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6년이 흘렀습니다. 노란 가입원서를 앞에 두고 고민하던 때가...

발령 받고.. 5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지요. 평소 신규들을 각별히 챙겨주시던 선생님이 불쑥 제게 내미셨던 그 노란 카드.. 사실 그때까지 저는 '전/교/조'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몰랐답니다. 당연하죠, 저는 학교 다닐 때 집회 참석 한 번 안해본 그런 '철부지' 학생이었거든요.

학교 사회를 잘 모르던, 그야말로 '쌩신규'였지만 원서 쓰기가 꺼려지던 이유를, 며칠동안 카드를 붙잡고만 있던 제 자신에게 냉정하게 물었지요.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니 저는 두려워하고 있더군요. 그 두려움의 실체는 '뭔가 불이익을 당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었지요. 가입원서를 쓰는 순간부터 왠지 교장, 교감 선생님들께 찍힐 것 같고, 근무 성적도 나쁠 것 같고..  다른 학교로 옮길 때에도 내 뜻대로 안 될 것 같고... 나름대로 심각한 그런 고민들로 혼자서 일주일 정도 끙끙거리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런 두려움과 공포는 사실, 근거도 실체도 없다는 걸 이미 제 마음은 알고 있더군요. 그것은 한낱 개인적인 안위와 연결된 삿된 마음이었습니다. 제가 올바르게 노력하려한다면 그런 것들은 두려움이 대상이 아니어야한다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나아가 이미 '교사'인 나는 아이들을, 학교를 가려서는 안되며 근무 성적을 걱정하여 관리자를 두려워해서도 안된다는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결정적으로 

공포나 불안을 잠재우며 저를 더 크게 흔든 것은 당시 조합원 선생님들이 제게 주신 '편안함과 든든함'이었습니다. 가끔 머리를 울리는 '깨우침'도 한 몫 거들기도 했지요. 후배들의 입장에서, 또 아이들의 입장에서, 아니 무엇보다 '올바름'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려는 그런 모습들... 이 분들과 함께라면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지치지 않고 노력할 수 있겠다 싶은..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는 결국 저 개인에게 달린 것이지만, '바르게' 노력하는 교사는 혼자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가입 후 몇년 동안은 "전교조만이 답인가? 전교조만이 늘 바른가? 저들은 어찌 저리도 매사에 당당할까? "라는 의구심을 떨치치 못했습니다. 매사에 정답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고 또 매사에 지나치게 당당한 그 모습에서 저는 어떤 독선과 아집을 읽었던가 봅니다.  '항상 고민하고 실천하는 교사'로 선배 조합원을 기대했던 제가 실망을 했던가 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들의 준비된 대답이나 넘치는 당당함은 이미 깊은 고민과 실천하는 삶에서 나온 것임을... 물론 가끔 서로 생각이 달라 갈등과 아픔이 있기도 하지만 그건 어떤 조직이 살아있다는 반증이 됨을 또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주위의 조합원 샘들은 가끔 지나치게 뾰족해지는 저의 댓거리에 저를 밀쳐내기보다는  웃으며 받아주셨지요. 따뜻한 솜뭉치마냥...

 

제가 꿈꾸는 학교는

그런 곳입니다. 서툴다고 나무라거나 일을 미루는 그런 대상으로 후배교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선배교사로서 후배교사를 살뜰하게 살펴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떳떳하고 당당한 선배교사의 모습을 보고 후배교사가 그 고민과 실천을 자연스럽게 배워갈 수 있는! 나이나 지위로 아이들 위에 군림하려하지 않으며 객관적인 인격체로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학부모와 함께 건강하고 바른 아이의 모습을 기대하며 함께 고민을 나누는! 그런 모습과 관계 속에서 선생님, 아이들, 학부모과 함께 학교에서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제 꿈입니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순진한 꿈인가요?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거대한 꿈인가요?  그렇다면 저는 여전히 철부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럿이 함께 꾸면 그런 꿈도 현실이 된다'는 말을 아직도 믿습니다!

 

어쩌면

선생님은 가입원서를 쓰신 그 순간부터 더 많이 고민스럽고, 더 많이 힘들어지고, 그래서 가끔은 더 많이 외로워지실수도 있습니다. 아니라고 고개를 젖기에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부조리와 모순들이 학교사회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문제들을 모른척 그저 외면하고 사는 것 보다는 고민하고 힘들어하고 외로워하며 살면서도 분명 더 행복해지실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적어도 교사란 아이들 앞에 거짓을 말하거나 자신은 할 수 없는 일을 아이들에게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힘들지만 행복하실 조합원 선생님,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005년 어느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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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5-05-06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해콩 2005-05-06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감사해요!! 늘~

mulbonya73 2005-05-09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놀러왔다 가요. 그때 그시절 그리움 푸지게 안고...^^

해콩 2005-05-09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요체'를?... 님의 그 아름답고 당당하던 '하오체'는 어디로 갔소? ^^ 그 시절.. 참 거시기한 세월이었지요. 엊그제 같아요. 그때.. 그대.. 언제쯤 다시?

글샘 2005-05-15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조합은 가입하고 말고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단체라고 생각합니다. 불쌍한 우리의 조합은 핍박의 역사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에 가입을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조합비는 전국 모든 교사들이 당연히 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혜택을 모두가 보기 때문이지요.
당연한 것을 당당하게 하는 것. 이게 조합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발령 받은 지 한 달만에 노란 원서를 썼답니다. 노란 원서 쓰고 나서 한 달 뒤에 전교조가 출범했지요. 원년 멤버인 셈인데... 노란 원서 쓰고 두 달 뒤에 해직될 뻔 하기도 했고요.
무슨 일을 하든 당당하게 하는 것이 조합원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해콩님의 글을 읽으니 제가 몸시 부끄럽습니다만, 그래도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해콩 2005-05-16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에게 당당하겠다'는 언명보다 더 자신을 구속(?)하는 것이 있을까요? (아! 아이들 앞에 당당하겠다는 다짐이 있군요. ^^) 그 지난한 시대를 헤쳐오신 선배님들, 후배로서 존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감사하구요. 꾸우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