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2. 25. 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꼼지락 꼼지락... 몸도 따라서 꼼지락 꼼지락...

좀 일찍 가려고 했는데 늘 그렇듯 이리 저리 꾸물거리다보니 학교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반이었다. 팔을 걷어부치고 어제 정리하다 내버려둔 서랍이며 물건들을 정리했다. 아무리 정리해도 그 많은 짐들이 들어갈 구멍이 없다. 그러나 경험으로 짐작컨대 이 짐들... 세월이 지나면 다 어딘가에 찾아들어가게 되어있다. 지금은 불안하지만 졸업한 후엔 어딘가에 정착해 있는 아이들처럼.

뭘 해야하나... 음악 듣고 차 마시며 잠시 두리번 거리다가 작년에 작업했던 [학교에서 행복해지기]를 펼쳤다. 눈에 들어오는대로 '선생님에게만 보여주는 나', '선생님께 들려주는 우리 아이 이야기', '아이들끼리 소개하기'  약간 손을 봐서 복사해두었다. 그리고 사물함에 부쳐줄 이름표 작업! '아이들끼리 소개하기'와 이름표는 예쁜 색지에 복사하면 훨씬 부드러워진다. 이름표는 일년 쓸거니까 코팅해두고 소개서도 문집에 넣을 거니까 잘 보관하도록 해야한다. 흠.. 월요일이나 화요일도 학교에 나와야겠다. 자전함도 다시 만들고 낡은 자전은 손도 좀 보고(3년 썼는데 너덜너덜..) 첫시간 수업준비도 필요하다.

더 필요한 건? 출석부 안면에 부쳐둘 용지, 아이들 자리 정하기, 임시 반장 정하기, 청소 도우미 정하기. 제일 중요한 건? 담임 소개서인데.. 재작년 담임할 땐 편지를 써서(쳐서) 복사하고 봉투에 넣어 하교길에 아이들 손에 들려 보냈다. 올해는 카페를 만들거니까 거기에 내 편지를 올려두고 카페등록을 숙제로 내줄거다. 학부모님께 보내는 편지도 써야하고.. 청소구역도.. 급훈이나 학급 구호는 어떻게 정할까? 중요한 반장,부반장 선거도 있고.

그러나 이런 물리적인 작업보다 더 중요한 건 정신적인 '결정'이다.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사설모의고사...이런 문제들이 없다면 사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담임과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거의 없을 것이다. 강제로 시키는 야간'자율'학습과 거의 모든 아이들이 참여하기를 강요하는 보충수업, 아이들 학업에 있어서 그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늘 목말라하는 사설모의고사. 맘이 무거운 이유는 이런 것들 때문이다. 어느 선까지 강제를 허용을 할 것인가? 강제력에 대한 '허용'을 스스로 '허용'해야 하는가?

이미 '정의된 언어'에 정직해야한다. 야간자율학습은 그야말로 '자율'적으로 실시되어야 함을 전제한 정의이고, 보충수업은 그야말로 '보충'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여부를 결정하게 해야한다.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지금처럼 모든 아이들에게 신청서를 억지로 쓰게해서는 안된다. 거부하는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에 대한 간접적 피해, 성적 하락, 이에 기인하는 불안한 미래 등 치사한 이유을 들먹이면서... 사설모의고사는 불법이다. 불법이란 건 그 폐해를 교육부에서도 인정한다는 것이다. 불법 자행되는 것, 막아야할 일이다. 이것들은 모두 고민이 필요치 않는 '상식'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이런 상식을 지켜나가기란 무지 힘들다. 아이들은 판단력이 없는 불완전한 존재로 취급당하며 고등학교 3년을 그렇게 살다가 졸업하고 교문을 나가는 순간 -혹은 대학생이 되는 순간- 갑자기 판단력을 가져야하는 성인으로 대우받는다. 한번도 발휘해본 적이 없는 판단력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 어느날 아침 문득 주어질까?

실패 역시 중요한 공부이자 학습이다. 나를 포함한 요즘 어른들은 아이들이 실패하는 꼴을 못본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칠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실패 없이 경쟁에서 이기고 결국 '성공' 할 것이라는 상대적 불안감이 학부모와 아이들을 옥죈다.

실패를 경험해보고 다시 원점에서 그 원인과 새로운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하는 시간. 참된 성숙의 기회를 제공하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돌려주느냐. 이것이 우리 교육에서 진정 고민해야하는 부분이 아닐까. 6~7시간의 정규수업 후의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사설모의고사 그리고 학원, 과외수업으로 이어지는 아이들의 일과....  아이들에게는 실패하고 고민하고 다시 일어설 시간이 없다.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과 행동으로 제자들에게마저 우활하다고 비판받았던 공자가 떠오르는 밤이다. 과연 나도 현실을 외면하고 공허한 '이상'만 부르짖고 있는 것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느티나무 2006-02-2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정말 대단하십니다. ^^ 정말로! 존경스러워요,힘 내세요.

해콩 2006-02-2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뇨 아뇨. 저것들을 다 했다는 게 아니고 앞으로 할 계획이라는 거죠. 그래서 개학 전에 학교에 함 더 가야할 것 같다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