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재앙'이 드러낸 위기의 뿌리
[손석춘 칼럼] 인문정신 외면이 빚은 대학의 타락
    손석춘(ssch) 기자   
추락한 한국의 자부심... 지난 5월 20일 서울대 황우석 석좌교수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취재진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약 7개월 후인 현재, 황 교수의 논문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 연합뉴스 황광모
재앙이다. '영웅' 황우석이 추락해서가 아니다. 절망에 잠긴 사람들에게 실낱 희망이 물거품이 되어서다.

황우석. 그는 정치인이나 경제인들 대다수가 썩을 대로 썩은 대한민국에서 희망이었다. 그의 진실이 밝혀지고 스스로 교수직을 사퇴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라. 차라리 애처롭다.

자신이 지지한 사람의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끝까지 그를 두남두는 풍경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황 교수가 준 허탈감은 정치인들이 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크고 깊다. 정치인들에겐 한 수 접어주는 게 우리 모두의 '미덕'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교수는, 학문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신화처럼 버티고 있었다.

교수와 학문에 대한 믿음마저 산산조각

'황우석 재앙'은 그 믿음을 단숨에 깨버렸다. 대한민국의 과학계가 망신을 당했다는 개탄이 곰비임비 이어진다. 옳은 말이다. 다만 문제를 조금 더 깊게 볼 필요가 있다.

황 교수의 논문조작은 오직 경쟁을 중시해온 '대한민국 토양'이 빚어낸 재앙이다. 초·중·고 교실에서 익힌 살벌한 경쟁심은 한국인의 가슴 깊숙이 내면화해 있다. 경쟁의식은 시기와 질투로 이어진다. 학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어떤 조직이든 과도한 경쟁증후군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천박한 경쟁문화를 그나마 정화해왔던 대학마저 무장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있다. 어느새 우리 대학에서 인문정신을 온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하다 못해 미국 대학만 보더라도 우리와 다르다. 가령 전통적으로 이공계가 강한 미국 스탠포드 대학을 보자.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문학과 역사, 철학사상을 깊이있게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힌다.

황 교수와 같은 대학의 한 사회과학 교수는 충고했다. "한국의 교육당국자와 총장들은 제발 하버드대에 가서 총장과 사진만 찍지 말고 그 대학 서점을 가보라." 대학서점에 역사상의 모든 고전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단다. 그는 한국의 대학서점과 비교하며 탄식했다. "한국 대학생들은 어느 학자가 무엇을 이뤘는지는 줄줄 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 학자의 고전을 읽은 학생은 드물다."

문학과 역사, 철학은 기실 대학의 뿌리다. 문제는 그 뿌리가 대학에서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데 있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우려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다. 대학생들은 직면한 학점경쟁에 매몰되어 있다.

▲ 황우석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조작과 관련해 23일 오후 대국민사과와 함께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트' 참가나 논문 발표를 위해 특정 주제를 계량화하는 연구방법만이 선호된다. 역사와 철학에 근거해 논리를 전개하는 논문 구성은 외면 받거나 폄하받기 일쑤다. 더구나 최근에는 대학마다 영어로 강의하는 열풍이 불고 있다. 심지어 신문방송학과에서 '기사쓰기'조차 영어강의를 선호하는 대학이 있다. 황 교수와 관련된 보도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듯이 오늘 한국언론의 일그러진 현실은 저널리즘 비평를 홀대하는 언론학계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대학이 경쟁과 산업에 오염된다면

대학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엄정성이 사라져갈 때, 오직 경쟁과 산업의 논리가 모든 것의 척도가 될 때, 대학에서 창조력과 상상력은 시나브로 고갈될 수밖에 없다. 역사나 윤리는 '돈'이 안되는 케케묵은 영역으로 손가락질 받을 뿐이다.

딴은 노무현 대통령마저 앞장서서 "대학은 산업"이라고 주장하는 세상 아닌가. 경제정책만 다뤘던 인물이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현실은 상징적이다. 제1야당은 한술 더 떠 사학재단의 이익만 대변하느라 국회까지 팽개치고 있다. 언론은 여전히 '경쟁 만능'을 주술처럼 외운다.

