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소타 주 덜루스에서 로버트 짐머만Robert Zimmerma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밥 딜런Bob Dylan은 라디오를 듣고 기타와 피아노를 배우며 성장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리틀 리처드의 음악을 알고나서부터 여러 록밴드에서 활동했다. 내성적이던 로버트는 11학년 학예회에서 피아노 옆에 서서 절규하듯 노래를 불러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으며 당시 학교의 교장은 노래가 채 끝나기 전에 커튼을 내려 공연을 중단시켰다. 그의 영어교사의 말에 따르면, 그 다음날 등교한 그는 평소처럼 조용했지만 '능글맞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 미네소타 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당시 유행했던 비트족 열풍에 빠져들었고 자신의 우상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의 블루스와 포크가 결합된 음악에 심취했다. 그는 이름을 딜런으로 바꾸고 포크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1961년 학교를 그만둔 딜런은 당시 투병 중이던 우디 거스리의 병상을 지키기 위해 미네소타를 떠났고 얼마 후 맨해튼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블루스/포크 커버곡과 새로 작곡한 곡을 연주하여 순식간에 그리니치 빌리지의 극성팬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했다. 아직 젊은 나이에 그는 이미 포크와 블루스의 대가다운 면모를 보여주며 데뷔앨범 "밥 딜런" (1962)에서 음악적 소양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러나 그가 알려지게 된 것은 두번째 앨범 "프리윌링 밥 딜런The Freewheelin' Bob Dylan"(1963)을 통해서였다. 이 앨범은 "블로잉 인더 윈드Blowin in the wind"와 어 하드 레인즈 거너 폴A Hard Rain's a gonna fall"같은 송가를 통해 밥 딜런이 저항세대에 끼친 짧지만 엄청난 영향의 시작을 의미했다. 이는 고전적인 곡 "더 타임스 데이 아 어 체인징 The Times They Are-A Changin”(1964)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딜런은 반정부주의, 시민권리를 주장하는 운동, 마약 그리고 문화적 불만으로 점철된 갈등의 시대를 산 동시대의 젊은이들을 위해 일종의 정치적 표어를 곡으로 썼다. 그 후 이삼 년 동안 그는 포크음악에 변화를 몰고 왔다.



^밥 딜런                           ^프리윌링 밥 딜런

 <더 타임즈 데이 아 어 체인징

 

 

 

그의 다음 앨범, “어나더 사이드 오브 밥 딜런 Another Side Of Bob Dylan”(1964)은 그의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그는 사회적인 이슈들을 버리고, 여자에 대한 큰 쓰라림에 대한 감정들을 표현한 개인적인 노래들을 불렀다. 이것은 팬들이 배반이라고 생각한, 그의 여러 전환들 중 첫 번째 였다. 개인적인 노래들을 위해 항의하는 노래들을 버린 후 그는 락을 위해 포크송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락을 버렸고 다시 태어난 기독교를 위해 유대교를 버렸다.



^어나더 사이드 오브 밥 딜런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적 음악을 넘어섰으며, 상징주의 시인들의 시구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또한 그는 로렌스 펄링게티와 앨런 긴즈버그 같은 비트족 시인들이 쓴 재즈적으로 변용된 시들과 공연 중간에 신들린 즉흥 연주를 보여준 기타리스트 척 베리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65년에 이해에 그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전자 악기로 돌아섰다;-브링잉 잇 올 백 홈Bring it All Back Home’이라는 획기적인 앨범을 발표했다. 그에게 실망한 포크 순수주의자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서브터레이니언 홈시크 블루스Subterranean Homesick Blues’같은 노래는 전작들처럼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영화 제작자 D.A.펜베이커는 무대 위와 무대 밖에서 딜런의 모습을 촬영하여 <돈 룩 백Don’t Look Back(1965)>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오프닝 장면에서 딜런은 서브터레이니언 홈시크 블루스의 가사가 적힌 여러 장의 큐 카드를 카메라 앞에서 떨어뜨렸고, 앨런 긴즈버그는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어슬렁거렸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네마 베리떼의 특징을 알림과 동시에 뮤직 비디오의 시대를 예고했다.



^브링잉 잇 얼 백 홈                  ^"돈 룩 백"의 오프닝 씬

 

 

 

 

그 후 2년 동안 그는 두 개의 앨범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Highway 61 Revisited”(1965)블론드 온 블론드Blonde on Blonde”(1966)를 더 발표했다. 두 앨범 모두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추구하는 그의 의도를 확인시켜주었으며, 최고의 팝 뮤직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미스터 탬버린 맨Mr. Tambourine Man”, “라이크 어 롤링스톤 Like A Rolling Stone” 그리고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Just Like A Woman”같은 곡들은 딜런이 얼마나 다양한 음악을 추구하는 지 입증했다. ‘라이크 어 롤링스톤은 이 시기의 가장 성공적인 불후의 명곡으로, 60년대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열렬히 표현하였고 그들의 진심 어린 저항심의 목소리가 되었다. 이것은 세대의 대변자로서의 밥 딜런의 역할의 가장 높은 지점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 노래는 2004년 가을, 롤링스톤지의 역대최고의 노래 1위를 차지했다. 1965년과 1966년에 두 번에 걸친 세계 순회공연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팬이 되었다.



