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과의 약속 시간 5시 반, 박정자삼거리 (주1) 박정자상회(편의점이었는데...) 앞! 새벽 4시10분에 알람 맞춰놓고 스스로 못 미더워 20분에 모닝콜 맞춰놓고 잠~. 선풍기가 작동하지 않아 푹푹 찌고, 옥상 위의 그 분(주2)이 가끔 천장으로 내려와 잠을 방해했으나 12시 반에는 잠든 것 같은.

4시 10분! 퍼뜩 눈이 떠졌다. 씻고 배낭에 이것 저것-사과 네 개, 떡 두 개, 양갱 두 개, 물 두병, 모자, 수건 등- 챙겨넣고 등산화 끈 조이고 5시에 숙소를  나섰다. "박정자 삼거리까지 얼마면 될까요?" "미터기 꺽으면 만오천 원 나와요" 한 10분쯤 쌩쌩 달리니 두 개의 큰 느티나무가 보인다. 그 아래 평상에서 할아버지께서 뭔가 열심히 다듬으시고. 조금씩 조금씩 밝아오는 여명. 멋진걸... 5시 32분쯤? "해콩님이시죠?" 앗, 멋진 * 님 등장. 아니 이렇게 젊은?? !그랬었군!!  -.,-

무작정 따라갔다. 장군봉이라했는데 거의 암벽등반 수준. 그 긴 다리로 성큼성큼 앞서 가시니 내 짧은 다리로는 부지런히 움직일 수 밖에. 천천히 천천히.. 힘들까봐 배려해주시는 게 느껴졌다. 사과 안 알씩 베어먹고. 정상에 올랐는데 겨우 500m! --;; 정상인데? 이렇게 열심히 올라왔는데? 너무하네.. 조금만 더 쓰시지. 흠흠...

한 고개 넘고 두 고개 넘고... 헉헉..  홈빡 젖었다. 한 바위 넘고 두 바위 넘고... 할딱할딱.. 흠뻑 젖었다. 거의 암벽등반 수준이군! 그러나 내가 누군가! 1950m 한라산을 두 번이나 오른 보무도 당당한 나! 겨우 500m남짓, 우습지. 캬캬~  실은 *님께서 잘 이끌어 주셨다. ^^;; 평소 축구와 마라톤으로 다진 기초체력이 있으시어 성큼성큼 앞서 나갈 수 있었을텐데 뒤에서 깔딱깔딱 쫓아가려 애쓰는 내가 안쓰러우셨을거다. ㅋㅋ

남매탑은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이뻤다. 특히 누이탑은 소담스럽고 아기자기한 것이 맛깔스러웠는데 오빠탑은 흠.. 권위가 있으려다가 만 것처럼 약간 퉁명스러워 보였다. 푹~ 쉬다가 동학사 쪽으로 내려왔다. 길은 길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물도 거의 잦아든 계곡에서 사람들이 퐁당퐁당 피서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귀여웠다.

버스를 타고 *님 주차해두신 곳에서 님의 차로 바꿔타고 이미 몇 차례나 자랑한 '내가 발견'한 그 집 '토속식당'으로 갔다. 오늘따라 손님이 정말 많다. 내 사랑이 헛 것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어서 뿌듯~ 뿌듯! 제일 구석진 큰 방으로 들어가 주문하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나온 우렁된장비빔밥을 맛나게 먹었다. 아침 굶고 먹는 늦은 점심이라 그런지 지난 번 보다 훨씬 맛나다. *님도! 역시 찐 호박잎, 그걸 된장에 푹 적셔먹는 맛, 일품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밥집에서 자리를 옮겨 공주대앞 커피숍 -케니G에서 또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가.. 4시쯤 *님은 돌아가시고 나도 숙소로 돌아와 씻고 빨래하고 밥먹고.. 조불며 일기를 쓰고 있다. 아차차 님이 빌려주신 수건을 까먹었다. 우짜지?

계룡산을 6시간 걸었다. 물론 천천히 걸었지만 무릎이 조금 땡긴다. 내일 모레부터 시험 일정에 들어가지만 오늘은 이렇게 困한 몸, 便한 마음으로.. 일찍 자야겠다.

그나저나 야스쿠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고이즈미는 결국 신사를 참배했을까? 일요스페셜에서 잠시 본 이희자씨(주3)와 한 일본여성의 대담은 정말 갑갑한 것이었는데. 우경화가 점점 심해지는 일본은 보면 가슴이 턱턱 막힌다. 유치한 자기중심성도 짜증난다. 폭력적인 우익세력 속에서 신사참배의 부당함을 외치고 합사취하를 요구하고 있을 그들이 무척 걱정된다. 그 곳에 있을 열정적인 한 친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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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6-08-15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하신 해콩님! 전 토요일부터 3박4일 휴가동안 공부고 숙제고 뭐고 오랫만에 지인들 만나고 다녔는데, 다들 저보고 방학중에 살쪘다고^^ 종일 앉아있고, 집에 와서는 저녁먹고 그냥 자고 스트레스도 별로 안 받고 하니까 이렇게 되었나봐요^^;;

2006-08-16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콩 2006-08-16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젠 8시에 잠들어서 오늘 아침 6시까지.. 10시간 동안 내쳐 잤답니다. 쿨쿨~ 더운 날씨에 이렇게 싸돌아다니는데 살 하나 안 빠진 걸 보면 전 역시 '노는 체질'인가봐요. 아니다!! 평소에 엄청 먹어줘서 그런가? 암튼... 브리니님은 언제 연수 끝나시나요? 저는 내일부터 셤 하나 둘 치기 시작해서 21일 상황 종료. 실제로는 22일까지 일정 잡혀있는데 이날은 그저 살랑살랑 오전수업만 하면 된답니다. 그러고나서도 바로 집으로 안 가려구요. 뭐 할꺼냐면요~ 서울 가서 친구 만나 놀아요. 국립중앙박물관, 피카소전도 같이 둘러보고 23일 오후 쯤 집으로! 집에 가서도 또 놀아야하는 일정이~ ㅋㅋ 가족들이랑 휴양림 가기로 했답니다. 부럽죠? 정말 알찬 방학이예욤 *_*

속삭여주신 *님... 감사합니다. 풀꽃들 너무 예뻐요. 아, 그리고 수건은 서울 가서 놀 때 유용할 것 같아요. 이 고마움을 어떻게 갚지요? ㅠ.ㅠ

해콩 2006-08-16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1) 박정자 삼거리.. 처음 공주로 들어가던 7월 18일, 이 곳을 지나며 '박정자가 누구람?' 했다. 박세리, 박찬호의 고향이라는 공주에서 그들을 기리는 조형물이나 어린이 야구교실 등을 본 후엔 그런 '훌륭한' 사람 중의 한 분이려니 생각했다.

