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령, 예린, 정주, 승연, 은주, 현주, 유빈, 그리고 12반의 향*이!! 지난 주부터 반아이들을 '열심히' 꼬신 결과 8명이 오늘 아홉산에 다녀왔다. 소라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일이 있어서 못간다고 어젯밤에 문자를 넣어두었고.

배추김치, 무김치, 콩잎이랑 파무침에 현미밥까지 소박한 도시락을 싸고 쑥 캘 칼도 챙겨넣고 아이들과 먹을 사과 5알도 씻었다. 일찍 일어나 목욕 하고 주섬주섬 챙겨 집을 나서 범어사역에 도착한 시간이 9시 50분. 예령이에게 조금 늦을거라는 전화가 왔다. 즈들은 함께 있단다. 2번 출구로 나가 마을버스 근처를 서성이다 정차해 있는 2-2번 기사님게 물어보니 미동마을은 10시 25분에 출발하는 2-3번 마을버스를 타면 되는데 여기서 30분가량 걸린단다. 10시 10분쯤 아이들이 뛰어왔다. 25분 마을버스 출발~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여기가 부산이가? 싶을 만큼 한적하고 좁은 도로와 쪽파에 마늘을 심은 밭, 새잎이 막 올라오는 나무와 진달래 꽃 만발한 숲들이 번갈아 지나간다.

은주와 승연, 예린, 향마이는 버스 바닥에 아예 주저앉아 본격적으로 수다를 떤다. 아슬아슬하다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 옆옆자리 아주머니께 한 소리 듣고 만다. "이 딸아들아, 시끄릅따. 좀 조용히해라" 은주 왈"너무 웃겨서요~ 크하하하" --;

11시에 산행을 시작한다고 했는데 55분쯤 겨우겨우 미동마을 입구에 도착, 지난 번 오던 길과 달라서 넋을 놓고 있다가 지나칠뻔 했다. 후다닥 뛰어 기사아저씨께 내려달라 부탁하고 아그들 내려라 하고 있는데 늦게 내린 정주가 내 지갑을 내민다. 입산요금도 내야하는데 지갑 잃어버릴 뻔 했네.. 덤벙대긴.

현주,정주가 아침을 못 먹었다고 하길래 디저트로 준비해간 사과를 꺼내 반쪽씩 입에 물고 사람들과 함께 관미헌으로 걸어갔다. 여기저기 아는 얼굴들이 보인다. 아랫마당에서 등록하고. 저그들은 안준다고 징징거리던 녀석들 성화에 주최측 친절한 선생님들이 만들어주신 이름표 척하니 달고 산책을 시작했다. 모두 80여명. 함께 움직이긴 많은 숫자라 두팀으로 나누어 동래지역은 ㄱㅎㄹ샘께서 인솔하시고 비동래지역은 또 다른 샘(성함을 잊어먹었다)께서 인솔.. 아이들이랑 나는 뒤에 쳐져서 설명도 잘 안들리고... 내가 아는 지식으로 나름대로 설명하다가 결국은 "칼 꺼내라~ 쑥이나 캐자" 아이들이 이렇게 쑥 캐는 걸 좋아할 줄 몰랐네. 녀석들과 나는 조용히 엄숙하게 쑥을 캐느라 정신이 없었다. 들꽃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쑥캐러 온 듯한.... 그래도 가끔 보이는 예쁜 제비꽃, 양지꽃, 산자고 등등 들꽃과 대나무의 정취에도 감동스러워했다. 귀여운 놈들이다.