그렇다. '황우석 재앙'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할 때 재앙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위기의 대한민국, 뿌리부터 다시 세워야 할 때다. 언론은 언론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새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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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살인'의 풍경과 박근혜의 시선
[김욱 칼럼] 사법부의 인혁당 재심 결정에 부쳐
    김욱(wkimline) 기자   
▲ 법원에 의해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이 받아들여진 27일 오후 희생자들의 유가족과 지인들이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을 방문해서 헌화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75년 2월 21일 박정희는 문화공보부 순시 자리에서 "인혁당은 김일성의 지령을 받은 남파간첩이 조직한 것인데, 법무부, 문공부는 뭘하고 있느냐"며 크게 질책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 며칠 전인 2월 15일에는 이른바 민청학련사건 관련자 중 인혁당재건위 관련자 21명과 학원관계자 4명을 제외한 148명에 대해 형집행정지라는 관용(?)을 베풀어 놓고 다시 누구를 향한 공개경고였을까?

이 살벌한 공개경고가 효과가 있었는지 같은 해 4월 8일 대법원은 이른바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상고를 기각해 8명의 사형과 8명의 무기징역, 그 외 피고들에게 15~20년 징역형 등을 확정했다. 당시 대법관들(단 1명을 제외하곤)에겐 Amnesty International이 기록한 다음과 같은 군법회의의 '살인의 풍경' 따윈 문제도 되지 않았다. 지면관계상 두 가지만 옮겨 적는다. (박원순, <국가보안법연구 2>, 1992에서 재인용.)

살인의 풍경 1 한 피고인이 법정에서 자신이 고문을 당했으며, 자술서는 고문에 의한 것이라고 진술하자 검사는 "당신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충분히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대답하였다.

살인의 풍경 2 한 피고인은 자신의 자술내용을 암기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런데 법정에서 막상 진술해야 할 기회가 왔을 때 외었던 것을 잊고 말았다. 그러자 검사가 재빨리 자기가 갖고 있는 자술서의 사본을 읽어주었다. 이에 피고인은 그 문장을 계속 암송하기 시작했다. 이 피고인은 외관상으로도 건강상태가 좋지 않음을 드러내었다. 그는 서 있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며 절뚝거리고 있었다.

사형이 확정된 8명은 잘 알려진 대로 18시간 후에 전원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런데 최근의 민청학련ㆍ인혁당 진상규명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장에게 발송된 '다음과 같이 대법원에서 사형선고가 있었으므로 통지한다'는 형선고통지서가 1975년 4월8일 오전 11시에 내려진 대법원 선고보다 8시간 전인 이날 오전 3시에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에 접수됐다는 소인이 찍혔다는 것이다. 가히 복마전 같은 상황 속에서 그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그들 8인은 죽어가면서 무슨 말을 남겼을까? 8인 공히 "종교의식을 거부한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이를 믿어야 할까? 특별히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 도예종은 "조국이 하루 속히 적화통일 되기를 바란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도예종의 사형집행 장면을 목격한 김모씨는 "도씨는 '통일을 못보고 죽는 것이 억울하다'는 한 마디만 했으며 적화통일이라는 표현은 사용한 일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의문사위 조사기록에 나타나 있다고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는 밝혔다.

'통일 못보고 죽는게 억울하다'가 '적화통일 바란다'로...

▲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오충일 위원장이 7일 오후 국정원 국가정보관에서 인혁당 민청학련 사건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진실위는 또 사형집행명령부를 작성한 이모씨는 의문사위 조사 때 "공산주의자가 통일이라고 하면 적화통일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기재했다"고 진술했다가 이번 국정원 조사 때는 "유언을 내 임의대로 쓴 사실이 없다"며 말을 바꿨다고 소개했다. '적화통일'이라고 '생각!'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들에겐 마지막 유언을 남길 진실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30여년이 흘렀다. 진실위는 12월 7일 발표에서 1964년의 "인혁당은 국가변란을 기도한 반국가단체로 실재했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서클 형태 모임"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어 1974년의 "민청학련은 반유신투쟁을 위한 학생들의 연락망 수준의 조직이 유인물에 표기한 조직명칭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또 민청학련을 배후조종했다고 수사당국이 밝힌 '인혁당 재건위'는 "단체의 실재를 입증할 물증이나 재판에 회부된 사람들이 인혁당을 재건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증거는 자백 이외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제 이 수치스런 과거사에 대해 12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이 뒤늦게나마 재심을 하기로 결정했으니 재심을 통해 모든 진실이 다시 가려지고 잘못됐다면 합당한 보상(혹은 배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사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제 모두가 알고 있는 이 비극적인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재심이 잘 이루어지기를 소박하게 바라는 것으로 여기서 얘기가 끝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다. 그녀는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에서 발표하는 내용들은 한마디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모함이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혁당 문제도 증거는 없지만 정황이 이렇다는 식"이고, 따라서 그녀가 볼 때 "국정원 진실위의 주장은 정당성이 없"으며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우리 역사를 왜곡해 함부로 발표하는 것 자체가 과거사가 될 것"이라고 협박(?)한다.<인터넷 국민일보 2005. 12. 8.>