어제 *님과의 산행 약속으로 택시를 타고 가면서 기사어저씨게 여쭤봤더니 갸우뚱 하시더니 '이 곳에 오래 전부터 '박정자'라는 사람이 가게를 하고 있어서 그렇게 불렀을 것'이라고 하셨다. *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어슬렁거리다 큰 느티나무 옆에 세워진 비석을 보게됐는데... 그 유래가 적혀있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300년쯤 전에 이곳엔 밀양 박씨들이 많이 살았더랬다. 그 중의 한 분인 朴守文(이건 정확한 이름이다. 박문수 거꾸로 외웠거든 ㅋㅋ)이라는 분이 이 곳에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고 亭子를 제워 지나가는 사람들을 쉴 수 있게 해주었단다. 느티나무는 300여년이 지난 지금 아름드리로 컸고 정자는 없어졌지만 처음 나무를 심어 그 그늘을 이웃에게 나눠주려한 넉넉한 마음을 기려 '박정자 삼거리'로 부른다고 한다.

그늘을 이웃에게 나눠주려는 마음. 한 뼘의 그늘이 절실한 여름은 물론, 파릇파릇 올라오는 새순이 정말 고운 봄이나, 그 잎이 알록달록 예쁘게 물들어가는 가을에도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다. '박정자 삼거리'에 가시면 삼거리에 씩씩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를 확인하시고 박수문님께 감사하는 마음 잠시 가지시길... ^^

해콩 2006-08-16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2) 옥상 위의 그 분 : 공주대학교 비전하우스는 새 건물로 작년 5월부터 운영된 여학생 기숙사! 이 곳에 온 첫 주, 방 짝지 샘이 그 '정보'를 가지고 왔다. 옆 방 샘 두 분까지 모인 자리였는데... 불과 몇 달 전 옥상 위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주었다. 그녀는 자살을 했단다. 이유, 모른다. 방법, 모른다. 방 짝지 샘이 "목을 맸나요? 약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추락?" 등등으로 유도 질문을 했으나 사무실에 계신 분들이 깊이 알려고 하지 말랬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긴 생머리였다는 건 왜 말해주는 거야~
암튼... 비 오는 밤이나 혼자 잠들어야 하는 밤엔... 자꾸 그 분이 생각난다.
근데... 오늘 밤, 갑자기 비가 오고 있다. 이럴 땐 일기예보도 잘 맞는단 말야. --;;

해콩 2006-08-17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3) 이희자씨 : 한일 공동 다큐멘터리로 2005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상영된 [안녕, 사요나라]의 주인공. [함께 읽기]에 긴 자료 있습니다. 관심있으시면 찾아읽으시길..


해콩 2006-08-17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3-2) 야스쿠니 합사와 관련된 KBS스페셜도 강추합니다.

http://www.kbs.co.kr/1tv/sisa/kbsspecial/vod/1411072_11686.html

815기획 야스쿠니와의 전쟁 제1편-야스쿠니와 세 여자

◎ 방송일시 : 2006년 8월 13일 (일) 밤 8시, KBS 1TV

815기획 야스쿠니와의 전쟁 제2편-국제공동투쟁의 기록

◎ 방송일시 : 2006년 8월 20일 (일) 밤 8시, KBS 1TV

 

백마강 따라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다
2005년 09월 06일(화) 오후 07:09
[오마이뉴스 안병기 기자]
▲ 사적 301호 궁남지
ⓒ2005 안병기

만수산 무량사에서 돌아오던 발길을 부여에서 멈춘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사적 135호 궁남지였다. 속칭 '마래방죽'으로 불리는 곳이다. 1965∼1967년 사이에 실시되었던 복원 공사 이전까지만 해도 자연적인 저습지로밖에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 무왕 35년조에 보면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리 밖에서 물을 끌어 들였으며, 연못가에는 버드나무를 심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모방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백제 왕궁지의 남쪽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 연못의 이름을 궁남지라 부르는 것이다. 현재 복원된 궁남지는 본래 크기인 3만여 평에서 크게 축소된 규모로 1965년 정비작업을 했으며 다리와 누각은 1971년에 지었다.

궁남지 옆으로는 최근에 조성된 방대한 연꽃 방죽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었다. 막바지에 이른 연꽃들이 피워내는 해맑은 미소가 아름답긴 했지만 연꽃 방죽이 너무 넓어 궁남지가 오히려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고 산만한 느낌도 드는 건 문제였다.

▲ 궁남지 초입에 서 있는 서동요비. 주변이 너무 간결해서 어떤 종류의 상상력도 허락하지 않는다.
ⓒ2005 안병기

궁남지 옆에 있는 서동요비는 말끔하게 단장돼 있었다. 7년 전만 해도 노래비 주변에 산다화도 피어 있고 잡초도 우거져 마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을 떠올릴 만한 공간이었으나 이 말끔하게 다듬어진 공간에서 무슨 옛 이야기를 떠올릴 것인가. 말끔하게 단장된 유적들은 우리에게서 이렇게 역사적 상상력을 앗아가 맨송맨송하게 만들어 버린다.

궁남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민족시인 신동엽의 생가가 있다. 시간상 시비가 서 있는 백마강 기슭 백제나성 자리에 세워져 있는 신동엽 시비는 둘러보지 못하고 시내 복판 동남리에 있는 생가에만 들르기로 한다.

▲ 신동엽 시인 생가 대문
ⓒ2005 안병기

▲ 신동엽 시인의 생가
ⓒ2005 안병기

정감있게 다가오지 않는 시인의 생가
한때 남의 소유가 되었던 것을 미망인 인병선 여사가 다시 사들여 옛날의 모습을 찾아 놓았다. 복원 당시는 신동엽 시인이 살던 때 그대로 초가집이었지만 지금은 새뜩한 기와집이다.

군청에서는 이엉을 새로 해 이어야 하는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초가지붕을 이고 있는 김유정 생가나 정지용 생가의 경우와 견주면 그리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들리지는 않는다. 지난 4월 김유정문학제에 갔을 적에 김유정 생가는 초가지붕 잇는 날을 주민들과 함께하는 축제로 열고 있다는 말을 관계자에게서 들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한양대 음대 이종구가 신동엽 시에다 곡을 붙이고 이정지가 부르는 노래 '초가을'을 가만히 불러본다.

그녀는 안다 이 서러운 가을
무엇하러 반도의 지붕밑, 또 오는 것인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모진 궤상(机上) 앞
초가을 금풍(金風)이 살며시 선보일 때
그녀의 등허리선
풀 멕인 광목날 앉아 있었다.

아, 어느새 이 가을은 그녀의 마음 안 들여다보았는가.

