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일 -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만들고 파는 사람들은 어떻게 움직일까?
박혜진 외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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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은 시인 김수영이 태어난 지 100년째 되는 해다. 1921년에 태어나 1968년에 사망한 그는 요절한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 번도 늙어 본 적 없고 한 번도 낡아 본 적 없다고 기억되는 사람. 그의 이른 죽음이 그를 계속 살게 하는 건 아닐 것이나 젊음 그 자체로 박제된 그는 지금까지도 '기괴한 청년'의 상징이 되었다. 1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의 언어가 100년 후에도 현대적 감각으로 읽힌다는 사실이야말로 사건일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도구만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는 사유 그 자체이기도 해서 어떤 유행보다 더 빨리 소모되고 교체된다. 그럼에도 기어코 소모되거나 교체되지 않는 작가를 우리는 문호라 부른다. '김수영'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p.11~12)

- 민음사에서 나온 책들이 표지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민음사의 책들을 만든 이 열 명이 쓴 책 만드는 이야기다. 표지에 나온 책만큼 두껍지 않고 오히려 너무 얇아서 놀랐다. (뭔가 더 내밀하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와야 되는데, 원고가 끝나버리고 마치 계주 선수처럼 다음 저자에게 지면을 넘긴다)

- 인용문은 편집자 박혜진이 쓴 「김수영의 편집자」첫머리 일부다. 잘 다져진 한 문단의 글을 여러번 읽어본다. 김수영에 대한 저자의 마음이 읽힌다. '한 번도 낡아본 적 없는' 김수영을 읽고 싶어지는 새벽이다. 다시 읽지 않고서는,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을 것 같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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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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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많은 작가의 별처럼 많은 저작들
읽어 갈수록 부족한 나의 독서를 깨닫게 된다.

내용이나 목차를 잘 살피지 않고
제목과 표지에 흔쾌히 '낚이는' 편이라
나는 정세랑 작가의 이 책이 환경에세이인가?
새와 나무들이 표지 디자인이니 아마도 그렇겠지. 싶었다.

^^;

제국주의적으로 출발한 박물관들이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구성부터가 역사와 문명의 일그러진 부분을 그대로 담고 있어 불편해질 때가 있다. 아시아의 박물관에 서양 유물이 풍부한 경우는 잘 없다. 반면 서구에선 어딜 가나 아시아 유물이 풍부하다. 이런 포함과 불포함의 관계들을 생각하면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동양이 근대화의 정신없는 급물살에 휩쓸려 있던 시기에 서양은 상대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모으고, 분류하고, 정리했다. 세계는 그런 식으로 만난 것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포함당하며...... 이 마음속의 요철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쓸 수밖에 없을 듯싶다.(p.69)

숙소는 친절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필요한 게 있으면 마을버스를 타고 잠깐 네덜란드에 다녀오라고 했다.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말았다. 두 나라 사이를 마을버스가 오간다는 것에도 놀랐고, 고작 20분 거리라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아헨에선 네덜란드도 벨기에도 지척이었고 국경은 열려 있었다.

그리하여 짐을 풀자마자 별로 크지도 않은 마을버스를 타고 네덜란드 발스로 향했다. 슈퍼마켓에 가기 위해. 마을버스에서는 이제부터 네덜란드라고 방송을 해주기는 했지만 심상하게 들렸고 국경은 도로에 페인트로 표시되어 있을 뿐인 데다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p170~171)

"독일어는 좀 배웠어?"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물어와서 열심히 배운 단어들을 대답했다.
"아인강, 아우스강(입구, 출구)!"
"헤렌, 다멘(남녀 화장실 표기)!"
"아인스, 츠바이, 드라이(1, 2, 3)!"
"추스(작별 인사)!"
너무나 관광객 독일어였던지 횡단보도를 앞서 건너던 아주머니가 뒤돌아보며 폭소했다. 그 아주머니는 횡단보도를 다 건건 다음 우리에게 말을 걸어왔다. 얼마냐 있을 거냐고 깔깔 웃으며.
"나는 네덜란드 사람이에요. 아헨에 잠시 뭘 사러 왔어요. 이 근처에 가볼 만한 데를 좀 알려줄게요."(p.178~179)

"드라이란덴푼트(Drielandenpunt)?"
영어로 치면 스리 랜드 포인트인 것 같았다. B와 S가 나를 끌고 경계석으로 향했다. 무엇의 경계인가 했더니 독일과 네덜란드, 벨기에 세 나라의 국경이 한 점에서 만나는 꼭짓점을 표시하고 있었다.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그 전날, 유연한 국경이 재밌다고 말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야말로 가장 유연한 곳에 데려다준 것이었다. 네 살, 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경계석 근처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 걸음 딛을 때마다 발밑의 나라가 바뀌었다. 뒤로 국기가 꽃혀 있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군인이 없었다. 어느 나라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공원이었다.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신이 난 채 어린이들과 경계석을 빙빙 돌았다. 내 격한 반응에 B 자매는 만족한 듯했다. 한 걸음마다 벨기에였다가 네덜란드, 네덜란드 였다가 독일, 독일이었다가 벨기에...... 뭐라 할 수 없이 멋진 경험이었다.(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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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16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날님 2021년 서재의 달인 추카 합니다 ^ㅅ^

mini74 2021-12-16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축허드립니다 ~

쎄인트saint 2021-12-16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스텔라 2021-12-16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
행복한 연말 되세요^^