^하이웨이 61 리비지티드          ^블론드 온 블론드(감독님이 가장 좋아한다는 앨범)

 

 

 

 

1966년 밥 딜런은 오토바이 사고로 목을 다쳤다. 이 사고는 그의 생애의 터닝 포인트였다. 이 사고 후 밥 딜런은 우드스탁의 그의 집으로 사라져서 은둔생활을 하며 그의 아내 사라와 함께 가족을 부양하는 생활을 하였다. 이 시기 이후의 노래들은 밥 딜런의 송라이팅이 변형을 겪었으며 간결하고 더 직설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사고 이후의 첫 번째 앨범 <존 웨슬리 하딩”John Wesley Harding(1968)”은 소란한 락을 버리고 조용하며 더 개인적인 노래들로 채워졌다. “얼 어롱 더 워치타워All Along The Watchtower”(지미 핸드릭스의 리메이크로 유명)’ 진실과 진지함에 대한 새로운 헌신을 표현하였다. 영화 음악 팻 가렛 앤 빌리 더 키드Pat Garrett and Billy the Kid(1973)”‘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은 밥 딜런에게 최초로 미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하게 했다. “블러드 온 더 트랙스Blood on the Tracks(1975)”는 오랫동안 컴백을 기다리게 한 그의 첫 번째 차트 1위의 앨범이 되었고 뒤이어 두번째 앨범 디자이어Desire(1976)”이 나왔다. 다시 한번 그는 정열적으로 열중하여 음악을 하였다.



^존 웨슬리 하딩                    ^팻 가렛 & 빌리 더 키드

 

^블러드 온 더 트랙스             ^디자이어

 

 

 

 

1970년대 말에 딜런은 기독교적 성향이 아주 강한 일련의 세 음반 중 첫 음반인 슬로우 트레인 커밍Slow Train Coming”(1979)를 발표했다. 1980년대 초반에 딜런은 유대교에 새로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뒤 실망스러운 앨범들을 발표했으며-그러나 인피델스 Infidels”(1983), 메르시Oh, Mercy”(1989)는 예외였다-엉뚱한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점점 늘었다. 그러나 이른바 네버 엔딩 투어라고 부르는 전국 순회공연을 위해 계속 옮겨다녀야했던 딜런에게는 이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순회공연에서 톰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즈나 그레이트풀 데드 등과 공동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슬로우 트레인 커밍



^인피델                              ^오 메르시

 

 

 

 

80년대 그는 여기저기 많은 곳에서 투어를 했고, 90년대에는 그의 노래들이 새로운 청중을 찾았으며 음악계에서 더 많은 갈채를 받았다. 1991년 그는 그래미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았으며 그의 1997년 앨범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Time Out Of Mind”는 그래미에서 세 개의 상을 받았고, 그리고 2001년 영화 <원더 보이즈Wonder Boys>(2000)에 삽입된 음악 모든 건 변했어Things Have Changed’로 밥 딜런은 오스카상을 받았다. 2006 65세의 나이에 발표한 그의 모던 타임즈앨범은 다시 한 번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사랑 받았다.

 

^타임 아웃 오브 마인드              ^모던 타임즈

 

 

 

 


"모던 타임즈"의 수록곡 "웬 더 딜 고우즈 다운When The Deal Goes Down"의 뮤직 비디오엔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해 잊을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http://www.sonybmg.com/musicbox/video/bobdylan/ 에 방문하셔서 위에서 세번째 When The Deal Goes Down을 선택하시면 뮤직 비디오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아임 낫 데어>에 이 영상과 흡사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뮤직 비디오의 한 장면

 

 

 

 

참고문헌: <아임 낫 데어> 공식 프레스북, <아이콘> (바버라 캐디 지음 인희 옮김 거름.)


[출처] 밥 딜런의 역사|작성자 밥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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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7-3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잘 지내시죠?^^
어제 '아임 낫 데어'를 봤어요. 참 좋더군요. '아이콘'을 사서 읽어볼까봐요.
밥 딜런의 시적인 노랫말이 좋아요. 자료가 반가워 들어왔는데 사진들이 모두 액박으로만
보여요. 님 ^^

해콩 2008-07-3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붙여넣기 할땐 분명 사진 보였는데 이게 왠일? ㅜㅜ 제겐 이 영화가 너무 어려워서 밥 딜런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싶었어요. ^^; 사진은.. 어디 가서 찾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