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다 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브라질 작가 베리시무의 <비프스튜 자살클럽>이 생각났다. 두 권의 책을 모두 읽은 분들이라면 아실 테지만 둘 다 음식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더욱이 그것이 죽음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보다 환상적이며 죽음에 대한 태도도 보다 ‘건전’한 에코 쪽이 더 좋았다.
발터 뫼르스의 차모니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 중 하나인 이 책은 다른 차모니아 소설들보다는 보다 ‘가정적’인 분위기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말하자면 요리가 나오고 무대는 소름마법사의 성과 그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대륙 곳곳을 누볐던 <루모>나 광대한 지하세계 탐험이 그려졌던 <꿈꾸는 책들의 도시>보다는 스케일이 작게 느껴지기도 하지만(분량도 적은 편. 굳이 두 권으로 만들 필요가 없었을듯하다) 그래도 환상적인 차모니아의 존재들이 많이 나오니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병자들로 가득찬 도시 슬레트바야(동유럽의 도시를 떠오르게 하는 지명이다. 구체적으로는 브라티슬라바)에서 그 질병들의 생산자인 소름마법사 아이스핀과 주인 잃고 굶주림으로 죽을 지경인 코양이 에코가 계약을 한다. 한달동안 호화롭게 잘 먹여 살찌워주는 대가로 한 달 후 코양이는 마법사의 연금술에 필요한 재료인 코양이기름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다. 굶주려 죽을 것이냐 때깔 좋게 잘 먹고 죽을 것이냐의 기로에서 에코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한다. 그러나 배가 불러지니 죽기 싫어지는 건 당연한 일. 목숨을 지키려는 에코와 기름을 얻으려는 아이스핀의 대결이 후반부를 차지한다…

먹고-죽기
먹는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 가운데 하나이다. 나도 먹는 걸 좋아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행복감은 다른 어떤 감정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한 과도한 미식 취미에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무엇이든 지나친 것엔 타락의 기운이 서려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서두에 언급한 <비프스튜 자살클럽>에서는 회원들이 사족을 못 쓰는 음식들이 그 자신의 죽음의 도구가 되며 심지어 바로 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더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갖는다.
불쌍한 코양이 에코는 굶주려 죽는다는 끔찍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아이스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고작해야 한 달간의 생명 연장일 뿐이다. 물론 그동안 소박한 음식만을 먹어 왔던 에코는 그 한 달간 남들은 상상도 못할 호사스런 음식들을 먹을 뿐 아니라 소름마법사의 특기인 변태식(變態食-말 그대로 변신하게 해주는 음식)을 먹고 연어, 가죽쥐, 데몬꿀벌로 변하는 희귀한 경험까지 하게 된다. 아이스핀이 데몬꿀벌로 변신하게 해주는 변태식-꿀바른 빵을 내놓으면서 곁들인 쪽지에는 식욕과 죽음의 욕망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케하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조심해서 씹어라. 드물지만 침이 안 뽑힌 벌이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으니까. 입천장이나 혓바닥에 가시가 박히면 죽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한동안 아주 불편해져요. 사실 그런 위험도 벌빵을 먹는 즐거움의 일부라고들 하지.(2권 8페이지)

말하자면 독이 완전히 제거된 것인지 알지 못하고 복어를 먹는 시식협회의 회원들(<비프스튜 자살클럽>)처럼 위험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식욕을 돋우는 양념이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이스핀과 에코가 벌이는 와인 파티에 등장하는 피를 먹고 자란 포도주 이야기는 또 어떤가? 이렇게 이 소설에서는 죽음과 진미가 밀접하게 얽혀 있다.
실제로 아이스핀이 에코에게 먹이는 음식은 건강식과는 거리가 멀다. 고열량식을 듬뿍 먹여서 아마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그런 식으로 먹다간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 등으로 생명이 단축되기 십상인 것이다. 그러나 혈관이 막히는 부작용은 상상할 수도 없이 굶주림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긴긴 세월을 보낸 우리의 유전자는 고열량의 음식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이다.

