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비전하우스까지 잘 찾아온 대견한 가족들... ^^ 후딱 옷 갈아입고 물건 몇 가지 챙겨서 합류~ 지난 번 신원사 다녀오던 길에 찜해둔 밥집에 가서 거하게 밥을 먹었다. 지난 주에 보고 일주일만에 보는 건데 뭣이 이리 반가운지...


금강을 끼고 내 닫는 '백제큰길'로 한 시간 가량 지는 해를 바라보며 드라이브를 즐겼다. 풀밭에 꺼벙이들이 어미 까투리를 좇아 달려가는 게 보여 서둘러 적당히 차를 세우고 우루루 떼거지로 내려 쫓아갔지만 녀석들, 벌써 사라지고 없다. 원래 그 놈들이 그렇게 빠르단다. 빠르기도 하거니와 낮은 풀숲 사이에 완벽하게 몸을 숨기기 때문에 왠만해서는 잡을 수 없다는 엄마, 아버지 설명이다. 물가에 오면 물수제비 뜨는 건 거의 본능인가 보다. 오늘 저녁, 금강이 메워지지 않은 게 다행이지.


어디서 묵을까 하다가 내일 들러볼 겸 동학사 앞에서 민박을 하자고 합의. 먼 길 달려서 찾아간 동학사 앞. 우와~ 그렇게 번화(?)할 줄이야. 민박집도 많고 주말이라 그런지 놀러온 사람들이 많다. 갑사나 신원사 앞의 한적함과 정말 대조적이다. 기와 지붕이 맘에 드는 한 곳 민박집을 잡아 들어갔다. but 무늬만 전통가옥이었다. --; 넓은 방에 창이 커서 시원하지만... 화장실과 목욕탕이 불편한데다가 밤 10시가량 되었나.. 바로 옆 민박에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놀러왔는지 게임하고 노래하고 시끌시끌 + 또 다른 민박의 피서객들이 구워대는 고기냄새, 음식냄새... 피곤했는지 가족들은 잘도 잔다. 1시까지 못 보던 TV 실컷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들 일찍 눈이 떠져서 8시반 쯤엔 민박집을 나왔다. 동학사까지 천천히 걸었다. 아침부터 날씨가 장난 아니다. 푹푹 삶아댄다. 하긴 어제 공주의 최고 기온이 36도였다고 하니.. 헉헉.. 동학사는 생각보다 작았다. 그리고 이제껏 보아온 절집의 느낌-시대가 느껴지는 건물, 불상, 부도나 탑.. -은 거의 없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 도량이란다. 아뭏든 그 뒤로 펼쳐진 계룡산을 바라보며 기가 팍 죽었다. 이 날씨에 저 곳을 걸어올라가다가는 죽는 거 아닐까? 계룡산은 꼭 올라보리라 맘 먹고 큰소리 땅땅 쳐놨는데 할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얄궂은 포즈로 가족들이랑 사진찍고 놀면서 천천히 내려왔다. 이젠 어디로? 부여로 가자고 한다. 부여... 시티투어 신청해뒀는데...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가지 뭐.


다시 공주로 들어가 점심을 먹고 부여로 향했다. 꼬박꼬박 졸다가 눈을 떠보니 부여! 어디지? 이래 저래 모르는 길을 물어물어 국립부여박물관 도착! 여러가지를 봤지만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금동봉황향로이다. 너무나 섬세한 공예품! 입이 쩍 벌어졌다. 늦게 나온다는 타박을 들으면서도 기념엽서 사고 둘째 조카 성재녀석 기념품 하나 쥐어서 나왔다. 연꽃이 가득 피었다는 궁남지로 향했다. 생각보다 넓다. 분홍색, 흰색 커다란 꽃송이들. 절정은 지났지만 남은 꽃이 그럭저럭 많다. 그나저나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대기에서 품어대는 볕이 장난이 아닌데 오늘 더위 먹는 거 아닌지 몰라. 헉헉~~ 마지막으로 부소산성을 돌며 여러 누각과 고란사 낙화암을 난생 처음으로 봤다. 흠... 가끔은 상상하는 행복을 오래오래 누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낙화암이야 삼천궁녀의 전설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게 사실이라면 더 열받을 나에겐 별 의미가 없기도 하거니와 이미 태종대의 기암절벽을 많이 보아온 내 눈에 흡족하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를 잔뜩했던, 이름도 독특고상한 '고란사'는... --; 공사중이라 더 어수선했다. 한 가지 발견은... 부처님의 얼굴보다 더 부드러운, 대웅전 기와를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계시던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 일하시는 모습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어찔어찔한 이런 뙤약볕에 저런 중노동을 하시며 짜증도 안 나시나? 땀을 줄줄 흘리시면서도 농담도 하고 연신 웃으시는 얼굴... 부처님이 따로 없다. 무슨 일이든 저리 한다면 복 받을거다.


