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IMF가 돌아온다

수혜자는 양국 기업, 피해자는 양국 노동자

 

 

편집자주
이 글은 [월간 작은책] 7월호에 실린 것으로 전문 게재를 허락해 준 [월간 작은책] 편집진에 감사드린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의사  

 

한미 자유무역자유무역협정(FTA)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하고 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실 그렇지 못하다. 6월에 들어와서야 미국에서 1차 본협상이 진행되면서 이제야 한미 FTA가 언론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것도 보수 언론들의 찬양 기사거나 아니면 쟁점을 보도해도 그것이 우리 노동자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지 알기 힘든 기사가 대부분이다. 기사 대부분이 뜬구름 잡는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와 아닌가를 따지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요즘 한미 FTA 토론회에서 만났던 노동자들 거의가 한미 FTA에 대해 “무언가 나쁜 거는 같은데 내 삶과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얘기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국익’을 떠나 노동자에게 한미 FTA는 무엇인가?


한미 FTA 하면 쌀과 영화가 떠오른다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농업 문제와 영화 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미 FTA는 노동자들의 삶에 이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포괄한다. 그 가운데 대표인 것이 바로 공공서비스의 사유화 문제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분야가 바로 이 공공 부문의 기업 매각 곧 사유화다.


수도, 전기, 가스, 철도, 방송 들의 기업 매각이 그것이다. 한미 FTA를 제2의 IMF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1998년 IMF 경제 위기 때 정부는 포철, 한국통신, 한국중공업(지금은 각각 POSCO, KT, 두산중공업이 되었다) 같은 수많은 공기업을 기업에 매각하였다. 그 뒤 김대중 정부는 철도, 가스, 전력 부문을 기업에 매각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실행하지는 못하였는데 이는 정부가 개과천선을 해서가 아니라 2002년 3사 공동 파업으로 대표되는 노동자들의 저항 때문이었다. 한미 FTA는, 그때 저지되었던 공공 부문 기업을 다시 매각하려는 것이다.


사회단체들이 ‘한미 FTA=제2의 IMF’라고 주장하니까 정부는 4월 24일 “한미 FTA Q&A”라는 자료를 통해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서비스를 외국 자본에 팔아먹는다”는 걱정은 지나치다고 하면서 “서비스의 특성, 경제적 중요성, 국제적 관례, 자유화 필요성 등을 종합 검토하여, 최대한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한다”고 밝혔다. 잘 들어 보면 안 팔아먹겠다는 말은 아닌데 꼭 안 팔아먹겠다는 말처럼 들리는 모호한 말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발표가 난 지 4일 뒤인 4월 28일 대외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통해 “한국 내 공기업 독점 분야의 개방을 유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공기업 관련 사항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실토했다. 서로 말이 안 맞는 것은 고사하고 정부 거짓말이 황당하기까지 하다.


더욱 황당한 것은 공기업을 매각하지 않겠다는 한국 정부가 이미 공공 부문 매각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스를 보기로 들어보자. 2004년 10월 한국가스공사가 도맡아서 가스를 들여오다가 POSCO가 따로 외국에서 직접 들여오도록 허용했고 이후 GS칼텍스와 SK에도 가스를 직접 들여오도록 허용했다. 이렇게 가스 도입권이 기업에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기업이 최대로 이익을 내기 위해서는 상품을 한꺼번에 많이 사는 소비자에게는 상품을 싸게 팔고 소액구매자에게는 비싸게 파는 것이 ‘합리적인’ 방식이다. 기업에게 가스를 넘기면 그 기업은 가스를 많이 쓰는 대기업들에게는 가스를 싼 가격에 팔겠지만 가정용 가스는 비싸게 파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 그나마 유지되는 공공요금 체계가 무너지면 가정용 가스는 400%이상 오른다는 것이 예측으로 나온다.


