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그 재미있는 박노자씨 강연 중에도 불쑥불쑥 '내일... 학교 샘들이랑 우리반 아이들에게 뭔가 말을 하긴 해야겠는데.. 뭐라고 할까... ' 생각이 들락거려 집중이 흐트러졌다.
오늘. 분회원 샘들이야 걱정하는 맘과 살짝 미안해하는 눈빛을 보내주셨지만 다른 샘들의 생각은 어떨지...시계속되는 감독에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알고보면 완죤 소심한 성격 탓에 결국 아무런 메세지도 남기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디어에서 부각시키는대로 '우리들'만의 이익을 위해 아이들이나 수업은 나몰라라 하고 불법연가를 일삼는 못된 교사로,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나도 그렇게 비칠까? 4교시 시험이 끝나고 종례하면서 내일 일정, 모레 일정까지 말해준 후 사실을 털어놓았다.
"사실 샘은 내일 학교 못 온다"
"이야호~~... 왜요?"
"-.-;; 서울가거든. 9시 뉴스에 나올지도 모른다. 내일 서울에서 샘들 집회가 있거든. 교원평가, 성과급, FTA.. 뭐 그런 거 반대 집회."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피하고 가급적 부드러운 단어를 찾느라고 아주 천천히 한마디 한마디 뱉아냈다.
"흠.. 샘이 수업시간에 느들 발표하면 예뻐서 사과도 주고 그러잖아? 근데 내가 느들한테 '평가'받게 된다면 샘은 그거 못할 것 같다. ... 왜 그렇겠노?"
"우리한테 잘보일라꼬 아부하는 것 같겠네요"
"그래. 지금은 그냥 느들이 이뻐서 사과도 주고 싶고 막 그런데 만약에 느들한테, 또 다른 샘들한테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거 잘 보일라고, 점수 잘 받을라고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서 오히려 못 할 것 같다. 느그들이 진심으로 예뻐서 칭찬해주고 싶고 때로는 무섭게 야단도 치고 뭐 그래야되는데 그런 내 행동들이 다 '평가'받고 '점수'로 환산된다고 생각하면 느들이 언제나 나를 감시하는 것 같이 느껴질 것 같다. 자존심도 상할 것 같고. 사람의 '진심'이 숫자로 계산될 수 있는 거가? 결국 성과급도 샘들을 점수대별로 나눠서 월급을 주겠다는 거고. 그래서 샘은 그것도 안 받았거든. 아무튼 그렇게 된다면..... 그만두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이 말에 아이들은 약간 충격을 먹은 것 같았다.
"그만둔다고요? 우와~"
이건 무슨 의미일까? 교사 되기 억수로 힘들다는데 그걸 그만둔다고? 뭐 이런 의미였을까? 암튼..
"그래서 내일 서울 간다. 9시 뉴스에 나올지도 모른다. 내일 꼭 뉴스봐라"
"와~ 샘 눈에 띄게 머리띠 같은 거 하세요.. @#$^%(&$#@ 다칠 수도 있어요?"
"흠... 불법이라고 하고 또 분위기가 안 좋아서 경찰들이 강경진압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샘... 큰 사람들 뒤에 숨으세요. ㅋㅋ"
"그리고 징계도 한다는데 어쩌면... 나... 짤릴지도 몰라"
"우와~ 샘 심하게 쎄리시는데요.. ㅋㅋㅋ"
'뻥' , 내지는 '구라'가 너무 심하다는 뜻. 요즘 우리 반 유행어이다. --;;
"암튼 내일, 나 없으면 느그들 더 잘 할꺼제?
예쁜 혜명이 놈의 우렁찬 대답
"예에~"
"그리고 샘한테 응원의 문자, 보내줄끼제?"
"예~"
녀석들.. 대답하면서 이미 교실에서 몸이 절반쯤은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텅 빈 교실...
그런데 마음은 뿌듯하고 따뜻하다.
그 전에 작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5교시 감독을 하고 있는데 교감샘이 문밖에서 부르셨다. 온통 밑줄이 좍좍 그여진 공문을 두 개씩이나 눈 앞에 펄렁이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섞어가며 내일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다. 수행평가를 중이기도 했고 수능에 축제 등 행사가 많아 지지난 주부터 몇몇 샘들과 시간표를 바꿔 미리 수업을 해두었다. 지난 주엔 네 시간, 다섯 시간씩 수업했다. 시간을 끝내 맞추지 못한 우리 반 수업 한 시간이 30일 남아있을 뿐이다.
교감샘 말씀의 요지는 연가에 대한 결재를 먼저 받아야지 교장샘 결재가 나기도 전에 수업부터 땡겨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연가를 쓰려면 그 전에 결손될 수업을 먼저 하라고 했다. 연가를 낼 경우에 시간표도 개인적으로 다 바꿔서 일과샘에게 이야기해야한다. 그런데 이제와서 아무런 문제 없이 해왔던 그 일이 잘못이란다.
다른 샘들도 다 그렇게 하시지 않냐고. 교감샘도 알면서 지금껏 결재해주지 않으셨냐고 했더니 '다른 샘들도 다 잘못한 것이고 그래서 다음 교무회의 시간에 앞으로 그리하지 못하도록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단다. 내가 수업을 미리 당겨서 한 것 때문에 교장교감님은 결과적으로 내일 내 연가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꼴이 되어버리고 그래서 오늘 아침 학교장 앞으로 내려왔다는 그 공문에 쓰여진대로 '엄중문책'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껏 연가 결재를 내기 전에 수업을 당겨서 했던 모든 샘들이 '잘못'한 것이라는 이 말도 안되는 책임추궁을 내가 감당해야하나?
내 목소리가 격앙되고 말이 빨라지자 교감샘은 '이제껏 그렇게 안봤는데... 실망했다'고 하셨다. 실망? 애초에 짜다라 기대한 것도 없지만 티끌만한 책임도 지기 싫어서 아이들 수업 결손을 최대한 막아보겠다고 미리 챙겨서 수업한 교사에게 사전결재 운운하는 교감샘에게 그놈의 실망이야 내가 커도 더 크다. "저도 실망했습니다.... " "책임 질 부분 있다면 제가 다 책임지겠다고, 교장교감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내게 중간에 말 자른다고 역정을 내시더니 내가 다른 샘들에게도 똑같이 하기를 원하니까 앞으로는 연가결재 받고 나서 수업 조정하라는 이야기를 교무회의 시간에 하시겠단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지? 내 경우, 그 부분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당연히 관리자가 지는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 아무튼 교감샘은 내 말을 무 자르듯 자르시더니 "ㅇ선생이 그렇게 정당하고 바른데 무슨 이야기를 더 하겠느냐"고 하시면 뒤돌아서서 가버리셨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란 말이지? 내가 책임질 부분은 지겠다고 했고, 내가 이미 수업한 내용은 일과샘에 의해 네이스에 다 입력이 되어버렸는데.. 교육부의 공문도 정말 우습기 짝이 없지만 티끌만한 책임도 지기 싫어 비이성적이고 나약한 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관리자분들이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안쓰럽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유치하고 치졸한 공문을 줄줄이 내려보내는 저 윗분들에 대해서도 화가나고 또한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