뒤틀린 사랑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요리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것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소름마법사 수쿠비우스 아이스핀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이 연금술사는 매우 현란한 솜씨를 자랑하는 요리의 달인이기도 한데, 그 솜씨는 곁에 없는 그의 연인-그리고 그는 알지 못했지만 이미 죽은 그의 연인-을 위해 만든 호화로운 요리들을 통해 갈고 닦아진 것이다. 물론 그의 손을 거친 것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 요리들도 에코를 구역질하게 만드는 매우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연금술사의 목표는 ‘현자의 돌을 찾고, 영구운동기관을 만들고, 불멸에 도달하는 것, 그리고 납을 금으로 변화시키는 것’(2권 185페이지)이다. 그리고 아이스핀은 이미 금 아닌 것으로 금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안다. 그가 그토록 필요로 하는 코양이기름은 다름아닌 불멸을 얻기 위한 것인데 이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미 죽은 후에 찾아낸 그의 연인 플로리아를 되살리기 위해서인 것이다. 무덤에서 연인을 꺼내 오는 이 ‘미친 사랑’의 이미지는 지붕 밑에서 아이스핀과 동거하는 가죽쥐들의 이미지와 겹쳐지면서 이 마법사에게 드라큘라적인 면모를 부여한다(실제로 아이스핀은 자신의 뱀파이어 기질을 북돋기도 한다).
이 광기의 사랑에 소름마녀 이자누엘라의 아이스핀에 대한 짝사랑이 더해진다. 아마도 아이스핀이 이자누엘라와 에코의 계략에 넘어가 죽은 연인 대신 살아 있는 연인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이야기는 모두에게 해피엔딩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코와 보낸 한 달로는 아이스핀의 심장에 쌓인 굳은살을 모두 벗겨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른 존재의 생명을 거둬감으로써 연금술을 완성시키려는 아이스핀과 살아있는 식물-소름참나무-로 된 집에 살며 지하실 가득 키우는 식물들로 치유약을 만들고 사랑의 묘약을 만드는 이자누엘라는 반대의 지점에 서 있다. 어떤 것이 더욱 강력한지는 클라이맥스에서 알 수 있다.

뫼르스의 차모니아다운 그 모든 존재들
말했듯이 줄거리가 복잡하진 않지만 이 책도 다른 차모니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신기한 상상력의 산물들로 가득 차 있다. 고피트 레터케를의 옛 동화를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주인공인 작가 공룡)가 다시 쓴 것을 발터 뫼르스가 번역했다고 주장하는 첫 장부터가 그렇다. 그의 다른 소설들처럼 여기에도 저자가 직접 그린 매력적인 삽화들이 책 읽기의 재미를 더해준다. 홈통에서 잠든 코양이 에코와 울퉁불퉁한 모습이지만 더없이 선량한 눈빛을 한 무당개구리 그림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모든 신기한 존재들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고통의 초’였다. 아이스핀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척추와 신경조직으로 된 심지에 붙은 불로 인한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이 초는 매우 끔찍하면서 독창적이었다. 풍부한 지식을 자랑하면서도 언제나 어려운 단어를 발음할 때면 음절들을 뒤섞어버리는 외눈박이 부엉이 피요도르 F. 피요도르, ‘아무도 이해 못 할’ 성격을 가진 가죽쥐들 블라드 1세부터 2,438세까지, 살생본능에 시달리는 백설과부, 그림자 괴물 등이 출현해 우리를 즐겁게 혹은 두렵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슬레트바야 전체를 굽어보는 위치에 우뚝 솟은 소름마법사의 성이 있다. 아이스핀이 주인으로 오기 전부터도 구구절절한 역사와 갖가지 전설들로 채식된 성은 유리창 없는 창문들, 아이스핀의 재난 그림들과 괴물 박제들로 으스스하게 꾸며져 있어 공포 영화의 배경으로 더없이 어울린다. 물론 이런 장소에 없어선 안 될 지하 공간도 많다. 한 마디로 주인과 아주 잘 맞는 공간이다. 이 성은 위치상으로도 슬레트바야를 압도하지만 실제로도 도시를 지배한다.