진실위의 발표가 "증거는 없지만 정황이 이렇다는 식"이라는 박근혜 대표의 지적은 맞다. 사실 진실위는 박정희가 '사법살인'에 개입해 명령했다는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진실위의 한홍구 교수는 "유태인 수백만이 학살됐지만 히틀러 명령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어쨌든 박근혜 대표의 주장대로 정황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모함"이라는 주장은 잘못 됐다.

생각해보자. 모든 형사사건에서 범죄행위를 입증해야 하는 부담은 전적으로 국가가 진다. 피의자가 자신이 사기꾼이거나 강도범이거나 간첩이 아니라는 입증을 해야 할 의무는 없다. 진실위의 조사에 의하면 박정희의 '사법살인' 개입을 확인해줄 물증이 없듯이 그들 8인 역시 사형을 당할 만한 죄를 범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있다면 고문에 의한 것이라는 게 발표내용이다. 바로 그래서 재심이 필요한 것이다.

자, 이렇게 국가가 피의자의 죄를 정당하게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처참하게 죽음으로 몰고 갔다면 그 자체가 국가의 범죄고 박정희가 그 책임자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그것이 "모함"일 수는 없지 않은가? 8인의 사형수는 국가가 그들의 범죄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아무 죄가 없는 것이지만 박정희는 거꾸로 자신이 이 천인공노할 공권력의 범죄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증을 못하는 한 당연히 (고의가 아닌 과실이었다 해도)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그는 죽어간 사형수에 대해선 왜 말이 없나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국정원 진실위의 인혁당 조사결과에 대해 "모함"이라며 반발했지만 정작 억울하게 숨져간 8명의 사형수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사진은 22일 오전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굳은 표정으로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는 박근혜 대표.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런데 박근혜 대표는 이 비극적 과거사를 힘겹게 정리해가는 작업이 그저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우리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이는 모양이다. 그녀는 박정희의 직접 개입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말이 많은데, 증거도 없이 죽어간 8인의 사형수와 또한 증거도 없이 고초를 겪은 역사 속 희생자들의 억울함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할 말이 없을까?

사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 본인은 과거 역사 속 인혁당 사건에 대해 직접적인 책임은 없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가치가 없는 것"이며, "모함"이며,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라는 등의 말을 내뱉는 순간 이제 그녀도 자신의 부친과 함께 정치적 책임자의 지위에 서게 된다. 그녀는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부친을 역사 속에서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할수록 자신의 부친과 함께 역사의 구렁텅이에 스스로 빠지는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박근혜 대표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정치는 정치일 뿐이다. 그들의 사형을 결정한 것은 결국 사법부다. 그래서 '사법살인'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뭔가 잘못됐다면 그 책임은 궁극적으로 사법부가 져야 할 것 아닌가?"

그녀가 만약 실제로 책임을 사법부에 돌린다면 그것도 일말의 이유는 있다. 아무리 정치적 상황을 핑계 삼는다 해도 사법부가 모든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면죄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민복기씨는 재직시 '질서확립에 공헌'했다는 이유로 197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아마도 1964년 8월 중앙정보부가 제1차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자 '양심상 기소할 수 없다'고 반발한 서울지검 검사들을 힘으로 누른 일과 1975년의 '사법살인'의 역할을 평가받았을 것이다.

참고로 일제 때 경성지법 판사를 역임하여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 예정된 민복기씨의 부친인 민병석 또한 친일로 유명한 인물이다. 민병석은 "대한제국 황실의 척족으로서 을사조약과 한일병합에 앞장"(정운현,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개마고원, 1999) 선 사실이 있다. 어떻게 된 게 우리나라는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꼭 이렇게 '거시기 한 일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지 모르겠다.

