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00개의 단상 ㅣ 세라 망구소 에세이 2부작
세라 망구소 지음, 서제인 옮김 / 필로우 / 2022년 12월
평점 :
문장들의 모음이 300개 들어 있는 책. 내가 혹한 문구의 이미지만이 기억에 남았겠지만, 대체로 그 문장들의 모음은 조금 기발하거나, 많이 솔직하거나,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인생의 진리 같은 문장들 이렇게 셋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몇 개의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적 초반에 있었던 이 문구가 내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다. 초반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훌륭한 사진가는 자기가 꼭 시를 써야 한다고 우긴다. 어떤 멋진 에세이스트는 자기가 꼭 소설을 쓸 거라고 말한다. 천사 같은 목소리를 지닌 어떤 가수는 자기가 작곡한 끔찍한 노래만 부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러니 사람들이 나로서는 쓰고 싶지 않은 이런저런 것들을 글로 써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내게 말할 때면 그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이 구절이 특히 마음에 남는 이유는 앞의 세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같은 내용을 이야기하지만 주어가 달라서, 익숙해진 리듬에서 조금 당황했기 때문인 것 같다. 조금 꼬여 있는 듯한 문장 덕분에 집중해서 읽게 됐다. 그래서 사실 나도 그렇다- 라는 당연한 말인데 특별하게 보인다.
몇 개의 문장으로 구성된 문구들이지만 맥락을 대략 알 수 있고 종종 재미있기까지 하다. 모성이나 돌봄에 관한 문구는 굳이 옮기고 싶진 않았지만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전 5년 일기라는 걸 쓰고 싶어했었는데, 거기에 일상이 아닌 생각들을 쓴다면 이런 글이 나오려나. 글을 쓰기 싫어 도망치는 마음으로 이런 짧은 문구를 쓰는 사람의 긴 글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어떤 훌륭한 사진가는 자기가 꼭 시를 써야 한다고 우긴다. 어떤 멋진 에세이스트는 자기가 꼭 소설을 쓸 거라고 말한다. 천사 같은 목소리를 지닌 어떤 가수는 자기가 작곡한 끔찍한 노래만 부르겠다고 고집을 피운다.그러니 사람들이 나로서는 쓰고 싶지 않은 이런저런 것들을 글로 써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내게 말할 때면 그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로마에서 내가 한 가장 가슴 설레는 경험은 포로 로마노로 걸어 들어가 고대의 돌 하나를 원래의 자리에서 집어 든 다음 다른 어딘가에 슬쩍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희망을 포기하고 괴로움에 굴복하는 일. 부처를 능가하는 완전한 초월에 이르는 일. 이 두 가지는 딱 한 가지 작은 특징만 제외하면 똑같아 보인다. 그것은 미소다. 미소 짓는 걸 잊지 말자.
덜 가진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관심을 우리 사이의 불균형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그럴 때면 도둑질을 하는 기분이다. 많이 가진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관심을 우리 사이의 불균형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쓴다. 그럴 때면 자선을 베푸는 기분이다.
나는 젊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종종 놀란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저 친구들은 전혀 모르는구나. 그러면 이번에는 나이 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그 느낌을 즐기기 위해 나는 섹스, 약물, 우범지대처럼 사람들이 흔히 빠져드는 것들에 빠져들곤 했다. 그 갈망을 마침내 충족시킨 건 모성이었다. 모성은 멈추는 법도, 알아차리는 사람도 없는 자기 소멸의 한 방법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나는 더 외로워지는 동시에 덜 외로워졌다. 내가 덜 외로울 때는 이 특별한 외로움을 함께 느껴온 이름 없는 타인들, 알려지지 않은 수십억 명의 여성들을 떠올릴 때다.
우정, 결혼, 부모 됨, 자기 자신의 삶. 이런 것들처럼 끝나는 지점이 어딘지 알려져 있지 않은 일에 대한 헌신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헌신이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내 삶의 중심은 글쓰기라고 주장하며 살아왔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내 삶의 중심이 가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니 나로서도 쉽지 않다. 나는 그저 당신이 여기 이 세상에, 냉정할 만큼 완벽하고 확고하게 자아를 유지하는 일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세상에 나와 함께 있어주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