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게도 기린의 ‘8번째 목뼈‘ 발견은 많은 사람의 호평을 받아 박사과정 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예로운 상까지 받기에 이르렀다. 수상 연락을 받았을 때 나는 ‘기린이 죽지 않아야 할텐데.‘라고 생각했다. 해부 때문에 수상식에 불참하고 싶지는 않았다. 괜찮을까. 수상식 전까지는 신세를 진 분들을 찾아뵙고 옷을 새로 맞추는 등 바쁜 와중에도 평온하고 충실한 나날을 보냈다. ‘겨울도 다 끝나 가고 날씨도 따뜻해졌으니 걱정할 필요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과학박물관의 가와다 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수상식 일주일 전이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로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 것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가와다 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린이 온다네.˝ 다음 날 나는 늘 입던 운동복 차림으로 과학박물관 지하 해부실에 갔다. 눈앞에는 다마동물공원에서 사육하던 ‘산고‘라는 이름의 암컷 기린이 누워 있었다. 전체적으로 하얗고 귀여운 개체로, 나보다 10살 어린 17살이었다.(p.209~210)- 포유류는 7개의 경추를 갖고 있다. 인용문에 작은 따옴표로 묶은 ‘8번째 목뼈‘라 함은 실은 제1흉추를 의미한다. 저자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기린이 목을 움직일 때는 경추뿐만 아니라 제1흉추까지 움직인다.˝(p194)는 간결한 사실을 전달한다. 전공자가 아닌 이가 너무나 이해하기 쉽게 쓰여진 글이다.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저자가 기린을 좋아하게 된 어린시절부터, 기린의 사체를 해부하여(무려 30여 마리나)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이야기. 학문하는 이의 자세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진부한(!) 교훈은, 초심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내 연구 이야기를 들은 어떤 우주 물리학자 선생님에게서 평생 잊지 못할 멋진 말을 들었다. ˝아주 재밌는 발표였어요. 군지 씨 이야기를 듣고서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올랐어요. 아인슈타인은 수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로 ‘내 성공의 비결을 하나만 꼽으라 한다면, 쭉 아이의 마음을 한 채 살았다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도 군지 씨도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채 어른이 돼서 행복하네요.˝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겠다거나 이 세상을 구할 연구를 하겠다는 고상한 뜻을 품고서 연구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 그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을 추구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내 인생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틀림없이 앞으로 노력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행복한 것은 분명히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채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p.212~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