새파랑 2021-12-16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달인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12-16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과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1-12-16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2021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봄날의 언어 2021-12-16 21:3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많은 댓글이 달려있는줄 몰랐습니다. 올해 쉬면서 책 많이 읽는 삶을 추구했는데 2019년에 이어서 두번째네요. 감사합니다 모두들 ^^

월천예진 2021-12-16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

러블리땡 2021-12-17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날의 언어님 21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
 
나비가 숨은 어린나무 - 김용택 시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555
김용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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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별



우리 집 서쪽 하늘로 달이 가고 있다 그 속에, 별도 데
려간다 별들은 하늘에서, 어느 날은 다르고 어느 날은 또
다르다 나는 그 다른 날들의 별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추억해내 행복해하고, 무엇인가를 기억해내놓고 개구리
처럼 멀리 뛰며 괴로워한다 생각해보면 별이 없었던 하
늘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마음을 달래 별 아래 놓아둔
다 아침 별들은 슬픔이 가득 찰 때까지 눈을 감지 않는다
(p.13)



꿈을 생시로 잇다



달빛으로 시를 썼다
달빛이 견디기 힘들면 가만가만 집을 나와
달이 그려준 산그늘까지 걸어가
생각을 접어주고
발자국을 거두며 돌아왔다
가난하고 가난하여서
하나하나가 일일이 다 귀찮니 않았다
꿈속에서도 시를 쓰다 잠이 깨면
연필이 손에 꼭 쥐여져 있어서
꿈을 생시로 잇기도 하였다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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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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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비정전>에서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그 말. "세상엔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으로 시작하는 아비의 얼굴은 내 청춘의 잔상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었다. 세상에는 발 없는 새가 있어, 영원히 땅 위에 앉아 쉴 수 없다는 말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토록 아름다운 남자의 뒷모습을, 맘보를 추던 그의 청춘을 그렇게 추억했다.

그러므로 4월 1일 만우절 날,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3층에서 장국영이 투신해 자살했다는 기사가 떴을 때, 나는 그것이 기념비저인 만우절 거짓말이길 바라는 것 이외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장국영이 죽은 날, 약국에 가거나 회사를 조퇴한 여자들의 숫자가 공식적으로 집계됐을 리 없지만 나는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자살하기 직전, 그는 매니저와 차를 마시기로 했었고, 절친한 친구와 배드민턴 시합을 약속했었다. 그리고 두 약속 모두를 지키지 못했다. 불행히도 호텔에서 투신한 후, 그는 몇 시간 동안 살아 있었고, 퀸 메리 병원의 응급실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p128. 소설가 백영옥이 쓴 글 부분)

* 2012년 당시 출간된 에세이. 시인 이병률이 사진을 찍으며 동행하고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작가, 감독, 공연기획자, 가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여행을 떠난 곳의 감상을 글로 묶었다. 은희경, 이명세, 이병률, 백영옥, 김훈, 박칼린, 박찬일, 장기하, 신경숙, 이적의 글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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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자 - 2012 제3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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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평수는 그 풍경을 뒤로하고, 훈련을 하고 있었다. 트레이닝복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쓴 채, 손에는 붕대를 감고 빗줄기를 비추고 있는 가로등을 향해 주먹을 뻗고 있었다. 어느덧 체중을 감량한 53세의 공평수는 놀랍게도 상체를 좌우로 날렵하고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매끄러운 동작 뒤로 달빛을 받은 밤바다가 보였다. 바람의 입김으로 밤바다의 살결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허공엔 빗방울이 애잔하게 뿌려지고 있었고, 그 허공으로 상체를 움직이며 주먹을 뻗는 공평수는 흡사 빗방울이라도 때리려는 듯했다. 그 풍경은 어떤 힘이 있었는지 나를 얼어붙게 했다. 나는 먼발치에 서서 발을 떼지도 못한 채, 그의 동작을 계속 응시했다. 주먹은 허공을 향해 뻗어지고 있었고, 그 허공 속에서 빗물이 부서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를 조롱했던 언어와 멸시했던 눈빛들도 부서지고 있다, 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훈련이 단지 복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삶은 무의식적으로 이산화타노만 내뱉으면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하나의 주장처럼 인식되었다. 그가 뻗는 것은 주먹이지만, 그가 하는 것은 복싱이지만, 그의 행위에는 그 어떤 주장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p168~169)

* 올해 최민석의 에세이와 소설을 꾸준히 읽었는데, 참 일관성이 있는 작가다.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왜? 이 작품이 수상작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재미는 있지만 탁월하지는 않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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