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아늑한 꿈을 꾸다가 번쩍 눈을 떴다. 7시! 힘껏 노느라 나름대로 피곤한데다 늦게 자서 알람소리도 못 들었나보다. 1103호실 사람들 밥 먹으러 갈 때까지 이리 저리 기다리다가 7시 반쯤 씻고 오늘부터 수업할 전공 교재 좀 읽고 8시 반에 방을 나섰다.
교육개혁과 교육공학 나머지 수업을 다 듣고 점심 먹고 드디어 전공수업! 민족문화추진회 성백효 선생님의 ‘한문 국역 상에 있어서 주의점’을 두 시간 정도 들었다. 夫, 盖, 凡 등의 발어사는 문장에 있어서 내용의 전환을 나타내므로 무리하게 풀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웠다. 서울 구기동의 ‘민추’에서 푹푹 찌는 한 여름 에어컨도 없이 선생님의 맹자 수업을 들은 지 십 년도 넘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많이 다르시다. 못 알아볼 만큼.
마친 시간이 4시! 잘 됐다. ‘신원사’ 가볼 수 있겠다. ㅇ주에게 같이 갈래 물었지만 도서관 가서 책 찾아볼 거란다. 후배들이 몇 있지만 뭐... 혼자도 좋다.
택시를 타고 강을 건넜다. 보아둔 버스정류소에서 新元寺 가는 버스가 10번인 걸 확인하고 죽치고 앉아서 빵도 먹고 책도 보고 8월 6일 부여시티투어도 신청했다. 50분쯤 기다려 5시 25분에서야 나타나신다. “신원사에서 막차는 몇 시인가요?” “9시 넘어도 있어요.” “^^” 고등학생들인지 교복차림의 남녀 학생들이 꽤 눈에 뜨인다. 방학인데... 보충수업하고 돌아가나? 지금.. 5시 반인데? 그럼 뭐지 이 아이들은? 비평준화 지역인 공주는 전통적 '교육도시'! 오늘 수업한 교육공학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이라는 말이 들어갈 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피곤해진다. 이 여름에 저 교복, 교수님의 말처럼 우리 보기 좋자고 아이들 입장은 생각 못한다. 얼마나 갑갑하고 불편할까? 불편함을 느끼지 못 할 만큼, 아니 저 교복에 자부심을 느낀다면 그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만 말짱한 나의 선입견인지 편견인지 정말 순수해 보이고 착해 보이는 그 아이들은 나즈막한 시골마을에서 하나 둘씩 내렸다. 푸르고 넓은 들녘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아득해진다.
시간과 공간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 같다. 인도에서도, 중국에서도, 그들이 느끼는 시간감이나 공간감은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 땅의 역사성과도 일정부분 맥락이 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곳, 공주에서도 내게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공간은 확대되어 보이며 백제가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한다. 막막한 인도의 어떤 곳에서는 불현듯 고대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공간이 넓어질수록 시간도 천천히 흐르며 마음도 넓어지는 것 같은... 착각일까?
신원사는 호젓했다. 아니 스산했다. 5시 55분 버스에서 내려 절집으로 올라갔다. 혼자 걷는 길도 아주 좋다. 보물도 없고 문화재 등록된 것도 없고 조금 오래 건물이라곤 中嶽壇과 오층석탑이 전부였지만 천천히 걷기 좋았다. 대웅전 옆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 배롱나무는 이제껏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오래 산 듯 보였다. 넓직한 꽃그늘과 튼튼하고 미끈한 줄기! 정말 오랜만에 그 분께 삼배를 올리고 나오면서 잘 생긴 젊은 스님과 스쳤다. 배롱나무의 연세를 여쭤보고 싶었지만 감히 속세인 주제에 말 걸기가 조심스러워서... 역시 나.. 소심하다! 오랜 중악단 건물과 탑을 돌아보고 막 돌아나오는 등 뒤로 7시 사찰의 저녁 종소리가 흐르고 있다.
일부러 시내버스터미널에 내려 근처 재래시장을 한바퀴 돌고 어떻게 돌아갈까 하다가 에잇 걷지 뭐 싶어서 공산성 쪽으로 털레털레... 버스 안에서 먹은 양파 베이글이 아직 위에 느껴진다. 배는 더부룩.. 저녁은 어쩌지? 공산성 근처에 왔을 때 눈에 확 띠는 ‘오채비빔밥’ 간판!! 돌진해 들어갔다. 된장, 고추장에 멸치를 넣어 비벼먹는다는 설명 듣고 한 술.. 뭐 나쁘진 않다. 그리고 비교적 싸다. 이 정도에 오천 원이면 만족스럽지. 반찬도 깔끔하고 실내도 쾌적하다. 밥을 대접할 일이 있다면 이곳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 정식도 있고 밤으로 만든 묵 비빔밥도 있단다. 몇 몇 친구얼굴이 쓰윽 지나간다. 금강줄기를 따라 걸어보겠다던 우리 샘들 십여 분. 이곳도 금강 곁이니 혹 연락이 오면 밥이라도 대접해드려야지. 그리고 방짝지샘, 언니처럼 나를 어찌나 챙겨주는지 갚아드리고 싶다. 거의 십년 만에 이곳에서 처음 만난 동기 ㅇ주에게도 밥을 한 번 사고 싶고. 이래저래 고마운 얼굴들.
공산성 앞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 잔 뽑아들고 조명빨 현란한 금강대교를 천천히 건넌 후, 금강 가에서 걷기 운동에 열심인 공주시민들 틈에 함께 걸으며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