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이 되어서야 겨우 #여성주의책같이읽기 모임의 12월 책 필리스 체슬러의 <여성과 광기>를 펴 볼 수 있었다. 77쪽까지 읽었는데 이제야 '개정판을 펴내며' 가 끝이 났고, 96쪽까지가 '들어가기 전에' 다. 77쪽까지 읽었는데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많아서, 책이 너무 예쁘다고 그래서 무거운데도 종이책으로 사게 만들어주신 공쟝쟝님 (맞나? 맞겠지....) 께 감사를 드린다. 그나저나 12월이 다 가기 전에 얼마나 읽을 수 있을런지.


이 책이 1972년에 출간된 후 50년이 지났다. 


"아, 정말이지 너무나 시의적절하고 유의미한 책이었어요!' 라고 작년에 어느 독자가 전화를 걸어 말해서, 

작가는 낙담했다고 한다. 여성들의 정신건강이 50년 동안 괄목할 만하게 좋아져서 이제는 이 이야기가 그저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를, 이 이야기가 시대착오적이기를 바랐기 때문에. 




14쪽

그 시절(1970년대)에는 여자란 타고나기를 정신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병들어 있다고 배웠다. 여자는 히스테릭 (‘hysteric’의 어원인 그리스어 ‘hysteros’는 자궁을 뜻한다)하고, 엄살을 부리고, 유치하고, 교묘하게 사람을 조종하고, 쌀쌀맞거나 숨 막히게 굴고, 호르몬 때문에 쉽게 극단적이 된다고 말이다. 


17쪽

19~20세기에 북미와 유럽의 남성들은 정신이 멀쩡한 아내와 딸을 집안이나 정신병원에 감금할 합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일부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이며 술주정꾼에 정신 나간 남편들은 아내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으며, 때로는 너무 콧대가 높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후 다른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영원히 유폐시켰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제인 에어>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그리고 <핑거스미스>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 이전 한참 동안 (최소한 18세기-20세기 동안) 여성의 '광기' 가 어떻게 판단되고 취급되었는지를 생각하면 겨우 50년 동안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게 오히려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백래시'가 있었으니까. 지금 한국에서도 진행되고 있으니까. 책 하나가 나오고 몇몇이 깨인다고 쉽게 해결되는 문제일리가 없다. 



26쪽

정신병 환자와 기혼 여성을 위한 연구에서 엘리자베스 패커드는 첫 번째 개선안으로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어느 누구도 단순히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설령 그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조리해 보인다고 할지라도, 미친 사람 또는 편집광으로 간주되거나 취급받아서는 안 된다.” ….

패커드가 글을 쓰고 운동을 벌인 시절로부터 한 세기가 지났지만, 제도 권력을 장악한다는 사람들은 이 책이 제기한 도전들을 무시하면서, 페미니스트의 저술은 그 개념 정의상 편견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으며, 신경증적이고 히스테릭하다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 사회의 비평가들은 개별 여성들을 병적으로 취급하듯이 페미니즘 운동 전체와 페미니즘 운동이 고취시킨 작업 전부를 병리적인 현상으로 규정해버렸다). 어떤 사람은 나의 페미니즘적 견해가 “귀에 거슬리”고(그들은 이 단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른다), “남성 혐오적”이며 너무 “분노에 차 있다”고 말했다. 



성별이 들어가지 않고 인간 전반에 대한 이야기일 때는 너무도 당연해보이는 이야기들이, 성별이 포함되는 순간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는 일이 많다. 



52쪽

광기는 가족과 사회 안에서 자행되는 불의와 잔인성에 의해 야기되거나 악화된다. 따라서 자유와 진보적인 법적 개혁과 정치적인 투쟁과 친절함만이 심리적-도덕적 정신건강에 핵심적 요소이다. 


69쪽

우리에게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의식화 집단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에 관한 신랄한 감정을 서로에게 터놓고 이야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에너지를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꾸준한 노력,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이것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필요하다. 가끔은 좀더 빠른 답을 바라지만.. 



77쪽 
여성은 자유, 음식, 자연, 은신처, 여가시간,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정의, 음악, 시, 탈가부장제적인 가족, 공동체, 만성적이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앓고 있을 때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함께하는 온정 어린 지원, 독립, 책, 육체적(성적)인 쾌락, 교육, 혼자일 수 있는 시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능력, 사랑, 윤리적인 우정, 예술, 건강, 존엄한 고용, 정치적인 동지를 원한다. 



여성이 원하는 것은, 남성이 원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동일할 것이다. 






'개정판을 펴내며' 에 언급된 책들 중 번역이 되었는데 제목이 바뀌었거나, 번역본이 소개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어 추가해본다. 


23쪽 

캐럴라인 냅의 <Appetites>는 <세상은 왜 날씬한 여자를 원하는가>라는 제목으로 2006년 번역 출간되었으나 같은 출판사에서 2021년 <욕구들>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28쪽 

캐럴 길리건의 <다른 목소리로 In a Different Voices>는 <침묵에서 말하기로> (심심, 2020)로 번역 출간되었다. 












74쪽

필리스 체슬러의 <여성에 대한 여성의 비인간적인 행위 Woman’s Inhumanity to Woman>은 <여자의 적은 여자다> (부글북스, 2009

- 현재 절판)로 번역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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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2-28 00: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자의적은 여자다>제목을 왜 이렇게 했을까 조금 아쉬워요. 그래도 읽어보고 싶은데 절판이라니ㅠ 저랑 비슷한 속도로 읽고 계셔서 반갑습니다😆

건수하 2021-12-28 05:10   좋아요 2 | URL
제목이 영 그렇죠? 여적여라는 말이 있기도 하고 좀 강렬하게 보이려고 그런거 아닐까 싶어요. 저도 절판이후 알게되어 정가보다 비싼 중고가로 구해 읽었답니다.. (그러고서 지인에게 넘겼던거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 여성과 광기가 잘 팔렸으면 이 책도 다시 나오고 필리스 체슬러의 다른 책도 더 나오면 좋겠어요.

독서괭 2021-12-28 00: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필리스 체슬러 책들 중 법정앞에 선 어머니들, 이었나? 그책이 궁금하던데 번역서는 안 나왔나 보더라구요 ㅜㅜ

건수하 2021-12-28 05:11   좋아요 3 | URL
이혼 관련 이야기겠죠? 얼마나 또 아픈 이야기가 많을런지… ㅠㅠ 이분이 책을 많이 내셨던데 좀더 번역이 되면 좋겠네요.

단발머리 2021-12-29 0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본 정리까지 너무 좋아요! 저는 지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수하님 글 보니 나도 글 써야겠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ㅎ

건수하 2021-12-29 09:20   좋아요 0 | URL
저는 여기까지 읽고 아직 더 못읽었어요 ㅋㅋㅋ 아무래도 해를 넘기게 될 거 같네요 :) 단발머리님 글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