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글샘 > 교사 평가

교사 평가제를 실시하겠다는 교육부의 입장이 나왔고, 교원 단체들은 반대하고 있다.

핵심은 교사에 대하여 현재는 교장만 근무 평정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학생, 학부모의 평가도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안에 대해서 일반 시민들은 대체로 찬성, 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우리 국민들이 늘 교육 개혁에 대해서는 대체로 찬성, 일 것이기 때문이다. 전에 교원의 정년을 줄인다고 했을 때, 일반 시민들은 대체로 찬성, 했던 전례가 있다. 늙다리 교사 한 명 자르면 신규 세 명 뽑는다는 경제 논리로 무장한 거짓말에 모두들 혹하고 속아 넘어간 것이다.

교사들은 자신이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 몸을 사리는 편이고, 당연히 교원 단체는 교사 평가를 원래의 취지에 맞게 하도록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은 누구나 학교 다닐 때, 안 좋은 추억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나 이십 년 전의 폭압적 학교를 다녔던 시민들이라면 말이다. 학교는 폭력의 대명사였고, 수업은 복종으로 점철하던 시대 말이다.

연세가 많이 드셔서 정신이 해까닥 거리는데도 퇴직을 안 하고 수업을 맡았던 선생님,
본인의 신상에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학교 일인지 노상 출장으로 자습을 지시하는 선생님,
수업 시간 4/5는 잔소리와 헛소리, 잡소리로 일관하고 쉬는시간까지 열변을 토하시는 선생님,
학생의 신체를 가지고 해괴한 장난질을 일삼던 선생님,
교과서에 줄만 죽 그어 주고 나머지 시간엔 자습 시키던 선생님,
똑같은 아이들인데도 수박과 호박을 구별하시는 능력을 가지셨던 편애의 선생님,
학생의 사소한 잘못을 꼬투리잡아 평생 가슴에 못박히는 말씀을 주특기로 가진 선생님,
그리고 추억이라고는 일기 검사와 청소로 가득 남기신 선생님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안 좋은 추억 말이다. 그래서 교사 평가는 당연히 그런 사람들을 퇴출시킬 기회가 될 것이라고 착각할 만도 한 일이다.

사실 교사 평가는 당연히 해야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잘 가르치고 학교에 맞으면 오래오래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못 가르치고 학교와 맞지 않으면 금세 잘려야 한다. 입시 중심의 명문 학교에 <키팅> 선생님은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맞다. 모든 선생님이 키팅 선생님이 된다면 그 학교는 입시 중심의 명문 사립 학교일 수 없다. 지금 우리나라처럼 몇 년이 되면 학교를 옮겨야 하는 입장에서는 애교심이나 지역 사회와 유대를 생각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런데, 교사 평가에 앞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교사를 평가해서 임용하고 해임하는 재량권이 학교에도 있어야 할 것이고, 학교에는 신뢰할 수 있는 교사임용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유럽처럼 공교육이란 것이 자치적으로 발생된 나라들이라면 몇 백년의 역사 속에 그런 풍토가 당연히 녹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교사의 인력풀이 풍부해서 어느 학교든 필요한 교사를 임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나이 들어 경력이 많은 교사들의 노하우를 경제적 관점에서 무시하는 일도 예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교사를 평가하는 목적이,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임이 명백할 때 비로소 교사 평가는 용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나 학교, 수업의 질에 대해 아무런 배려 없는 교사 평가는 학교에 쓸데 없는 잡무만 하나 늘이고 말 것이다. 그리고 교사 평가의 결과 어떤 교사도 퇴출되지 않을 것이다. 취약한 사립 학교의 경우, 사학의 민주화 등에 의식이 투철한 교사를 제거하는 데 악용될 소지도 크고, 대부분의 초, 중학교처럼 <교장 왕국>인  풍토를 심화시킬 소지도 강한 것이 교사 평가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의 수업을 학부모들이, 제자들이 진지하게 평가한다면 나는 긴장되어 수업 준비를 더 착실히 할지도 모르겠다. 매일은 아니고, 평가일에 말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 현실을 곰곰 들여다본다면 교사 평가는 평가일 이외의 내 수업의 질을 제고하는 데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다.

학교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투철한 경영 마인드로 무장한 <학교장>과,
교육 과정을 올바로 전개하기 위하여 충분한 수의 <의욕있는 교사>가 근무하고,
학부모와 교육청에서 학교를 위해 물심 양면의 <지원>을 한다는 가정 하에,
교사 평가는 당연히 실시해야하는 항목이 될 것이다.

대학에서 교수 평가를 실시한 지 오래 되었다. 그래서 출세 지향적인 교수들은 논문 개수나 교수 평가 결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학교에서 얼마나 더 출세 지향적인 교사들과 자괴감에 빠진 모르쇠 교사로 나누는 골을 깊이려는 수작인지, 아무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다.

우리가 이렇게 멍청하게 <수업의 질>을 팽개치고 있는 동안, 세계적인 교육 기업의 한국 진출과 대학 개방이 우리 교육에 비수를 들이대고 <수업의 질>을 높이도록 기능할지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요즘 내 잠자리를 들쑤석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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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njoyschool.com에 올린 질문이다. 그에 대한 답도 함께.. (참.. 답해주신 샘 성함은  박상수 샘...)