덜 여문 사람은 익어가는 때
익은 사람은 서러워하는 때
그녀는 안다 이 빛나는 가을
무엇하러 반도의 지붕밑, 또 찾아 오는가…
노래 '초가을' 가사

신동엽 시 '초가을'의 어두운 서정이 대금 가락에 실려 가슴을 파고든다. 시인이 세상 떠난 지 45년이 흐른 지금 그가 그리던 '알맹이'만 남은 세상은 어디쯤 와 있을까.

문학이란 "영원한 괴로움이요, 영원한 부정이요, 영원한 모색이다"라고 했던 신동엽 시인. 역사란 모색하다가 날이 샌다. 북망산에 가면 날 새기 전에 죽은 자들의 무덤으로 넘쳐난다. 이 지지부진한 역사에 질려 희망을 버린 사람이 몇 몇인가.

신동엽 시인의 생가를 나와 오른 쪽에 있는 정림사지를 향했다. 1942년 정림사지 터를 발굴했을 때 '대평8년무진장림사대장당초'라고 정림사라는 이름이 새겨진 기와가 나왔다 한다. 대평 8년은 고려 현종 19년인 1028년으로 그때 이 절의 이름이 정림사였다는 것은 그렇게 확인된 셈이지만 백제 당시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 국보 제 9호 정림사지 5층석탑
ⓒ2005 안병기

정림사 터 한 가운데는 망국의 설움을 온몸으로 견뎌낸 5층석탑이 서 있다. 기단은 1층 지붕돌에 비해 훨씬 좁은 단층이다. 면석의 모서리 기둥이 위로 갈수록 좁아져 목조기둥의 배흘림 수법을 취했다. 지붕돌은 얇고 평평한 판석이지만 처마를 살짝 치켜 올라가게 해 보는 바라보는 사람에게 경쾌한 상승감을 느끼게 한다.

1층 몸돌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대당평제국비명(大唐平濟國碑銘)이라 새겨넣은 자리가 있다.

▲ 보물 제 108호 정림사지 석불좌상
ⓒ2005 안병기
정림사지 북쪽 강당 자리에 있는 전각에는 석불좌상 한 분 모셔져 있다. 정림사라는 이름이 새겨진 기와대로 고려 현종 때 절을 중수할 때 모셔진 듯하니 11세기 불상이다. 얼굴이나 몸체가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마모돼 있긴 하지만 아래쪽 대좌에 새겨진 안상이나 연꽃 조각만은 비교적 뚜렷하다.

부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낙화암이다. 낙화암으로 가려면 도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부소산성 길을 허위허위 올라간다. 역사의 고난을 호흡하기엔 너무나 잘 닦인 산책로를 따라간다.

백제의 충신들인 성충ㆍ흥수ㆍ계백장군의 넋을 기려 지은 삼충사를 지나 영일루를 거쳐서 군데군데 띠처럼 쌓아올린 토성의 흔적들을 바라보며 20여 분 정도 발품을 팔면 백마강을 낀 서북쪽 낙화암에 이르게 된다.

낙화암, 이 은유적인 이름은 뭔가
금강은 백마강 말고도 지역에 따라 백강, 창강, 곰강 등으로 불린다. 탁 트인 풍광과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이 어우러진 낙화암. 부소산의 북쪽 끝에 위치한 40~50m 높이의 암벽인 낙화암에 대해서 최초로 기록한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조에는 낙화암에 대해 다음같이 말한다.

"백제고기(百濟古記)에 이르기를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 돌이밑으로는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예로부터 전해오는 말로 의자왕과 모든 후궁이 함께 화를 면치 못할 줄 알고 서로 말하기를 "차라리 자살할지언정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 하면서 서로 이끌고 이곳에 와서 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고 한다고 한다. 이것은 잘못 전해지고 있는 속설이니 궁녀들만은 이곳에서 떨어져 죽었으나 의자왕은 당나라에서 죽었다는 것은 당나라 역사에 명백히 쓰여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삼국유사가 쓰여질 당시인 고려 충렬왕 때까지는 낙화암이 지금과 달리 타사암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종 때 편찬된 <고려사지리지>에는 낙화암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200년의 시간은 바위라는 무생물의 이름마저 직유법에서 은유법으로 바꿔버렸던 것이다. 타사암이라면 몰라도 낙화암이란 서정적인 이름 앞에서 어떻게 역사의 통증을 맛볼 수 있단 말인가.

▲ 고란사
ⓒ2005 안병기

나라가 위태로울 때 계백장군은 겨우 5천 결사대로 황산벌에서 맞서 싸우다 죽음을 택했고, 궁녀들은 적에게 잡혀 능욕당하느니 차라리 낙화암에서 죽음을 택했다는 전설은 분명 비장하면서도 애국적인 장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궁녀 수가 유행가 가사처럼 3천이냐 아니면 몇 백이냐 따위의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숫자의 크기가 역사를 바라보는 눈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단 말인가.

역사는 해석하는 자의 영역에 속한다
역사는 기록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는 역사는 태어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역사는 궁극적으로 해석하는 자의 영역에 속한다는 뜻이다. 역사를 너무 감상적으로 바라본다거나 미화하려 들어선 안 된다.

내가 이 '낙화암'의 전설에서 맡는 것은 케케묵은 국가주의의 냄새이며, 왕을 모시던 궁녀들이니 행여라도 적에게 능욕당해선 안된다는 '순결 이데올로기'의 냄새이다. 지배 권력의 시각에 맞춰 재단된 이런 이데올로기가 궁녀들을 집단자살로 몰고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낙화암 정상에는 지붕이 6각형인 정자 백화정이 있다. 백화정 옆으로 난 길을 따라 20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고란사가 나온다. 고사 직전에 놓인 고란초는 사람들의 손을 타지 못하도록 유리벽 속에 들어 있었다.

▲ 백화정에서 바라본 석양
ⓒ2005 안병기

▲ 산마루에 반쯤 걸린 태양이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운 것은 왜 슬픈 것일까!
ⓒ2005 안병기

일몰, 그 장엄한 하루의 에필로그를 지켜보며
곧 장려한 해넘이가 시작될 시간이다. 일몰을 바라보기 위해 갔던 길을 황급히 되짚어 올라와 낙화암 정상에 있는 백화정으로 다시 올라온다.

보령 성주산 쪽으로 서서히 붉은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노을이 백마강 물결 위에다 무심코 제 붉은 마음 한 점을 떨어뜨린다. 강물이 점점 핏빛으로 붉어진다. 붉은 노을 속에는 비장한 선율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앵앵거리는 아쟁의 소리가 백마강가의 빈 하늘을 가득 채운다.

