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교육인가 야만인가2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한 재수생은 수능 점수 몇 점 때문에 ꡒ인생의 낙오자라는 말을 들을까 두렵다ꡓ면서 죽음을 택했고, 매일 14시간씩 학습노동에 시달리던 한 초등학교 5년생은 ꡒ물고기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ꡓ는 말을 남기고 죽음의 길을 택했다. 또 다른 초등학생은 급우들에게 당한 왕따의 고통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고발했다. 어린 아이들이 토해내는 고통과 절망의 소리들, 그러나 이 사회는 이미 면역이 되어서인지, ꡐ내 자식만 아니면 그만ꡑ인 죽음들이기 때문인지 눈 한 번 꿈적거리곤 그만이다. 남의 불행과 고통에 대해 비정하기 짝이 없고 무심하기 짝이 없는 사회, 그런 사회가 되어버린 줄조차 모르는 지독한 불감증에 걸린 사회, 야만은 스스로 그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상적 고통과 절망은 내일도 또 그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복권이나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좀처럼 그 놀음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절대 다수가 결국 잃고 만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음에도 놀음의 중독증에서 쉽사리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극소수의 횡재한 사람들을 선망하면서 그 안에 자신이 포함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사회 학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ꡐ교육열ꡑ도 이와 비슷한 심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경쟁을 통한 계층상승 게임에서 절대 다수는 결국 뒤떨어지거나 패배하고 말지만 혹시나 자기 자식은 극소수의 승리자가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ꡐ명문ꡑ 대학생들의 집안 분석에서 드러났듯이 교육과정은 사회계층을 순환, 이동시키지 않고 단순재생산한다. 소수의 승리자는 이미 정해진 집단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구성원들에겐 교육이라는 이름의 경쟁게임보다 무작위로 추첨되는 복권이나 도박이 더 기회균등적이다.


이 땅의 교육현장은 실상 미래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불안심리를 이용한 장사판이다. 이 점은 사교육 현장에서 두드러지지만 학교도 언론도 정부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두 교육 파행과 왜곡을 낳는 학벌사회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해법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학벌사회를 부추기는 편에 속해 있다. 학교는 학부모들의 막무가내 자식이기주의에 올라타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교실에 가두면서 직간접수당을 챙기고 있고, 언론은 도박심리와 불안심리를 부추기면서 장사를 도모하고, 교육관료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뒷전에서 철밥그릇에 만족하고 있다.


이 노름판, 장사판에서 죽어나는 것은 아이들이다. 도대체 일어나서부터 잠잘 때까지, 아니 잠도 제대로 재우지 않으면서 학습노동을 하루도 빼지 않고 강요하는 것이 억압이 아니고 학대가 아니라면 그 무엇인가. 학대받고 억압당한 아이들은 학대받고 억압당한 그만큼 남을 학대하고 억압한다. 피학은 그 상처의 깊이만큼 가학을 낳는 법이다. 학교에서 왕따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다른 학생에 대한 학대와 억압을 통하여 자신이 당하는 학대와 억압을 보상하려는 것이며, 따라서 다른 학생에게 주는 고통에 대해 무감각하다. 게다가 아이들은 가정을 떠나면서부터 오직 경쟁을 강조하는 사회만 경험한다. 그들에게서 남에 대한 배려나 연대의식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나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학벌사회의 폐해는 부, 명예, 권력을 일부가 독점하는 문제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니다. 학교의 좁은 교실과 과외수업밖에 모르게 된 아이들은 대자연의 정서를 상실했다. 어린 시절의 시냇물을 모르고 함께 별을 헤던 동무가 없고 바람소리, 풀벌레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게 된 아이들에게 ꡐ꿈ꡑ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꿈을 상실한 아이들이 과연 아이들인가. 어린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야만을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꿈을 되돌려주기 위해서 지금 당장 사회전체가 달려들어야 한다.