앞으로 영원히 후학 법학도들의 공부자료가 될 부끄러운 판례를 남긴 당시 대법원 재판부의 면면을 확인해보자. 민복기ㆍ홍순엽ㆍ이영섭ㆍ주재황ㆍ김영세ㆍ민문기ㆍ양병호ㆍ이병호ㆍ한환진ㆍ임항준ㆍ안병수ㆍ김윤행ㆍ이일규 등 13명이다. 이중 이일규 전 대법원장 만이 유일하게 2심 군법회의 재판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소수의견을 냈다. 그나마 만장일치 '사법살인'은 아니어서 조금 위안은 된다.

이제 다시 재심을 담당할 법관들에게 부탁한다. 역사적 재심이 죽은 영혼들과 생존자, 그리고 가족과 이웃들의 피눈물을 모두 보상해줄 수는 없을지라도 최소한 억울한 한은 없애주도록,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사법부의 불명예를 말끔히 씻고, 또한 후학 법학도들이 두고두고 가슴에 기억하게 될 훌륭한 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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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디어 방학 시작..

그동안 있었던 암울한 일들 다 잊어뿌리고

방학 동안 재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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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5-12-28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내삼 ^^

글샘 2005-12-28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내일 방학인데요...
충전 만땅 하고 나타나시길...

심상이최고야 2005-12-2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방학~~ 므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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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씨.가관도 길어지면 민폐라 한마디 하오.

근혜씨네 패밀리가 생산해 낸 불가사의가 한둘이 아니오만 그 중 대표적인 게,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을 그 당시에는 너무나 진지하게 엄수했다는 건데,그건 아마도 나쁜 일도 집단적으로 오래 하다보면 직업이 되기도 하는 그런 이치일거요.

거짓말이나 사기치는 일 같은 걸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거울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거요.

근혜씨 아버지 시절.우리는 이 땅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아침마다 큰소리로 태어나야 했던 일이나,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를 눈 부릅뜨고 색출하러 다녔던 일이나,토요일마다 모의간첩이 되어 배회하던 선생을 생포해서 경찰서에 갖다 바쳤던 일이나,그 일로 표창장을 받았던 일이나..로보트나 컴퓨터 게임이 없던 시절에도 우린 참 기발하게 놀았소.

그 중에서도 위문편지라는 게 있었는데, 걸핏하면 위로를 해야 할 만큼 그 무수한 국군장병 아저씨들을 내가 군대로 보낸 것도 아닌데,그럼에도 어린 내가 추운 날이거나 더운 날이거나 낮이거나 밤이거나 불철주야 나라를 지켜주시는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오늘도 또한 내일도 사시사철 불구하고 용맹하게 북한괴뢰도당으로 부터 나라를 잘 지켜 주십사는 고무와 오늘밤도 우리 국민들은 아저씨들 덕분에 발 뻗고 잔다는 사생활의 보고를 수시로 해야 했는데,숱하게 썼던 위문편지 중에,근혜씨 엄마 돌아가시고 슬픔에 빠진 영식,영애분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숙제로 내 준 위문편지를 쓴 건 압권일 듯 하오.

그 이후 두 번째 편지요.

평생을 일만 했던 우리 엄마가 입원도 못하고 돌아가셨을 때는 근혜씨로부터 어떤 위로도 받은 적이 없긴 하오만.

 

박근혜씨.진지하게 묻겠소.

50년도 진즉에 넘어 선 나이를 살면서 선거 때 말고,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러 본 적이 있으시오?

내가 아는 전교조 선생들은 걸핏하면 우는 못나빠진 사람들이오.

단지 불편한 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가난 탓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술만 먹으면 매질을 하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가출을 일삼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주며 배고프면 전화하거라 무력한 당부를 해놓고는 돌아서서는 찔찔 짜는 사람들이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세상으로 부터 받았던 상처 탓에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가 씻기고 재워놓고는 그 아이의 성마른 이마 위에 눈물을 떨구는 그런 사람들이오.

스승의 날.그 아이가 제 손으로 꼬깃 꼬깃 접어 책상 위에 놓고 간 종이학 천 마리를 품고는 기어이 닭똥같은 눈물을 쏟는 대책없이 여려빠진 사람들이오.

공장에 실습을 나갔다가 손가락이 잘려 돌아 온 아이를 보며 자신의 멀쩡한 손가락이 죄스러워 혼자 술을 마시며 훌쩍거리는 때때로 쓸쓸하기도 한 사람들이오.

이 넓은 세상에 아이에게 남았던 한 점 혈육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빈소에서 문상객 노릇에 상주 노릇에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할머니의 유골을 흩뿌리는 법까지 가르쳐야 하는 그런 전천후의 선생들이오.