가스 부문을 기업에 매각하면 그 수혜자는? 당연히 GS칼텍스와 SK다. 그런데 GS칼텍스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듯이 GS가 50%의 지분을 가지고 콘돌리자 라이스가 이사였던 5대 석유기업인 셰브론-택사코가 50% 지분을 가진 회사다. SK? SK의 지주회사는 SK-엔론으로 SK가 50%, 딕 체니의 회사로 알려진 엔론이 50%를 가진 회사다. 이런 기업 매각은 한국 정부의 시각에서는 양국 모두 이익이다. 미국의 칼텍스와 엔론 뿐만 아니라 한국의 GS와 SK에게도 이익이 되니 어찌 양국 모두 이익이 아니란 말인가. 최대 피해자는? 가스비가 폭등해도 가스를 쓸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이다.


문제는 이런 기업 매각이 가스뿐 아니라 수도, 전력 같은 부문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FTA가 양국 정부가 서로의 국익을 놓고 대결을 벌이는 것이라고? 한미 FTA는 한미 양국 정부와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저항 때문에 못하고 있던 공공 부문 기업 매각을 이 협정을 빌어 처리하려는 것일 뿐이다. 두 나라 기업들에게는 떼돈이 돌아가겠지만 한국 노동자들에게는 수도 요금, 가스 요금, 전기 요금, 철도 요금이 폭등하고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대량해고가 돌아올 뿐이다.


정부는 공공서비스 부문 매각에 대해 뻔뻔스런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처럼 교육, 의료 분야에 대해서도 “한미 FTA에서 교육과 의료 제도 같은 사회 공공 제도는 협상 의제가 아니다” 하고 공언하는 따위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도 실토하듯이 “그러나 대학은 협상 대상이며 건강보험에서 제외되는 고급 의료 서비스는 협상 대상일 수 있다”고 한다. 대학을 외국 대학에 개방하고 고급 의료 서비스가 개방되면 노동자에게는 무슨 일이 생길까?


의료와 교육 개방은 하지 않겠다고 하는 말 자체가 이미 거짓말인데 인천 같은 경제자유구역 세 곳과 제주도에 이미 외국인 학교와 주식회사형 외국 병원을 이미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이곳 초등학교 1년 등록금은 3천만 원이고 진료비는 한국 병원의 열 배가 넘는다.

 

 

 

재경부와 외교통상부는 미국으로 유학 가는 사람이 많으므로 외국 대학이 전국에 개방되면 외국에 유학 가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유학 갈 사람은 유학 가고 한국에 있는 이름만 외국 이름을 딴 대학들의 등록금만 천정부지 치솟을 뿐이다.


고급 의료 서비스의 개방? 정부에서 고급서비스의 보기로 드는 장기이식을 보자. 장기이식은 한국에서는 고급서비스지만 유럽에서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 즉 ‘보통’의료 서비스다. 이것을 건강보험증을 안 받아 주는 영리 병원에서 하게 되면 앞으로도 장기이식은 건강보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또 이미 송도에 짓고 있는 외국 병원을 보자. 이 병원은 500병상짜리 병원인데 모두 1인실이라고 한다. 지금 한국의 진료비보다 5, 6배의 진료비를 받는데 건강보험증이 안 통하는 병원이므로 실제 진료비는 10배가 넘을 것이다. 서민에게는 그림의 떡이고 더 나아가 부유층들이 이 고급 병원으로 몰리면 다른 병원들도 덩달아 진료비를 올리게 되므로 전체 의료비 상승 효과만 생긴다. 현재도 이런데 ‘고급’ 의료 서비스를 아예 건강보험이 안 되게 해 버리는 병원을 전국에 만들자는 것이 한미 FTA다.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의료비 폭등뿐이다.


