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부학 책 《그레이 아나토미》의 비밀
빌 헤이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알마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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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사하게도, 자리에 들어 마음을 모으면 몸짓이 일어난다. 내 안의 주인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다. 오래전 지인의 도움으로 몸이 열리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짓이 일어나면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오열이 터져 나왔더랬다. 처음으로 내 안의 주인을 만난, 놀랍고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도와준 그이를 나는 지금도 멀리에서나마 사숙하고 있다. 당시 일어난 몸짓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 손에 잡은 책이 어리석게도 생리학과 해부학 개론서였다.

몸짓, 산스크리트어 무드라(Mudra)는 결인(結印), 혹은 수인(手印)을 뜻하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소리 나는 대로 문두루(文豆婁)라고 옮기고 있다. 겉 드러난 내가 내 안의 주인을 만나고자 할 때 이를 통해 서로 얘기 나눌 수 있지만, 인간의 인지능력은 너무나도 미약해 이를 온전히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명상은 인간의 존재가치를 실천, 구현하고자 하는 행위이기에, 수행이 깊어지면 궁극엔 하나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몸이라는 미시세계를 들여다볼 때 우리 자아는 겉 드러난 자아와 심층자아, 근원자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아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의식은 각기 여기에 대응하는 표상의식, 심층(매개)의식, 근원의식이 되겠다. 절집에서 이야기 하는 供養의 의미와 見性에 이르는 단계를 묘사한 十牛圖를 떠올리면 쉬 이해되리라 여겨진다.

2. 어리석은 나는 오늘도 몸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 책을 뒤적인다. 서양근대의학은 임상에서의 사례를 바탕으로 해부학과 병리학을 구축하였고, 그를 토대로 생리학을 발전시켜왔다.

저자 빌 헤이스는 《그레이 아나토미≫를 둘러싼 불가사의한 두 명의 헨리를 중심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나간다. 동시에 저자는 ‘해부학’이라는 산을 만나고 그것을 넘기 위해 캘리포니아 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서 해부학 실습 강좌를 네 학기나 청강하며 두 해부학자의 미스터리에 다가간다. 하여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해부학 책’과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해부학도의 수련 과정’을 넘나들며 진행된다.

저자는 160여 년 전에 살았던 《그레이 아나토미》의 저자 헨리 그레이와 삽화가인 헨리 반다이크 카터 두 사람의 비범한 삶과 천재성을 드러내면서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경이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어둠 속에 잠긴 그레이의 삶을 카터가 남긴 기록을 통해 되살려내고 있다.

3. 해부학자들은 ‘인체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강조한다.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해부학에 대한 이해의 상당 부분은 여러 신체 부위들을 동시에 다룸으로써 형성되고, 한꺼번에 다루는 신체 부위의 수가 줄어들면 이해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인체가 작동하는 과정에 눈을 뜨면, 인체가 오작동하는 과정-즉 당신의 몸이 당신을 배반하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4. 새삼 말하지만 시신을 이용한 맨눈해부학에서 배우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삶과 인생이다. 삶의 본질은 운동에 있다. 그렇다면 운동이란 무엇일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는 마지막 해부학 시간에 무릎, 어깨, 팔꿈치 관절을 해부하며 인간의 운동 메커니즘을 빠삭하게 알게 되었다. 눈을 깜박이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든, 팔과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며 폐를 들썩이든 운동이란 뭔가를 향해 질주하는 것이다. pp.359-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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