1시쯤 산소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ㄱㅎㅇ샘께서 김밥이 남는다고 나눠주셔서 미처 밥을 못챙겨왔다는 정주와 현주도 챙겨주고 은주와 예린이가 싸온 김밥이 너무 푸짐해서 모두 배불리 잘 먹었다. 산 것이 아니라 '싼 것'이라고 하길래 도대체 몇 시에 만나 싸왔냐고 예린이에게 물어봤더니 6시에 은주네 집에서 만났단다. 물론 김밥은 즈들 싸는 거 갑갑해하시던 은주 어머니께서 대부분 싸주셨지만. 암튼 간식으로 바나나에 파인애플까지! 정말 대단한 아이들이다. 맘에 쏙~ 든다. 올해는 요녀석들 데리고 이리저리 양껏 놀러다니면 되겠다 싶어서 빙그레~ (필리핀산 바나나에 대해, 또 수입 농산물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다음 기회에~' 생각하며)

대나무에 물오르는 소리도 듣고 댓닢에 가려진 푸른 하늘도 보고 진달래 잔뜩 핀 분홍색 길도 걸으며 천천히 내려왔다. 칼을 미처 준비못한 정주만 빼고 모두들 틈틈히 캔 쑥을 소중이 들고. ("산 구경하러 왔으면 구경만 해야지 남의 산의 쑥을 함부로 캐면 됩니까?"하는 산지기 아저씨의 억울한 야단도 들어야했다. 이건 진자 억울하다. 주최측에 물어보고 캔건데... 게다가 꽃 안 다치게 캐려고 아이들이나 나나 얼마나 조심했는데.. ㅠㅠ)

예상시간보다 30~40분쯤 지난 시간에 마쳤다. 함께 한 여러 샘들께 인사하고 화장실 갔다가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니 4시. 자가용 타고 온 사람들 거의 다 떠나고 다리 위에 덜렁 우리만 남았다. 얼마나 기다려야할 지도 모르겠고. 좋아! 내가 아이스크림 쏜다. 사오는 사람 정하는 게임할까? 했더니 즈들끼리 가위바위보를 열나 하는 중에 마을 버스 도착!! 정신없이 타고보니 쓰레기 봉지를 다리 난간 위에 두고 왔단다. 승연이랑 예린이가 봉지를 가져오려고 내렸는데 어어~~ 아저씨가 차를 계속 몰아가신다. 녀석들은 깜짝 놀라 뒤에서 계속 차를 쫓아 달려오고 슈퍼앞에서 버스는 마을 사람들을 태우기 위해 잠시 멈췄다. 흠 여기서 조금 틈을 주나보지? 얼렁 현주에게 하드 아무거나 9개 사오너라 심부름 보냈는데 이게 왠걸 현주가 내리자 버스는 바로 출발~ 안돼요 아저씨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새 승연이랑 예린이는 무사히 탔는데 이번에는 현주가 안 온다. 예린이에게 수퍼가서 현주 빨리 데려오라 하고 기사아저씨께 부탁부탁~~ 아저씨 좀만 더 기다려주세요~~ 결국 모두 무사히 승차. 아슬아슬한 상황은 벌써 다 잊고 하드 나누어 먹기에 바빴다.

창밖은 여전히 평화로운 봄날, 따뜻한 시골풍경. 조불조불~~ 범어사 역에 도착한 후 헤어졌다. "배고프나? 빵 사줄까?" 다들 별무반응. 혹 즈 담임 부담스러울까봐 사양하는 마음? 마지막까지 흐뭇하다.

약속시간 안(못) 지키면 어쩌나? 버스에서 너무 떠들면 어쩌나? 작은 들꽃, 산속 풍경을 별로 안 좋아하면 어쩌나? 즈들끼리 어색해하면 어쩌나? 나만 왕따시키면 어쩌나? 이런 저런 걱정들, 그야말로 기우였다. ㅋㅋ 내버려둬도 아이들이 다 알아서 한다. 또 조금 서툴거나 조금 폐를 끼치면 어떠랴? 한창 그럴 나이인 것을.. 담임인 나는 오늘처럼 아이들을 '그저 내버려두는 연습'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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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2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참세상 2006-04-12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홉산

얋기는 하나 아홉구비 마루와 골짜기가 어우러져 아홉산이랍니다

우리의 삶처럼 얋지만 아름다운 둔덕

그곳에서 행복하였다니 무릉이외다


해콩 2006-04-13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세상님, 참... 여기서 뵈니 어찌 민망스러운지..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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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화려한 벚꽃뒤엔…일본 ‘검은 속셈’ 있었나

60년대이후 묘목기증 명단입수…일본인 조직적 개입
전문가 “일본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문화적 침략’”비판

