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안준철의 교육에세이
안준철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드뎌 안준철 선생님의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챙겨서 집을 나섰다. 차안에서 우선 '서문'을 읽었다. 아~ 역시!!  '아이들보다 내 꿈이 더 커지지 않길' 바라시는 선생님.. 감동이다. 이 책은 보나마나 뻔하다. 내게 끝없는 '돌아봄'을 요구할 것이다. 맘은 다소 힘이 들겠지. 빙그레 웃음도 잦겠지만 또한 눈물도 그만큼... 그래도 분명 행복할 것이다. 이런 생각도 잠깐 스칠 것이다. '이런 분과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면 어떨까?', '서툴고 못 미쳐도 나는 나의 자리를 지켜야겠지?' 이런 저런 생각으로 감히! 책장을 다급하게 넘기질 못하고 있다.

   아침에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오늘 또 사고-아이들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를 쳤을 것이다. 학교의 아침은 늘 바쁘다. 오늘 조례시간에 아이들이랑 가을 노래 한 곡 들어야지, 너희를 사랑한다 말해줘야지... 하면서도 늘 이것 가지고 왔냐? 저것 가지고 왔냐? 추석 전에 대대적인 두발 단속 있단다. 그전에 알아서들 하거라. 등등.. 옷만 갈아입지 않는다면 매일 그날이 그날 같다.

   **이 어버님께 전화를 받았다. **이... 개학하고 절반이 결석이다. 약하고 빼빼 마른 녀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아버님도 심한 당뇨로 여름방학에는 입원까지 하셨단다. **이네는 부녀가 서로 보살펴주어야 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해서 엄마가 안 계시다. 오늘도 **이는 못 온다. 지난 번 아픈 것이 아직도 덜 나아서 오늘 큰 병원에 정밀검사 받아보러 간단다. 아이가 아프다는데 나는 이젠 진심으로 걱정이 안 되는 것 같다. 의례히 알겠노라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5교시, 힘든 5반 수업을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는데 아이들이 "샘~ 누구 왔는데요~"한다. 돌아보니 뒷문에 00이와 ##이가 서있다. 00이 눈이 발갛다. 왜? "샘, 담배 피다 걸렸는데요." " 뭐? ##이도?" "네" 반성문에 담임 싸인란이 있다. 점심시간에 10반 @@이랑 우리 반 두 녀석이 중간고사 치고 다 가버린 3학년화장실에 가서 어제 편의점에서 산 담배를 폈단다. 이상하게 마음은 담담했다. 그러나 표정은 삭막했을 것이다. 그냥 반성문 한번 씨익 읽어보고 싸인해주고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보냈다. 수업 마치고 교무실로 내려오니 교무실 앞에 두 녀석이 벌서고 있다. 학생부에서는 딸아이들이 담배를 핀다고, 남녀평등시대이니 여학생들도 피워야한다는 애매한? 소리가 들려왔다. 담임에게 알리지도 않고 학생부 차원에서 벌써 학부모 호출. 야단은 쳐야하는데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잔소리를 하기 보다는 진심을 담아 편지를 써야지. 그리고 쿨~하게 보내줘야지. 어차피 내일부터 학교봉사로 벌 받을 아이들... . 6교시 후, ##이를 불러 짧은 잔소리하고 편지를 쥐어 보냈다. 7교시 보충 수업 후, 00이도 불렀다. 주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깊은 이야기는 못하고 또 편지를 주어 보냈다.

