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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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쇄매체를 보며 이렇게 웃어본 건 아마도 '드레곤 볼'이후 처음이지 싶다.

책장은 지루하지않고 경쾌하게 넘어갔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 역시 눈물로 오베라는 남자를 떠나 보냈다.

따뜻하고 고마운 책.

영화로 상영되면 사랑하는 이와 같이 가서 반드시 관람할 것이다. 누가 만들더라도 원작에 누가 되지않게 완벽한 영화로 만들어줬으면 좋겠고 영화가 완벽하지 않다싶으면 가차없이 상영을 포기하기바란다.

이것이 '오베'를 아는 모든 이의 바람이지싶다.

 

오베!

오베를 알게돼서 반가웠어요, 그리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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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5 1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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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9 0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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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9 16: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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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0 2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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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0 22: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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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1 22: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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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2 1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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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6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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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풍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
장 지오노 지음, 박인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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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 년 전,  청운의 꿈을 안고 노량진 입시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 학원가에서 유명하신 수학선생님께서 수강생들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집중도가 떨어지면 잠시 책을 덮어놓으시고 수학과는 거리가 있는 인생철학을 강연하셨다. 많은 말씀 중에 " 걸레는 빨아도 걸레다" 라고 일침을 놓으셨는데, 당시 나에겐 이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었다.  한의사가 꿈이었던 당시의 나에게, 선생님의 말씀은 '네가 노력해봤자 넌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야'라고 말씀하시는 것같았다.  나는 운명과 숙명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다. 내가 별 볼 일없는 인간이 될 운명이라면, 그것이 숙명이 아니고 운명이라면, 내가 스스로 내 운명을 개척하리라. 어긋난 운명에 맞서 내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리라!

 

  본론으로 들어 가 '폴란드의 풍차'에서 ...

부담 없는 책의 분량도 마음에 들었지만, 항상 나를 골탕 먹이는  낯선 등장인물의 외국인이름도 이 책에선 도입부에 도표(코스트 가의 가계도)로 나와있어 무엇보다 좋았다. 그래서인지 책은 쉽게 읽혔다.

쉽게 읽히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마지막 장에 접어 들고 몇 장을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오히려 걱정이 들었다. 도대체 난 무슨 감동을 얻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일까? 라는 걱정이였다. 아무리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억지에 가까운, 현실성이 부족한 한 가문의 몰락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무얼 말하려 하는 것일까? 이런 불행한 가문도 있으니 당신네들은 행복하신 줄 아시요라고 말하려함일까? 프랑스를 대표한다는 '장 지오노'는 이면에 무엇을 숨기고, 내게 어떤 반전의 흥분을 안겨주려 함일까? 책을 덮고 다시 한 번 되새겨봐도 석연치않다. ' 이게 다란 말인가?' 내가 뭔가 놓친것이 있지않나 의심하며, 옮긴이의 '작품 해설'을 주의깊게 읽어보았다.

 

 옮긴이의 작품 해설에서...

장 지오노가 이 작품을 쓸 당시 그리스 신화에 심취 해 있었고 코스트 가의 불행은 그리스 비극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코스트 가의 불행을 보며 그리스 비극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느낀 점은 일정부분 인정한다.

하지만, 끝부분에서 '삶의 의미는 운명에 도전하거나 운명을 자기 앞에 끌어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는지도 모른다'라고 해설했는데, 이 해설조차 납득하기 힘들었다. 가족의 비극에 처절이 몸부림 치며 도전하는 인간의 간절함을 난 읽어내지 못했다. 만약 그런 몸부림이 있었다면, 없진 않았지만, 약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아쉽다. 내가 원한 것은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처절하고 더 강력한 몸짓이였다. 내가 행간을 놓쳐 읽어내지 못한 것일까?

 

 다음에 기회를 봐서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땐, 불행한 코스트 가 사람들의 '운명에 도전하는 모습'에 집중하며 읽어봐야겠다.