 

 

세계일보 류순열 기자

 

 ◇세계일보 취재팀이 단독 입수한 진해 벚꽃 묘목 기증과 관련한 문건. ‘재일본동경진해유지회’가 작성한 것으로 돼 있는 이 문건엔 1960년대 후반 이후 재일교포와 함께 일본인 15명과 9개 일본 기업이 묘목 기증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국내 곳곳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벚꽃(벚나무) 심기’에 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거액을 들여 일본에서 벚꽃 묘목(苗木· 옮겨 심기 위해 가꾼 어린나무)을 비행기로 실어 날라 기증했을 뿐 아니라 진해의 경우 일본인 식물학자 등이 이후 자발적으로 수차례 방한해 비료를 주고 성장상태를 파악하는 등 정성을 쏟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이같은 벚꽃 심기는 반일감정을 자극하며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확인돼 해방 20여년만에 벚꽃 심기가 다시 국민정서를 무시한 채 추진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남 진해 벚꽃의 ‘부활’, 국회를 감싸고 있는 여의도 벚꽃길, 일제시대 호남의 쌀이 일본으로 실려가던 ‘수탈의 길’, 전군가도(전주∼군산 26번 국도)의 벚꽃길 등 상당수 국내 대단위 벚꽃 나무들이 이렇게 심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묘목을 기증했던 재일교포, 담당 공무원, 향토사학자들의 증언과 취재팀이 재일교포의 친지에게서 단독 입수한 관련 자료 등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서울시, 전라북도,진해시,군산지,전주시 등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산하 기관엔 관련 기록이 전무했다.

이에 따라 ‘교묘한 문화 침투’라는 지적과 함께 이들, 특히 일본인들이 왜 한국의 벚꽃 심기에 발벗고 나섰는지 그 배경과 의도에 ‘역사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벚꽃 심기가 추진될 당시 국내에선 벚꽃 묘목을 구하기 어려웠다는 게 당시 실무자들의 일치된 증언이다. 1945년 해방 이후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벚꽃이 곳곳에서 베어져나갔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취재팀이 입수한 당시 ‘재일본동경진해유지회’의 묘목 기증 명단과 진해·웅천향토문화연구회 황정덕(76) 회장의 기록에 따르면 1966년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이 벚꽃 묘목 약 6만그루를 진해시에 기증했다. 여기엔 재일교포 10명과 일본의 중견 언론인, 식물학자, 관광회사 간부 등 일본인 15명, 전자회사 후지쯔(富士通), 동경항공 등 9개 일본 기업이 협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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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당시 기증을 주도했던 재일교포 문태일(76· 일본 사이타마현 거주)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왜 원수의 나라 국화를 기증하느냐’는 비판이 많았지만 증오심만 갖고는 한일 관계에 미래는 없다는 생각에 기증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문씨는 당시 일본 NHK에서 대한방송 뉴스 진행을 맡고 있었다. 문씨는 일본인과 일본기업의 협찬에 대해 “친분이 있는 언론인과 기업에 협조를 요청했으며 이름만 빌려줬을 뿐 실제 돈을 낸 사람은 몇 안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씨의 형 문시정(84·진해)씨는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었는데 일본인들이 기증에 나선 것은 진해가 러일전쟁 전승지인 것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벚꽃 묘목 기증이 이뤄질 당시 진해시는 일본 가고시마(鹿兒島)와 자매결연을 추진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고시마는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일본의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해군 대장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1848∼1934)의 고향이다.

1970년대 초·중반 국회 뒷길에 심어진 벚꽃 묘목과 전군가도에 심어진 벚꽃 나무도 전부 또는 일부를 재일교포가 기증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군산 월명공원의 벚나무 200그루는 일본 로터리 클럽이 기증한 것이란 증언이 나왔다. 군산시청 김중규 학예사(39)는 “전쟁후 일본인들은 과거 자기들의 식민지였던 지역에 자매결연이든 기술협약이든 인연이 닿게 되면 맨 처음 하는 일이 벚나무 기증이었다”며 “월명공원의 벚나무도 그렇게 기증된 것이란 얘기를 당시 군산에서 로터리 클럽 활동을 했던 분(사망)에게서 전해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일본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문화적 침략’”이라며 “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처럼 일본이 한반도내에서 자신들의 과거 (침략자로서의) 문화적 향수를 구현하기 위한 욕심이 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특별기획취재팀=류순열·김기동·신동주·박종현 기자<세계일보, 0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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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 > 쌀, 이대로 둘 것인가?