부소산성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 넘게 걸렸다. 엄마는 어제 '그 큰' 국립박물관 도느라 뻐근한 다리로 늘 제일 앞장서서 걷는다! 암튼 대단하시다. 아버지 따라 차에 남은 큰 조카 녀석이 괜히 얄밉다. 부소산성 아래 관광안내소에 들어 여러 가지 안내물들을 챙겨서 나왔다. 이젠 어디로? 마지막 남은 일요일은 공주근처를 둘러보자 한다. 무령왕릉과 공주박물관, 그리고 갑사.. 나는 벌써 다 둘러본 곳인데... ㅠㅠ 다른 곳 안 될까? 설득작업 실패했다. 다시 공주로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에 공주관광안내서에서 보아둔 '계룡백일주' 공장에 들렀다. 백화점에 납품하는 것 보다 40%정도 싸단다. 문을 여는 순간 향긋했는데... 흠흠... 기대된다.


백제체육관 뒤 쪽 주로 온천 온 관광객들을 위한 모텔에 방을 정했다. 저녁은? 시내쪽에서 공산성 조금 못 가서 공산성 기슭에 있는 작은 밥집이 생각났다. 겉에서 보기에 너무 허름해서 권하기는 좀 거시기했는데 우리 가족들은 오히려 그런 소박한 집을 좋아한다. 비전하우스 18층 스카이라운지에서 돈까스 먹을 기대로 부풀어 있던 두 조카 녀석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으며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실내도 넓고 깔끔하다. 올갱이 된장국인줄 알았는데 우렁된장국이다. 우렁이 먹고 한 번 크게 혼난 적 있는 엄마가 그냥 나오시려고 하니 주인 할머니 "우리집 유명한 집이에요~" 하신다. 믿고 먹어보라는 말에 주문하고. 나온 음식은 우렁된장국에 각종 나물반찬. 그리고 보리 섞은 밥을 대접에 담아주셨다. 우리 가족들이 진짜 좋아하는 나물에 된장 넣고 푹푹 비벼먹는 비빔밥이다. 게다가 삶은 호박잎까지! 공기밥을 두 그릇이나 더 시켜서 그야말고 배꼽이 빠지도록 잘~ 먹었다. 진심으로 '잘 먹었습니다.' 인사하고 나오는 기쁨.


비전하우스에 들러 갈아입을 옷과 이참에 부산으로 내려보낼 물건 몇 가지를 챙겨서 나오는데 날씨가 영 심상찮더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며 바람도 씽씽 불더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공주대 뒷문 근처 뚜레쥬르 빵집에서 그렇게 소나기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한 시간 안에 그치기는 힘들 것 같아 비를 맞으며 빵을 사서 조명 찬란한 백제대교를 건더 숙소로 갔다.


다들 너무 지쳐 씻기 바빴다. 비바람에 번개는 여전하고. 대전 무슨 역에서는 낙뢰로 열차가 몇시간이나 지연됐단다. 형부랑 계룡 백일주 살짝 맛보고 맥주 한 캔도 나눠 마시고 '중국견문록' 조금 읽다가 잠들었다. 어느새 비 그치고 반달, 달빛밝다.


10시쯤 무령왕릉을 돌았다. 어제만큼이나 더워서 왕릉은 돌아볼 엄두도 나지 않는지 가족들은 대충 모형만 둘러보고 박물관으로 가자고 했다. 박물관에서도 늘 내가 꼴찌였다. 무령왕릉에서 나온 부장품들은 정말 대단하다. 진묘수...돼지를 닮은 그 상상의 동물. 무섭기보다는 너무 귀여워서. ^^ 기념픔 코너에 붙어서 있는데 두 조카 녀석이랑 언니는 탁본 실습과 찰흙을 이용한 백제 문양 본뜨기를 한다고 정신이 없다. 다른 가족들은 벌써 차로 가버리고.


