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
너무 오랜만이지? 스승의날 짧게 통화한 후 처음이다야~
그런데 답장이 너무 늦었네. 이런 저런 일들... 뭐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지만 이렇게 맘 잡고 컴 앞에 앉아야 답장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2001년이었나? 근무하던 학교에서 친했던 바로 옆자리 샘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돌아가셨지. 그때...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는데 개학하고 계속 우울에 빠져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죽음'을 가까이서 경험했던 적이 없었기에 충격이 컸던 것 같아. 술 마시고 많이 울었지? 나도 그랬어. 그냥 눈물이 나데. 원래 곧잘 '허무'해하는 성격인데다가, 가을이기도 했고... 4~5개월 정도 힘들어 했던 것 같아. 지금은? 사람이 참 간사하지? 아니 머리가 나쁜건가? 까먹고 잘 살아. 그저 아득하고 아련하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한 '공허'가 가끔 밀려오긴 하지만.
인생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에서 기인하는 걸까? '삶'에서 오는 걸까? 참.. 힘들지?
아난이도 다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인생을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지. 그 나이 때 나도 그랬어. 공부도, 친구도, 다른 무엇도 별 의미가 없어보이고 삶 자체도 그렇게 보였던 시간들. 지금?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삶'이란 '죽어가고 있는 과정'이니 여전히 허무해. 그렇지만 아난아, '어차피 소진할 인생이지만' 아니, 어차피 소진할 인생이기에 더 '가치'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내 인생을 남에게 휘둘리고 싶지도 않고 나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들을 하고 싶고. 흠... 가치와 의미는 물질이 넉넉하다고 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너무 고루하고 진부한 답이지? 아무튼 내가 보기엔 너는 지금 한창 '상실'과 '허무'로 인한 '우울'에 빠져있는 것 같고, 그건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찾아오는 것이고, 언젠가는 털고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고, 다시 바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야! 그 혼란에서 빠져 나온 너는 옛날의 아난이가 아닌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성숙한 너 일거야! 그러니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우울하다면 바닥까지 내려가 우울해보는 것도 인생의 경험이 될 것 같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인간의 생래적 화두에 대한 해답은 사람마다 다 다른 거란다. 누구의 답이 맞다고도 할 수 없고 틀릴 수도 없는. 네 스스로에게 가치있는 답을 씩씩하게 찾아가려무나.
감정이 잦아들고, 저 멀리 벗어날 출구가 보이면 답장 줄래? 늘 건강하렴. (너, 여전히 빼빼 말랐지?)
2006. 11. 11. 빼빼로 데이에 빼빼 마른 아난이에게 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