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재앙'이 드러낸 위기의 뿌리
[손석춘 칼럼] 인문정신 외면이 빚은 대학의 타락
    손석춘(ssch) 기자   
추락한 한국의 자부심... 지난 5월 20일 서울대 황우석 석좌교수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취재진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하지만 약 7개월 후인 현재, 황 교수의 논문은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 연합뉴스 황광모
재앙이다. '영웅' 황우석이 추락해서가 아니다. 절망에 잠긴 사람들에게 실낱 희망이 물거품이 되어서다.

황우석. 그는 정치인이나 경제인들 대다수가 썩을 대로 썩은 대한민국에서 희망이었다. 그의 진실이 밝혀지고 스스로 교수직을 사퇴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라. 차라리 애처롭다.

자신이 지지한 사람의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끝까지 그를 두남두는 풍경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황 교수가 준 허탈감은 정치인들이 준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크고 깊다. 정치인들에겐 한 수 접어주는 게 우리 모두의 '미덕'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교수는, 학문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신화처럼 버티고 있었다.

교수와 학문에 대한 믿음마저 산산조각

'황우석 재앙'은 그 믿음을 단숨에 깨버렸다. 대한민국의 과학계가 망신을 당했다는 개탄이 곰비임비 이어진다. 옳은 말이다. 다만 문제를 조금 더 깊게 볼 필요가 있다.

황 교수의 논문조작은 오직 경쟁을 중시해온 '대한민국 토양'이 빚어낸 재앙이다. 초·중·고 교실에서 익힌 살벌한 경쟁심은 한국인의 가슴 깊숙이 내면화해 있다. 경쟁의식은 시기와 질투로 이어진다. 학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어떤 조직이든 과도한 경쟁증후군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천박한 경쟁문화를 그나마 정화해왔던 대학마저 무장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있다. 어느새 우리 대학에서 인문정신을 온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하다 못해 미국 대학만 보더라도 우리와 다르다. 가령 전통적으로 이공계가 강한 미국 스탠포드 대학을 보자. 이공계 대학생들에게 문학과 역사, 철학사상을 깊이있게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힌다.

황 교수와 같은 대학의 한 사회과학 교수는 충고했다. "한국의 교육당국자와 총장들은 제발 하버드대에 가서 총장과 사진만 찍지 말고 그 대학 서점을 가보라." 대학서점에 역사상의 모든 고전들이 즐비하게 놓여있단다. 그는 한국의 대학서점과 비교하며 탄식했다. "한국 대학생들은 어느 학자가 무엇을 이뤘는지는 줄줄 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 학자의 고전을 읽은 학생은 드물다."

문학과 역사, 철학은 기실 대학의 뿌리다. 문제는 그 뿌리가 대학에서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데 있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우려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나왔다. 대학생들은 직면한 학점경쟁에 매몰되어 있다.

▲ 황우석 교수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조작과 관련해 23일 오후 대국민사과와 함께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프로젝트' 참가나 논문 발표를 위해 특정 주제를 계량화하는 연구방법만이 선호된다. 역사와 철학에 근거해 논리를 전개하는 논문 구성은 외면 받거나 폄하받기 일쑤다. 더구나 최근에는 대학마다 영어로 강의하는 열풍이 불고 있다. 심지어 신문방송학과에서 '기사쓰기'조차 영어강의를 선호하는 대학이 있다. 황 교수와 관련된 보도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듯이 오늘 한국언론의 일그러진 현실은 저널리즘 비평를 홀대하는 언론학계의 현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대학이 경쟁과 산업에 오염된다면

대학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엄정성이 사라져갈 때, 오직 경쟁과 산업의 논리가 모든 것의 척도가 될 때, 대학에서 창조력과 상상력은 시나브로 고갈될 수밖에 없다. 역사나 윤리는 '돈'이 안되는 케케묵은 영역으로 손가락질 받을 뿐이다.

딴은 노무현 대통령마저 앞장서서 "대학은 산업"이라고 주장하는 세상 아닌가. 경제정책만 다뤘던 인물이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현실은 상징적이다. 제1야당은 한술 더 떠 사학재단의 이익만 대변하느라 국회까지 팽개치고 있다. 언론은 여전히 '경쟁 만능'을 주술처럼 외운다.

그렇다. '황우석 재앙'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할 때 재앙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위기의 대한민국, 뿌리부터 다시 세워야 할 때다. 언론은 언론대로, 대학은 대학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새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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