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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기와 1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37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새움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세월에도 가속도가 붙는 걸까? '까만기와'에 입학한 후 임빙과 그 친구들은 참으로 빨리 자랐다. [빨간 기와]에서 따뜻한 심성과 정의로운 마음을 지녔던, 귀엽고 철없던 아이였던 그들은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임빙의 키처럼 알게 모르게 쑥쑥 자라고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의 일원을 넘어서 사회의 일원으로 커가고 있었다. 권력에의 속성을 보여준 탕문보, 성에 눈뜨게 해준 백곰보와 시교환의 부적절한 관계, 교장 왕유안의 권토중래, 기품있던 교사 아이린, 이러저러한 사정들로 진학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현실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친구들... [빨간 기와]에서와는 달리 [까만 기와]에서는 임빙의 시야는 학교밖으로 훨씬 넓어져 있다.
다른 이야기들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받은 것은 '염색공장 아들' 조일량에 관한 이야기였다. 고상하고 도도해 주위 사람들을 쉽게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친구들을 움직이기도 했던 조일량이 '까만 기와'로 진학하지 못하고 한동안 방황하다가 결국 자신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염색 노동자로서의 삶을 꾸려 나가는 부분은 감동적이다. 또한 남부럽지 않던 갑부였던 그의 집안이 하루 아침에 망하고 결국에는 도둑이 되어 압송되어 가는데 그 과정에서 조일량에게 보여준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감동적이다. 그를 못잡아 먹어 안달하던 허일룡까지도 잡혀가는 그와 남겨진 그의 부모의 처지를 진심으로 마음 아파한다. 이웃의 불행에 같이 마음 아파하고 사소한 잘못쯤 덮어줄 줄 아는 임빙과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 오랜 만에 눈시울 붉히며 내 마음도 따뜻했다.
안타까운 사랑과 죽음과 이별.... 그렇게 아픔과 시련을 딛고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속편이 가지는 핸디캡 -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정리하고 마무리해주어야한다는 강박증-을 이 소설이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심리 묘사나 이야기 전개의 힘에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빨간 기와]가 훨씬 좋았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 소설에 투자한 시간이 별로 아깝지 않은 것은 남자 아이가 청년으로 커가는 과정을 지켜본 것이 직업상 하나의 공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진정성을 섣불리 평가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인간에 관한 기본적인 신뢰!
덧붙임 하나: 소설이 다루고 있는 이 시기, 중국은 문화혁명이라는 커다란 홍역을 앓고 있었다. 임빙이나 그 친구들은 흔히 말하는 '홍위병'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파괴와 폭행을 저질렀는지 [빨간 기와]와 [까만 기와]에도 부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작가가 직접 겪은 일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두 소설은 모두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일정부분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 밖에서 평가의 근거로 삼는 '사실'들은 안에서 직접 그 사건들을 경험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있는 '진실'을 넘어서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 소설에서 다룬 홍위병의 존재를 통해 이것을 배우고 확인한 것은 이 책이 주는 짭짤한 부수입이었다.
덧붙임 둘 : 포악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가슴 아리던 챠오안.. 외할아버지(아버지)를 정말 그가 죽였을까? 잡혀간 그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나라면... 다소 비현실적이라도 누군가 그의 황폐한 영혼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결말을 맺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늘 우리 사회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러나 늘 소외받는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고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