‘몇몇 시커먼 창구멍에는 기이하게 구부러진 망원경이 설치돼 있었다. 이 망원경들을 가지고 소름마법사는 도시의 어느 지점이든 염탐할 수가 있었다. 원할 때는 언제든.’ (1권 22페이지)

말하자면 아이스핀의 성은 지배 권력의 가시물일 뿐 아니라 판옵티콘이자 스스로의 광기를 가둬 두는 요새이기도 한 것이다. 카프카의 <성>이 생각난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그래서 도시 이름도 ‘슬레트바야’인가?). 다가갈 수 없는, 과연 실재하는 것인지 모호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짓누르는 성. 죽음으로 그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로 되어 있던 코양이의 성 내부로부터의 반란은 그래서 더욱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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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로 읽는 역사도시의 기억들, 건축학자 손세관의 연구노트 

 이 책들은 저자의 시리즈물의 1차분이다. 책의 서문, 그리고 내용으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일반적인 건축서에서 도시를 다루는 방법과는 좀 다른 관점으로 도시를 바라본다. 관광객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 기념비적 건축물들을 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아 가는 공간으로서의 도시, 우리가 영염집이라 부르고 그다지 눈길을 주지 않게 되는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살펴 보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 두 도시는 내가 가봤었던 곳이고 이 도시들의 건축에 대한 책들도 상당히 읽었음에도 이 책들의 내용은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먼저 도시가 형성되는 과정, 역사적 맥락, 시대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 도시가 변모하고 확장되었는지를 살피고 그런 변화와 함께 어떻게 주거용 건축물들의 형태가 변화해왔는지, 또 그런 변화를 가져온 요인들은 무엇인지까지를 꼼꼼히 짚어 준다.


