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들고

지을 수 있는 모든 얼굴을 지어보네

울다 지친 때

 

거울 가게 앞을 지나다가

문득 놀라네

초라한 모습으로 걷고 있는 내 모습에

 

~1915년에 그린 <이중 자화상>은 실레의 자화상 중에서도 가장 기발한, 하나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이는 어깨 위, 아니 거의 목 위쪽만 있는 두 개의 상을 조합한 것인데 아래쪽의 얼굴은 눈을 부라린 채 오로지 한 점을 응시하고 있다. 위쪽의 인물은 음울하고 고통스런 표정의 사내가 사랑스럽다는 듯, 아래쪽 사내의 머리에 볼을 갖다 붙인 채 앞쪽을 보고 있다. 그 역시 눈을 크게 뜨고 있으나 응시의 시선이라기보다는, 그림을 보는 사람의 반응을 은밀하게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아래쪽의 인물이 오로지 자기 내면에만 골몰해 있다면, 위쪽의 얼굴은 반은 아래쪽 인물에게 마음을 빼앗 채, 반은 과연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눈빛으로 주위의 반응을 엿보고 있는 느낌을 준다.

  둘다 실레의 자화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표정이다. 아래쪽의 얼굴은 심각한 계열에, 위쪽의 얼굴은 다소 익살맞은 유형에 속한다. 따라서 위든 아래든 한쪽을 손으로 가린 채 다른 한쪽만을 보면 여느 때오 같은 실레의 자화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양쪽이 동시에 보이는 순간,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하고 이상한 분위기가 배어 나온다. 만일 두 사람이 남자와 여자였다면 아래쪽은 사랑을 받는 남자, 위쪽은 사랑을 주는 여자였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받는 자의 무겁고 고통스런 표정이 훨씬 윤곽도 진하고 입체적이며 실질적으로 느껴짐에도 한참 동안 보고 있으면 눈길을 강렬하게 끄는 것은 오히려 사랑을 주는 자의 평면적인 얼굴임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이 자화상의 주요 모티프는 사랑하는 쪽에 있다. 그러헥 볼 때 이는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근친상간적 그림이 아닐까. 분석하거나 구성하는 식의 지적인 인상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실레 내부에서 두 개의 육체가 생생하게 뒤얽혀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더구나 그들의 표정의 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왠지 모를 성性의 냄새이다.

이 작품이 나르시시즘의 색채를 풍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여백안에 떠오른 두 사람은 서로 몸을 붙이고 서로의 고독에 기댐으로써 쓸쓸함의 작은 둔덕이라도 세우려는 듯하다.


 

-구로이 센지 지음, 김은주 옮김 <에곤 실레, 벌거벗은 영혼> 2003. 87~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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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11-12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노래방에서 보던 에곤 실레 책은 환상이던걸요... ㅋㅋ

느티나무 2004-11-12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어제는 샘 덕분에 무사히 잘 왔네요. 샘이 하신 일 덕분에 우리가 잘 하고 있다는 칭찬도 받고... ㅋㅋ

해콩 2004-11-1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상?...! 어느 부분을 보신건데요? (노골적이고 아주 솔직한 그림이 대부분이던데..ㅋㅋ) 제가 한 일? 무엇? 혼자 한 일은 없는디요. 다 '짱'님이 하자는데로 시키는데로 했을 뿐인뎁쇼.. 버튼도 샘이 다 고생했고.. 멜 보내는 것도 저는 따라만 할 뿐이죠. 근데.. 내년이 좀 걱정이예요. 샘 의중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해콩 2004-11-12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그리고 담부터 그렇게 늦게 택시 탈 일 있으면 꼭 집앞까지 타고 가세요. 일부러 너무 많이 걷지 마시고요. 그 시간에 그렇게 내려주고 가는 맘이 편칠 않던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