한미 FTA가 의료 분야에 몰고 올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외국 신약은 무조건 선진 7개국 평균 약값으로 약값을 받자고 한다. 또 특허 기간을 늘려 한국에서 값이 더 싼 복제 약품을 못 만들게 하려고 한다. 현재 한국의 외국 약값은 선진 7개국 평균 약값의 48%다. 또 한국에서 쓰이는 값싼 복제 약품은 전체 약의 50%정도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약제비가 천정부지로 높아진다. 현재도 건강보험에서 지출되는 약제비는 전체 건강보험 재정 24조 원 가운데 7조 2천억 원으로 다른 나라보다 두 배가 높다. 약값이 폭등하면 당장 소비자 부담도 문제지만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해 보험 혜택이 줄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결국 한미 FTA는 대학 등록금의 폭등과 이에 따른 사교육비의 폭등, 그리고 병원 진료비의 폭등과 약값의 폭등을 불러올 뿐이다. 교육비와 의료비가 올라가면 한국의 병원과 사학재단은 그리고 제약회사들은 돈을 더 벌 것이다. 또 의료비가 올라가면 건강보험 재정은 이를 감당 못할 테니 민간 의료보험 시장이 더 늘어날 것이다. 한국의 삼성생명, 미국의 AIG 보험은 더욱 더 장사가 잘될 것이다. 정부가 말하는 한미 양국의 이익은 바로 한국과 미국 양국 기업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노동자? 정부에게 ‘구매력 없는’ 사람들은 경제 주체가 아니며 따라서 노동자는 고려 대상도 아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에서 펴낸 2005년 무역장벽 보고서 첫머리는 바로 노동이다. 한국 노동자들의 권리가 무역장벽 중 가장 큰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해고 통지 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축소, 퇴직금 제도를 퇴직연금 제도로 바꿀 것, 단체협약 기간을 1년에서 최소 2년 이상으로 할 것, 단체협약을 바꾸는 것을 어렵게 할 것, 파업때 대체 인력 투입을 쉽게 하도록 노동법을 개정할 것, 노조 지도부가 맺은 단협을 노동자 전원 투표로 뒤집지 못하게 할 것. 이것은 무엇인가? 바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한국 정부의 노사 관계 로드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똑같다. 한미 FTA는 한미 정부가 국익을 놓고 다투는 것이다? 노동 부문에 대한 미국 요구를 보면, 한미 FTA는 협정을 빌어 두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짜고 치는 고스톱일 뿐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물론 이것만도 아니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고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를 철폐하고 이것도 모자라 환경 운동가들이 노력해서 겨우 만들어낸 유전자조작 식품 표시제를 무역장벽이라 폐지한다. 또 기업-정부 중재 제도가 도입되어 기업의 이익이 침해되면 외국 기업이 한국정부를 직접 제소해서 사회 공공 제도를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된다.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미국의 유명 택배 회사인 유피에스(UPS)는 캐나다 우체국의 택배 서비스가 자신의 영업 이익을 침해한다고 기업-정부 중재 재판소에 제소를 했는데 이 중재 재판은 뉴욕에 있는 패널  3명이 비공개로 진행한다. 여기서 캐나다 정부가 패소하면 캐나다 우체국은 소포 서비스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캐나다와 멕시코의 많은 환경, 보건 제도 등 공공 제도들이 무력화되었다.


한미 FTA는 한마디로 양국 기업의 이윤 추구를 방해하는 노동자의 필수 권리와 사회보장 영역인 공공서비스와 공공 제도, 그리고 노동자와 민중의 권리를 제거하려는 한미 양국 자본의 침략일 뿐이다. 한미 FTA로 미국과 한국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볼 것인가 하는 질문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한미 FTA의 수혜자는 미국 기업만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 기업 모두며 바로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나서서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에게 국익은 기업의 이익일 뿐 노동자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한미 FTA 수혜자는 양국 기업이고 그 피해자는 양국 노동자일 뿐이다. 한미 FTA 체결은 97년 IMF 위기 때처럼 노동자의 생활 조건과 권리 악화만큼이나 노동자에게 큰 패배가 될 것이다. 한미 FTA. 이제 노동자가 나서서 막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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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느티나무 > 전교조 비판의 전제

전교조 비판의 전제

홍세화[한겨레신문 시민편집인]

 

   김진경 전 대통령 교육문화비서관은 “지금의 전교조는 교육 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가 되는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교조가 교육 낙후 지역 학생 등 교육 소외 계층을 위해 한 게 뭐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바로 이튿날(6월16일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전교조 창립투사도 꾸짖는 오늘의 전교조”, “‘전교조가 교육 걸림돌’이라는 전교조 원조”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그 다음날 〈한겨레〉도 “전교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전교조 내부자의 잇따른 비판을 보는 심정은 서글프다”로 시작된 사설은 “‘전교조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학생인가 교사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 자체가 전교조로선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끝맺고 있다. 전교조가 모든 종이신문들에게 동네북이 된 형국인데, 한겨레가 여기에 가담하게 된 데는 김 전 비서관의 발언과 함께, 보직형 교장공모제가 교육 혁신위에서 부결된 것과 관련하여 ‘교장 선출 보직제와 학교자치 연대’(교선보연대)가 전교조 집행부에 그 책임을 물은 것이 배경이 되고 있다.

