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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기와 1
차오원쉬엔 지음, 전수정 옮김 / 새움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문화혁명기 ('65~'75)에 중학교를 다닌 아이들의 성장소설이다. 최시한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나 박상률의 '나는 아름답다'처럼 나이에 비해 일찍 자란 아이들의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가볍고 상쾌했다. 진지함을 상실했다는 뜻은 아니다. 읽는 동안 독자의 마음을 지나치게 무거운 채로 내버려 두지는 않았다. 이 소설이 지닌 큰 미덕이다. 중학생의 생활을 다루었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독하게 가난하고 가정적으로 불우한 아이들, 사람들을 다루면서도 소설은 그들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각 장의 이야기들은 단편소설같처럼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로 존재하면서도 또 내용 전체가 조화롭게 짜여져있다. '일그러진 영웅(?)' 챠오안은 아버지가 없다. 아니 실은 외할아버지가 아버지이다. 이 사실을 스쳐가듯 던져 주지만 이 사실 하나만으로 챠오안의 눈빛이 왜 그렇게 서늘한지 행동이 왜 그렇게 포악(차오안은 가끔 정말 포악하다)독자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젠 기울어져 가는 갑부집안의 마수청은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할머니는 풍으로 골방에 누워만 있고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는 새 부인과 상해에 떨어져 살고 있다. 그를 낳아준 어머니는 자살했다. 늘 거울을 들여다보는 마수청의 행동은 이런 배경을 알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소설은 성인이 된 임빙이 그 시절 '붉은 기와'에서의 생활을 하나하나 훑어 나가는 식이다. 중학생 임빙의 어린 눈으로 본 세상을 성인이 된 임빙이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그래서 이야기는 주관적이면서 또 객관적이다. 어린 눈으로 이해되지 않았던 사실들은 이젠 성인이 된 주인공의 추억을 통해 되새김질 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덜 여문 임빙과 그 친구들의 정의로움과 서툼이 대견하게 또 귀엽게 다가온다. 어린시절 주위에 있던 인물들을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미워했지만 이젠 어른이 된 임빙은 그들과 그 상활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안고 있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 또래 때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잊고 지냈던 아주 작은 사소한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때론 부끄러웠고 또 때론 나와 친구들, 그때의 상황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다퉜던 기억, 즐거웠던 기억, 여러 선생님들..(사실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맞거나 억울하게 당했던 기억이 많아서 그런지..) 이 귀여운 악동들은 그동안 일부러 외면했던 나의 과거와 화해하도록 해주었다. 묻어두고 싶었던 나의 잘못들, 오해들로부터 나를 용서하는 작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땐 너무 어렸으니까..
너무나 매끄러운 표현들이 내 과거로의 여행에 한 몫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다수 번역서들은 고역이다. 시대적 문화적 배경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번역서는 그저 하나의 외국어일 뿐이다. 그에 비해 이 책은 아무 정보 없이 읽었다면 60, 70년대 우리 나라 시골의 어느 학교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무거운 성장 소설은 교사인 나를 여러가지 면에서 돌아보게 한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가끔 스스로를 자책하게 했고 어떤 의무감에 시달리게 했다. 이 책은 그런 자책과 의무감에서 얼마간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교사가 어떤 존재이건 간에 그 또래 아이들에게는 그저 무관심의 대상일 수도 있고 생각보다 작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그러나 이 책은 여전히 나로 하여금 '스스로 성장해가는' 이 예쁜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고 그건 내 앞에 놓여진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연결되었다. 우리 반 아이들 하나하나가 임빙과 그 친구들과 같은 '작은 우주'일 거라는... 내 자신이 녀석들의 무관심의 대상이 되어도 있는 듯 없는 듯 곁에 있어주면서 '한 편'이 되어주어야한다는...
가벼운 듯 하지만 돌아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것, 내가 이 책에 푹빠진 가장 큰 이유이다. '까만 기와'에서 그 사랑스러운 악동들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얼른 엿보고 싶어진다.
- 2004. 8. 19. 목요일 밤. 11시 30분.
* 요즘 부전공으로 중국어 연수를 받고 있다. 낼 모레가 시험인데 이렇게 여유롭게 '딴 짓'을 하는 이유는 이 느낌을 잊어버릴까,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서... 내년에 어학여수를 가게된다면 중국어 판 '紅瓦'를 꼭 사서 사전 뒤져가며 직접 읽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