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2. 24. 금

사실 이런 날을 '환한 오늘'이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직도 맘이 떨리는 것이 통 진정이 안 된다. 아침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의 시작이었다. 그저 봄방학 중 등교일일뿐이었는데 2학년 담임 발표를 하고 반을 가리는 제비뽑기를 하는 그 순간부터 가슴이 떨려왔다. 설레는 두근거림은 아니다. 이건... '두려움'에 가깝다. 아이들.. 담임을 신청하기로 맘 먹은 그 순간부터 나는 문득문득 두려워진다. 8년차나 되어서도 나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두려운 것일까? 재작년, 스스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담임 노릇의 후유증을 여지껏 떨쳐내지 못한 나의 소심함인가? 암튼 나는 그때처럼 아이들이 나를 밀어낼까 많이 걱정스럽다.

그래서 오늘부터 나는 7일 기도에 돌입한다.

 "아이들과 내가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신념과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되 내 고집만 부리지 않고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여유와 관용을 가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이번 한해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함과 넉넉함이 자랄 수 있는 1년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공부나 점수, 성적 때문에 자신을 갉아 먹는 한해가 아니라 맘 먹은데로 잘 안되더라도 스스로의 참된 마음을 믿고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진통이 있더라도 '우리들의 관계'를 통해 서로가 영혼의 흔들림을 느끼는 그런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가끔 실수하고 오해하고 그래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겠지만 결국엔 '진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있게 해주십시오. 아~ 나중엔 우리가 웃으면서 또 울면서 헤어지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를 그리워하게 해주십시오. "

이건 너무 큰 욕심일까? 여전히 나는 아이들에게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걸까?

42명. 제일 많은 숫자의 여학생 문과반. 역시 나의 손은 마이다스의 그것인가 보다. 피해가려고 용을 쓰는 나를 알지 못하는 어떤 힘이 용납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같고 매사에 긍정적인, 착하고 쉬운 아이들과 이과반 여학생들을 '='관계에 두고 저울질한 내 응큼한 마음에 대한 '벌'인 것 같기도 하고. 아이들을 분류하고 저울질하다니... 아직 만나지 못한 우리 아이들에 대한 모욕!

너무 긴장하지 말고 몸에 힘을 빼고 받아들이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안되는 부분에 대해서 뒤돌아보며 연연해하지 말고 기다리자. 원래 '영혼의 흔들림'은 고통스러운 것이고 그러기에 시간이 걸리는 거다. 것도 아주 긴 시간이!  믿는 거다. 스스로 믿고 아이들도 믿고. 대상를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이 아닐런지.

여전히 나의 기도문은 너무 멀고 거창한 것 같다. 이건 어떨까?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고 즐겁운 시간을 나누게 해주십시오"

내일은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겠다. 가서 내게 올 아이들 이름도 외우고 처음 만나는 날 준비도 하고 수업도 좀 챙겨보고.

 

* 다음 카페에 [강낭콩 껍질 속에서]라는 카페를 개설한 후 꾸미기 작업에 들어갔다. 다음에서 만들 수 있는 카페의 종류는 세가지가 있는데 어떤 것이 내 개인 자료실도 겸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으로 적당한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쌓인 자료로 나중에 학급 문집을 만드는 데 활용할 생각. 털어놓기 힘든 맘을 인터넷 상에서 좀 더 쉽게 접근해보려는.. 잘 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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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6-02-24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 나쁜(다고 생각하는)사람 나쁜 점 찾아서 욕하기,
그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 올해는 어려운 일에 한 번 도전해 볼까, 합니다. 왜냐구? 지금껏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아온 것 같거든요...헤헤!

해콩 2006-02-2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 나쁜 (다고 생각하는) 사람 좋은 점 찾아내(서 칭찬하)기. 맞나요? (아님 말고..ㅋㅋ) 저도 이 어려운 일로 세상을 보는 제 눈을 조금이라도 돌려놓을까 합니다. 그럴려면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흠흠... 그리고 샘께서 세상을 쉽게 살아왔다면 저를 포함한 아주 많은 사람들은 거저먹은 거지요. 대충 대충 묻어가면서.. 부끄..--;

느티나무 2006-02-24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끼리 칭찬하고 추켜올리고 해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샘이야 대충 묻어가는 사람 아니지요. 한마디로 치열한 사람 ^^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이 꽉 막혔다는 말을 훈장처럼 여기는-가끔 그런 소리 들을 때마다 '나도 안 그러고 싶다'던 샘 말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사람이잖아요. 저야 나쁜 사람 대놓고 욕은 잘 안 해도, 보기 싫은 건 딱 외면하고 눈감아 버리는 스타일이니까~! 올핸 노력은 해 볼까 합니다. 정말 너무 쉽게 살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