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까

동영상에서는 불필요한 잡음이 많아서

음악이 잘 안들렸을꺼같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한번 보냅니다



처음껀 국악인 김용우님이 부른 노래이구요 2,3절은 새로운 가사랍니다

잘들어보면 1절에는 내 고향 남녘땅이라는 가사가 나오고 그 뒤에는 내 고향 북녘땅이라고 나옵니다

노래좋지요?

잘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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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영화를 알았을땐 그저 일본 학원액션물인줄 알았죠

(영화에 대한 정보-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0032)

더군다나 전 일본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전혀 호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근데 이영화, 알면 알수록 꽤 좋은 영화인거 같습니다

쌤식으로 표현하면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인거 같더군요

이런 생각을 하게된건 이 영화의 ost 임진강을 접하게된후라고 할수있습니다

어떤 블로그에서 보니 임진강은 남북분단의 슬픔과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라고 하더군요

박세영 작사 고종한 작곡의 북한노래로

일본에서는 더 포크 크루세더스 라는 밴드가 번역해 불렀고

60년대에는 금지곡 이었다고 하더군요

가사는 이렇습니다(한국가사)

임진강 맑은 물은

도도히 흐르고

물새들 자유롭게

무리지어 넘나드네

내조국 남쪽 땅

추억은 머나먼데

임진강 맑은 물은

도도히 흐르네

북쪽의 대지에서 남쪽의 하늘로

날아다니는 새들이여 자유의 사자여

누가 조국을 둘로 나누었느뇨

누가 조국을 나누어 버렸느뇨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물새들은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지금 나오는 동영상은 영화의 실제장면으로

주인공이 임진강을 부르는 장면이라고 하더군요

마지막에는 한국어로 부르는게 나옵니다

지금 어디서 상영하는진 모르겠지만

쌤도 한번 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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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2-18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일동포로 산다는 것 … 60년대 가슴뭉클 스케치

[중앙일보 2006-02-17 06:45]

홈페이지:(blog.naver.com/pacchigi)

20자평:눈물 없이 보기 힘든 재일동포의 울분과 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그곳에는 우리와 핏줄을 나눈 수십만 명의 재일동포가 살고 있다. 상당수는 일제 강제 징용의 피해자거나 그 후손이다. 이들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 사회의 차별과 핍박을 받으며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지금도 심심찮게 동포 여학생이 길거리에서 수모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정도니 과거에 이들이 겪었을 고생은 말도 못할 것이다. 게다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현실은 이들의 한을 더욱 깊게 했다.

1968년 일본 교토(京都)를 배경으로 한 '박치기'(감독 이즈쓰 가즈유키.14일 개봉)는 재일동포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은 조총련계 고교를 다니는 청소년들. 이들은 일본인에 대한 분노와 울분을 '박치기'로 상징되는 폭력과 싸움으로 풀며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고 했던가. 동포 학생들의 폭력은 일본 학생들의 더 강한 반격으로 이어지면서 목숨이 왔다갔다 할 정도로 심각해진다. 얼핏 '말죽거리 잔혹사'(감독 유하)를 연상케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청소년들의 고민은 훨씬 깊고 복잡하다. '말죽거리…'에선 그래도 같은 민족끼리 주먹질을 하는 정도였지만 '박치기'에선 목숨을 걸고 일본 학생들과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단순히 학원 폭력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대신 일본인과 재일동포의 진심 어린 화해를 모색한다. 어차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상 극단적인 대립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화해의 주인공은 재일동포에 대한 편견 없이 순수한 마음을 지닌 일본 남학생 고스케(시오야 슌)와 동포 여학생 경자(사와지리 에리카)다. 고스케는 선생님의 심부름으로 조선학교에 갔다가 우연히 플루트 부는 경자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경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당시 일본 사회에선 금지곡이었던 '임진강'이란 노래를 열심히 익힌다. 경자는 처음엔 고스케에게 냉담하지만 이내 그의 진심을 알아차린다. 그렇지만 두 사람 사이엔 평범한 남녀에겐 없는 '깊은 강'이 놓여 있다. 경자는 고스케에게 "조선 사람이 될 수 있느냐"고 묻지만 고스케는 바로 대답할 수 없다.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민족 문제에서 노래 '임진강'(박세영 작사, 고종한 작곡)은 매우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이 곡은 일본에서 '더 포크 크루세더스'라는 밴드가 번역해 발표했지만 이내 금지곡이 됐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흘러 내리고/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란 노랫말과 구슬픈 노랫가락은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염원을 형상화하고 있다. 고스케는 직접 임진강을 건너지는 못하지만 교토의 가모가와 강가를 헤엄쳐 건너고 라디오 방송에서 노래 '임진강'을 부르면서 재일동포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의 진심은 동포의 심금을 울린다.