어제 저녁을 잘 먹었었던 '토속식당'으로 가서 점심도 먹었다. 똑 같은 메뉴지만 질리지도 않고 참 맛난다. 갑사에는 계곡 물놀이를 하는 피서객들이 진치고 있었다. 동학사 계곡처럼 물이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쉬어가기는 충분한 것 같다. 숲길을 살살 걸어 올가가서 대웅전, 우탑, 당간지주를 다시 둘러보고 내려왔다. 강냉이를 하나씩 물고 논산 개태사로!


개태사 앞에 가서야 이구동성으로 "와본 곳"이라했다. 재작년 중국어 연수를 받아야했던 나만 빼고 온 가족이 들렀던 곳이란다. 나야 재수지만. "가까우니까 나랑 같이 가자" 착한 큰 조카녀석과 엄청나게 큰 솥과 대웅전의 세 분 부처님, 팔각의 독특한 집에 모셔진 동자부처님을 모두 둘러보고 나왔다.


대전까지 태워주겠단다. 시외버스 타면 되지뭐.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돌아왔다. 계속 졸다보니 비전하우스가 보인다. 숙소로 와서 부랴부랴 샤워하고 세탁기 빨래 돌리고 혼자 저녁 먹으면서 가슴 속이 괜히 아리~ 하다. 타지에서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 익숙해지지 않는 일 가운데 하나다. 하루라도 시간이 있었다면 부산으로 따라가 버렸을거다. 내일부터 다시 강의 들어야하고 과제도 해야하고... 에구... 이젠 슬슬 집 생각이 난다. 국립박물관, 피카소전, 인상파전, 계룡산 등반 등등 맘속으로 계획한 일정 빡빡하지만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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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06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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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자들의 10계명


 

1. 남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


자기 사랑이란 자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


사랑하는 일, 그리고 사랑을 주고받는 일은 모두 사랑을 듬뿍 받은 자신과 함께 출발한다.



2.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라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검증될 수 없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의 가치를 구하려 든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가치가 될 뿐이다.



3. 자신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를 떼라


‘타고난 본성’ 같은 것은 없다.


그 말 자체는 사람들을 멋대로 분류하고 구실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나는 내 선택의 총화이며 내가 간직한 꼬리표들은 모두 ‘지금까지는 그랬지’라는 새 꼬리표로 바꿀 수 있다.



4. 자책과 걱정은 버려라


현재가 바로 자책감이나 걱정에 사로잡힌 행위를 이해하는 열쇠다.


무익한 자책감과 걱정은 모두 현실도피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행위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고 과거나 미래에 매몰되어 현재의 순간들을 허깨비처럼 보내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5. 미지의 세계를 즐겨라


불안한 사람만이 안정을 갈구한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새롭고 가슴 설레는 활동에 자리를 내줄 준비가 되어 있다.



6. 의무에 매이지 말라


절대적인 것은 없다.


늘 이치에 들어맞고 모든 경우에 최고의 선을 실현하는 법이나 규칙 따위는 없다.


그보다는 융통성이 훨씬 높이 살만한 덕목이다.



7. 정의의 덫에 빠지지 말라


세상이 너무도 질서정연하고 모든 것이 공평무사해야 한다면 어떤 생물도 하루를 버텨나지 못한다.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어찌 모든 이의 이익을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8. 결코 뒤로 미루지 말라


일을 미루는 데에는 땀 한 방울도 필요하지 않다.


사실 미룬다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면 하는 것이고, 하지 않는 것은 뒤로 미루는 게 아니라 그냥 하지 않는 것이다.


미루기는 사실상 최고의 현실도피다.



9.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라


정신적 자립이란 온갖 의무 관계, 그리고 타인의 지시를 받아서 행동하는 일에서 온전히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립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10. 화에 휩쓸리지 말라


화라는 것은 기대가 총족되지 않았을 때 경험하는 자기 통제가 불가능한 반응을 가리킨다.


단순히 골치가 아프다거나 짜증이 나는 것은 화가 아니다.


화의 핵심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높게 평가하고 다른 사람에게 통제당하지 않으면 당장 끓어오르는 화 때문에 자신이 상처 입을 일은 없다.



