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엔 차를 분실했다. 우리 반 수육이 중국 다녀오면서 사다 준 黃金美仁 차를 샘들이랑 같이 마시려고 쪽지를 살짝 붙여 교무실 싱크대 위에 올려두고 갔는데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 보니 없어졌다. 그날 밤 수행평가 채점을 하느라 9시 반쯤에 학교를 나가면서 올려두었으니 다음 날 7시 50분 사이에 없어진 것이다.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복합적인 감정이 일었다. 물론 수육에게는 미안해서 얘기 못했다.

오늘 아침, 교무실 책상 위에 늘 두고 다니던 필통이 없어졌다. 학교에서 노트북 배정받으면서 받은 USB도 하필 그 곳에 있었다. 늘 들고 다니면서 그 날따라 필통속에 넣어두곤 깜빡! 오늘은 몸도 안 좋은데... 마음도 안 좋아졌다.

지난 학교에선 지갑을 한 번 분실했고, 화장품 주머니도 잃었다가 껍데기만 찾은 일이 있었다. 올 2월 졸업식이 있던 날엔 2학년실에 도둑이 들기도 했다. 특별실 문은 잠겨있었고 책상 서랍도 다 잠궈두었는데 그걸 발로 차서 찌그러뜨려 열고는 몇몇 샘들 지갑속의 상품권이랑 현금만 홀라당 털어간 일이 있었다. 두어 분이 그렇게 도난 당하셨는데 그 기분이란...

사실 학교에서 분실사고가 잃어나면 바로 '아이들'을 의심하게 된다. 지난 학교에서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나, 오늘 아침 지갑이 없어진 것을 알아차렸을 때도 솔직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어느 녀석이..."이다. 그리곤 혼자 괜히 섭섭하고 서럽다. 나름대로 아이들과 친하려 노력하고 아이들도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알아주리라 생각하는데 이럴 때는 그런 마음도 혼자만의 착각이었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유치한 감정이다. 무엇보다 잃어버린 건 물건을 방치한 내 탓이고 그걸 잃어버렸다고 대상도 없이 피어오르는 막연한 섭섭함이라니. 아무튼 분실이 잦다고 해서 이 많은 물건들을 어디 쟁여넣을 수도 없고 어쩌나?? 법정스님 말씀처럼 물건은 돌고 도는 것이니 어디선가 잘 쓰이기를 바랄 수 밖에. 그리고 무조건 아이들을 의심하는 버릇은 고쳐야겠다. 그냥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어라, 필통 없어졌네. "

하지만 고가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도 이런 식의 마음 단속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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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9-1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학년실에 둔 노트북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답니다.
그 때의 황망함이란... 노트북 가격보다도... 그 안에 들었던 보충수업 시간표가 아깝기 그지없었답니다. 새로 짜느라 땀깨나 흘렸지요.
잃어버릴 것이 많다는 것은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책상 서랍에 잃어버릴 것 없이 열어두고 다니고 싶은 요즘입니다.

해리포터7 2006-09-11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그많은 아이들을 다 보듬을 수 없는 노릇이잖아요..그냥 고가의 물건은 단속을 잘 하는 길밖에 없네요..님! 도 닦으시네요...ㅎㅎㅎ마음 편하게 털어버리셔요..이뿐필통 장만하시구요..제 중학교 친구 하나도 중학교에서 수학선생님으로 지낸다고 하네요..님을 보면 그친구 생각이 나요..사진의 분위기도 비슷하시구...그래서 더 안쓰럽습니다..

해콩 2006-09-11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아아아~~ 저같으면 엉엉 울었을걸요. 수업자료랑.... 개인적인 편지랑.. 컴에게 일정부분 머리속을 나눠 주고 있지나 않은지.. 가급적 도구의 도움 없이 인간의 몸만으로 홀가분하게 살면 좋을텐데 말예요.

해콩 2006-09-1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리포터님~ 벌써 편하게 훌훌 털어버렸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모두 도둑님으로 보여서 제가 괴로워요. ^^ 생각보다 제가 마음이 非좁거든요. ㅋㅋ

BRINY 2006-09-11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대폰이랑 지갑이랑 대충 책꽂이 사이에 던져놓고 있다가 서랍으로 옮겨넣었네요. 그래도 무엇보다 스스로 조심하는 게 제일이겠지요...

해콩 2006-09-11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나쁜 일은 없을 수록 좋겠지요. 아이들도,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