서를 얼마나 잘 살린 번역인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어쨌거나, 여기서 찾아보든 저기서 찾아보든 이 책은 칭찬일색. 


삶이 어떤 형태로 흘러가는지, 혹은 흘러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나긋나긋하게 풀어 그려낸 책이다. 어느 정도로 안온한 어조인가하면,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뭐야... (시간이 정말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야기다) 하면서 책장을 넘길지 몰라도 넘긴 페이지가 많아질수록 코가 맹맹해질 수 있다. 뭐야, 하는 기분으로 시작한 어떤 감정이 천천히 스미는데, 갈수록 찡해져서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달까.

이야기는 이렇다. 

배저 부인은 아주 소박한 사람(?)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산책이라고 하긴 좀 벅차고 본격적으로 산행이라기에도 어딘가 미묘한 걷기가 취미인 듯하다. 정상까지 앞뒤 안보고 마구 올라가는 게 아니라, 주변도 찬찬히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자연물이 있으면 줍기도 하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잠시 잡담도 나누면서 급할 것 없이 천-천-히- 올라간다. 배저 부인의 일요일은 대체로 거의 항상 그랬다.

고양이 룰루를 만나기 전까지는.


배저 부인은 수풀에 숨어 흘끔거리며 엿보는 룰루에게 원하면 같이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렇지만 룰루는 자신의 신체조건(산행에는 어째 부족한 듯한)에 겁을 내며 망설인다. 여기서 이 책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등장한다. 

배저 부인은, 룰루의 망설임을 이해한다. 누구든 자기 자신을 믿고 도전할 용기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부인은 룰루가 자기 발로 따라나설 때까지 다그치지 않는다. 얼마나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인지! 


부인은 룰루에게 산길을 걸을 때 썩 유용한 지식들도 가르쳐 준다. 호기심이 넘쳐나는 룰루의 질문에 대답도 충실히 해 준다. 그렇게 정상에 오른 룰루는 '표현할 수 없지만, 가슴에 꽉 차오른 그 어떤 감정' 때문에 아무 말 않고 거기에서 보이는 세상을 충분히 오래 바라본다. 이 장면도 정말 좋다. 내 마음에 들어 온 기분을 충분히 더듬어 헤아려 보는 기회가, 실제로는 얼마나 많이 박탈돼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말이지... 





어쨌거나 배저 부인에게 배우고, 많이 따라다니면서 꽤 산을 잘 타게 된 룰루는 이제 나이가 들어 예전만큼 산행이 거뜬하지 못한 부인을 돕는다. 그렇게 함께 산을 오른다. 그러다 결국 노쇠한 부인은 이제 룰루더러 혼자 산에 오르라고 권한다. 다녀와서 무엇을 보고 왔는지 이야기해 달라며 룰루를 보낸다. 

혼자 걷는 산길은 배저 부인과 걸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룰루는 그 고독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성장한 룰루는 어느 새 자기보다 더 어리고, 미숙한 다른 존재와 함께 산길을 걷고, '뭔가'를 보여줄 수 있게 된다.


인생에 대해 이렇게 할 말 다 하면서 시적으로 표현할 수가 있단 말야? 이런 압축능력은, 기찬 비유는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돼??, 가 책을 덮고 난 뒤의 솔직한 감상... 

인생이 뭐 엄청 거창한 게 아니야. 위대하고 오래 추앙받는 일을 해야 되는 게 아니야(어릴수록 그런 생각을 하지 않나). 그냥 내가 경험으로 배운 것이든, 시간이 흘러가며 가르쳐 준 것이든, 사소한 것이라도 잊혀지기엔 아까운 삶의 지혜를 아래세대의 누군가에게 잘 전달해서 이어지도록만 해도 그걸로도 괜찮은 거겠다... 그런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는 거다. 이런 책을 만나면. 아주 잠깐 생각하고 잊어버릴지언정, 마음속에서 한 번 긍정한 삶의 태도는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는 법이니까. 


한참 이 여운을 굴리고 있다보니 문득 단속사회가 떠오르는 거다.



특히 프롤로그에서 말하는 이 부분을, 이 그림책이 그대로 그려냈구나 생각했다.


삶의 실제적 경험으로부터 조언과 충고가 온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나와는 다른 경험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망이 필요하다. 우리보다 더 오래 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 사회는 망한 사회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 사회가 '사회'일 수 있는 것은 연속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연속성을 지녔다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경험과 지혜가 끊임없이 갱신되면서 후대들에게 전승될 수 있음을 뜻한다.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고 또 그 환경을 바꾸귀 위해 사람은 한편으로는 선대의 경험과 지혜를 필요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새롭게 바꾸어내야 한다. 

- 20~21쪽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경청해야 하고, 좀 더 다듬은 말을 해야 한다. 내 살아온 인생을 주구장창 말로 전시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곧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므로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구걸 내지는 하소연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말이 나눔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심과 걱정이 타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사적인 투덜거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겪고 있는 무제를 자신만이 아닌 모두의 이야기, 아니면 적어도 사회적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내 이야기에 누군가 다른 이가 맞장구를 치며, 자신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을 통해 사적인 관심과 걱정은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사적인 투덜거림이나 징징거림을 그 자체로 나쁘다고만 할 순 없다. 다만 그 자체가 독백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말 걸기이며 자시느이 경험을 나누기 위한 초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관건이다.

이야기는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것"이며 듣는 사람이 그 이야기에 "참여"할 때에만 계속 이어지고 풍부해질 수 있다. 

- 186~187쪽


젊은 사람들이 중장년, 노인들의 말을 대체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그게 대부분 공감하며 들어주기를 강요하는(문제는 그게 불가능한 전제라는 건데!!!) 징징거림, 푸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에 관계없이 자신의 개별성에서 보편적 담론을 끌어냈던 어른들은, 늘 존경받았다. 


개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것이다. '나'라는 개인은 다른 누구하고도 다른 자기만의 독특함을 지닌다. 이 독특함은 다른 어떤 특성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다른 것으로 강제로 환원하려는 순간 사라져버린다. '엄기호'라는 사람은 경상도 사람이고,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국제연대활동을 위해 외국에서 몇해간 돌아다녔고, 지금은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 이 모든 것은 '나'라고 가리켜지는 한 사람의 특징을 어떤 특정한 집단 혹은 범주로 환원하는 방식의 설명이다. 경상도, 90년대, 국제연대, 강사 등이 그러하다. 이런 점에서 '나'가 먼저 나온 뒤 '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안에 수많은 '우리'가 있는 셈이다.


그렇더라고 나에게는 최종적으로 우리라는 그 어떤 '묶음'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만의 독특한 그 무엇이 남아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이 없어지면 나는 그저 묶음의 묶음에 지나지 않는다.

- 109~110쪽


즉 집단정체성을 제외하고도 순수한 나,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내가 남아 있어야 나는 타인에게 이야기를 전할 수 있고, 후대에 개인의 문화를 전승할 수 있는 것이다. 오버하자면 개인은 그 사람 본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개인문화의 아이콘이어야 한다고도 할 수 있다. 


다시 그림책으로 돌아와서, 배저 부인은 그저 일요일마다 산봉우리에 오르는 것이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다. 그렇지만, 산책과 산행과 여가가 오묘하게 뒤섞인 그 걷기에 더불어 쌓인 경험과 지식이 지혜를 생성했고, 그것을 배우고자 하는 곁이 생겨나고 그 걷기의 문화가 쭈욱 누군가에게로 이어진다는 것은, 아 그게 그렇구나 그런가보지, 하고 잊어버려도 될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일의 중요성이, 그게 결국 사회에 퍼트릴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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