흔히 '건축사적 가치가 있다'고 표현되는 기념비적 건축물들-여기서 다뤄지는 유럽 지역에선 주로 교회와 궁전, 시청사들이 되겠는데-은 그 도시의 첫인상을 결정하고 도시를 대표하는 얼굴이 된다. 그런 이유로 잠깐 도시를 들르는 관광객들은 그런 건물들만을 둘러보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도 잘 알다시피 그런 유적들만이 도시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시의 분위기, 개성을 나타내는 것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들의 형태와 배치가 아닐까?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아름답다고 하는 이탈리아 도시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도시들이다. 운하와 파스텔 색조의 건축물들이 이뤄내는 꿈같은 분위기의 베네치아와 르네상스건축의 보물들이 가득 들어찬 피렌체는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게조차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럼 이 도시들의 이같은 매력은 단지 아름답기 때문에 생긴 것일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이 도시들은 오랜 역사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도시의 구획과 부지가 시대별로 어떻게 변화, 확장되었는지와 더불어 개별 주택은 어떠한 형태로 구성되었는지를 계층별로 살핀다.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형성부터 달랐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매우 다른 개성을 갖춘 도시로 발전해왔다. 이 책에서는 그런 형태를 갖추게 된 사회문화적 요인들과 지정학적 요인들을 아울러 설명함으로써 도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말하자면 중세 도시국가들의 치열한 경쟁의 산물인 피렌체의 중세 탑상주택들과 그 후손인 팔라초들의 방어적 외관의 필요성을 알게 되고 베네치아의 소광장이나 막다른 골목에 놓인 우물 뚜껑에 대한 궁금증은 '칼레 코르테'라는 독특한 형식, 즉 땅이 부족한 베네치아에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한 지혜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만일 다시 이 도시들에 갈 기회가 된다면 기념비적 건물들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주거 형식에 대해서도 좀 더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한편 이런 책들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도시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국내 여행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규모의 차이를 빼고는 모든 도시들이, 심지어는 작은 읍내조차도 모두 똑같아 보인다는 것이다. 몰개성한 콘크리트 건물들에 어디서나 똑같은 빨강, 노랑, 주황 같은 원색이 주조인 간판으로 전면을 도배한 거리들은 도대체 이 도시와 저 도시의 차이를 알 수 없게 만든다. 사람들이 사는 집은 또 어떤가. 과밀한 도시지역의 아파트는 그래도 필요악이란 생각이 들지만 농촌지역에 느닷없이 서있는 아파트들은 언제나 경악스럽다. 이 주거 환경의 황폐를 단지 전쟁과 식민지배의 탓으로만 돌려야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집'이 '부동산'으로 변모해가면서 우리의 도시들은 역사도, 지역적 개성도 모두 잃어버리고 탐욕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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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탓에, 바로 그 다음주에 도서관에서 빌려 와 읽은 책이었다. 그리고 역시 내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책의 주인공은 제목에 나온 대로 '루모'라고 불리는 볼퍼팅어이다. 볼퍼팅어는 개처럼 생겼지만 이마에 뿔 두 개가 달린 종족으로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 등장한 전설적 책 사냥꾼 콜로포니우스 레겐샤인과 같은 종족이며 그 책에서는 노루개라고 불렸었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버려진(영아 유기는 볼퍼팅어들의 특징이다) 루모는 잠깐의 평화로운 유아기를 지나 악마바위의 거인들에게 납치됨으로써 파란만장한 인생을 시작한다. 그 끔찍한 종족으로부터 벗어난 후에는 그의 후각에 포착된 은띠를 찾아 볼퍼팅어들의 도시인 볼퍼팅으로 가면서 모험의 2막이 시작된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차모니아 대륙을 배경으로 하고 역시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의 산물인 이상한 생물들이 대거 등장해 독자들에게 눈 뗄 틈을 주지 않는다. 동료 볼퍼팅어들을 구하기 위한 지하 세계 헬에서의 모험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런 동시에 이 책은 또한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이기도 한데 볼퍼팅에서 루모는 드디어 그의 은띠, 랄라를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헬에서 랄라가 맞게 될 가장 끔찍한 운명은 아마도 루모와 죽음의 극장에서 맞싸우게 되는 게 아닐까 예상했지만 작가가 그녀를 위해 준비한 것이 구리처녀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실제로 중세에 존재했던 고문 도구인 아이언 메이든을 패러디한 이 도구는 사람처럼 생긴 형틀로 안에는 못이 박혀 있어 그 안에 사람을 넣고 문을 닫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자명한 일이다. 일종의 로봇인 째깍째깍 장군은 이 형틀을 보고 한눈에 반해 여러 종류의 약물을 투여할 수 있는 화학적 고문 도구로 개조한다. 그리고 구리 처녀를 위한 완벽한 영혼으로 랄라를 선택한다. 이 볼퍼팅어다운 활력과 생의 의지로 가득한 아가씨는 루모가 그녀와 다른 볼퍼팅어들을 구출하기 위해 싸우는 동안 구리처녀 안에서 생명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결국 이 책은 성장소설이면서 연애소설이면서 무엇보다도 모험 소설이다. 카드 놀이 이름을 가진 루모는 여러 영웅들의 면모를 체현한다. 특히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모르면서 유기되고 결국 동족들에게 돌아와 그들을 구출해내는 것은 모세와 닮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모든 일들을 담담히 받아들일 뿐, 허세 같은 것을 모른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보다는 좀 잔인한 장면이 많지만 그만큼 재미있고(어쩌면 더 재미있다고 느낄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기발하다. 때때로 매우 우스운 장면들도 있는데 내가 폭소를 터뜨린 것은 루모의 룸메이트(이름을 잊어버렸다)가 축제에서 쥐오줌보 튀김의 맛에 열광한 나머지 '고통없는 상처(이 세계의 문신과 같은 것으로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 칼로 문자 따위를 새기는 것이다)'로 그의 팔에 '쥐오줌보'라고 새긴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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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책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무작정 집어든 책이다. 표지와 제목만 봤을 땐 다소 어둡고 정적인 느낌의 내용이 아닐까 싶었지만, 웬걸, 내용은 내 선입관과 전혀 달랐다. 하지만 그래서 나빴는가 하면 정 반대다.