사비성이 함락 당했던 서기 660년 7월 13일. 그날의 황혼도 저렇게 장려했을까를 생각하는 동안 저녁 해는 산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다. 황혼이 연주하던 아쟁의 줄 하나가 툭, 소리를 내며 끊어져 버리더니 별안간 주위가 칠흑으로 채워졌다.

황혼은 무덤이라는 말과 이음동의어이다. 오늘도 그 무덤에다 하루를 묻었다. 오늘은 황홀한 황혼의 하늘가에 하루를 묻었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터덕터덕 부소산을 내려간다.

부여읍내 가득한 집들이 하나 둘 등불을 켜기 시작한다. 저렇게 등불이 켜지듯 오늘 저녁 사람들의 마음에도 등불이 켜졌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8월 29일 부여 무량사에 갔다오다 부여에 들러 돌아보았던 여행 기록입니다. 부여가는 길은 따로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

*노래 '초가을' 가사는 행의 배치가 원시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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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금요일 : 한시-시경강독-철학사 수업을 차례로 마치고 5시 20분 헐레벌떡 달려달려 시외버스터미널로. 40분 대전서부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맑은 창밖 풍경에 넋을 잃었다가 대전 용두동 터미널에서 내려 100m 정도를 걸어서 오룡 지하철역 도착! 대전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대전역으로. 은ㅈ의 철도카드로 예약해둔 7시21분 구포행 무궁화호 티켓을 받고 나니 7시! 뭐라도 요기를 해야지 싶어 파리바게트에서 소보로 하나를 삼키고 정확하게 5번 플랫폼으로. 약간 연착한 열차를 탔다. 점심 먹으면서 은ㅈ는 물었다. "왜 KTX를 타지 안 타냐? 무궁화는 늦잖아?" 흠... 자꾸 이렇게 물어오니 후배들에게는 몰라도 은ㅈ에게는 답을 해야겠다. 막상 말을 하려니 조금 부끄러워져서 웃으면 안 된다는 연막을 친 뒤에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하거든. 그리고 그렇게 급한 일도 없고"라고 말해줬다. 표정이 요상했을거다. 묘한 뿌듯함에 또 묘한 부끄러움까지 겹쳤겠지. 은ㅈ는 내 신념을 인정한다고 했다. 사람마다 신념은 다 다른 거라며. 여승무원들 이야기를 잊은 것이 안타깝다. 내게 세상은 너무 빠르다. 아름다운 경치의 변화를 놓치고 싶지 않은 내겐 새마을도 빠르다.  자리가 별로다. 2호차 58번. 짝수는 통로쪽이 좌석이군. 기억해둬야지. 창가에 앉아야 지는 해를 볼 수 있을텐데... 식당칸도 만원이라 헛걸음하고 돌아와서 연신 두리번거렸다. 옆자리 사람의 어깨너머로 쪼가리 풍경이라도 즐기려고. 그러나 순식간에 어두워진다. 깜깜해지면 잠밖에 안오는데... 쩝! 그러나 대구쯤 와서 발견했다. 달이다! 그것도 보름달이다!! 아니 솔직히 조금 이지러진 것으로 보아 보름이 하루 이틀 지났나보다. 잠자느라 그 어여쁜 달을 그냥 보내는 창가 자리  사람들을 괜히 원망하며... 삼랑진역에 와서 드뎌 빈자리 발견! 앉아 남은 달을 실컷 즐겼다. KTX탄 사람들은 9시쯤 도착한다고 했던가? 내가 구포역에 내린 시간은 10시 40분. 피곤하긴 하다. 그러나 그렇게 아낀 시간으로 집에 갔어도 잠잤을 거다. 어린 왕자는 말했다. "나라면 그 시간에 우물까지 천천히 걸어갔을텐데"

12일 토요일 : 집에만 오면 늦잠이다. 8시에 일어나 이리 저리 꼼지락거리다가 씻고 도서실 도착한 시간이 2시. 과제과제과제...권정안샘 과제는 재미있다. 즐거우니 자꾸 들여다보게된다. 사실 오늘은 정말 중요한 과제가 있다. 성독tape 녹음해보기!  집에 카셋트가 없어서 학교까지 가야한다. 6시반 학교 도착! 경비아저씨께 늘 죄송스럽다. 휴일 자주 학교에 가서 문 열어달라 하니 얼마나 귀찮으실까? 복숭아를 좀 사서 가져다드렸다. 찜통같은 교무실에서 카셋트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하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씨름하고 있는데 시원한 바람이 솔솔~ 에어컨이다. 센스있으신 경비아저씨 ^^; 8시! 창밖이 캄캄하다. 커다란 카셋트 들고 발아픈 샌달끌고 집까지 갈 생각하니 암담하던 차에... 반가운 목소리! 강ㅅ원샘이시다. 휴일날 학교에 오면 늘 샘이 계신다. 오늘은 샘께 차를 얻어타야지. 가뿐하게 집근처까지 도착! 씻지도 않고 카세트 들고 앉아서는 새벽2시까지 성독 과제 녹음했다. ㅋㅋㅋ 진짜 웃긴다. 언제 또 쓰일지 모르니까 과제 하나 끝내고 연분으로 내것도 하나 녹음해뒀다. 씻고 누운 시간, 2시반 @@ 으이그..내가 무슨 영화보자고... 미쳐미쳐

13일 일요일 : 늦게 잠들었는데도 (아니 일찍 잠든 건가?) 왠일로 일찍 눈이 떠졌다. 집 청소를 다 끝내니 9시. 샤워하고 밥먹고... 도서관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서둘러도 --;; 과제물..작문작문작문.... 대충 끝내고 카세트를 들고 일어섰다. 제자리에 갖다 둬야지. 국도극장의 '친밀한 타인들' 을 볼까 고민도 했지만 무리다. 무리한 계획은 피곤하다. 다음에 보지 뭐. 시네마테크에서 하는 '티켓'은 꼭 한 번 더 봐야겠다. 켄로치의 따뜻함.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 23일 한다는 그 감독의 다른 영화도 꼭 보고 싶지만 그날은 서울 가서 놀기로 했으니... 아깝다. 아니 아쉽다. 경비아저씨를 또 귀찮게 해서 교무실에 들어가 끝낸 과제를 프린트 해서 왔다. 8시 반. 밥 먹고 개콘 보고... 과제 마무리하고 CSI  마지막회 다 보고.. 잠들었다. 아마 한 시쯤?