   한겨레의 비판에서 벗어나는 성역은 있을 수 없다. 특히 이번처럼 전교조 내부의 노선상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를 사설로 다루고자 할 때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사설은 “전교조가 말하는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란 교원평가, 방과 후 학교, 차등 성과급제, 교장 공모제를 뜻하는 듯하다. 실제 전교조가 지난 12일 4대 교육현안 해결 집중 투쟁을 ‘선언’하면서 혁파대상으로 꼽았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교조의 4대 현안과제는 성과급 차등지급 저지, 표준 수업시수 법제화, 입시 중심의 방과후 학교 저지, 학교자치와 교장 선출 보직제 실현이다.

   사설이 시사하듯이 전교조는 과연 ‘학생 중심의 헌신성’이라는 초심에서 벗어났는가? 한겨레가 나서지 않아도 전교조는 걸핏하면 사면초가에 직면한다. 그래도 암담한 교육 현실에 절망하면서도 희망을 논하고, 참교육 수업을 연구·토론하고, 휴일을 반납하며 부모와 함께할 수 없는 아이들과 체험학습을 운영하는 교사들은 전교조 조합원들이다. 한겨레는 이 점을 놓쳐선 안 된다. 오늘 한겨레가 전교조에 제기해야 할 것은 초심에 대한 질문보다 내부 노선과 관련된 토론이다.

   가령 김진경 전 비서관이 말하듯이 “제도가 달라진다고 해도 교육부부터 시·도 교육청, 지역 교육청, 단위학교 교장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쌓인 관료들에 의해 제도 자체가 내용적으로 변형 왜곡될 수밖에” 없는 교육 현실 앞에서 교장 공모제는 그래도 관료주의의 폐해를 효과적으로 줄이면서 교육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 아니면, 개혁의 알리바이만 제공할 것인가? 또는 현 전교조 집행부가 참여정부의 교육정책을 모두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으로 환원시키는 신자유주의 근본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지, 그래서 결국 아무런 변화도 일궈내지 못하는 ‘수구성’으로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구호가 의도와는 달리 교사집단 이기주의의 방패막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전교조를 초심을 잃은 이기주의 집단인 양 몰아간 것은 옳지 않다. 일선 현장 교사들의 형형한 눈빛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렇다.

2006년 6월 21일,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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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6-21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의 그 사설, 속 뒤집어질 것 같아 제목만 보고 덮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서럽고 고마워서 눈물이 핑 도네요.

'우리들'... 아무래도 '제도권 교육'이라는 이 버스에서 내려야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야자/보충 빼고 '자율적'으로 하교하려는 아이들 붙잡아두고, 좀 더 무섭게 야자감독하며 조용히 시키고, 열심히 수능대비 문제 풀어주는 '기계'가 되기를 바라는 학부모들, 관리자들.. 지금의 교육제도 안에서는 '그들'도 어쩔 수 없는 문제니까 그냥 계속 이렇게 가야할까요? 답답해서 가끔은 이 버스에서 내리고 싶어요. 무엇을 하든 어차피 버스 안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아이들 예쁜 모습, 칭찬받아 마땅한 마음씀씀이.. 이런 것들이 더 많이, 더 자주 눈에 들어오고 서로 웃으며 그렇게 하루하루 살고 싶은데... 거의 매일 "오늘은 왜 일찍 가야하는데?" "조용히 해라!!"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ㅠㅠ

