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ㅅㄴ에요ㅋㅋㅋ

오늘은 좀 울적해서 선생님께 메일을 띄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평소에 쌤이 메일메일 하고 말씀하셨던게 뇌리게 박혔나봐요ㅋㅋ

 오늘은요ㅡ 학생회일로 집에 늦게 들어왔어요. 좀 많이 늦었는데,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셨더라구요 폰도 꺼져서 연락도 안되고 밤늦게까지 소식조차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죠 그래서 오자마자 꾸중을 들었습니다. (폰이 켜져 있었더래도 연락 안 했을 거에요 왜냐하면 엄마랑 아빠가 좀 뭐라고 하거든요;;;)

저도 변명하다가 좀 격해져서 아빠랑 길게 얘기를 하게되었는데요,  근데 애기도중  아빠께서 '목표가 있으면~~~ 어쩌구저쩌구' 이러시는 거에요 목표란 말을 들으니 제 심기가 좀 불편해지데요-ㅅ- 그래서 전 바로 '나 목표없어요' 라고 좀 볼멘스런 말투로 답했습니다 그러다가 얘기는 깊어지고 깊어졌고ㅡ 그럴수록 저는 점점 퉁명스럽게 대꾸했지요 

 '정말 내 적성을 따지는 거라면 난 만화가가 되고싶다' '사실 미용사도 되고 싶다' 란 말도 했습니다. 옆에서 듣던 엄마는 완전 빡 화내시는 겁니다. 근데 전 정말 저런 생각합니다. (물론 생각으로만 머물고 있었던 거에요.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괜히 반항 좀 해본다고 저런 말 했어요ㅋㅋ) 비록 내 성적이 아깝고(물론 좋은 것도 아니지만) 여태껏 해 온 게 아깝기도 하지만 나는 만화가 좋고 그림그리는 것도 좋고 머리 자르는 것도 좋아하니깐요. 반면 스스로도 저런 건 사회에서 별로 우대받지 못하는 업종이란 건 알고 있습니다. 물론 직업에 귀천은 없겠지만 역시 사람들의 인식과 시선은 중요하잖아요. 하지만 전 그런덴 신경쓰고 싶지 않습니다. 거리가 더러운 걸 보면 환경미화원이 되고 싶다고도 생각하곤 하거든요

그러나, 항상 저의 생각에 제재를 가하는 건 부모님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다른 부모님들과 같이 자식욕심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역시 공부로 성공한 직업을 택해야 겠지요. 전 오늘 깨달았습니다. 나도 마음만 먹으면 만화가가 될 수 있고 환경미화원이 될 수 있다는 걸요. 내 뜻만 확고하다면 여기서 직업반으로 갈 수 있다는 걸요.

그러나 내 적성만 따지자니 안 되겠고, 그렇다고 안 따질 수도 없고... 물론 내 인생이므로 그런 건 내 결정이라고 하지만 내 인생은 나 하나만으로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 뜻대로만 선택할 수도 없고... 정말 고민과 번뇌로 괴로워하는 깊은 밤입니다..

(할 말은 많았는데 쓰면서 다 까먹어 버렸네//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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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날 아침이야. 엄마 도와서 아침 준비 대충해놓고 컴 켜기가 바빴단다. 사실 어젯밤 - 아니 오늘 새벽에도 4시까지 컴으로 자료를 좀 만들다가 너무 일찍(!) 자버렸거든. 그래서 네게 이렇게 또 답장이 늦어버렸네. 사안이 사안인지라 편지 받자마자 답장해야지 맘 먹고 있었는데 네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정리하느라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 ^^ 결과는? 그저 내 얘기해주는 게 도움이 될까? ^^


중학교 때 나도 공부를 쫌 했었지~ (고등학교 올라가서 넘 어려워지는 바람에 확 떨어진...) 아슬아슬하게 운이 좋아서였지만 중학교 졸업할 때는 모든 과목이 '수'였단다. 그러니까 미술이든, 체육이든 다 웬만큼은 했거든. (이건 내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긴 대한민국 교육체제에서 모든 과목 수 받는 것이 얼마만큼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그땐 내가 비상한 재능을 가진, 천재는 못되고 영재 정도는 되지 않을까 착각도 하고 그랬단다. 내가 뭐든 선택만 하면 그게 나의 인생이 될 줄 알았지. 그런데 그 적성, 꿈이라는 거, 그거 고민하고 결정하는 방법, 결정적으로 난 그걸 배우지 못했던 거야. 늘 그때 그때 시험공부에만 충실했고 그러니 점수도 딱 ‘웬만큼만’ 나온거였지.



고등학교 올라가서 성적이 후두둑 떨어지면서 한 때 미술을 해볼까 (좋아했거든) 생각도 했지만 부모님이 돈 많이 들고 돈 안 된다고 반대. 정말 하고 싶었던 거라면 맹렬하게 싸웠겠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못 느꼈던 것 같아. 얘기 함 해보고 단호하게 '안 된다' 이러셔서 바로 꼬리 내렸지. 내 기억으로는 부모님께 처음으로 ‘내 생각’을 말씀드려 본 경험. 그때.. 아마 나도 속으로는 안 될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 우리 형편에 언니도 미술하는데 나까지 어떻게 감당할까 하고..