 

 

 

p202
비극의 주인공이 겪는 불행은 관객에게 연민과 공포를 자아내며, 이를 통해 감정의 카타르시스라는 효과를 빚어낸다.

p208
지오노에게는 세계와 삶의 의미는 운명에 도전하거나 운명을 자리 앞에 끌어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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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띠아 2015-06-1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반갑습니다.
역시 서책을 가까이 하면 마음에 여유도 조금 갖게 되는가 봅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글을 보니까요!
삭막한 문자나,톡! 말고 글로서 서로 안부 물어보는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앞으로 더 왕성한 활동부탁합니다.^^

파란운동화 2015-06-1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반가워^^
여유가 있어 책을 보는지 책을 보니 여유가 생기는지, 나도 헷갈리네.
내 시간을 만들기위해 어지간히 애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읽어줘서 고맙고 자주 방문해 주라.
 

 

 

 1, 퇴근하면

날 반기는 것은 율마, 두 녀석이다. 율마를 보면 신기하게도 미소짓게 된다.

제일 먼저 이 녀석들에게 물을 준다. 3~4일에 한번씩 물을 주면 된다는 말을 믿고있다 지난 주에 얘들을 줄일 뻔 했었다. 아직 완전히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회복된 모습이다. 율마 옆에 잡초가 시들어 회분의 테투리 아래로 축 쳐져있어 불길한 낌새를 알아차렸었다. 잡초를 제거하려다 율마 생명의 은인이다싶어 살려놓았다. 그 날 이후로 출근 전, 퇴근 후 바로 물을 준다. 쓰담쓰담하면 향이 너무 좋다.

 

 

 

 2,창문을 열고

은주가 준 패드에 MBC미니를 켠다. 노래만 흘러 나오는 Channel M를 듣는다.

조카가 준 패드덕에 적적한 분위기는 음악과 함께 창문밖 어둠으로 사라진다.

 

 

 

  3,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한다. 지율이가 알려 준 108배 절운동을 지난 달에 시작했었다.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긴 일어 나는데 운동하기엔 너무 힘들었다. 머리는 방바닥에 박고 엉덩이는 천정을 향한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엎드린 체 아무생각없이 멍때리기 일쑤였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에 운동을 두세번한게 고작이였다. 운동효과는 좋은 것같은데 이른 아침에 하기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오늘부턴 저녁에 하기로 했다. 당분간은 저녁에 108배운동을 해보기로 했다.

 

 

 

  4, 샤워하고 정신까지 맑아지면

책상에 앉아 독서를 한다. 사놓고 못다읽은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위주로 읽는다.

지난 주에 겨우 '폴란드의 풍차'을 읽었다. 근 10년만에 책 한 권을 읽은 느낌이다. 책을 손에 쥐고있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었다. 저녁,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졌다. 이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는 사진속의 책상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데, 다음에 한번 소개하고 싶다.

암튼, 책에 집중하고 싶어 노트북은 회사에 두고 다녔는데 읽는 것만큼 쓰는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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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 2014-08-08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파란운동화 2014-08-11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2년이 지나서
이렇게 또 만나네요.
가깝게 있다면 만나서 밥이라도 한끼 하고 싶네요.

뉘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마워요, ^^

윤선 2015-04-30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참 잘 가네요

이적의 ˝이십년이 지난 뒤˝ 노래 가사처럼
어릴 때는 삶이 아주 길 것 같았는데
눈 깜박 할 사이 10년 20년이 지나네요

파란운동화 2015-05-04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4년, 작년엔 운이 참 좋았었어요
나름대로 준비하던 시험에 합격한 것도 있지만
뜻하지않게 조그마한 보금자리가 생겼답니다. ^^

어젠, 오랜만에 느긋한 마음으로 비오는 풍경을 바라보며 쉴 수가 있었죠
23층이라 나름 비오는 풍경을 즐길만 했답니다.

근데요... 예전같았으면 이맘때 비가 오면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시상이 떠오르고 했었는데, 그런 영적인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었어요. 단지 물그러미 창밖을 바라볼 뿐이였었요. ㅎㅎ
이렇게 늙나봐요.

나이 듦을 멈출순 없겠지만, 일에서 멀어져 좀더 나자신을 추수려야겠었어요.