 

- 홍세화 한겨레 칼럼 2002.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코딱지 떼어먹는 더러운 놈이라더라 - 최내현(딴지일보 편집장)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우리 반에 어떤 여자아이가 있었다. 얼굴 표정이 약간 뚱한 것 빼고는 사실 별다른 특징이 있는 아이도 아니었고, 말수도 적은데다 활발한 성격도 아니어서 평소엔 별다른 존재감조차 느껴지지 않는, 아주 평범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데 이 친구는 요즘 말로 하면 왕따였다. 왕따라는 게 요즘 들어서 생겨난 현상이라거나 혹은 일본에서 수입된 문화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 사실 집단으로 따돌림 당하는 아이는 예전부터 늘 있어 왔다. 우리 반의 그 여자아이에게 씌워진 혐의는 이것이었다. “재는 맨 날 코딱지 파서 그걸 먹더라.” 애들끼리 수군거리는 얘기에 따르면 그 아이는 늘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고 있으며,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코딱지를 먹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코 후비는 게 취미이기 때문에 그 애 책상 밑은 말라붙은 코딱지를 떼어먹는다느니, 심지어는 심심하거나 배고플 때면 책상 밑 말라붙은 코딱지를 떼어먹는다느니 하는 소리까지 나돌았다.

  그 아이가 점심시간에 식사를 거르기라도 하면 ‘코딱지를 너무 많이 먹어서 배불러서 밥도 못 먹는다’고도 했다. 그냥 아이들끼리 수군거리고 말았으면 그나마 괜찮았을 텐데 잔인한 우리 친구들은 그 아이 앞에서 코딱지 어쩌구 하면서 늘 놀려대곤 했다. 가뜩이나 소심하고 내성적인 그 아이는 더 더욱 조용해져갔고,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전히 그 여자아이를 씹고 있는 친구들 앞에서 하루는 물었던 적이 있다. “그거 진짜야? 걔가 코딱지 먹는 거 직접 봤어?” 의견이 갈렸다. 직접 본 애한테 들은 말이라는 녀석, 3학년 때부터 그걸로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것도 몰랐냐는 친구, 코딱지 때문에 옆에만 가면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놈, 그리고 혀를 내밀어서 코딱지 맛보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는 녀석까지. “그럼 책상 밑에 코딱지 붙여놓은 건 봤어?” 그러자 또 와구 와구 떠들어댔다. “야 냄새나고 더럽게 남의 코딱지를 왜 보냐?” “그래 난 가까이 가기도 싫어” “다른 애들은 다 아는 건데 넌 아직 그것도 몰랐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단정 짓느냐고 묻자 심지어 이런 말도 들었다. “야 너 걔 좋아하냐? 그지? 와하하…… 그지? 그지?”

  그때는 나는 별 생각 없는 ‘군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라는 참 잔인했던 것 같다. 집단으로 한 인간을 따돌리고 상처 주는 일을, ‘집단’ 에 들어 있다는 까닭 하나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어쩌면 인간본성이 본시 사악한 것 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사악한 본성의 문제로 돌려버릴 수만은 없다. 그 아이를 미워해서 왕따를 시킨 것은 아니었다. 정말 그 애를 미워해서 고동을 주려는 목적으로 집단으로 따돌림하고 놀려된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미워할 사람이 필요했을 뿐일 지도 모른다. 그 아이가 진짜 코딱지를 파먹는지, 책상 밑에 말린 코딱지를 쌓아 놓고 있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기 때문이었다. 보통 우리들의 가치관이나 의견은 ‘어떤 것이 생각하기에 편한가’에 의해 좌우된다. 그 편한 설명 말고 다른 것을 찾는 사람은 그 세계 안에서는 이해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너 그 여자에 좋아하는 거지?” 하는 또 다른‘편한’설명이 붙어야 비로소 그 행동이 이해 받는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내가 속한 영역과, 나와 남을 구분 짓는 경제를 의식, 무의식으로 확인하고 싶어한다. 진보이건 보수이건 누구나 다 마찮가지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디이고 그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나를 합리적으로 되돌아보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책상 밑에 코딱지가 실제로 붙어 있는지 아닌지, 냄새날 것 같고 꺼림칙해도 한번쯤 직접 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면 아이들 같은 무비판 성이 당연하게 통용된다는 것이다. 아니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그것을 목청 높여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니는 것이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 작은책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나무 2004-08-27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지셨군요 ^^::

해콩 2004-08-27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럴거라고 했잖습니까? ㅋㅋ 꾸준히 오래~ 가야할텐데요... 샘처럼... ^^
 

 오오까의 밀감                    

  옛날 日本의 에도에 오오까라는 판관이 있었다.