그리고 고2, 고3. 애매하게 나오는 성적으로 담임샘과 상담을 했는데.. 안정지원하자 그러셔서 부산대 '낮은 과'를 썼단다. '한문학과'는 그때 처음 생겨서 점수가 다른 과보다는 낮았거든. 신설과는 대충 합격선이 낮지. ^^ 그리고 한문학과는 '돈'이 안 되잖아..낮을 수밖에. 그땐 더 공부한다는 사실이 정말 싫었어. 내가 확고하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면 재수, 삼수도 불사했겠지만 그저 그 경쟁의 감옥을 탈출하고 싶은 생각뿐이었어. 한 해 더 그 짓은 도저히 못하겠더라고. 대학생활? 무슨 재미가 있었겠니.. 내 인생에 그렇게 무책임했으니...



그때부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3학년 4학년이 되면서 삶의 의욕조차 없어지더라. 내 스스로 살아있지 않은, 깨어있지 않는데 대한 벌이라고 생각해. 삶의 허무함, 누구에게든 한번은 죽음의 유혹과 함께 찾아오는데 나는 그때였나봐. 가볍게 아주 가볍게 허무한 삶을 이쯤에서 접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었지. 다 한때의 치기!! ^^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네.  그 다음부터는 알지? 꼬인 인생 펴려고 한 5~6년이 더 걸리고... 지금은 너희들이랑 늘 아웅다웅 행복하지.



시내야, 네게 하고 싶은 말은 '자기 스스로 결정해야한다'는 거야. 물론 그 결정에는 지금 너의 여러 가지 상황-부모님의 생각 포함해서-이 다 들어가야겠지. 그렇지만 이것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저 저것도 잘 할 것 같고, 이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 저것도 뭐 그냥저냥 괜찮고.. 그렇게 있다보면 ‘내’가 누군지 잘 알 수가 없어진단다. 결국은 다른 사람의 추천에 의해 니 인생을 결정해야하는데 나중에 그게 니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도 다른 사람은 책임져주지 않는단다. 지금 당장의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내’가 누군지, 무얼 좋아하는지 늘 염두에 두고 있으렴. 여러 가지 책을 많이 보면 도움이 된단다. 책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인생, 그 자체가 삶의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제시해주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말 확 끌리는 게 있을지도 모르고.



꼬불꼬불 돌아돌아 여기까지 온 내 삶을 지금 후회하지는 않아. 적어도 나는 죽을 만큼 열심히 뭔가를 해봤거든. 그리고 지금 이 일이 너무 좋아. 그렇지만 일부러 꼬불꼬불 갈 필요는 없을테니까, 시내 너는 나처럼 밍기적거리다 고생하지 말고 지금부터 착실히 고민해두렴. ^^



그러나 이것도 꼭 기억!! 무슨 일을 하든 니 공부와 일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 공부나 일을 그저 성취나 만족의 수단으로 생각하면 그 일과 관련된 사람을 배제하기 쉽단다. 그렇게 되면 공부와 일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쫓기게 되지. 그 일을 하는 너 자신도, 그리고 그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도 일 자체의 노예가 되기 쉽단다.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일을 위한 일이 되어버리면 그 일이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결과적으로 좋은 효과를 가져온다 해도 오래가지 못할 거야.



다른 사람 머리 만지는 일, 만화와 관련된 일, 환경미화원까지... 귀하지 않은 일은 하나도 없고 현실적으로 너는 그런 일을 하기에는 아주 뛰어난 아이지만 그런 일도 자신이 정말 사랑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하는 사람과는 큰 차이가 있을 거야. 너는 어떠니? ‘성공’이란 다른 사람의 잣대로는 도저히 잴 수 없는 것이지 않겠니? 무엇으로 ‘성공’한 삶인지 아닌지 평가할 수 있을까? 돈? 권력? 다른 사람들의 인정? 결코 빠질 수 없는 아주 중요한 평가의 잣대 중의 하나는 ‘일 차제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와 관계된 ‘사람들의 행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단다. 이것이 내가 네게 권하는 ‘꿈을 정하는’ 하나의 잣대이지.



우와 이 긴 글을 정말 내가 쓴 거야? 며칠 동안 깊이 생각한 흔적이 느껴지니? ^^ 실질적인 도움이 못될 지도 몰라. 더 혼란스러울 지도 모르지. 그러나 빠른 길만이 늘 옳은 길은 아니란다. 시내가 잘 할 수 있을거라 믿어. 네 눈빛은 늘 따뜻하니까... (아이들의 눈빛은 대부분 늘~ 따뜻하지)



또 ㅅㄴ에게 하고 싶었던 말 없나? 아!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 내게 가끔 섭섭하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다가와서 물어봐줄래? 그리고 갑자기 생각나는 또 한가지! 시내야~ 실패와 좌절은 사람을 성큼 키워준단다. want 없이는 want도 없는 거라는 얘길 읽은 적이 있어. 실패와 좌절을 겁내지 말자.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모습!! 아름다울거야.



우리 반 한 명 한 명, 늘 내 눈길이 닿아있단다. 너도 그 속에 아주 중요한 ‘존재’이지. 내게!!



2004. 9. 28. 추석날 아침.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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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9-25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좀 뜬금없지만...

해콩 2004-09-25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부터 연휴에 돌입합니다. 물만두님께서도 환한 추석, 가을 보내세요. 그리고 저.. 뜬금없는거 즐겨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