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파란여우 > 쌀, 이대로 둘 것인가?

곧 일반 소매점에서 미국산(産) 쌀인 칼로스가 시판된다. ‘캘리포니아의 장미(calrose)’라는 뜻을 지닌 이 쌀은 20kg 한 포대에 국산 쌀의 도매가 수준인 3만 2천원에서 3만 3천 원 선에서 거래가 될 것이다. 쌀 관세화 유예 협상에 따라 미국 쌀이 이제 일반 소비자들의 밥그릇에 담아진다. 정부의 발표로는 당분간은 일반 소매점에서만 판매를 한다지만, 일반 소매점의 주 이용 고객이 누구인가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일반 소매점이라면 동네 길목에 있는 슈퍼마켓이나 마트다. 재벌가나 학교 급식 담당자, 회사 군 식당 담당자가 일반 소매점을 이용할리 없다는 것이다.
그런고로 정부의 이론은 이런 결론이 난다. 일반 소매점은 일반 소비자 층이 주 이용고객이므로 당분간 칼로스는 소규모의 판매실적만 올리게 될 것이다=>차차 확대되는 동안 정부는 국내 농민들에게 충격전파의 감소를 위하여 대책을 마련하는 시간을 번다=>칼로스는 별로 신통하지 못한 반응을 보이다가 다시 국산 쌀로 돌아올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개떡 같은 이론으로 뉴스 속의 기자는 전한다. 너 수습딱지 방금 떼어낸 것 맞지? 그렇지 않고서야 저 이론의 허무맹랑함과 기만성을 왜 못 보는 건지, 안 보는 건지? 일반 소매점에서 시작한 칼로스는 옆 집 아영이네도 먹고, 발레를 좋아하는 뒷집 류도 먹을 테고, 아흔이 되신 부리 할머니도 드신다. 마로는 칼로스가 뭔지 모르지만 맛있다고 좋아라 할 것이다. 칼로스, 맛이 어떻고 할 문제가 아니다. 가격을 보자. 우리 쌀은 20kg 한 포대에 평균 4만 2,3천원을 호가한다. 명품 쌀은 10만원이 나가는 것도 있다. 명품 쌀이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먹고 산다지만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은 4만 원짜리 쌀로 밥을 해 먹었다. 그런데 맛이나 영양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칼로스가 무려 1만원이라는 차액이 나면서 더 저렴하다. 쌀통에 쌀이 다 떨어졌다. 지갑을 들고 동네 마트에 갔더니 오른쪽에는 평택 쌀이 한 포대에 4만 5천 원 한다. 옵션으로 1kg짜리 미니 쌀을 더 준다고 써 있다. 그런데 왼쪽에는 캘리포니아의 드넓은 농원에서 따끈따끈한 태양을 받으며 자랐다는 칼로스가 3만 2천원이다. 지갑에는 5만원이 있고 쌀 이외에 초등학교 1학년짜리 지원이가 좋아하는 한라봉도 두 개 사야하고 저녁 반찬거리로 한 마리에 7천 원 하는 제주산 갈치도 사야한다.
칼로스를 한 포대 사서 트렁크에 실어 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5만원을 갖고 싼 칼로스도 한 포대 사고, 한라봉과 갈치도 두 마리나 샀으니 흡족하다. 그러니 정부는 유통시장 혼란 없다는 거짓말 좀 그만했으면 싶다. 일반 소비자 층의 ‘지갑 열기’를 완전 무시하고 소매점 판매 운운하며 차후 대책 충분히 마련이라고 공언을 하는 정부의 대국민기만성은 이제 극에 달했다. 김영삼 정부부터 쌀 관세화 준비를 착실히 했다면 칼로스인지 캘리포니아 폭격기인지가 융단폭격을 한다 해도 이리 조바심으로 애간장이 쫄지는 않을 것이다. 10년 동안 유야무야 ‘이만하면 충분해’하는 식의 쌀 관세화 정책은 난파선 안에서 쿨쿨 잠을 잤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 우리도 물건을 팔아먹으면서 남의 물건을 안 사준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불공정무역거래다. 그렇다면 정부가 발표하는 쌀 정책의 대안은 무엇인가? 여기서 최대의 관건은 무조건 미국 쌀 먹지말자! 우리 쌀이 최고다! 신토불이야! 하는 궐기대회나 시식행사를 마련하는 차원이 아니다.