 

박근혜씨.다시 진지하게 묻겠소.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바리를 지키거나 더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 단 하루라도 바쳐본 적이 있으시오?

여태껏 살면서,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제 발로는 서울구경 한 번 못해 볼 장애아이들을 데리고 제 돈들여 홍성에서 서울 나들이를 하는 선생들이 있는 조직이 전교조요.

제빵사가 되는 게 꿈이라는 아이를 위해 일요일 제 시간 흔쾌히 바쳐 제빵 박람회가 열리는 서울까지 물어 물어 기꺼이 발품을 파는 선생들이 만들어가는 조직이 전교조요.

자기 집처럼 편안해야 아이들이 마음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싶어 제 집에 있는 커텐 뜯고 액자 떼어다 상담실을 꾸미고,난로 하나를 상담실에 놓기 위해 교장실 행정실을 겨울이 다 가도록 드나들며 수십장의 똑같은 공문을 보내다가 결국은 제 돈으로 난로를 들여놓는 선생들이 조합원인 조직이 전교조요.

왜 그런 걸 자기 돈으로 하냐고 묻고 싶소?

근혜씨가 장내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날 세워 투쟁하게 될 예산삭감 대상의 대부분은 그런 힘없는 예산들이기 때문이오.

그래서 근혜씨는 밖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참 근심이오.

 

어떻게 하면 산만한 아이가 학교에 재미를 붙일까 제 돈,제 시간들여 마술을 배우기도 하고,컴퓨터 게임이 놀이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들에게 우리 놀이와 우리 노래를 가르치기 위해 이런 저런 단체들을 찾아다니고,퇴근 후에는 이런 저런 교과 모임을 일주일에도 두어 차례,쉴 틈 없는 각종 연수에 방학이 짧은 게 전교조 선생들이오.

그래서 전교조는 안 무너져요.

그렇게 사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선생들을 근혜씨 작은 아버지가 1500명이 넘게 학교에서 쫒아냈어도 전교조는 안 무너졌잖소?

그렇게 사는 게 선생의 삶인 줄 아는 선생들의 머리채를 잡아 패대기를 쳐가며 닭장차 차떼기로 실어 나르고 징역을 살게 했어도 전교조는 안 무너졌잖소?

근혜씨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영남대를 비롯하여 비리의 종합셋트 같은 사학에서 눈 밝은 선생들을 그렇게 짤라 냈는데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에게 빨갱이에 좌경에 용공에 칠갑을해서 17년 째 "계란이 왔어요.계란이 왔습니다~" 만큼이나 똑같이 외쳐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이 아이들에겐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꼽히고,그런 조직에 조합원이 줄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소?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하기야 근혜씨가 참교육을 어찌 알겠소?

빌어먹게 길기도 하던 국민교육헌장을 아침마다 외어서 한 자가 틀릴 때마다 한대 씩 맞아야 했던 기억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육성회비 가져오기 전에는 학교에 오지말라는 선생의 명령에 등 떠밀려 학교를 나서면서 운동장이 얼마나 아득하게 넓은지 눈물로 흔들리던 운동장 구석에 막막히 서 본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엄마를 찾아 큰 고무신에 작은 발이 자꾸 미끄러지던 논둑길을 걸어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논둑길을 비칠거리며 저렇게 한참을 걸어오는지 알면서도 모포기만 헤집던 엄마의 보푸레기처럼 살껍질이 일어난 새까만 목덜미에 흙을 집어 던지며 울어본 날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소풍 날.너 때문에 소풍도 못가는 거..우리 같이 죽을래? 눈만 꿈뻑거리던 애꿎은 소를 쥐어박아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외양간이 텅 비어 있던 날.소가 매어있던 기둥을 쓸고 또 쓸며 미안하다.진짜루 미안하다.소야..울며 불며 소한테 편지를 써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여름내내 복숭아 밭에서 봉다리 씌우고 절 앞에서 아이스케키 팔아 모은 돈으로 겨울에 엄마 털신을 사들고 신작로를 한 달음에 내달려보지 않은 자가 참교육이 뭔지 어찌 짐작이나 하겠소?

 

근혜씨랑 내가 유일하게 공통점이 있다면 우린 둘 다 참스승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거요.

학교마저 병영을 삼았던 근혜씨 아버지 덕에 공주님 앞에선 선생들마저 설설 기었을테고,내가 만난 선생들은 다 근혜씨 아버지 같은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그 때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권력 앞에 굴종하지 않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존경하오.