14일 월요일 : 8시 눈떴다. 과제 조금 남았다. 그걸 다시 공주까지 가서 들여다보고 싶진 않다. 9시반쯤 대충 대충 끝내고 이불 개고 설걷이 하고 찬물에 풍덩풍덩 샤워하고! 어제 고속버스 표를 끊어두었는데 박ㄷ수샘께 전화가 왔다. 오늘 금강걷기팀에 합류할건데 같이 가자고. 고속버스표를 취소하고 샘차로 가게 되었다. 12시 샘과 함께 출발~ 꼬불꼬불... 길고 긴 길.. 달리고 달려 6시 부여도착. 일명 <강강걸을래>팀에게 전화해서 합류한 시간 6시 30분. 부여 시외버스터미널로 가서 공주가는 마지막 차표를 끊고 샘들의 짐을 모텔에 풀고 식당에 앉았다. 메뉴는 삼겹살. 황ㄱ철샘 살이 쏘옥 빠졌다. 노ㅇ민샘은 늘 젊으시고... 또 다른 한 샘은 잘 모르는 분. 다섯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하며 삼겹살, 된장으로 저녁을 푸지게 먹었다. 계산하고 7시 반에 일어섰다. 이름 모르겠는 샘이 바래다 주네? 괜찮은데... ^^; 40분에 차를 타고 50분을 달려 공주 도착! 내일 산행에 필요한 것들을 좀 사고 비전하우스 도착.

희안하게도 집에서는 일기가 써지질 않는다. 비전하우스 컴실에서만 일기를 쓸 버릇했더니... 하긴 평소엔 일기 잘 쓰지 않으니. 이번 기회에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확실하게 들이는 게 좋을까? .... 글 쓰는 것,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 글쎄... 암튼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계룡산 가야한다. 빨리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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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14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여에 신동엽 생가와 시비가 있다는데... 두 번이나 갔건만 실패했다. 보고싶은데... 시비에는 그의 시 가운데 가장 서정적이라는 시 ‘산에 언덕에’ 가 새겨져 있단다.

              - 산에 언덕에 -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시인연혁

☞ 1930 8월 18일 부여읍 동남리에서 태어남.
☞ 1942 부여초등학교 졸업.
☞ 1948 전주사범학교 졸업.
☞ 1953 단국대 사학과 졸업.
☞ 1957 인병선 여사와 결혼.
☞ 1958 충남 주산농고에서 교편을 잡음.
☞ 1959 長詩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 1961 명성여고 국어교사로 취임(작고시까지 재직).
☞ 1963 「산에 언덕에」, [아니오」등을 담은 시집 '아사녀' 출간.
☞ 1966 詩劇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을 최일수 연출로 국립극장에서 상연.
☞ 1967 펜클럽 작가기금으로 장편서사시 「錦江」 발표.
☞ 1968 오페라타 「석가탑」을 드라마센터에서 상연. 김수영 시인을 위한 조사 「지맥속의 분수」를 발표.
☞ 1969 4월 7일 간암으로 별세. 경기도 파주군 월롱산 기슭에 안장.
☞ 1970 4월 18일 부여읍 동남리 백마강 기슭에 詩碑를 세움.
☞ 1975 『申東曄 全集』이 창작과 비평사에서 간행됨. 책 내용이 긴급조치 9호 위반이라는 이유로 당국에 의해 판매금지.
☞ 1979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창작과 비평사에서 간행됨.
☞ 1980 『증보판 신동엽 전집』이 창작과 비평사에서 간행됨.
☞ 1982 유족과 창작과비평사가 공동으로 '신동엽 창작기금'을 제정, 첫 지원대상자로 소설가 이문구씨가 선정 된 이후 98년 현재 16회에 이름.
☞ 1983 『신동엽-그의 삶과 문학』(구중서 편)이 온누리사에서 간행됨.
☞ 1984 시인의 15주기를 맞이하여 문인 60여 명이 그의 시비를 찾아 추모행사를 가짐.
『껍데기는 가라-신동엽 평전.시선집』(성민엽 편저)이 문학세계사에서 간행됨.
☞ 1985 5월 유족과 문인들에 의해 申東曄 生家 복원.
☞ 1988 미발표 시집 『꽃같이 그대 쓰러진』, 미발표 시집 『젊은 시인의 사랑』이 실천문학사에서 간행됨.
☞ 1989 시 「산에 언덕에」가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
☞ 1993 11월 20일 부여읍 능산리 왕릉 앞 산으로 묘소 이전.

◆ 주요내용

  진달래꽃 산천에 피는 1969년 4월 7일. 시인, 우리의 시인인 신동엽은 향년 38세의 젊은 나이로 아픈 조국을 앓고 갔다. 
  1959년, 『조선일보』신춘문예에서 나는 시부 예선을 보았다. 그때 사에서 응모작품 천여 편을 전부 넘기면서 백 편만 엄선하여 달라고 했다. 나는 혼자 3,4일 동안을 엄선, 또 엄선하여 좋은 시를 위하여 몰두하였다. 그리고 기쁨을 참을 수 없었다. 그것은 무릎을 치고 싶도록 좋은 시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신동엽의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다. 그 당시 문화부에서 문화면을 맡고 있던 평론가인 C씨는 예선 결과를 물었다. 그 때 나는 서슴지 않고 '좋은 장시가 들어왔는데요'하고 흥분하였다. 그런 일이 어제 같은데, 우리의 시인 신동엽은 김수영 시인이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진달래꽃 피는 4월의 무덤에 엄숙히 잠들고 말았다. 조국의 현실을 앓다가 영영 가고 말았다.
  『조선일보』 사장댁에서 영광의 수상식을 하는 날, 나는 시인 신동엽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는 에서 조끼가 달린 조선옷을 입고 올라왔다. 나는 신동엽을 데리고 그 당시 조병옥 박사의 사택 부근에 있었던 안암동의 초라한 나의 하숙으로 안내하여 서로간의 문학관과 역사관을 털어 놓으면서 한 밤에 한 형제보다 더 친한 벗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10여년 동안을 변함없는 우정 속에서 단 둘이의 밤을 무수히 보냈다. 오로지 조국과 시와 인간과 생활을 이야기하며서 눈물로 가슴을 달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는 만나면 너절한 소리는 하나도 안했다.
단둘이서 겨울에 백운대를 오르며, 이른 봄에는 수락산과 도봉을 오르면서 내일의 조국을 염려한 죄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참으로 시를 위한 죄 밖에는 없다.
  이 땅의 가장 애국자인 듯한 사람이 덤벼든다면 나는 시인으로서 피를 각오하고 4천만 우리 민족에게 "광화문 네거리에서 나를 총살시켜 다오"하고 서슴지 않고 고발할 굳은 각오를 갖고 있다. 무수한 회색분자들, 그리고 사이비들 속에서 기필코 우리는 멸망하지 않고 대(竹)와 같이 꼿꼿하게 피어 갈 것이다. 시인의 양심과 조국과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시인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다. 구질구질한 설명이 필요없는 시다.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으면 된다. 평론가 조동일은 다음과 같이 진지하게 비평했다.