이런 영화가 재일동포나 한국 사람이 아닌 일본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놀랍다. 주연 배우도 대부분 일본 배우다. 그래서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도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바닥에 깔려 있다. 덕분에 이 영화는 지난해 나온 일본 영화 중 작품성에서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 일본 아사히신문과 영화전문지 키네마순보는 '2005년 최고의 영화'로 이 영화를 꼽았고, 이달 초 열린 요코하마 영화제는 작품상.감독상.촬영상 등 5개 부문의 상을 줬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한 조총련계 동포를 다룬 것도 눈에 띈다. 조총련계 출신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 공로상을 받은 이봉우 시네콰논 대표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영화 속에는 그의 개인적인 경험도 상당히 녹아 있다고 한다. 냉전 시대라면 개봉은커녕 영화를 수입한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았겠지만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화해의 시대가 열리면서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게 됐다.

영화에는 최근 '메종 드 히미코'로 국내에 소개된 '꽃미남' 배우 오다기리 조도 출연한다. 장발에 히피족 같은 성향을 보이는 사카자키 역을 맡은 그는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고스케에게 노래 '임진강'을 가르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좀 더 많은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하고 서울 명동의 CQN(www.cqn.co.kr)에서만 볼 수 있다는 사실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두 명 이상의 여성이 수요일에 극장을 찾으면 50% 할인 혜택을 준다는 것은 기억해둘 만하다.
 

요즘은 펜으로 쓰는 것보다 컴 앞에 앉아 '치는' 글이 더 빠르네..

손으로 예쁘게 써주고 싶은데 약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렇게 딱딱한 컴 편지란다.

 (사실 나는 지독한 악필!! 알지?ㅋㅋ 판서도 아주 나빴잖아? 아이들의 원성 자자~~)

 

우리 *민이 생각하면 늘 맘이 가득해진단다.

도서실 청소하러 올라가다가 우연히 만날 때마다 어찌나 반갑고 그저 좋던지~~ (선천적 미소년 밝힘증..ㅋㅋ)

재작년 수업할 때보다, 3학년 때 그렇게 우연히 만나니 더 좋더라.

니 표정이나 눈빛, 아주 많이 안정되어 있고 편안해보이고.. '

1년 사이에 많이 자랐구나' 생각했지.

내 짐 빼앗듯이 들어다주는 네 마음도 너무 좋고.(다른 애들은 거의 안그러거덩..ㅠㅠ)

 

교대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도 맘속으로 아주~ 기뻤지.

다른 샘들은 니 성적이 아깝다고들 말씀하셨지만 사실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소신있는 선택을 하는 니가 훨씬 더 듬직하고 믿음이 가던걸.

초등학교건 중고등학교건 4년 뒤면 우린 '동료교사'가 되는 거네?ㅋㅋ 아이고 좋아라~~

 

부산을 뜨면 이런 저런  힘든 일 많을텐데 어쩌나?

잘 해나갈거라는 거 알지만 그저 노파심에 늘 아이들이 걱정 돼.

 

너무 공부만 열심히 하려고 하면 말이야, 이 다음에 교사가 되고난 후에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들'을  이해하기 힘든 '범생스러운 교사'밖에 안 될지도 몰라. 지금 생각해보면 교사란 단지 교과만 잘 가르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물론 그것도 아주 중요하지만 동시에 아프고 소외된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고 또 안아주는 것도 아주 아주 중요하지 않을까? 으~~ 무쟈게 힘든 일이지. 스스로를 믿어주고 보듬어주고 그렇게 사랑해주는 사람만이 남에게도 그럴 수 있는 일! 그런 것 같아.

연애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 하고.. 잘 웃고, 잘먹고, 잘 자고..

에구.. 초등학생에게 하듯이 잔소리 투성이로구나.

혼자서도 아주 잘 할텐데 말이야.

 

그저 생각나면 언제든 소식 전해주길 바래. 짧은 문자도 좋지~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 새로운 힘이 불끈불끈!! 캬~~

 

몸과 마음.. 지금처럼 단단하고 건강하길~

힘들어도 그 속에서 빛나는 진주같은 행복할 찾아가길~

늘 기도할게.

 

2006. 2. 18. 12:45 조용한 교무실에 앉아 **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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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6-02-19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좋으시네요. 끌리는 샘님 가운데 한분이시네요. 제가 지금 졸업을 하더라도... ... ㅎㅎ.