-웨인 W.다이어의 '행복한 이기주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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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1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기주의자가 되리라!!
 

내가 서울로 갈 생각이었다. 내일, 그러니까 토요일 첫차로 서울 가서 가족들이랑 합류, 용산 국립박물관을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날짜를 서로 확실히 의논하지 않는 바람에 ㅠㅠ 부모님과 언니네 식구들, 지금 열심히 박물관을 둘러보는 중이란다. 수업 중에 계속 전화를 해대더니 '첫 차로 온다더니 어디냐'라는 황당한 문자를 보냈다. 이런... --; 하는 수 없지. 내 계획을 수정해야지.

오늘 수업 마치면 가족들과 합류, 공주 근처 주로 내가 안 본 곳 - 지난 번 실패한 동학사나 두 번 가봤지만 그래도 좋을 갑사나, 아님 마곡사를 한 번 더 가도 좋고 무령왕릉, 공주박물관을 한 번 더 보는 것도 괜찮지. 예산 수덕사, 논산 관촉사, 개태사 등등은 필수이고- 을 구경시켜주고 오늘 밤엔 가족들이랑 함께 자고 내일 가족들 내려보낸 후 혼자 놀다가 기숙사로 돌아와 자고 일요일엔 부여로 시티투어 갈꺼다.

아~ 슬슬 과제물이 맘에 걸리지만... 몰라 우찌 되겠지뭐. 계룡산도 함 타줘야하는데... 등산화도 가지고 왔으니..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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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세기_피카소]
전시일정 : 2006년 05월 20일 ~ 2006년 09월 03일
전시장소 :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2층, 3층
 
 
전시회설명 :
1881년 스페인의 말라가(Malaga)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1973년 사망하기까지 20세기의 미술사조를 창조하고 이끌고 또 지배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걸출한 예술가였다. 80년 동안의 작가로서의 삶을 살면서 무려 5만점에 이르는 엄청난 작품을 남긴 그는 20세기 미술의 독보적인 존재로 전 세계인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 시킨 세기의 예술가이다. 그러므로 20세기는 피카소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한 세기를 가로지르는 왕성한 작품활동을 통해 20세기는 가히 피카소의 세기라고 지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 전시는 20세기 미술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칭송 받는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세계를 국내 최초로 대규모 회고전 양식을 빌어 대중의 눈을 통해 조명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기획된 전시이다.
피카소의 1895년부터 1973년까지 작가생활은 크게 7개의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초기 청색시대와 장미시대, 입체파시대와 1차 대전 직후 1920년대의 고전주의시대 그리고 초현실주의적 인체 변형의 시대, 게르니카와 2차 대전시기, 50년대 이후 왕성한 창작시기가 그것이다. 본 전시에서는 초기에서 말기에 이르는 시기별 대표작이 선보인다. 청색시대의 대표작 “솔레르씨 가족”(1903)을 시작으로, 입체파시대의 “비둘기”(1910), 고전주의 시대의 “우물가의 세 여인”(1921), 초현실주의 시대의 “무용”(1927)), “거울 앞의 잠자는 여인”(1932), 게르니카 시대의 “우는 여인”(1937), 그리고 말기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1961) “모자를 쓰고 앉아 있는 사람”(1972) 등이 피카소의 대표적인 걸작이자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의 테마는 “피카소의 사람들(People of Picasso)”이다. 입체파시대에 집중된 정물화를 제외하면 피카소의 작품은 대부분이 인물을 다루고 있다. 연대기 적인 서술을 곁들인 전시구성은 인물을 주된 테마로 해서 초기에서 말기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작가의 연대기적, 양식적 변화와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고자 한다. 관람객은 이 전시를 통해 피카소의 여인들의 초상으로부터 그의 자식들, 역사서나 상상으로부터 만들어낸 인물들, 작업실에서의 다양한 자화상과 같은 작품을 통해 피카소의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피카소가 일생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만나는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은 흔히 알려진 바대로 그의 삶을 함께 한 여인들의 만남을 통해 변화하고 발전 해왔다. 피카소가 전 생애를 통해 만난 여인들의 숫자는 정확하지는 않고 또 얼마나 많은 숫자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의 삶에 함께 한 여인들은 그의 작품 속에 명확히 드러나있다.
이번 전시에는 피카소의 여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한데 모은 별도의 전시실이 마련된다. 최초의 여인 페르낭드 올리비에(1904-1912 ; 연도는 피카소와 관계시기) 로부터 에바 구엘(1912-1915), 첫 부인인 올가 코크로바(1917-1918), 마리 테레즈 발테르(1927-1937), 도라 마르(1936-1943), 프랑스와즈 질로(1943-1953) 그리고 두번째 부인이자 마지막 여인인 자클린느 로크(1952-1973) 에 이르는 피카소의 여인들이 피카소의 작품 속에 어떻게 그려지고 표현되었는가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만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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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0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빛을 그린 화가들 "인상파거장전" ]