2006-06-22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6-06-22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교조가 욕먹는 건 딱 한 가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의식 때문이죠.(이건 교사들도 그렇고, 욕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전에 유시민이 국회의원 됐을 때, 넥타이 안 맸다고 난리치던 것들이, 민노당 의원들에겐 찍소리도 않거든요.(유시민이 노동자편이 아닌 줄 이미 그들은 알았던 거지요.)
교사들이 좀 천직인 듯, 헤벌쭉 단물이나 빨고 있으면 좋겠는데, 사사건건 시비고 트집이니 미워 죽겠는 겁니다.
조합원으로서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다면, <아이들 살리기>에 무게가 실리지 못하고, '성과급, 사학법, 교원 평가'같은 곁다리에 너무 올인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 투쟁들이 물론 민주화나 아이들 살리기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 당장 학원에서 열두 시 넘어 하교하는 중딩들을 보면, 성과급 투쟁이나 교원 평가 저지 투쟁이 얼마나 가치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해요.
전교조를 온 국민이 지지한 것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며 일어선 그 정신을 지지한 것이지, 교사가 노동자고, 그래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현실을 지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교사도 노동자고, 노동권을 박탈당하기 전에 투쟁으로 쟁취해야 하지만, 해콩샘 눈처럼 <아이들>이 먼저 밟혀야 하는 것 아닐까 합니다.
전교조는 분명 이번 비판을 지혜롭게 이겨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조합이 교사들에게 주어야 할 것은, <아이들 살리기>에 조합원이 앞장서고 있다는 자부심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해콩 샘. 우린 결코 버스에서 내릴 수 없는 운명이랍니다. 콩나물 시루같은 만원 버스지만, 그래서 갖가지 불만들이 터져 나오지만, 분명 그 버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아나키 2006-06-2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경씨를 비롯해서 보수정치권으로 기어들어간 과거의 활동가들을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이제 그 사람들은 "운동"에 걸림돌밖에는 되지 않는다는겁니다

끝까지 투쟁하지 않고 보수정치권으로 들어갔으면 부끄러운줄이나 알아야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주절대기나 하고 한심한 것들
 
 전출처 : 바람구두 > 청계천 8가

청계천 8가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 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 솟은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칠흙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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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는 죽지 않았다.
자기기만과 굴욕적 삶으로 얼룩진 아큐 여자가 없었지만 그의 후손은 세계 도처에 있다
머리를 쓰지 말고 운명에 맡기면 보살펴준다는 미국의 아큐
‘포레스트 검프’ 나 같은 ‘아큐’의 눈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겨레
» 루쉰은 중편 <아큐정전>을 통해 자기기만과 망각, 비겁 등 퇴영적 속성에 절어 있던 근대 중국인의 영혼을 드러내고 비판했다. 루쉰은 소설집 <외침> 서문에서 중국인들을 밀폐된 방에서 고통도 모른 채 질식당해 죽어가는 사람들에 비유하면서 고통스럽더라도 그들 중 일부라도 깨워서 방을 때려 부수게 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사진은 아큐 조각상.
[관련기사]

변하는 중국, 변하지 않는 중국 ④

TV 채널 파도타기를 하다 <포레스트 검프>를 보았다. 다른 날 같았으면 그냥 다른 채널로 돌려버렸을 텐데 그날따라 마침 영화가 막 시작될 때인데다가 왠지 가볍게 머리 좀 식히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어떤 걸 가질지 아무도 알 수 없어.” TV는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혹 재미있는 프로가 걸릴지 아무도 알 수 없어. 그래 일단 뚜껑을 열어보았다. 그렇지만 뭐 눈에 뭐만 보인다고 영화를 보는 동안 루쉰의 <아큐정전> 생각이 났다. 왜냐하면 포레스트 검프가 미국의 아큐로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 아큐보다 더 황당했다. 아큐가 언제 미국에 건너간 거야?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혹시 하는 마음으로 <포레스트 검프>의 중국판 제목을 찾아보니 역시 <아감정전(阿甘正傳)>이었다. 이 영화의 중국판 제목을 붙인 사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아큐는 중국의 국어사전에도 올라 있고, 아큐정신, 정신승리법 같은 말은 일상어가 될 정도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고 보니 아감정전(1994) 이전에 <아비정전>(1990)이라는 왕자웨이의 영화도 있었지. 아큐정전 삼부작? 여기서 아(阿)는 중국인들이 성이나 이름 앞에 붙여 친근감을 나타내는 글자로, 아감이란 포레스트 검프에서 성(姓)인 검프에 아를 붙여 친근하게 만든 호칭이다. 이처럼 가끔 알고 있는 영화를 중국에서 어떻게 제목을 붙였나 확인해보곤 하는데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엽기적인 그녀>는 <야만여우(野蠻女友)>, <매트릭스>는 <흑색제국(黑色帝國)>, <주홍글씨>는 아주 심플하게 그냥 <홍자(紅字)> 같은 식이다. 이번엔 거꾸로 아큐정전의 영어 제목을 찾아보았다. <아큐의 진짜 이야기(The true story of Ah Q)>였다. 아큐는 실존인물이 아니므로 아큐에 대한 진짜 이야기가 존재할 수 없지만 루쉰이 익살스럽게 정전(正傳)이라고 한 것을 직역한 것이다. 좌우간 포레스트 검프는 나로 하여금 ‘포레스트스럽게’ 아큐정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포레스트 중국제목 ‘아감정전’

