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여행 마지막날 (2005. 8. 21. 일)

알람용 음악소리..^*&%&*)*& 7시 30분!! 오늘은 ㅈㅎ샘 핸드폰이 울었다.. 어제 밤엔 도보여행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켄터키 한 마리에 맥주 세 캔을 사서 잔치를 벌이고 늦게 잤다. (서로 별 말도 없이 타이슨 권투경기를 보면서 열심히 먹기만 해서 1시간만에 다 먹어치우고 1시쯤엔 잠자리에.. ) 늘 그렇듯이 베개에 머리를 붙였다 싶으면 바로 아침이다.

핸드폰을 끄고 돌아봤더니 ㅇㅈ샘이 없다. 화장실 갔겠지.. 창밖으로 보이는 날씨가 좋아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나머지 한 동행은 쿨쿨~ 여전히 잘 주무신다.. (사실..나보다 더 잘 자는 사람들.. 처음 본다. - -;) 상쾌한 바람~ 가을이구나!! 30분정도 지난 것 같은데 ㅇㅈ샘이 안 오네. 목욕탕을 힘끗 들여다봤는데 없다! 흠.. 산책이라도? 나도 같이 갈껄..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 돌아온 ㅇㅈ샘.. 피씨방에서 내려갈 기차표 예매하고 왔단다. 부지런도 하여라~ 꼼꼼하고 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랑 여행하니까 정말 좋다.. 난 그냥 "이거 먹어요~ 저거 먹어요" 이런 말만 하면 되고..ㅋㅋㅋ 천안역에서 5시 24분. 출발 10분전에 표를 찾아야한단다.

오늘 아침엔 ㅈㅎ샘 잠이 보다 막강하다. 아마 일요일임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지. 같이 청소년 성장드라마 반올림# 보고 9시쯤 일어나서 대충 씻고 정리하고.. 방 정리 할 동안 나랑 ㅇㅈ샘은 아침 거리를 준비해오란다. 뭐 별거 있나 농협마트 가서 빵이랑 우유 사서 아침 때웠다. 일요일이면 즐겨보는 프로, 퀴즈 대한민국!! 오늘 상금은 6천만원이 넘었는데 퀴즈왕 탄생은 또 실패다. 우리 모임의 브레인, ㅈㅎ샘이나 ㅈㅎ샘 (실수 아님.. 두 사람의 이니셜이 같다는 사실, 나도 지금 알았네.)이 나가면 성공할 수도 있을것 같은데.. 꼬셔봐야겠다. 혹시 고물이 좀 떨어질지도...

어제 계획한 대로 서산마애삼존불을 뵙고 천안으로 시외버스 타고 가서 기차로 이 여행을 마무리 하기로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부처님을 뵈러가는 길.. 초가을 같은 정말 쾌청한 날씨. 노래가 절로 나온다. 뒷 자리에 앉은 여중생들의 끊임없는 재잘거림이 어찌나 경쾌한고 재미난지.. 기사 아저씨께서 야단치시는 바람에 아이들 소리가 쑥 들어가버렸지만.. 기사아저씨의 승객 배려에도 여중샘들의 재잘거림에도 미소가 절로.. ^^ 백제의 미소..ㅋ

저수지 발견!! 아마 부처님께서 근처에 계신듯하다. 내려서  1.7km  계곡을 낀 산을 조금만 올라가면 마애불이 계신다. 여전히 계신다. 천오백년 동안 여전히 그렇게 웃으며 서 계신다. 아둥바둥 거려봐도 사람의 목숨이란 얼마나 유한한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조명이 없어 그 후덕한 미소는 제대로 볼 수가 없었지만 아기 젖살처럼 통통한 부처님의 살맛은 여전하시다. 어허 버릇없게!! 

버스에서 같이 내려 화장실에서 말을 튼 음암중학교 여학생들!! 사회숙제로 온 거란다. 사진 찍고 감상문을 써야한다는데..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와서는 후다닥 사진 찍고 줄행랑이다.  "느끼셔야죠?" 배시시 웃으며 한마디 했지만 ㅇㅈ샘 말대로 아이들이 다 그렇지뭐~ 사실 마애불에 대한 설명이나 감상은 인터넷에 천지다. 보고 베끼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 방학숙제 한다고 여기까지 와준게 어디고.. 기특하고 기특하다. 내려가는 길에 다시 만난 이 아이들, 사온 삼각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그래그래.. ^^ 인사들도 잘하지~

입구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차가 안 온다. ㅈㅎ샘이 히치를 하고는 딴짓하느라 바쁜 나를 불렀다. 00 교회 봉고차. 거의 드러누워서 하늘과 자연을 만끽했다. 너무 좋다~ 계속 갔으면 싶은데 버스정류소에 내리란다.. --; 아맛나, 바카스, 비타500을 먹고 있다가 갑자기 들어온 버스에 허겁지겁 올랐다.