전시 기간 : 2006 / 6 / 2 (금) - 2006 / 9 / 3 (일)
전시없는날 : 2006/6/26 (월) 2006/7/31 (월) 2006/8/28 (월)
시 간 : 10:00-20:00
가 격 : 일반 (대학생) 12,000원 초,중,고생 8,000원 미취학아동(4세이상) 6,000원 단체(30인이상) 2,000원 할인
회원할인 : 골드/블루(일반)회원 10%(일반회원 2매, 골드회원 4매 한도)
장 소 : 한가람미술관
장 르 : 미술
주 최 : (주)문화방송
전화 번호 : 02)789-3727
기 타 : 전시장내 화환반입은 금지합니다.
 

■ 1층 고고관·역사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은 그 곳에 있었다. 후손들에게 기록을 남긴 역사(歷史)시대의 모습도, 지혜가 미치지 못해 문자를 남길 수 없어 유물로만 자취를 남긴 선사(先史) 시대의 모습도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박물관 건물로 들어서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동관으로 줄지어 이어진다.1층에 들어서면 상설전시관인 고고관과 역사관이 관람객을 맞는다.

구석기 시대에서 남북국 시대까지 한눈에

동관 1층 101∼110 전시실이 바로 고고관이다.

첫 걸음을 떼는 순간 세계전도와 함께 일본·중국·대한민국·세계고고학의 연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나 사회과부도·역사부도 등의 첫 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던 ‘빗살무늬토기’(신석기시대·서울 암사동 출토)는 관람객들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유물. 이어 ‘요령식 동검’(청동기시대·황경남도 신천 〃),‘산수무늬 벽돌’(백제·충남 부여 〃) 등이 눈길을 멈추게 한다.

마치 검은 돌처럼 바싹 말라버린 선사시대 ‘도토리’(신석기시대·경남 창녕 비봉리 〃)는 ‘갈판·갈돌’(〃·서울 암사동〃)과 함께 진열돼 있었다.500년 쯤 지나면 미니홈피 배경 음악이나 배경 화면을 사고 파는 전자화폐 ‘도토리’가 나란히 소개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선을 따라 청동기·초기 철기 유물들이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듯 스치며 지나간다.4∼6세기 고구려 고분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는 벽화는 ‘사신도’가 대표하고 있었다. 비록 모사품이지만 청룡·주작·백호·현무의 모습은 그 시절 고구려인의 호방한 기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백제실을 대표하는 ‘백제금동대향로’(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 앞에서는 좀처럼 관람객들이 눈을 떼지 못한다. 신선들이 산다는 박산(博山) 굽이굽이마다 상상의 동물들과 사람들의 모습으로 장식된 향로는 백제인들의 이상향을 엿보는 듯하다.

가야실에서 볼 수 있는 ‘투구’와 ‘말머리가리개’(부산 복천동 〃)는 외국 영화의 전투장비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관’과 ‘허리띠’ 앞에서도 관람객들은 오래 머문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아니었지만 발해실의 ‘용머리 장식’이나 ‘도깨비 기와’(중국 헤이룽장성〃)는 세상의 모든 나쁜 귀신을 쫓아낼 듯하다. 반면 두명의 부처가 함께 조각된 ‘발해불상’(발해 팔련성 〃)은 이민족도 너그러이 융합했던 민족의 포용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 이순신 장군이 쓰던 칼