아큐정전은 신해혁명을 전후로 한 시기에 미장이라는 농촌에서 날품팔이로 살아가는 아큐라는 최하층 농민의 일대기다. 그는 성명도 불분명하고 서른 살이 넘도록 집도 여자도 없다. 수없이 많은 굴욕을 당하고 살지만 그것을 직시하지 못하고 도리어 이른바 정신승리법이라는 특유의 자기 위안의 방법으로 ‘승리’를 구가하며 산다. 그렇지만 가끔 근방 암자에 사는 젊은 비구니와 같은 약자에게 자신이 강자에게 받은 굴욕과 분노를 전가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급기야 아큐는 자기를 핍박하던 사람들이 혁명을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혁명당에 가담한 것처럼 행세하다가 불쌍하게도 총살당해 죽는다는 이야기다.

중국 공산당이 창당한 해인 1921년에서 22년 사이에 씌어진 그의 유일한 중편소설로 그의 콧수염 길이 정도의 분량이다. 루쉰이 이러한 아큐를 통해 침묵하는 중국인의 영혼을 그려내고 그러한 국민성을 비판하고자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루쉰은 사상 혁명의 측면에서 아큐의 자기 기만, 놀라운 망각, 비겁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이러한 아큐가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사람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내가 다만 현재 이전의 어느 한 시기를 써내었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아큐에게서) 본 것은 결코 현대의 전신이 아니라 이후의 일, 아니 20, 30년 뒤의 일이 아닐까 한다.” 1981년 루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영화 아큐정전 마지막에는 의미심장하게도 이런 말도 나온다. “아큐는 죽었다. 아큐는 비록 여자가 없었지만 그러나 비구니가 저주했던 것처럼 자손이 끊기지 않았다. 고증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아큐에게는 후손이 있었다. 후손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아주 번성해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큐의 후손들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화의 시대에 세계 도처에 있을 것이다. 또한 아큐가 항상 약자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30년대 중반에 <중국의 붉은 별>의 작가로 유명한 에드거 스노와 대화하면서 루쉰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스노가 루쉰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아큐가 현재도 이전과 같이 여전히 많다고 말하지는 않겠죠?” 루쉰은 크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전보다 더욱 나쁩니다. 그들은 현재 국가를 관리하고 있어요.” 당시 국가를 장악하고 있던 국민당 신군벌이 또 다른 의미의 아큐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과거 황제의 노예였던 자들이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고 나서 백성들을 새롭게 노예화하고 있음을 비판한 것이다.