다시 서산 시외버스터미널.. 1시 45분도착. 55분 차가 있다. 화장실 갔다가 간식거리도 사고.. 바쁘게 줄을 섰지만 자리 하나가, ㅈㅎ샘 앉을 자리 딱 하나가 부족해서 천안 가는 직행 버스를 포기해야했다. 바로 온 완행버스.. 설마 늦을까? ㅇㅈ샘은 간발의 차로 놓쳐버린 '배'의 악몽을 자꾸 떠올리는 눈치! 기사아저씨께 우리의 급한 사정을 나름대로 설명하고 좌석에 앉아 대충 요기하고 각자 쿨쿨 잠이 들었다. 천안역에 도착한 시간이 4시 30분.. 넉넉한 시간이다. 기차표를 찾고 압구정 김밥에 가서 치즈, 김치, 참치 김밥을 먹었다. 오늘 처음 먹은 '밥'!!

커피 한 잔씩 하고 열차에 올랐다. 나는 무조건 창가자리.. (창가 자리 중독이 어딜 가겠나..) ㅇㅈ샘은 이번엔 혹시 미모의 여성이 앉을까 기대하며 따로 떨어져 앉겠단다. "그럼 나는 이미 미모의 여성 옆자리네"라고 말해준 ㅈㅎ샘께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미모'의 내가 이런 접대성 멘트에 일일이 감사하고 그러면 안 되는데..  도도하게 당연한 듯이 받아들여야 하는데.. 늘 느끼는 거지만 나는 결정적인 순간엔 그게 안 된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주 다양한 날씨를 즐겼다. 첫날은 구름이 조금 낀 듯 하긴 했지만 햇살이 따가왔고 둘째날은 엄청난 폭우도 맞아봤고 세째날은 가랑비와 살살 부는 가을 바람데 덤으로 만난 무지개.. 오늘은 쾌청 그 자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와서 기차를 타자마자 신발도 벗은 채 창쪽으로 돌아앉았다. 졸다가 눈을 떴을 때 갑자기 떠오른 주홍색 보름달이라니!! 다이나믹하고 버라이어티한 이번 여행.. 짧은 시간에 즐길 건 다 즐긴 것 같다. 너무나 아름다운 이 세상, 시인의 말대로 '소풍 온 듯'이 아름답게 살다가 어느날 문득 그렇게 훌쩍 갔으면 좋겠다.

9시 40분.. 구포역에 떨어졌다. 대장이 사주는 삼겹살에 소주 두잔씩.. 된장찌게에 밥까지 푸짐하게 먹고 집! 이렇게 나의 첫 도보여행이 완전히 끝났다. 삼박사일... 다소 짧은 일정이 여전히 아쉽지만.. 나의 두 다리로 줄창 걷는다느 것이 그렇게 두려운 일이 아님을 알았고, 비에 흠뻑 젖어도 다시 길을 나설 수 있음을 알았고, 짜다라 높은 산이 아니라도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올 수 있음을 알았다. 속도 속에서 우리가 얻는 것 만큼 잃는 것 또한 많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고, 속도가 죽여버린 생명들이 도로 가에 그렇게 널브러져 있다는 사실도 눈으로 보았다. 속도!! 과연 인간은 빨리 가는 것만큼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이젠...백두대간 종주를 어떻게 하는 건지 한 번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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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5-08-22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오늘은 특히나, 더 훌륭한데요. 특히 마지막 문단이 제 마음에 쏙 들어요 ^^ 그래요, 너무 높은 곳이 아니어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기엔 충분한지도 모르지요. 거듭, 감사 ^^

해콩 2005-08-22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대장님... ㅋㅋ 근데 퇴고를 거치기 전의 다소 난삽한 글을 읽으신 듯 하니 다시 한 번 읽어주시옵소서.. 나흘동안 감사했습니다. 이 원수를 다음번에 꼭 갚도록하지요~

글샘 2005-08-2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다라... 높은 산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걸 깨닫기는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요...
고생들 하셨네요. 이제 넓어진 마음과 지친 몸 잘 달래시고, 개학 준비 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