딸을 시집보낸 왕도 범부와 다르지 않았음을…

고고관을 다돌고 나면 맞은 편 111∼120 전시실인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대표적 기록문화유산인 한글, 금속활자를 비롯해 금석문, 문서, 지도 등 당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역사관 첫 전시실인 한글실에는 한글의 과학성보다는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랜 어버이의 모습이 가슴에 더 와닿는다.‘새 집에 가서 밤에 잠이나 잘 잤느냐. 어제는 그리 덧없이 내어 보내 섭섭무료하기 가이 없어 하노라.’며 조선 현종 임금이 궐 밖으로 시집간 셋째 딸 명양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지도실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밑거름이 됐던 ‘동국대전도’가 2.3배 확대돼 바닥 타일로 꾸며져 있다. 허리를 굽혀 살펴보면서 걸어보면 마치 소인국의 ‘걸리버’가 된양 한반도 전체를 걷는 느낌이다.‘수선전도(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추정)’‘도성도’ 등 서울의 옛 모습을 담은 옛 지도도 직접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등기제도, 노비의 경제적 가치, 조선시대의 의술 등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쉽게 배울 수 있다. 다리가 아플 때쯤이면 소파나 영상물 상영관 등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시설이 전시관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정해진 동선대로 이동하지 않으면 시대 흐름을 놓칠 수 있으니 질서를 지키며 정해진 동선을 따르는 것이 좋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2층 미술관Ⅰ·기증관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올라서면 서예·회화·불교회화 등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Ⅰ’과 국내·외 각계각층 213명이 아무런 대가없이 박물관에 기증한 작품들이 있는 ‘기증관’이 있다. 특히 미술관Ⅰ에는 교과서에 실려 눈에 익은 작품들도 많아 직접 실물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윤두서 자화상

교과서에 실린 그림이네?

미술관Ⅰ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보물 527호)’. 춤추는 아이, 행상, 벼타작, 담배잎썰기, 씨름도 등이 눈길을 모은다. 꽉 짜인 원형 구도에 간략한 필선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았다. 작품 크기는 30㎝ 안팎으로 아담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씨름도’의 씨름꾼 옆에는 이들의 신발로 보이는 신발들이 내팽겨쳐져 있다. 그런데 하나는 짚신, 하나는 고급신발로 보이는 고무신이다. 신분의 차이가 나는데도 공평한 승부 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구경꾼들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경기를 보고 있다.‘허허, 저런’‘빨리 넘겨 버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구경꾼들의 긴박한 표정과는 달리 엿판을 매고 떠꺼머리 총각은 아랑곳없이 천연덕스럽게 가위를 치면서 열중하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얼핏보면 빛 바랜 누런 종이에 검은 잉크가 뭉개져 있는 듯하다. 한참 들여다보면 왼쪽 하단 현실세계를 보여주는 야산에서 오른편 상단 도원의 세계가 보인다. 세종대왕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풍경을 안견에게 설명해서 그리게 한 것이다. 전체적인 경관은 짙은 안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잘 어우러져있다. 꿈과 현실을 한폭의 화폭에 담은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도 떠오를 법하다.

▲ 몽유도원도

두루말이 형태로 폭이 20m에 이르는 이 작품은 당대 지적 권력이 집약된 작품이다. 작품 양쪽에 자신이 안평대군이 직접 지은 제발(題跋)뿐만 아니라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등 당대 20여명의 문사들의 찬시가 곁들였다. 다만 안타깝게도 진품은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려한 불교회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표현한 그림들이 모여있는 불교회화관에 들어서면 좀 더 화려해진다.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 등 선과 악을 상징하는 오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대웅전 석가모니 불상 뒤에 놓였던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은 석가가 인도 마가다국의 영취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한 사실을 화려한 색깔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원근법을 쓰지 않아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어찌보면 불화의 세계가 시공(時空)을 초월한 세계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가 쓴 자신의 별호에 대한 글인 ‘묵소거사 자찬(默笑居士 自讚)’은 날카로움 속에서 정중함과 정성을 담아 쓴 흔적이 엿보였다.‘침묵할 때 침묵하는 것은 때에 맞는 것이요, 웃어야 할 때 웃는 것은 중용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글귀가 담겨 있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에서는 내면의 세계까지 드러나는 듯하다.