이른바 쇼군(將軍)이 할거하던 時代였다. 내란이 빈번했고 민중들의 삶은 어려웠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게 일상사였다. 재판관의 판결은 뇌물을 얼마나 바치는가에 따라 결정되었다. 罪가 없어도 가난한 사람은 감옥에 들어갔고 심지어는 처형되기도 했던 反面에 돈만 있으면 아무리 몰염치하고 뻔뻔스런 罪를 짓고도 풀려났던 그런 時代였다.

  오오까는 판관이 되어 에도에 부임하자, 당시의 관습에 따라 큰 만찬을 베풀었다. 에도의 귀족 명사들과 관리와 그리고 다른 판관들을 합쳐 모두 3백 명을 초대하였다. 食事가 끝난 뒤 그들은 정종을 마시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 중에 판관들은 재판을 심리할 때 그 진실을 알기 위한 제일 빠른 길이 고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판관들은 아무리 거짓말을 잘하고 뻔뻔스러운 자들도 고문만 하면 다 불게 되어 있다는 意見에 입을 모았다. 오오까는 아무 말 없이 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의 表情은 침울했다. 그들이 술 마시기를 거의 끝마쳤을 즈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모든 食事의 마지막에 과일이 빠질 수 없고 또 지금은 밀감이 아주 잘 익는 계절인데 내가 그것을 소홀히 했으니 제빈들은 이 나의 불찰을 용서하시기 바라오. 즉시 조처하겠소."

  그리곤 그의 충복인 나오수까에게 3백 개의 밀감을 급히 가져오라고 지시하였고 나오수까가 급히 달려가 밀감이 든 부대를 오오까에게 갖다 대령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나오수까에게 그 밀감을 헤아려 보라고 指示하였다. 주인의 지시에 따라 밀감의 숫자를 헤아린 나오수까의 表情이 어두워졌다.

  "나으리, 3백 개에서 한 개가 不足하옵니다."

  "너에게 3백 개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더냐! 빈객 중에 한 분이 못 잡숫게 되었단 말이냐!"

  "나으리, 틀림없이 3백 개였사옵니다. 小人이 직접 세면서 집어넣었사옵니다. 정말이옵니………"

  울상이 된 나오수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오까의 엄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러니까, 네놈이 한 개를 먹었구나 그렇지 않느냐?"

  "아니옵니다. 아니에요. 감히 어찌 小人이 그런 일을………"

  "그렇지 않다면 네놈은 지금 밀감한테 날개가 있어 날아갔다는 말을 하려느냐, 아니면 발이 있어서 도망쳤다고 말하려는 게냐, 이 발칙한 놈!"

  "아니옵니다. 감히 小人이 어찌……… 하오나 小人이 손을 대지 않았던 것은 事實이옵니다."

  나오수까는 어찌할 바를 몰라 목을 조아렸으나 主人의 목소리는 더욱 냉랭해졌다.

  "眞實은 밝혀지게 마련인즉……… 게다가 名色이 판관인 내가 바로 家內에서 벌어진 일의 眞實을 밝혀내지 못한다고 해서야 어디 판관 자격이 있겠느냐!"

  오오까는 형리에게 화로와 끓는 물 등 고문할 채비를 차리라고 명령하였다. 형리가 곧 화로와 끓는 물 그리고 인두 등을 준비하여 대령하자 오오까가 형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以實直告하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 저 못된 놈에게 하나하나 說明해주렷다!"

  오오까의 지시를 받은 형리가 말을 붙일 사이도 없이 새파랗게 질린 나오수까는 오오까를 향해 꿇어 엎드려 목을 조아리고 이렇게 울부짖었다.

  "제발, 나으리! 小人이, 小人이 自白하겠나이다. 그러하오니 제발, 제발………"

  "좋다. 그럼 어서 以實直告하여라. 네놈이 어떻게 밀감 한 개를 훔쳤는지 자세히 自白하렷다!"

"小人이 처음에는 그 밀감에 손댈 생각이 秋毫도 없었사옵니다. 하오나 밀감이 하도 잘 익었고 때깔도 좋고 먹음직스럽고 또 향내도 그윽하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사와 한 개를, 딱 한 개를 꺼내 먹었사옵니다. 어떻게 맛이 있었사옵던지 지금까지도 입안에 군침이 돌고 있나이다. 이렇게 自白하오니 제발 나으리! 제발, 나으리!"