해콩 2006-02-19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 쓰이는 이 녀석을 만나서 밥먹으러 가는 길에.. 수업했던 다른 이쁜 녀석 둘을 만났지 뭡니까.. 에궁.. 같이 가자 하기도 그렇고 머뭇머뭇.. 다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맘이.. 좀 더 마음이 가는 아이와 그 와중에 못 다 챙기는 아이들.. 어쩌죠?

JustSoul 2006-02-21 0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감사합니다ㅎ 열심히 할께요ㅎ
 

2005년 12월 2일 (금) 21:42   데일리서프

전인권 “박정희는 머릴 잘랐고, 전두환은 판을 뺏었다”


한국 록음악의 살아있는 전설 전인권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사람과의 관계를 좋아하는 전인권은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과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왔다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그의 음악에는 자극이 필요했고, 그래서 그는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다고 말한다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사랑 앞에서 그는 늘 외로운 영혼이었다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전인권은 3일 평택을 시작으로 4개월간 전국 10개 도시를 도는 투어 공연을 갖는다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2005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어린 시절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등학교까지 그만 두었다.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림 속엔 나의 생각과 초상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레진 않았다. 그런 내가 음악에선 가슴 뛰는 그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음악을 외면 할 수 없던 이유인 것 같다”

1979년 '맴도는 얼굴'을 발표하며 시작된 전인권의 음악인생은 올해로 26년이 되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로 회자되는 그룹 들국화의 리드 싱어였던 그는 허성욱, 최성원, 주찬권 등과 함께 완벽에 가까운 창작력과 연주력으로 해외 뮤지션들과의 격차를 단숨에 따라잡으며 어두운 사회 현실이 그물처럼 마음을 옥죄던 그 시절 젊은이들에게 바람 같은 위안이 되었다.

때문에 그의 이름은 흔히 어두운 터널로 표현되는 80년대를 지나온 청장년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처럼 한 시대의 상징적 의미가 되어버린 전인권은 들국화의 해체 이후 몇 차례 마역 복용과 연루 되면서 한동안 공백기를 가지기도 했지만 최근 왕성한 음악 활동을 통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 그가 올 초 갑작스럽게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젊은 여배우와 사랑했었다고 고백하면서 ‘네카시즘’(네티즌과 매카시즘의 합성어) 공공의 적이자 2005년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되었다. 어쩌면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과 추억을 공감해 줄 수 없었던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나이주의, 외모주의를 돌아보게 한 사건이었다. 그는 요즘 공연을 할 때면 관객들 앞에서 “제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신나죠?” 하고 소리 지른다고 했다.

참 걱정 없고 솔직한 사람이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낙천적인 성격은 타고나는 것 같다. 순간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린 검은색 선글라스를 벗겨내고 마치 착한 초등학생처럼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던 조세현 작가의 사진 속 전인권의 얼굴이 떠올랐다.

삼청동 사운드


3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작은 목소리에 말 없는 소년이었던 그는 영문학을 전공한 작은 형 덕분에 팝송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독학으로 작곡 공부를 시작한 후 소문난 스승들을 찾아다니며 음악 공부에 매진하던 20대는 전인권 스스로도 정말 모범적인 음악생활을 했던 시기라 평하기도 했다.

“나는 19살 때 음악에 관해 10년을 계획했다. 어떻게 보면 고맙게도 나는 산이 만든 가수이기도 하다. 북악산에 올라 대마초를 피며 기타 하나 메고 밤새도록 노래 불러도 좋았던 삼청동 시절은 내 음악 바탕의 전부다. 나는 그로부터 12년만에 내가 원하는 음악 들국화로 성공할 수 있었다.”

전인권은 자신을 사람 좋아하며 지극히 낙천적 인물로 소개한다. 그의 말처럼 주변엔 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뛰어난 음악인인데도 사회적으로 외면당한 삼청동의 대부 춘길이 형님을 필두로 엄인호, 최성원, 조덕환 등 엄청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거래하는 방법을 몰라 힘들어 하던 친구들도 있었다.

“음악하는 사람들은 세상과 거래해야 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 할 것이다. 많은 가수들이 세상과 거래하긴 하지만 음악하는 사람들은 음악하고만 거래하길 원한다. 물론 세상과 맞춰 나갈 때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도 솔직히 음악이나 마약과 거래하는 것이 더 편하다.”

세상과 마주서기 전 가장 자유로웠던 삼청동 시절이 그의 음악적 이데아이자 뿌리였다는 단언을 이해할 것도 같다.