근혜씨 아버지 시절과는 반대의 삶을 사시는,강한 자 앞에서는 더욱 강하고 약한 자와는 함께 할 줄 알며 나눌 줄 아시는 그 분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오.

...129일을 크레인 위에 매달려 있던 노동자가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는 세상에서도..농민이 전경의 방패에 맞아 죽는 세상에서도..그래도 내가 희망을 말하게 되는 건,아이들에게 길가에 핀 민들레를 허리굽혀 내려다보는 법을 가르치는 그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오.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을 하신다 했소?

우리 아이들..부디 진심으로 지켜주시오.

생존권 때문에 목을 매거나..제 몸에 불을 붙이거나..농약을 마시거나..투신을 하거나..맞아 죽거나..그런 기가 막힌 이유들로 어린 아이들이 더 이상은 상주가 되는 일이 없게끔..그 올망 졸망한 상주들과 맞절을 해야 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게끔..

부모가 일하러 나간 빈 집에서 불타 죽는 아이들이 없게끔..

혼자 살던 빈 집에서 굶주린 개에게 물려 죽는 아이가 더 이상은 없게끔..

그 아홉 살 아이의 친구가 영인아.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편지를 쓰는 일이 없게끔..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엄마 대신 맡아 키우던 보모의 남편에게 맞아 죽는 아이가 더 이상은 없게끔..

대물림 되는 가난 때문에 실습나간 공장에서 죽어나가는 아이가 없게끔..

알바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의 먹잇감으로 성적노리개로 너무나 일찍 체념을 배우는 아이들이 없게끔..

 

그리하여 지금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자리가 아니오.

아무도 없는 비닐 하우스에 개와 함께 어린 제자에게 수시로 라면을 사들고 찾아가야 했던 건 그 가난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었소.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 아이의 집에 갔다가 개에게 물어 뜯겨 죽은 아이를 보고 충격과 자책감에 입원을 해야 했던 건 그 착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었소.

혼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밤에 일해야 했던 엄마 대신 세 살짜리 하나를 맡아 키워야 했던 건 자기 새끼들 키우기도 버거워 피폐해졌던 그 포악한 보모의 가족이 아니라 바로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는 당신들의 한나라당 이었소.

근혜씨가 지닌 힘과 돈과 권력을 제대로만 쓴다면 그토록 목청 높여 외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은 저절로 지켜질거요.

 

내심으로야 이왕 나간 김에 물대포도 맞아보고 방패에도 찍혀보면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늘그막에나마 철이 좀 들려나 싶기도 하지만 무현씨가 연정을 품은 이에게 그럴리는 만무할테니 이제 그만 집에 가시오.

한겨울에도 치마입고 빨각다리로 궁궐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공주님한테야 장외에서의 장장 한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오?

대권이 걸린 일이라 사나흘만에 접기 뻘쭘하면 그건 어떻겠소?

눈만 내놓은 채 천원짜리 장갑하나를 팔기 위해 혹은 배추 한 포기를 팔기 위해 또는 신발 한 켤레를 팔기 위해 간절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어 보는 건..

근혜씨도 이 나라에서 60번 가까운 겨울을 지내면서 적어도 살을 에이는 추위가 어떤지는 겪어봐야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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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5-12-2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풍자의 백미군요. 퍼갈게요.

해콩 2005-12-2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의 교사가 아닌 나는 그저 코끝만 찡~해오네요. 성적확인 늦게 왔다고 오늘도 아이에게 고함지르고 노려보고... 치사한 변명이지만... 학년말이면 접속이 많아 아예 열리지도 않는 네이스에 대한 '분노'를 아이에게 폭발시킨 것이지요. 수정입력이 빨리되고 그 결과 처리 또한 빨랐다면 아이에게 간단한 주의만 주고 말았을텐데..아이보다 일처리가 우선이 되는 세상, 사람보다 일의 효율성이 중시 되는 세상... 비판하면서도 이미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나'를 느낍니다. 세상에 조금 덜 적응해도 될 일을... 곤혹스러워 하는 아이의 눈빛에 먼저 시선을 주었더라도 그리 야단하지는 않았을 것을.. 스스로가 한심합니다. 김진숙씨 글을 보면.. 늘 부끄러워집니다. 오늘은 특히..

느티나무 2005-12-2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왜 김진숙씨는 전교조에 그리도 애정이 많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