自白을 마친 나오수까는 계속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초대객들은 眞實이 곧 밝혀진 것에 입을 모아 탄복했다. 그 중에는 "역시 고문이야말로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첩경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고 떠드는 사람도 있었고 또 충복에 의해 도둑질 당한 오오까를 비웃는 사람도 있었다. 이 말들을 조용히 다 듣고 난 오오까가 다시 나오수까에게 이렇게 다짐하듯이 하였다.

  "그러니까 네놈이 眞情 이 모든 빈객들 앞에서 밀감 한 개를 훔쳐먹었다는 것을 自白한다는 것이렷다!"

"예, 예. 自白하옵니다. 小人이 도둑질을 했사오니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겠사옵니다. 하오나 나으리, 처음 저지른 일이었사오니 나으리의 넓은 아량으로……… 한번만 그저 단 한번만………"

  나오수까는 울면서 대답했고 또 그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오오까는 침울한 표정으로 나오수까를 그리고 빈객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오오까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수까에게 다가가 그 앞에 함께 엎드려 그를 안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디 나를 용서하라. 너에게 참으로 못된 짓을 했구나. 이 모든 빈객들 앞에서 이렇게 謝罪하오니. 그리고 이 불행한 일을 잊을 수 있도록 내 眞情 갑절로 너를 돌볼 것을 약속하겠노라."

  그리고 그는 그의 넓은 소맷자락에서 밀감 한 개를 꺼내 빈객들을 향해 던지고 이렇게 외쳤다.

“밀감을 훔친 자는 바로 나였소. 내 下人은 훔치지도 않았으면서도 훔쳤다고 自白했소. 그것도 그럴듯하게 꾸며서 말이오. 먹지도 않은 밀감의 맛으로 입안에 아직도 군침이 돌고 있다고 한 말을 잊지 마시라! 고문이 있기도 전에 고문의 공포가 그렇게 했던 것이었소! 그리하여 제빈들은 돌이켜보시라. 당신들의 감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억울하게 썩어가고 있는가를! 그리고 제발 이 밀감을 잊지 마시라. 眞實을 밝힌다는 美名 아래 고문을 하겠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 이 밀감을 생각하시라!”

 

-  홍세화『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개똥 세 개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나의 할아버지께선 나에게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대부분 잊었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당신께서 중국의 노신을 읽으시고 좀 바꾸어 말씀하신 것인지 아니며 우리 옛이야기에 실제로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얘기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 옛날에 서당 선생이 삼형제를 가르쳤겠다. 어느 날 서당 선생은 삼형제에게 차례대로 장래 희망을 말해보라고 했겠다. 맏형이 말하기를 나는 커서 정승이 되고 싶다고 하니 선생이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그럼 그렇지 하고 칭찬했겠다. 둘째형이 말하기를 나는 커서 장군이 되고 싶다고 했겠다. 이 말에 서당선생은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짓고 그럼 그렇지 사내대장부는 포부가 터야지 했겠다. 막내에게 물으니 잠깐 생각하더니 저는 장래 희망은 그만두고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했겠다. 표정이 언짢아진 서당선생이 그건 왜? 하고 당연히 물을 수밖에. 막내 말하기를, 나보다도 글읽기를 싫어하는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 또 나보다도 겁쟁이인 둘째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큰소리를 치니 개똥 한 개를 먹이고 싶고……여기까지 말한 막내가 우물쭈물 하니 서당 선생이 일그러진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겠다. 그럼 마지막 한 개는? 하고.


  여기까지 말씀하신 할아버님께선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세화야, 막내가 뭐라고 말했겠니?” 하고.

  나는 어린 나이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거야 서당선생 먹으라고 했겠지요, 뭐.”

  “왜 그러냐?”

  “그거야 맏형과 둘째형의 그 엉터리 같은 말을 듣고 좋아했으니까 그렇지요.”

  “그래. 네 말이 옳다. 얘기는 거기서 끝나지. 그런데 만약 네가 그 막내였다면 그 말을 서당선생에게 할 수 있었겠냐?”

  어렸던 나는 그때 말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할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화야, 네가 앞으로 그 말을 못하게 되면 세 개째의 개똥은 네 차지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나는 커가면서 세 개째의 개똥은 내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자주 인정해야 했다. 내가 실존의 의미를, 그리고 리스먼의 자기지향을 생각할 때도 이 할아버님의 말씀이 항상 함께 있었다.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저사] 홍세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