'책들의 도시'란 제목에 걸맞게 이 책에는 수많은 책들, 도서관들, 서가들, 그리고 책 마을이 등장한다. 아마도 책 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니, 무슨 굉장한 모험이 있겠어-이것이 나의 선입관이었던 듯 하다. 하지만 저자는 책들에 관한 정말 다이나믹한 판타지를 만들어냈다.

유전적으로 작가들인 공룡들이 사는 도시, 린트부름 요새 출신의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주인공이다. 그는 문학적 대부인 단첼로트로부터 하나의 원고를 물려받고 그 기막힌 명문의 주인공을 찾아 책으로 먹고 사는 도시 부흐하임으로 떠난다. 작가, 출판업자, 인쇄업자, 제지업자, 서점 주인 등, 책에 관계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저자는 이 여러 종족들이 모여 사는 가상 도시에 그 나름의 역사와 배경을 꼼꼼히 구축함으로써 실재하지 않는 장소들에 독특한 매력을 불어 넣는다.

미텐메츠는 서점 주인들, 고서적상들을 만나면서 원고의 저자를 추적하지만 그의 종적은 오리무중이고 급기야 미텐메츠 자신마저 위험에 처한다. 후반부에 주인공이 지하 세계에서 겪는 모험들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특히, 책 사냥꾼들과의 대결에서 탈출 도구가 되어준 서가 궤도 타기는-나는 차라리 서가 롤러코스터라고 부르고 싶은데- 내 꿈에 가끔 등장하는 상황과 비슷했기 때문에 거의 빨려 들어갈 듯이 읽었다.

출판업자가 그다지 우호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것은 작가로서의 경험이 녹아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고 지하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흐링들은 책이 생명력을 얻음에 있어 독자의 역할이 어느 정도로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차모니아 세계는 물론 거의 다 작가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세계이지만 독일 출신 작가 답게 얼핏얼핏 북유럽, 게르만 신화의 영향이 보이기도 한다. 광물을 잘 다루는 땅속의 난쟁이들이나 이 세계를 미드가르드라고 부르는 데서 그런 면이 보이고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거인 호문콜로스는 연금술의 호문쿨루스, 그리고 유대의 골렘 전설을 연상시킨다. 지하세계의 역겹지만 한편으로 매혹적인기도 한 잡종 괴물들은 같은 특성을 지닌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지옥을 장식한 많은 괴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만화가 출신인 저자의 정교한 삽화들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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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시대'라고 불렸던 세기, 중세. 그 시대를 그려 볼 수 있게 해주는 책들과 함께 과연 그때가 암흑시대였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1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데카메론 - 상
보카치오 / 범우사 / 2000년 7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3년 09월 01일에 저장
품절

흑사병이 창궐하는 피렌체를 빠져나온 사람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들. 그 시대의 절대 권위 성직자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에서 중세 말-초기 르네상스의 변화하는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메로빙거 세계- 한 뿌리에서 나온 프랑스와 독일
패트릭 기어리 지음, 이종경 옮김 / 지식의풍경 / 2002년 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3년 09월 01일에 저장
절판
'카롤링거 르네상스'라는 근사한 수식어로 치장되는 카롤링 왕조에 비해 야만적이고 몽매하다는 느낌을 주었던 메로빙거 왕조의 프랑크. 그러나 저자는 고전 로마와의 단절로서가 아니라 그 연속성과 상호 침투로서의 메로빙거 시대를 부각시킨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03년 09월 05일에 저장

중세의 대사건 십자군 전쟁. 제목대로 아랍 쪽 증언과 기록들을 토대로 씌여진 책이다. 이름과는 달리 종교적인 목적은 미미했던 잔인한 전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연옥의 탄생
자크 르 고프 지음, 최애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0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03년 09월 01일에 저장

그리스도교의 내세관에 언제부터 연옥이라는 특별한 장소가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관한 책. 그러한 신학적 질문을 통해 중세의 의식구조와 신분, 사회구조까지 고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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