문화재 사랑으로 만들어진 기증관

기증관은 11개실로 구성됐으며 이홍근 박병래 등 문화재를 기증한 이들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1946년 이희섭 선생이 금동불상 세 점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모두 213명이 청동기 금속공예 회화를 비롯한 국보 6점과 보물 32점 등 모두 2만 2091점을 기증했다. 특히 아시아민족조형문화연구소 운영자인 가네코 가즈시게 선생 등 일본인 3명도 기증자 대열에 포함돼 있어 눈에 띈다.

기증관에서는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그리스 청동 투구(국보 904호)를 볼 만하다. 투구는 1500년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경기에서 승리를 기원하고 신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제작됐다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 선생에게 부상으로 주어졌다. 투구는 베를린 박물관이 보관하다가 1986년 뒤늦게 손 선생에게 돌아왔다. 그는 이 투구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것이라 생각해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3층 아시아관·미술관Ⅱ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곳이나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특히 3층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인기 유물’과 그렇지 못한 ‘비인기 유물’ 사이의 차이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교과서를 통해 숱하게 봐 왔던 익숙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물도 ‘아시아관’에 전시돼 있다.

중국·일본·중앙아시아 유물도 전시

3층에는 306∼311호까지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중국·일본의 유물이 전시된 ‘아시아관’이 있으며,301∼305호까지 ‘미술관Ⅱ’에는 불상·청자·백자 등 우리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보통 301호부터 관람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3층에 올라오면 바로 왼쪽으로 ‘아시아관’입구인 306호가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 관람객들은 306호 ‘아시아관’을 먼저 관람하게 된다.

306호를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다시 나가 301호로 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시아관’을 얼른 둘러본 뒤 ‘미술관Ⅱ’에서 우리 유물의 아름다움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아시아관’에서 관람객들의 발걸음은 다른 전시관에 비해 조금 빨라지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2개의 팔을 가진 부처 조각상이나, 인자해 보이지 않는 부처의 미소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다른 전시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유물에 대해 박사 수준의 설명을 해 주던 엄마들도 이곳의 잘 모르는 유물들 앞에서는 슬쩍 조용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시아관’에서 잠시 풀 죽은 엄마들은 3층 북쪽에 자리잡은 ‘미술관Ⅱ’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볼것 많고 배울것 많은 고려청자 전시실

자비롭고 은은한 미소로 가득찬 301호 불교조각 전시실을 지나면, 전시된 모든 유물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친숙한 금속공예(302호)·청자 전시실(303호)을 지나게 된다.304호에는 수수한 느낌의 분청사기 전시실이 있고 305호에는 백자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유물에 대해 ‘일자무식’이라도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국보 78호 미륵반가사유상도 이곳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따로 마련된 방에 모셔진 이 불상은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전시실 자체에서 풍기는 위엄만으로도 관람객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미륵반가사유상 외에도 고려청자 전시실은 관람객들의 ‘정체현상’이 가장 심한 곳이다.

사방이 온통 비취색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걸음을 옮길 생각을 잠시 잊게 된다. 또 국보와 보물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메모하는 학생들의 손놀림도 빨라진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진열된 어느 것 하나 국보·보물 아닌 것이 없을 듯한데, 그 가운데서도 국보가 있고 보물이 있는 것을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층부터 차례로 관람하면서 올라왔다면 3층이 마지막 장소다. 특히 조선백자들이 전시된 305호를 마지막으로 관람하게 된다면, 어수선하게 관람했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차분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손목없는 부처님…왜?

“엄마, 왜 부처님 손이 없어요?”

3층을 관람하면서 엄마들이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301호에 마련된 불교조각 전시실에는 많은 불상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 3개 철조불좌상의 양 손목이 없다. 공교롭게도 ‘손목 없는 불상’3개 모두 철로 만들어졌으며 앉아 있는 자세도 비슷하다.

첫번째 ‘손목 없는 불상’은 301호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볼 수 있다. 약 2m크기이며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충남 서산군 운산면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두번째는 충남 서산군 보원사 터에서 출토 된 것으로 11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이며, 세번째는 10세기에 만들어져 경기 포천군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손목 없는 불상’에 대해 불상 전문가인 홍익대 김리나 교수는 “불상의 손목은 다른 곳에 비해 가늘고 몸체에서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누군가 고의로 잘랐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불상의 손 모양새(손갖춤)는 부처나 보살이 깨달은 중생 구제의 소원을 밖으로 표시하기 위해 짓는 것으로 부처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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