 

 

 

 

 

 

 

 

 

 

 


곡명-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

곧 일반 소매점에서 미국산(産) 쌀인 칼로스가 시판된다. ‘캘리포니아의 장미(calrose)’라는 뜻을 지닌 이 쌀은 20kg 한 포대에 국산 쌀의 도매가 수준인 3만 2천원에서 3만 3천 원 선에서 거래가 될 것이다. 쌀 관세화 유예 협상에 따라 미국 쌀이 이제 일반 소비자들의 밥그릇에 담아진다. 정부의 발표로는 당분간은 일반 소매점에서만 판매를 한다지만, 일반 소매점의 주 이용 고객이 누구인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일반 소매점이라면 동네 길목에 있는 슈퍼마켓이나 마트다. 재벌가나 학교 급식 담당자, 회사 군 식당 담당자가 일반 소매점을 이용할리 없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정부의 이론은 이런 결론이 난다. 일반 소매점은 일반 소비자 층이 주 이용고객이므로 당분간 칼로스는 소규모의 판매실적만 올리게 될 것이다=>차차 확대되는 동안 정부는 국내 농민들에게 충격전파의 감소를 위하여 대책을 마련하는 시간을 번다=>칼로스는 별로 신통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다가 다시 국산 쌀로 돌아올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개떡 같은 이론으로 뉴스 속의 기자는 전한다. 너 수습딱지 방금 떼어낸 것 맞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 이론의 허무맹랑함과 기만성을 왜 못 보는 건지, 안 보는 건지? 일반 소매점에서 시작한 칼로스는 옆 집 아영이네도 먹고, 발레를 좋아하는 뒷집 류도 먹을 테고, 아흔이 되신 부리 할머니도 드신다. 마로는 칼로스가 뭔지 모르지만 맛있다고 좋아라 할 것이다. 칼로스, 맛이 어떻고 할 문제가 아니다. 가격을 보자. 우리 쌀은 20kg 한 포대에 평균 4만 2,3천원을 호가한다. 명품 쌀은 10만원이 나가는 것도 있다. 명품 쌀이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먹고 산다지만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은 4만 원짜리 쌀로 밥을 해 먹었다. 그런데 맛이나 영양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칼로스가 무려 1만원이라는 차액이 나면서 더 저렴하다. 쌀통에 쌀이 다 떨어졌다. 지갑을 들고 동네 마트에 갔더니 오른쪽에는 평택 쌀이 한 포대에 4만 5천 원 한다. 옵션으로 1kg짜리 미니 쌀을 더 준다고 써 있다. 그런데 왼쪽에는 캘리포니아의 드넓은 농원에서 따끈따끈한 태양을 받으며 자랐다는 칼로스가 3만 2천원이다. 지갑에는 5만원이 있고 쌀 이외에 초등학교 1학년짜리 지원이가 좋아하는 한라봉도 두 개 사야하고 저녁 반찬거리로 한 마리에 7천 원 하는 제주산 갈치도 사야한다.


칼로스를 한 포대 사서 트렁크에 실어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5만원을 갖고 싼 칼로스도 한 포대 사고, 한라봉과 갈치도 두 마리나 샀으니 흡족하다. 그러니 정부는 유통시장 혼란 없다는 거짓말 좀 그만했으면 싶다. 일반 소비자 층의 ‘지갑 열기’를 완전 무시하고 소매점 판매 운운하며 차후 대책 충분히 마련이라고 공언을 하는 정부의 대국민기만성은 이제 극에 달했다. 김영삼 정부부터 쌀 관세화 준비를 착실히 했다면 칼로스인지 캘리포니아 폭격기인지가 융단폭격을 한다 해도 이리 조바심으로 애간장이 쫄지는 않을 것이다. 10년 동안 유야무야 ‘이만하면 충분해’하는 식의 쌀 관세화 정책은 난파선 안에서 쿨쿨 잠을 잤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 우리도 물건을 팔아먹으면서 남의 물건을 안 사준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불공정무역거래다. 그렇다면 정부가 발표하는 쌀 정책의 대안은 무엇인가? 여기서 최대의 관건은 무조건 미국 쌀 먹지말자! 우리 쌀이 최고다! 신토불이야! 하는 궐기대회나 시식행사를 마련하는 차원이 아니다.