  어제 ㅁㅁ이가 아무 말 없이 가버렸다.%%이가 'ㅁㅁ이 어머님께 무슨 일이 있어서 가봐야한다면서 갔어요. 선생님께 전화한데요.'전해주었다. 알겠노라 했지만 나는 마음 속으로 두둔하는 %%이도 아무 말 없이 그냥 가버린 ㅁㅁ이도 못 미더워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ㅁㅁ아 내려오너라 했다. 종일 ㅁㅁ이는 내려오지 않았다. 나중에 7교시 보충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인적이 뜸해졌을 즈음 ㅁㅁ이가 왔다. "ㅁㅁ아 어젠 왜 갔노? 느들 사정 말하면 내가 다 보내주잖아? 어제는 더구나 내가 야자 감독이었고. 근데 왜 말도 없이 갔노? 지난 금요일도 아무 말없이 가고. 그래서 토요일 니가 뭐랬노?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죄송해요 샘... 근데 앞으로도... 일이 좀 있어서... 최대한 열심히 하겠지만..가끔 가다 한번씩 빠질 것 같아요..." "왜? 이유를 말해야 보내주지" "......." "무슨 요일 빠질건데?" "그게 아니고요 샘, 엄마가 방학 때 대장암 수술을 하셨어요......" "뭐라고!! 진작 말하지. 아이들은, %%이도 모르나?" 울먹울먹 하더니 그예 눈물보가 터져버렸다. 손을 잡아 주었다. "예, 아무한테도 말 안했어요. .. 지금은 괜찮으신데 엄마한테 연락 오면... 보살펴 드릴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내가 큰 실수 할 뻔 했다. 지금이라도 말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필요한 일 있으면 꼭 말해줘.. 몰랐으면 내가 니한테 큰 죄책감 느낄 짓을 할뻔했다... 괜찮으시제, 지금은?" "네.. " "그래 알겠다. 올라가봐라"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다시 책을 펴들었다. 조금 읽다가 덮고 하루를, 나를 돌아보았다. 아슬아슬하게 겨우겨우 넘긴 하루... 여전히 나는 아이들에게 속을까봐 두려워하며, 상처를 감수하고 온 마음으로 믿기보다 의심하는 한 자락을 남겨둔다.  '사랑한다, 너희들을 위해서다' 말을 하면서도 저 아래 깊은 속마음을 뒤져보면 항상 나의 입장, 나의 체면이 매사에 개입한다.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타고난 심성이라는 게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내 꿈이 아이들 보다 더 커지지 않는'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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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4-09-08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해콩선생님!! 제 불찰로 그 때 안준철 선생님을 뵙지 못했어요. 제가 워낙 수줍음도 많고, 그렇잖습니까? 근데 이번 방학에 가장 후회되는 일입니다, 그게!(다시, 기회가 있을까요?) 다른 선생님들도 이 책 읽으시면 좋겠는데요. 독토모임가서 추천 좀 해 주세요. 독토 자료는 좀 그렇지만, 선생님들께는 강추~!

2004-09-08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4-09-12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반계 선생님이신가봐요. 파행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어떤 곳에 피어 있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한 송이 꽃이 아닐까 합니다. 그 꽃송이들이 내 발에 짓이겨지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제 몫을 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아가 주변의 이들이 그 풀꽃들을 밟지 않도록 주의를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 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제도라는 이름의 발길이 풀을 짓누를 때, 풀은 쓰러지지만 다시 일어서는 힘을 저는 믿는답니다. ^^ 만나서 반가워요.

해콩 2004-09-1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쉰이 얘기했듯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겠지요. 한사람 두사람 지나면서 그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겠지요. 그러면서 자연히 '희망'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러나 저는 그 풀싹까지 잘라버리는 장면을 보곤 합니다. 이듬해가 되면 그렇게 잘려나간 풀들 다시 자라나 초원을 뒤덮을 수도있겠지만, 그것이 교사인 저의 희망이지만, 그럼에도 학교에서의 '오늘'이 너무 암담하게 다가올 때가 많습니다. 제도 안에 있는 저 역시 나도 모르게 풀싹을 잘라버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되거나 그렇게 '강요'당할 때 좌절합니다. 역부족일 경우가 너무 많아서...그래서 글샘님 만나니 반갑습니다. 여럿이 함께 희망을 얘기할 때, 그 길은 더 넓어지고 탄탄해지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