일은 벌어졌다. 무엇이 농민들에게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여주는 것이며, 가격대비 경쟁을 뚫을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오늘도 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쌀의 품질은 이제 어느 정도 정상수준으로 좋아졌다. ‘그린’쌀은 캘리포니아 1등급으로 품평회에서 중국 쌀 다음올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우리 쌀의 품질은 이제 정상궤도에 올랐다. 그렇지만 문제는 가격대비와 농촌정책의 수평적 균형이라는 또 다른 과제를 안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선 우리 쌀도 가격을 내려야 한다. 그렇다고 가격을 무한정 내릴 수도 없다. 왜? 생산자인 농민들에게 분배되는 차액이 변수다. 그 변수를 풀어야 하는 것이 농촌정책인데, 2014년까지 쌀 관세 유예화 기간까지 칼로스를 비롯한 수입쌀은 대형 할인점과 유통센터를 장악할 것이다. 저렴한 가격, 그것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구미 당기는 유혹인가?
농민들은 쌀값 하락으로 인하여 논갈이를 중단한다. 정부는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해주느라고 국고를 탈탈 털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쌀값은 더욱 하락하고, 쌀 소비는 감소하며 수입쌀의 증가는 매해 2%씩 증가한다. 충청도 촌구석에 사는 내 밥상 위까지 수입쌀로 지은 밥이 그릇에 담아진다. 앞에서 언급한 쌀값의 하락과 관련된 농촌정책이 절실하게 실효화되지 않는다면 이 땅의 들판엔 잡초만 우거진 ‘어즈버 세월이여~’하는 한탄조의 시조가 나올지도 모른다. 엊그제 파란 기와집에 사시는 대통령이 사석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말이 들린다. “쌀 관세화. 풀어야 숙제 맞습니다 맞고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시간, 아직 충분합니다” 시간이 충분하다는 말 맞다. 최소한 자신의 재임기간에는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끝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무사안일한 사람을 찍어준 내 손가락이 참 밉다.
미국 포크송에 존 덴버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가 있다. Take me home country road. 웨스트버지니아의 고향 길로 돌아가는 가사다. 톰 존스의 Green Green Grass of home. 초록의 들판이 펼쳐져 있는 고향. 생각만 해도 마음에 온기가 스며들고 위안이 된다. 신발바닥에 흙을 묻히고 살지 않았지만 메트로폴리탄의 고단한 타향살이는 저 ‘고향’이라는 한 마디에 녹아든다. 그들의 ‘고향’은 분명 약소국의 우리의 ‘고향’과 다르다. 우리의 고향은 지금 미군정의 군화발로 오늘도 으깨고 뭉개지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에서 앞장서서 거들어준다. 흑인영가인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오’에서 갈 고향이 남아 있어야 말이지.
1)정부가 우루과이라운드에 허송세월 10년의 전철을 밟지 않고, 좀 더 과학영농과 선진국형 농업으로 유도하는 적극장려책을 써 줘야하고 2)농민들도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준비를 해야 한다. 3)쌀의 주권 지키기는 우리의 생존권, 즉 자주권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인식을 도시의 소비자 층은 가져줘야 한다. 4)쌀 품질의 다양한 개발시도와 가격경쟁을 유도하는 유통구조의 개혁(아, 선거철이 돌아오니까 너무 남발한다.)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나라일수록 농촌이 잘살고 농업이 안정적이다. 이제 선, 후진국의 기준은 농촌문제와 농촌의 구조로 가늠하는 세상이 왔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에 밥 안 먹거나 적게 먹고도 갈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정책결정자의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문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