날품팔이 최하층 농민 일대기

» 할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미국식 아큐 이야기다. 머리를 쓰지 말고, 운명과 신의 은혜에 만사를 맡긴 채 착하게 살면 형통한다는 검프적 세계관은 옳을까? 사진은 영화에서 검프가 탁구시합을 하는 장면.
그러나 루쉰은 아큐를 냉혹하게 비판만 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소설을 자세히 읽어보면 뒷부분으로 갈수록 루쉰은 점차 아큐의 처지와 운명을 은근히 안타깝게 동정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아큐의 죽음을 보고 통쾌하게 생각되기는커녕 도리어 비애를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루쉰은 아큐로 하여금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정신승리법에서 벗어나 현실을 깨닫도록 만든다. 그제야 아큐는 비로소 “사람살려!”라고 외치게 된다. 이미 때는 늦었지만…. 이 소설이 실려 있는 소설집 <외침>의 서문에는 이런 말이 있다. “가령 철로 밀폐된 방이 있다고 치세. 창문은 하나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방일세.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곤히 잠들고 있어. 그러니 오래 지나지 않아 모두가 다 질식해 죽어버릴 것일세. 그러나 그들은 혼수상태에서 그대로 죽음으로 옮겨가는 거니까 죽음의 슬픔은 느끼지 못하는 거야. 그런데 자네가 지금 큰 소리를 쳐서, 다소 의식이 뚜렷한 몇 사람들을 깨웠다고 하면, 그들 불행한 사람들에게 도저히 구원의 길이 없는 임종의 고통을 맛보게 하는 것이 되는데, 그래도 자네는 그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꼴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아큐로 하여금 영원히 정신승리법 속에 있도록 그냥 놔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미 눈뜬 사람이 몇이라도 있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때려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아큐를 깨닫게 하고 죽인 것은 루쉰이 미래의 희망이 완전히 없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한편 중국의 자유주의자들에게 그들의 선구자로 새롭게 조명받는 후스(胡適)도 일찍이 루쉰과 비슷하게 중국인의 분명하지 않은 태도를 예리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평소 즐겨 쓰는 “차부뚜어(差不多, 대충이라는 뜻)라는 말을 의인화한 <차부뚜어 선생의 전기(差不多先生傳)>가 그것이다. 이 대충 선생은 어려서부터 흰 설탕과 흑설탕을, 십(十) 자와 천(千) 자를 잘 구분하지 않았다. 뭐 그리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나중에 이 선생이 중한 병에 걸려 의사를 부르게 되었는데 집사람이 불러온 것은 수의사였다. 수의사나 의사나 차이가 많지 않다고 하여 대충 치료를 받다가 죽었다. 죽는 순간에도 그는 죽는 것과 사는 것은 대충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원융무애하게’ 죽었다. 루쉰과 대조적으로 후스는 아주 냉정하게 이 대충 선생을 죽는 순간에도 깨닫게 하지 않았다.

대학교 때인가 아큐정전을 처음 읽었을 때 아큐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어디있어? 그런데 중국철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불현듯 점점 바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총명하면 친구가 없다”, “똑똑한 것보다 멍청해지기가 더 어렵다(難得糊塗)”,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는 “바보 같았다”, “큰 지혜는 어리석은 것과 같다”는 등등의 말들을 자주 접하면서 나도 점차 아큐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아니 나를 지탱하게 만든 건 8할이 아큐정신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것이 진짜 바보가 되라는 것이 아니고 바보처럼 가장하라는 말이지만 아무튼 아큐를 남 비판하듯 함부로 비웃기는 어려웠다. 한번은 중의(中醫)를 전공한 중국인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중국철학을 공부한다고 하니까 그 분이 내게 중국철학의 최고의 경지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 저절로 한가로운” 것이 아니라 한가롭지 않은 마음을 숨기고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 황희경/영산대 교수·중국철학
그러자 그 분 말씀이 몽롱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하마터면 살짝 깨달을 뻔했다. 그 분 말대로 역설적으로 아큐가 되는 것이 내가 공부하는 중국철학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아직 완전히 아큐가 못되어 괴로운지도 모른다.

중국 철학 최고경지 ‘아큐스러움’

하지만 나 같은 아큐의 눈에도 머리를 쓰지 말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면 신이 알아서 보살펴 준다는 식의 포레스트 검프의 미국 아큐 이야기는 정말이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큐를 비판해도 아큐는 이렇게 많거늘, 이렇게 포레스트를 구세주처럼 그리기까지 하니 아주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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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6-06-17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귀천(歸天)


                      -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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