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평화를 노래한 상상가
유요비(문화평론가)
|
|
|
|
|
|
존 레논의 <이매진>
|
담백한 피아노 반주에 낮으면서 몽상적인 음색으로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한 존 레논의 노래가 있다. 이 노래는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의 양민학살을 영화한 <킬링필드>의 피날레를 장식하면서 관객들에게 진정한 인류애란 무엇인가를 묻게 한다. 바로 1971년 발표된 (이매진)이다.
상상해보세요 천국이 따로 없는 세상을
당신이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입니다
그러면 지옥도 없을 것이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을 뿐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국경이 없는 세상을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굴 죽이거나 죽을 이유도 없겠지요
종교도 없어지겠지요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소유가 없는 세상을
당신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소유가 없다면 탐욕도 굶주림도 없고
사람은 모두 한 형제가 될텐데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그대는 나를 몽상가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겁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나는 존 레논을 196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인 영국 출신의 록그룹 비틀 즈의 리더로, 나 , ,, 등의 노래를 부른 가수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청계천의 한 헌 책방에서 존 레논이 표지모델로 나온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와 ≪뉴스위크≫지를 발견하면서 나의 무지는 깨어났다. 나는 존 레논에 대한 호기심으로 잡지 두 권을 구입했다. 그런데 존 레논의 음악 이외에는 대부분 검정 사인펜으로 지워져 있었다. 미국잡지도 당시 우리나라 군사독재정권의 검열을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이었다. 나는 미문화원 도서실에 가서 지워지지 않은 부분을 복사해 번역했다. 기사 내용은 존 레논이 사랑과 평화, 여성해방과 인권을 노래한 진보적 대중음악인이자 실천적 사회운동가였다는 추도의 글이었다. 의 주제가 '사랑과 평화'라는 것도 이때 알았다. 의미도 모른 채 그저 흥얼거리며 따라 불렀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이 노래는 언제 들어도 높은 음악적 완성도에 '사랑과 평화'라는 존 레논의 사상이 잘 표현된 불후의 명곡이다.
존 레논은 한참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던 1966년 비틀즈멤버들과 함께 "우리는 전쟁을 혐오한다. 결코 동조할 수 없다"는 기자회견으로 첫 사회적 발언을 시작한다. 비틀즈 해체의 기미가 보이던 196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평화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하여 1980년 12월 8일 한 열성 팬의 흉탄에 쓰러지기까지 존 레논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노래하고 실천한다.
1969년 영국이 비아프라와 나이지리아 내전에 참전하자 영국여왕에게 받았던 국가최고훈장(MBE)을 반납하는 한편, 부인 오노 요코와 "Bed in"이라는 행위예술과 "War is Over"라는 캠페인을 벌인다. 이 때 만든 (평화에게 기회를)는 1969년 12월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의 베트남전쟁 반대시위에서 25만 명의 군중들이 합창함으로써, 세계적인 '운동가요'로 떠올랐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까지 애창된 노래다.
1972년에는 북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영국군이 주민을 학살한 이른바 '피의 일요일사건'이 발생하자 라는 노래를 만들어 노래와 공연의 수익금을 아일랜드공화군(IRA)에 기부하기도 하고, 43명의 재소자가 사망한 아티카교도소사건을 다룬 노래 , 흑인여성운동가 안젤라에 대한 미국 정부의 탄압을 비판한 노래 등을 만들어 인권탄압에 항의한다. 안젤라를 탄압한 인물은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레이건은 지금 치매에 걸려 자신의 죄를 기억 못하겠지만…
존 레논의 곁에는 전위예술가이며 열렬한 여성해방론자인 아내 오노 요코가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오노 요코는 레논 보다 6세나 연상이었다.(존 레논은 1940. 10. 9, 오노는 1934. 2. 18생으로 1969. 3. 20 결혼). 레논 부부는 폴 맥카트니와 린다 맥카트니 부부의 밴드 윙스처럼 1969년부터 '플래스틱 오노 밴드'를 결성하고 활동하였다.
오노 요코의 영향으로 존 레논은 대중가요로는 최초로 여성해방운동을 다룬 <여성은 이 세상의 검둥이>를 만들었다. 오노 요코가 각종 집회와 시위에서 즐겨 부른 <자매들이여, 자 매들이여>(Sisters, Oh Sisters!)와 <여인>(Woman) 등은 대표적 페미니즘 노래이다. 이 중 <여성은 이 세상의 검둥이>는 가부장제와 성차별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는데, 노랫말 중 Nigger(흑인을 비하하는 말)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방송금지곡이 되었다. 차별을 풍자한 노래를 차별용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방송이 금지되는 역차별을 당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존 레논은 노래로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였다. 1975년 오노와의 재결합 이후 레논은 남녀의 역할을 바꿔 은퇴선언을 하고 아예 집에 들어앉아 전업주부로서 아들 숀의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존 레논의 음악과 활동 때문에 존 레논은 죽을 때까지 미국 정부의 감시, 도청, 협 박 등 집요한 탄압을 받는다. 1972년 비자 연장 신청이 기각 당하는 과정에서 극우보수정치인인 공화당 스트롬 더몬드 의원이 법무장관에게 보내는 비밀 문서가 ≪롤링스톤≫지에 폭로되었는데, 그 내용은 "평화운동단체와 존 레논이 계획한 대규모 록공연은 존 레논의 대중적 인기를 이용하여 공화당 전당대회를 방해하기 위한 것이며, 닉슨의 재선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비자가 만기되면 존 레논을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존 레논의 죽음을 정치적 암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검찰과 살해범 채프먼이 주장하는 "유명해지기 위해 존 레논을 사살했다"는 석연치 않은 범행동기에 대해 ≪데일리 메일≫지의 기자 펜튼 브레슬러는 8년 동안 존 레논의 죽음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CIA와 FBI의 공모로 채프먼을 마인드컨트롤로 훈련시켜 존 레논을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존 레논은 지난 세기 인류의 평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대중음악가 중의 한 사람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