파란운동화 2015-05-0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탄로가 ... 우탁

한 손에 막대짚고 또 한 손에 가시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하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파란운동화 2015-05-0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술 한잔하고 우연히 님의 방문을 확인하고 이 글들을 적었네요.
오늘 밤은 달이 선명하지 않아요. 그런대로 운치는 있네요.
다음에 내가 이 글들을 보더라도 지우진 않겠어요.

어디에 계시던 행복하세요. ^^
 

기술과 기능의 차이  

기술인 연대의 이승호 중앙위원의 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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武谷三男(다께히로 까즈)

기술(技術)의 본질은 '생산적 실천에 있어서 객관적 법칙성의 의식적 적용'이고, 그것을 물질화하고 대상화한 것이 기술의 모든 형태이다. 이에 비하여 기능(技能)은, '생산적 실천에 있어서 주관적 법칙성의 의식적 적용'이라고 말한다. 이상의 규정에서 밝혀졌듯이 기술과 기능의 차이는 기술이 객관적 법칙성의 적용인 것에 비하여 기능은 주관적 법칙성의 적용이라는 점이다. 여기에서 객관적이라든가 주관적이라는 것은 '기술은 객관적인 것이고 따라서 조직적 사회적인 것으로서 지식의 형태로 개인에서 개인에게로 전승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기능은 주관적 심리적 개인적인 것이어서 숙련에 의하여 획득되는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기술에 대하여 '객관적 법칙성'이라고 하여 '자연 법칙성'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기능도 기술과 똑같이 자연 법칙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능에 대하여는 주관적 법칙성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예를 들면, 금속 가공에서 끌을 사용하여 절단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 가공품의 생산 목적에 따라 끌의 종류 구조 기능과 재료와의 관계, 끌을 잡는 모양과 가공재에 대는 방법, 망치를 잡는 방법, 망치로 끌을 치는 방법 등에 일정한 자연의 법칙이 있다. 다시 말하면 절단 작업이라는 실천은 일종의 자연의 법칙성에 따라 행해지고 자연의 법칙성이 이 실천을 보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칙성에는 객관적 법칙성과 주관적 법칙성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종류 구조 기능의 끌을 선정하고, 그것을 이렇게 쥐고, 가공재에 이러한 각도로 대어, .망치는 이렇게 잡고, 힘을 어떻게 가하여 망치를 이렇게 두드린다고 하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객관적으로 인식시키고 전하여 이해시킬 수 있는 법칙성이 있다. 이것을 '객관적 법칙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작업의 바른 방법은 그 일체가 반드시 남김없이 지식으로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역시, 지식으로서 설명되지 않는 숨겨진 법칙성이 있다. 예를 들면, 끌이나 망치를 쥘 때 손의 촉감, 끌의 머리를 망치로 바르게 칠 때 손의 촉감 등 육체로 느끼지는 숨겨진 법칙성이 있다. 이러한 법칙성은 경험적 반복 훈련으로 쌓아올려서 개인 행위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고 타인에게 객관적 지식으로 전할 수 없다. 그것은 그 개인만의 '주관적 법칙성'이다.

그런데 어떤 기능은 동일 작업에서만이 그 힘을 발휘하는 것이고, 작업의 장면이 전혀 새로운 것으로 되면 그 기능은 역할을 못하게 되는 수가 있다. 새로운 작업 조건에의 적응에는 기술의 힘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기능'은 '기술'로 끝내 파악되지 않은 감추어진 법칙성을 감각적으로 파악하여 생산적 실천 행위를 질서 있게 통일적으로 하여가는 점에서 기술을 보충하고 있다. 기능의 습득이 충분하지 않으면 생산적 실천은 원활히 행해지지 않는다. 이처럼 기술과 기능은 서로 다른 것을 매개로 하여 비로소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처럼 생산적 실천에 있어서는 일정한 기능과 일정한 기술이 존재하여 그 생산적 실천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 위에 이 '기능'과 '기술'은, 항상 주관적 개인적 기능이 객관화되어 '기술'로 바뀌어 가며, 그 새로운 기술에는 또 새로운 '기능'이 필요해지고, 이 기능이 다시 기술로 전환되어 발전해 간다고 하는 변증법적 관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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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 2012-06-10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제 아직 다 못했어요.
다 하게되면 검사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