음악을 위한 자극


음악이든 미술이든 표현을 위해서는 자극이 필요하다.

전인권은 자신의 노래 대부분이 약물의 힘을 빌어 만들어 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때 마약과 관련하여 4번씩이나 구속되었던 전인권은 무엇을 그리 잘못 했다고 4번씩이나 잡아 가두나 너무 화가 나서 한동안 음악 활동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노래를 느낌으로 부르기 위한 방법이었다고 생각도 하지만 때론 공연장에 모인 5000여명의 관중이 가수 하나에 집중하면서 뿜어내는 엄청난 에너지를 되받고 견디기 위해 어떤 초인적 힘이 필요했던 것도 같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대마초 합법화 논란이 일 때마다 대마초는 필요한 것이라는 소신을 밝히고 있다.

사랑은 탐구하는 것

전인권은 아름다운 퇴폐란 말을 자주 한다. 자신의 4집 수록곡 중 “나는 사랑하고 싶다. 영원한 숙제라지만 사랑이 진리라면 난 탐구하겠다.”란 가사를 들려주며 정말 열심히 노래한 뒤 필요한 건 사랑이고 연인 아닌가란 질문으로 되묻는다.

여전히 그에겐 지치지 않는 존재가 사랑인가 보다. 20대에 만나 불같이 사랑하며 거의 4년 동안을 매일 함께하다 결혼한 여자와 이혼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여전히 그에게 사랑은 정말 흥미롭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말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의 감정이나 기억들이 타인에 의해 난도질당하는 것이 슬프지 않았냐는 질문에 오히려 이은주 사건은 화끈하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다만 그렇게 나를 몰아붙이던 사람들이 정말 사랑이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인지 궁금해 졌다고 한다. 그다운 대답이다.


내 인생의 자유, 반자유

전인권의 자유는 모험이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모험심이 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물론 음악적 자유를 얻으려면 테크닉을 가져와야 하는 것처럼 자유는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타당한 것을 몸에 담고 그 이후에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말이다.

언젠가 그는 TV에서 서태지가 지붕 없는 차를 타고 초코렛을 먹으며 “자유란게 별건가요”란 카피가 뜨는 광고를 보았다. 순간 우리가 자유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또 얼마나 힘들게 찾은 것인데 저렇게 얘기 할 수 있는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것도 자유지만 자유를 통해서 자기 인생을 마음껏 탐험해 보는 것처럼 자유가 멋있는 것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나는 내 나이 열아홉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내 머리를 자르고 나보다 어린 군인에게 개머리판으로 맞았다. 5공때는 들국화 음반을 심의에 넣었는데 말도 안되는 이유로 모두 거부당했다. 그러나 그러한 반자유 속에서 반항적인 성향과 그것을 포용할 수 있는 힘 모두를 얻었다.”

영원한 록커

지금 활력과 핏기를 잃어버린 음악시장에서 방향성을 상실한 채 가장 고통에 시달리는 장르가 록은 아닐까?

그 역시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고 있었다. 자신이 오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히트곡이 있던 때문이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인권은 이러한 난관을 연습으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신도 30년째 아주 작은 새싹 같은 희망으로 록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세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록이 소중하게 돼 버렸다며 웃었다. 어쩐지 그 웃음에 뭉클함이 느껴졌다.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전인권은 지금 4개월간의 전국투어를 앞두고 있다. 늘 상 연말공연에 이야기 콘서트를 열었던 것처럼 이번 투어 역시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란 주제를 두고 어린 시절부터 전성기 때 활동 모습 등을 담은 사진들을 보여주며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생각이다.

장기 투어인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겠냐는 질문에 지금까지 2800회 이상의 공연을 해왔던 자신은 공연과 살아온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록 음악이 시장성은 없지만 록에 충실한 공연을 만들 생각으로 작지만 멋진 여행을 기대하라는 말을 남겼다.

한편 이번 투어엔 ‘m.net·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시상식에서 전인권과 감동적인 합동 무대를 꾸몄던 드렁큰 타이거가 내년 1월 중순까지는 전인권의 전국 투어 콘서트에 게스트로 동참을 결정하였다. 드렁큰 타이거는 내년 5월 선보일 전인권의 새 앨범에서도 랩을 담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휴먼엔터테인먼트는 “오는 12월 3일 경기도 평택에서의 공연을 시작으로 대구, 천안, 수원, 부산 전주, 광주, 청주, 안산, 제주 등 10여개 도시를 도는 전국투어가 4개월간 계속 된다”며 “큰 도시는 물론 중소도시에서도 전인권의 오리지널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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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8 2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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