·······현실참여란 모든 것을 회의하고 부정해 버리는 맹목적인 반발과는 크게 구별될 필요가 있다. 무엇에 대항해서, 어떠한 비난에도 넘어가지 않고 민족의 가치를, 힘을, 전통을 시인의 것으로, 모든 사람의 것으로 확보해 나가는 작업이 없이는 언제나 현실밖에 서게 되는 것이다. 현실이란 눈 앞에 주어진 대상이 아니고 적당히 설명해 넘기면 시인의 일은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시인은 시로써 현실을 변모시키고 발전시키고 창조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시의 최고 경지이고 시인을 위대하다고 할 수 있는 최종적인 근거이다. 의 라는 말 속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고 오랜 분노가 서려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 민족의 때문에 희생을 당해 왔다. 그러나 모든 라고 노래한 시인을 이제 새삼스레 발견한다. 그러한 시인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면면하게 내려왔으나 충분히 빛을 내지 못하고 사라지거나 억압되어 꺾였고 부당하게 문학사에서 제외되거나 낮게 평가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일어나고 모든 사이비 문학을 이 땅에서 추방해야 한다.
엔 이제 희망적인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부정정치, 부정경제에도 우리는 도전할 것이다.
특히 지성을 자처하는 문학인의 하잘 것 없는 언동에는 고소를 금할 수 없다.
과 과 가 우리의 맥박에 뛰고 있다.
삼가 사이비 문학인은 문학적인 양심의 호소에 의해 스스로 붓을 꺾어야 할 줄 안다.
나는 지금 「시인 김수영론」과 「시인 신동엽론」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내일의 보다 평화로운 자주와 독립, 그리고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위한 거시적인 안목으로 한 세기 하나 얻어지는 시인의 영광을 위하여 조소하는 동키호테다. 춘향이다, 논개다. 바보 온달이다.
시인 신동엽에게는 진실과 가 있다. 5년 전 내가 도봉산에서 2,3개월 수양하며 작품을 구상하고 있을 때 그는 밤에 학교를 가기 때문에 낮에는 마른 굴비나 오이 장아치를 들고 그 먼 길을 말없이 와서 말없이 갔다. 돈암동 집에서 말이다.
그는 진실하다. 우리 민족이 충분히 자랑해도 좋은 시인이다. 부끄러움 없는 시인이다.
시인 신동엽은 「선우휘씨와 홍두깨」란 에세이를 마지막으로 한 많은 조국을 생각하며 무지개빛 평화를 노래하면서 갔다.

신동엽의 선우휘에 대한 첫 구절이다.

석가와 한 사람의 시인이 세상을 주유하고 있었다.
어느 날, 월남땅을 지나다 얼굴이 앳띤 한 미국병사의 주검과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한 여자 베트콩의 주검을 보았다.
석가와 시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두 손을 합장하고 앉아 그 두 주검의 이마 위에 명복의 기도와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그들은 일어나 길을 떠났다······


그러면서 시인 신동엽은 선우휘에 대해서 시인적인 충고를 했다.

지성인들의 논쟁은 지성적인 논쟁에서 시작하여 지성적인 논쟁으로 끝내야 한다. 자기가 궁색한 입장에 몰렸다고 하여 금새 무슨 법조항을 들고 나와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 넣어 보려고 논리를 비약시켜 가면서 무고를 일삼는 다는 것은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예술가의 행위라곤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다·····

그는 울분을 달래며 조용히 타이르고 이젠 그의 시, 「진달래 산천」에 영혼을 쉬고 있다.
시인, 우리 시인, 우리의 연인 신동엽. 나는 진달래 피는 한적한 너의 무덤을, 흙을--겨울 동안 백운에 묻혀 있을 너의 무덤을, 눈(雪)을 찾아 그 앞에 혼자 서서······.
우리의 딸들과 아들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내일의 밝은 아버지로서 시인으로서 굳건하게 조국과 민족을 지켜갈 것을 다짐하련다.
"우리를 단순히 중상해 보려고 하지만····"「휴전선」의 시인은 건재하고 있다. 모든 것을 증거하고 확인하련다. 지금 조용히 공부하고 있다.
동엽! 우리의 귀중한 동엽!
너를 사랑하는 벗들은, 또 알맹이들은, 안으로 안으로 울고 있다. 우리는 대(竹)와 같이 푸르게 줄곧하게 피어 가며 이 땅의 흙에 묻힐 것이다. 그리고 사랑할 것이다.
아, 동엽! 고요히 영혼을 잠시 쉬어라······.

( 박봉우 : 이 글은 1970년에 발표되었던 것임. )

<< 참고 >> http://my-cgi.dreamwiz.com/rahany/sdy-pro.htm


프레이야 2006-08-14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동엽시인의 안타까운 죽음이 생각납니다. 오랜만에 그의 유명한 시 둘을 보게 되네요..
 

2006년 8월 12일 (토) 15:08   오마이뉴스

화장품, 만드는 법 알게 되면 못 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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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시장에 거센 '차별화' 바람  무허가 기능성 화장품 판친다  명품화장품 샘플, 관리부실·짝퉁 활개  내 화장품도 수은 덩어리?


[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 <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
ⓒ2006 미토스
최근 고민되는 책 한 권을 읽게 됐다. 바로 오자와 다카하루의 <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미토스)로 화장품의 실체를 밝히는 책이다.

'화장품, 계속 발라야 하는 걸까?' '어떤 화장품을 믿어야 할까?' 20년 넘게 화장품을 써 온 나로서는 여간 고민스러운 선택이 아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화장품의 실태, 그 놀라움도 나에게는 여전히 고민스럽다.

석유에서 뽑아낸 '합성계면활성제'가 화장품의 주원료라고? '합성폴리머'까지? 비누로 잘 지워지지 않는 화장품을 지워내는 클렌징 오일은 합성계면활성제의 함량만 다를 뿐 주방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주방세제로도 얼굴을 닦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주방세제는 합성계면활성제 30~40%를 물에 녹인 것이오, 클렌징 오일은 합성계면활성제 10~20%를 물에 녹인 것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화장품의 공해와 독성에 대해 조금씩 밝혀지면서 조금이나마 안정적인 화장품을 쓰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이 믿고 선호하는 '무첨가' 화장품의 실체는 어떤가!