다른 문자와는 달리 한자에는 원이 없고 곡선도 잘 나타나지 않는데요,
그 이유가 한자의 생성단계에서  딱딱한 갑골이나 청동 기물에 새겨야했기 때문..
즉, 딱딱한 물질에 새겨서 기록하기에는 원이나 곡선은 적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점차 직선화되어서 결국 직선에 준하는 형태로 고착되었다..
맞나요?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확실하지 않아서요.

아! 그리고 질문 하나 더!!
부수자가 다른 변형된 형태를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心 이 情(왼쪽 부수만)..으로도 쓰이는 이유.

제 생각으로는
한자가 방괴자(方塊字)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만..
즉 정사각형 형태안에 들어가서 안정성을 가지는 글자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날 경우 글자의 안정성이 파괴되니까 부수의 형태를 변형한 것 같은데요..
그리고 사소한 이유를 하나 더 덧붙이자면 글자를 해독함에 불러일으킬 오해를 피해가기 위해서...예를 들어 熱자 밑에 火를 그대로 쓰면 두 글자로 착각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해봤답니다.

흠..
아주 사소한 듯 하나
아주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내용이라 생각합니다.

샘들, 같이 고민해보아요~

<물음에 대한 답>

선생님께서 질문과 답변을 동시에 올리셨군요.
첫번째 질문에 대해 몇가지 덧붙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한자를(당시에는 한자란 명칭으로 불리워지지 않았겠지만 편의상 '한자'라고 부르겠습니다.) 처음 뼈나 거북의 껍질에 새기면서 둥근 모습이 점차 각이지게 편하고 원은 네모로 편한 것이 많습니다. 해를 본뜬 日, 입을 본뜬 口, 얼굴을 본뜬 面 등등의 글자들이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새김의 결과가 한자의 가로쓰기로 고착하게한 원인도 되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종이가 발견되기 전에 그 대용품으로 쓰였던 것이 짐승의 뼈나 거북의 껍질, 竹簡이었는데 이러한 것들은 일정한 결의 흐름이 있어 그 결을 역행하여 글씨를 새기거나 쓴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결의 흐름에 따라 글씨를 새긴 것이 지금의 한자세로쓰기로 정착이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이 없는 종이가 발견된 후에도 한자의 세로쓰기는 계속 되는데 이는 한자의 형태에서 그 원인을 발견할 수 가 있습니다. 종이가 발견될 당시 諧書로 서체가 발전되었는데 이 글자의 특징은 가로획이 대부분 두꺼운 모양을 하고 있어 이 가로획을 마치려면 필획의 끝부분에서 먹물을 묻힌 붓을 종이 위에 약간 힘을 주어 눌렀다가 튀어오르듯이 떼야 하는 반면 세로획은 끝나는 부분이 가는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해서의 형태를 살펴보면 왼쪽 위에서 오른 쪽 아래로 끝나는 필획이 가장 많고, 가로나 세로로 끝나는 획의 숫자는 비슷하기 때문에 동일한 조건에서 한 글자를 쓰고 난 뒤 다음 글자를 쓰는 방향은 아래쪽으로 쓰는 것이 보다 편리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자의 가로쓰기가 지금껏 전해오는 것입니다.

두번째 질문에 관한 답변입니다.
어떠한 글자가 다른 한자와 결합하면서 그 모양이 변하는 것들이 여러게 있습니다. 우선 이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자의 부수 214개가 있는데 그 중 36개의 부수자가 한 가지 이상의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물 망'(한자 지원이 되지 않아)같은 경우엔 무려 4가지의 형태로 그 모습이 변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그 글자의 부수가 다른 글자와 결합하면서 모습이 변한 것은 隸書부터입니다. 물론 예외적인 한자인 目과 老는 小篆에서도 두가지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예서로 넘어오면서 두가지 이상의 글자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두가지 이상의 모양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글자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습니다. 글자의 모양을 원래의 모습대로 다른 글자와 결합을 한다면 그 모양이 정사각형이 아닌 매우 불균형한 모양새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採를 手采로 쓴다면 글자의 모양새가 그리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쓰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양이 변하는 글자는 기본적으로 위아래로 변형시켜 길게 만들거나 옆으로 늘여뜨려 변형시킵니다. 그 예로 淸과 같은 글자의 옆에 붙은 글자는 위아래로 길게 늘여뜨려 붙였습니다. 또 熱과 같은 한자는 옆으로 길게 느려뜨려 붙였구요. 이렇듯 글자의 기본적인 형태에 따라 융통성 변화시켰습니다. 물론 이러한 방법이 축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꼭 그렇게만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 예로 恥에는 옆에 心이 붙었지만 원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焚은 아래에 붙었지만 火가 원래의 글자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너무 장황하게 얘기를 끌고 오느라 자칫 핵심에서 벗아난 것은 아닌가 우려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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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5-04-26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그런데 자알 되지 않네요....ㅎㅎ

해콩 2005-04-2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생각은 빤한데 실제로는 칭찬보다는 꾸짖는 말이 잦아져요. 그런데 여울마당님 저 보라색 무더기는 무엇인가요? 꽃이지요?

여울 2005-04-26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비꽃이에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