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시간. 중식 석식을 거르는 아이가 몇 있어서 먹거리에 대한 열변을 토하고 있는데 담임 말 자르기가 특기인 **이, "샘 근데요 오늘 지각한 거요 운동장 다섯바퀴 돌았는데 또 벌 받아야되요?" "그래서 오늘은 줄여줬잖아. 아까 샘이 교실에서 나간 게 40분인데 그때까지 느그들 안 들어왔으니까 25분 지각! 그러면 250번이제? 근데 마 100번만 해라." **이와 친한 ##이가 옆에서 거든다. "억울한데요, 밖에서 벌 받았는데... 다리도 아프고... " "그래서 비오는 날은 봐주고 또 우리반은 15분에 지각 체크하잖아... 그래서 우짜자고?" "정확하게 교문을 통과하는 시간으로 벌주지요." "(발끈해서)그건 누가 체크할건데? 샘보고 맨날 교문에 서서 그거 체크하란 말이가? --+ 샘 출근시간은 8시 40분까지다." "양심에 맡기지요. 지가 오는 시간 스스로 체크하는 걸로.." "그건 객관적지 못하잖아. 모두가 수긍하는 기준이 있어야지" "샘 그래도 지금처럼 하는 건 너무한데요~" ##이 목소리가 앙칼지다. "뭐? 솔직히 지각하는 느그들만 맨날 지각한다 아이가. 느그가 지각 안 하면 될거 아니가? 차는 맨날 느그들만 막히고 사정은 맨날 느그만 있나?" 이야기하면서 자꾸 화가 났다. **이가 ##이를 말리는 눈치인데 이미 ##이도, 나도 마음이 상해버렸다. 아침부터...
참~ 또 일을 쳤다. 발끈하는 이 놈의 성질이 문제다. 나이 들어도 성질은 죽지도 않는다. 별일도 아닌 것을... 차분히 생각해서 조분조분 말하면 될텐데... 요가나 명상은 헛 일인지.. 아침에 그러고 나왔는데 부담스럽게 3교시가 또 우리반 수업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열심히 설명하면서 힐끔힐끔 두 녀석의 눈치를 살펴보니 뒤끝없는 게 큰 장점인 **이는 벌써 잊은 듯 대답도 잘하고 질문도 하고 졸기도 하는데 ##이 표정은 영 심상찮다. 캥긴다. 게다가 ##이는 지난 번 야자도망 2차 사건 때 내가 저희들을"차별한다"는 말을 한 녀석 아닌가!! 그치만 그건 아홉산 가서 다 풀어줬는데... 판서하면서 칠판 귀퉁이에 적어둔 지각생들 번호를 슬쩍 지워버렸다.
생각해보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하겠다. 앉았다 일어났다 100번이 쉬운 것도 아니고 또 그것 대신 주문한 한자 외워오기도 아이에 따라서는 정말 힘들 수도 있는데... 그리고 오늘따라 운동장 다섯바퀴씩 다 돌았다는데. 옆자리 샘의 조언으로 학생부 가서 물어보니 월수금은 교문지도를 해서 늦은 아이들 벌을 주고 화목토는 간혹 부장샘이 서있을 때도 있지만 거의 교문지도가 없단다. 아하! 그럼 교문에서 벌 주지 않는 날만 내가 벌주면 되겠구나. 근데 ##이는 어쩌지?
청소시간 올라갔더니 스쳐지나가는 녀석의 표정에 찬바람이 쌩쌩~. '칫, 웃기고 있네. 지는 뭐 예쁘게 말했나. 담임한테 말하는 품새가 그게 뭐꼬. 싸가지 없이. 나도 모른 척 해야지. 오늘 지나면 잊어먹겠지뭐.' '... 가만, 오늘 야자감독인데 난중에 불러서 말을 함 해보까? ##아, 샘한테 니가 건의하는 건 좋은데 다음부터는 살짝 와서 이야기하는 게 좋겠다. 조례하고 있는데 말 자르고 니 얘기하는 것도 샘은 좀 그렇고 아이들 다 보는데 서로 마음 상할 수도 있으니까...' 이렇게 말해줄까? ... 칫 싫다 자존심 상한다. 초반부터 담임이 이렇게 약하게 나가면 저것들이 분명히 업신여길거야. 나도 말 안 하고 버텨야지. 끝까지!!!
야자 1차시까진 잘 참았다. 그러나 저녁 먹는 시간!!! 도시락을 싸들고 ##이 맞은 편에 앉아버렸다. "니, 삐짓제?" "(눈도 안 마주치며) 아닌데요" "에~ 거짓말하네~ 삐짓잖아. 아까 아침에 샘이 야단친 그 일 때메 삐져서 샘 쳐다보지도 않잖아. 어쨌든 오늘 지각한 놈들은 니 덕분에 벌 면했다" "(목소리가 부드러워지며) 무슨 일이요?" "에~~ 모르는 체 하기는... 샘이 잘못했다.?" "(완연히 싸그러든 목소리로)어~~ 진짜 무슨 일이요???" "별일도 아닌데 샘이 벌컥 화를 내제? 내가 좀 다혈질이라서... "맞아요!!" "--; 그러니까 ##아 다음부터 샘한테 건의할 일 있으면 개인적으로 조용히 얘기하자. 그리고 지각 벌은... 정문에서 학생부샘들이 벌 안주는 날만 샘이 줄게. 됐제?"
결국 내 잘못을 인정했다. 우짜겠노 내가 잘못한 거 맞는데... 먼저 사과하고 나니 마음은 훨~ 편하다. 내일 아침에 (노래로 여는 우리 반 조례 - 한곡뽑자)도 해야하는데 이렇게 꿀꿀한 기분으로 시작할 수 는 없으니까...
에구.. 초반부터 아이들에게 꽉 잡혀서는... 우짜꼬? 올해도 계속 이렇게 잡혀 살아야하는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