"화장품, 특히 영양크림은 물과 기름을 유화시켜 만든다. 기름은 산화되고 냄새도 난다. 따라서 화장품에는 방부제와 향료 등이 첨가되어야 하는데 '자연=무첨가' '무첨가·무향료=안전'이라는 등식은 화장품 첨가물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화장품에 변질되지 않고 썩지 않는 원료가 쓰이게 되었다. 여기서 합성폴리머가 등장, 합성 폴리머로 에센스와 로션을 만들고, 식염수로 스킨의 점성도를 조절해 '무첨가' '무향료'라고 하거나...." - 책 속에서

넣을 것 다 넣은 무첨가 화장품? 게다가 합성폴리머까지? 기저귀, 생리대, 습기제거제 등에 쓰이는 '합성폴리머'는 1970년대에 폭발적으로 개발됐다. 수용성 합성수지, 합성고무, 합성 셀룰로오스 등이 모두 합성 폴리머다. 에센스와 로션뿐일까. 특별한 효과를 자랑하는 기능성 화장품일수록 합성폴리머는 많이 첨가된다. 무첨가 화장품은 물론 다양한 화장품에 합성폴리머가 쓰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충격이다.

주름개선화장품은 사기?

화장품에 대한 진실
<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에서

▲ 세제로 성공한 회사는 화장품으로도 성공? ▲ 합성계면활성제에 의한 1차 화장품공해 ▲ 피부를 밀폐, 피부에 이로운 세균을 죽이는 환경공해 합성폴리머의 다양한 얼굴 ▲ 건조피부의 책임은 화장품에 있다? ▲ 주름개선화장품이 노화 촉진? 주름개선화장품은 사기다? ▲ SPF의 한계는? 자외선 차단제, 제대로 알고 쓰자 ▲ 기능성 화장품의 독과 미백화장품의 실체 ▲ 사망사고도 낸 의약부외품 믿지 말자 ▲ 젊을 때 화장이 노화를 부른다? ▲ 들어갈 것 다 들어가는 '무첨가' 화장품? ▲ 아름다운 피부는 피지가 많은 피부다? ▲ 건강한 피부를 만드는 방법은?
미용과학평론가요 화장품 전문가인 오자와 다카하루는 이 책에서 '주름개선제는 사기'이며 '바보가 쓰는 화장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름개선제의 진실을 보자.

신진대사가 빠른 표피의 세포 재생은 한 달 정도. 중장년층은 2~3개월 가량 걸리는데 화장품 하나로 1~2주 만에 주름이 펴지고 어떤 제품은 하룻밤 사이에 주름살이 펴진다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며칠 만에 진피까지 재생, 촉촉한 피부로 사라진 젊음을 되찾을 수 있다니 죽는 날까지 불로장생을 찾아 헤맨 진시황이 알면 살아 일어나 땅을 치고 통곡할 법하지 않은가!

"피부가 젊어져 보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피부에 물을 넣으면 되는 것이다. 우선 화장품에 들어있는 합성계면활성제가 피부장벽을 파괴하고, 파괴된 피부장벽을 통해 합성계면활성제가 포함된 수면이 들어간다. 이 단계에서 피부는 부풀어 불룩해지고, 주름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주름개선제는 합성계면활성제와 합성 폴리머가 주원료인 서양식 보습화장품을 모방한 것이다. 수분은 피부에 흡수되지만 합성폴리머는 거대분자이기 때문에 피부에 흡수되지 않고 약간의 물기를 가지고 피부표면에 남는다. 그리고 서서히 물기는 증발해 생고무 같은 (매끈한) 피막이 되고, 이 피막이 피부 속에 있는 수분 증발을 막는 것이다."

- 책 속에서


이런 원리에 의해 합성폴리머 피막으로 표면은 매끈하고, 합성계면활성제 수용액으로 안쪽은 팽팽해져 주름이 일시적으로 사라진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때 합성계면활성제의 농도에 따라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합성계면활성제 농도가 진할수록 효과는 빨리, 눈에 띄도록 확실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주름개선제의 원리를 전혀 모르는 소비자 입장에서 합성계면활성제가 많이 들어간 제품일수록 그 효과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의약부외품화에 이용당하는 미백화장품

이 정도의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충격이랄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이 파헤치고 있는 화장품의 실태는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로션, 에센스, 미백화장품, 클렌징 오일, 염색약 등의 실체와 제조현실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일본인, 일본의 현실일 뿐이라고? 글쎄 그럴까?

<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는 화장품의 실태를 고발하는 책이다. 몇 년 전부터 기초화장만이 아닌 색조화장을 하는 남성들도 많아지는 현실이고 보면 화장품은 이제 생활필수품이나 다름없다. 우리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화장품. 그러나 정작 우리는 화장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책은 화장품의 실체는 물론 화장품에 대한 바람직한 관심과 역할을 충분하게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화장품 전문가 '오자와 다카하루'는 누구?

저자 오자와 다카하루는 1938년생. 게이오 대학교 공학부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2006년 현재 미용 과학 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화장품에 대한 여성들의 지식향상을 위해 올바른 미용과학의 보급과 기초화장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그래도 독성 화장품을 사용하십니까?> <당신의 갈색 머리가 위험하다> <아름다운 피부를 갖고 싶다! 화장품 선택법> <좋은 화장품 나쁜 화장품> <머리는 비누로 감아라> <화장품 성분사전>등 화장품 전문가이다.

옮긴이 홍성민은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책으로는 <먹고 싶은 대로 먹인 음식이 당신 아이의 머리를 망친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100가지 비결> <뇌력사전> <내 아이의 10년 후를 결정하는 엄마의 힘> <재미있는 우리 몸 이야기> <식원성증후군> 등 최근 주목받았던 작품들을 다수 번역하였다.
<화장품, 얼굴에 독을 발라라>는 다 읽은 후에도 마음이 자꾸 쓰이고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을 통해 건강한 피부와 바람직한 화장품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우리가 이 책을 통해 관심 두어야 하는 것이 있다. 몇 년 동안 미루어 오다가 2006년 1월에 시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시행되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의) 전성분표시제가 그것.

전성분표시제는 화장품에 들어가는 성분을 표시하는 것으로 바람직한 화장품제조와 직접 연관이 있다. 책에서는 일본의 전성분표시제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단어지만 소비의 주체자로서 꼭 알아야 하는 제도다.

/김현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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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한나라 때의 일이다.
어느 연못에 예쁜 잉어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디서 들어 왔는지 그 연못에 큰 메기 한 마리가 침입하였고 그 메기는 잉어를 보자마자 잡아 먹으려고 했다.
잉어는 연못의 이곳 저곳으로 메기를 피해 헤엄을 쳤으나 역부족이었고 도망갈 곳이 없어진 잉어는 초어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잉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뭍에 오르게 되고, 지느러미를 다리 삼아 냅다 뛰기 시작했다.
메기가 못 쫓아 오는걸 알게 될 때까지 잉어가 뛰어간 거리는 약 구 리 정도...였을까...아무튼 십 리가 좀 안 되는 거리였다.
그때 잉어가 뛰는 걸 보기 시작한 한 농부가 잉어의 뒤를 따랐고 잉어가 멈추었을 때, 그 농부는 이렇게 외쳤다.
`어주구리(漁走九里)`.