일은 벌어졌다. 무엇이 농민들에게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것이며, 가격대비 경쟁을 뚫을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오늘도 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쌀의 품질은 이제 어느 정도 정상수준으로 좋아졌다. ‘그린’쌀은 캘리포니아 1등급으로 품평회에서 중국 쌀 다음올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우리 쌀의 품질은 이제 정상궤도에 올랐다. 그렇지만 문제는 가격대비와 농촌정책의 수평적 균형이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선 우리 쌀도 가격을 내려야 한다. 그렇다고 가격을 무한정 내릴 수도 없다. 왜? 생산자인 농민들에게 분배되는 차액이 변수다. 그 변수를 풀어야 하는 것이 농촌정책인데, 2014년까지 쌀 관세 유예화 기간까지 칼로스를 비롯한 수입쌀은 대형 할인점과 유통센터를 장악할 것이다. 저렴한 가격, 그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구미 당기는 유혹인가?


농민들은 쌀값 하락으로 인하여 논갈이를 중단한다. 정부는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주느라고 국고를 탈탈 털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쌀값은 더욱 하락하고, 쌀 소비는 감소하며 수입쌀의 증가는 매해 2%씩 증가한다. 충청도 촌구석에 사는 내 밥상 위까지 수입쌀로 지은 밥이 그릇에 담아진다. 앞에서 언급한 쌀값의 하락과 관련된 농촌정책이 절실하게 실효화되지 않는다면 이 땅의 들판엔 잡초만 우거진 ‘어즈버 세월이여~’하는 한탄조의 시조가 나올지도 모른다. 엊그제 파란 기와집에 사시는 대통령이 사석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말이 들린다. “쌀 관세화. 풀어야 숙제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시간, 아직 충분합니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말 맞다. 최소한 자신의 재임기간에는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끝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무사안일한 사람을 찍어준 내 손가락이 참 밉다.


미국 포크송에 존 덴버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가 있다. Take me home country road. 웨스트버지니아의 고향 길로 돌아가는 가사다. 톰 존스의 Green Green Grass of home. 초록의 들판이 펼쳐져 있는 고향. 생각만 해도 마음에 온기가 스며들고 위안이 된다. 신발바닥에 흙을 묻히고 살지 않았지만 메트로폴리탄의 고단한 타향살이는 저 ‘고향’이라는 한 마디에 녹아든다. 그들의 ‘고향’은 분명 약소국의 우리의 ‘고향’과 다르다. 우리의 고향은 지금 미군정의 군화발로 오늘도 으깨고 뭉개지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에서 앞장서서 거들어준다. 흑인영가인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오’에서 갈 고향이 남아 있어야 말이지.


1)정부가 우루과이라운드에 허송세월 10년의 전철을 밟지 않고, 좀 더 과학영농과 선진국형 농업으로 유도하는 적극장려책을 써 줘야하고 2)농민들도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준비를 해야 한다. 3)쌀의 주권 지키기는 우리의 생존권, 즉 자주권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인식을 도시의 소비자 층은 가져줘야 한다. 4)쌀 품질의 다양한 개발시도와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유통구조의 개혁(아, 선거철이 돌아오니까 너무 남발한다.)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일수록 농촌이 잘살고 농업이 안정적이다. 이제 선, 후진국의 기준은 농촌문제와 농촌의 구조로 가늠하는 세상이 왔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밥 안 먹거나 적게 먹고도 갈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정책결정자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문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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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글샘 > 대한민국 국민임이 부끄럽다.

남양주시 쓰레기 매립장 폭력 사태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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