그리고는 힘들어 지친 그 잉어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는 얘기이다.
(1) 어주구리(漁走九里)....능력도 안 되는 이가 센척하거나 능력 밖의 일을 하려고 할 때...주위의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2) 이 고사 성어는 말 할 때 약간 비꼬는 듯한 말투로 약간 높여 말하면 아주 효과적이다.

 

 


2. 중국 원나라 때의 일이다.
어떤 마을에 한 어부가 살았는데 그는 너무나도 착하고 어질어서 정말 법 없이도 살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서 항상 그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에 새로운 원님이 부임하게 되었는데 그는 아주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 원님은 부임한 뒤 그 마을에 한 착한 어부가 덕망이 높고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저 어부를 제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원님은 묘안을 하나 짜내게 되었다. 그 어부의 집 앞에 몰래 귀한 물건을 가져다 놓고 그 어부가 그 물건을 가져 가면 누명을 씌워 그 어부를 죽일 계획을 세운 것이다.
첫 번째로 그는 그 어부의 집 앞에 쌀 한 가마니를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그 어부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 쌀 가마니를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님은 두 번째로 최고급 비단을 어부의 집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화가 난 원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커다란 금송아지 한 마리를 집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러나 어부에게는 금송아지 마저 소용이 없었다.
어부가 손끝 하나 대지 않은 것이다.
그러한 어부의 행동에 화가 난 원님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탄식을 했다.
`선어부비취`(善漁夫非取)...착한 어부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구나.
그 뒤로 어부에게 감명 받은 원님은 그 어부를 자신의 옆에 등용해 덕으로써 마을을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1) 선어부비취(善漁夫非取)....자신이 뜻한 대로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약간 화가 난 어조로 강하게 발음한다.
(2)이 고사 성어는 그 때 당시 중국 전역에 퍼졌고, 급기야는 실크로드를 타고 서역으로 까지 전해졌으며...오늘날에는 미국,영국 등지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고 한다.

 


3. 고대 중국의 당나라 때 일이다.
한 나그네가 어느 더운 여름 날 길을 가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였다.
한 농부가 밭에서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자꾸만 가혹한 채찍질을 가하는 광경을 본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나그네는 말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농부에게 "열심히 일하는 말에게 왜 자꾸만 채찍질을 가하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자고로 말이란 가혹하게 부려야 다른 생각을 먹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남의 말을 놓고 가타부타 언급할 수가 없어 이내 자리를 뜬 나그네는 열심히 일하는 말이 불쌍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긴 탄식과 함께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한다.
" 아! 施罰勞馬 (시벌로마) "
훗날 이 말은 후세 사람들에게 이어져 주마가편(走馬加鞭)과 뉘앙스는 약간 다르지만 상당히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 한다.

* 施罰勞馬 (시벌로마) : 열심히 일하는 부하 직원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직장 상사에게 흔히 하는 말.
* 용법 : 아랫사람이 노는 꼴을 눈뜨고 보지 못하는 일부 몰상식한 상사의 뒤에 서서 들릴락말락 하게 읊어 주면 효과적일 것이다.

 

 


4.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조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조씨에게는 만삭인 부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부인이 말하길,
"여보! 어제 밤 꿈에 말 한 마리가 온천으로 들어가 목욕을 하는 꿈을 꾸지 않았겠어요. 아마도 우리가 말처럼 활달하고 기운 센 아들을 얻! 게 될 태몽인 것 같아요." 라고 하였다.
조 씨는 심히 기뻐하여 "그것 참 좋은 태몽이구려. 어서 빨리 우리 아들을 보았으면 좋겠소."라고 하였다.
사흘 뒤 조씨 부인은 매우 건강한 사내아이를 순산하였고, 조 씨는 태몽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溫馬(온마)"라 하였다.
세월이 흘러 조 온마가 스무 살이 되었다.
조 온마는 조씨 부부의 기대와는 다르게, 마을의 처녀란 처녀는 죄다 욕보이는 난봉꾼이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결국 조 온마를 관아에 고발하였고 조 온마는 판관 앞에 끌려가게 되었다.
판관이 말하길,
"조 온마는 색기로 인하여 마을을 어지럽혔다(趙溫馬亂色期;조온마난색기). 따라서 거세를 당함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결국 조 온마는 거세를 당하였고, 후일 사람들은 경거망동하는 사람에게 조 온마의 일을 상기시키기 위하여 "조온마난색기"라고 충고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 조온마난색기(趙溫馬亂色期):경거망동한 사람에게 충고할 때 쓰는 말.
이 고사 성어는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경계하라"는 깊은 교훈을 담고 있다.

 

 


5. 아주 먼 옛날 중국 진나라 시대 일이다.
어느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의 성씨는 신체의 일부를 따르는 전통이 있었다.
대대로 귀가 큰 집안은 이씨, 화술에 능통한 사람을 많이 배출한 집안은 구씨 하는 식이였다. 그곳에 수(手)씨 집안이 있었는데, 그 집안은 대대로 손재주가 뛰어난 집안이었다.
이 "수"씨 집안에는 매우 뛰어난 말 한 필이 있었는데, 이 역시 수씨 집안의 손재주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었다.
어느날 도적들과의 전쟁에 수씨 집안의 큰아들이 이 말을 타고나가 큰 공을 세워 진시황으로부터 벼슬을 받았다.
이것을 본 앞집의 족(足)씨 집안에서는 "손재주나 우리 집안의 달리기를 잘하는 발재주나 비슷하니 우리도 말을 한 필 길러봄이 어떨까...." 하여 말 한 필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도적들이 보복을 위해 마을로 내려왔다.
이를 본 족씨는 아들에게
"어서 빨리 수씨 집안보다 먼저 우리 말을 타고 나가거라." 일렀고, 족씨 집안의 장자는 말을 타고 나가다 대문의 윗부분에 머리를 부딪혀 어이없게도 죽고 말았다.
이를 본 족씨는 통곡하며
"내가 진작 분수에 맞는 행동을 했더라면 오늘의 변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을..."
하며 큰 아들의 주검을 붇잡고 통곡하였다.
이때부터 세인들은 분수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足家之馬(족가지마)"라고 말하곤 한다.

* 足家之馬(족가지마): 자기의 주제도 모르고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분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흔히 하는 말.
파생어-
* 足家苦人內(족가고인내): 옛날 족씨 가문의 큰아들이 집안에서 죽음으로 인해서 비롯된 말. (족씨 가문이 집안의 사람으로 인해 괴로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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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8-11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근데 이거 수업시간에 애들 갤카줘도 되는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