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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Habsburg 가는 유럽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유명한 가문이다. 지금의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중부 유럽 지역에 기반을 둔 이 가문은 신성 로마제국 황제(이하 황제)를 비롯, 정략 결혼으로 여러 나라의 왕위를 차지하면서 유럽 역사의 무대를 휘저었다. 가문의 역사는 매우 방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도록 하자.

중부 유럽이 주 무대였던 이 가문이 에스파냐에 대해 권리를 갖게 된 것은 역시 결혼에 의해서였다.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아들 필립(에스파냐 식으로는 펠리페)은 카톨릭 공동왕(Reyes Catolicos) 이사벨라와 페르난도의 상속녀 후아나와 결혼함으로써 에스파냐 왕이 되었다. 이전까지 아라곤과 카스티야로 나눠져 있던 에스파냐는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라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의 결혼으로 통일을 이뤘고 펠리페와 결혼한 후아나의 아들 카를로스 5세(황제로는 카를 1세)는 아버지의 에스파냐와 할아버지(막시밀리안 1세)의 신성로마제국까지 물려받아 광대한 제국의 상속자가 되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로도, 결혼이 매우 효과적인 권력과 영토 유지, 나아가서 확장의 수단이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아마도 이 가문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결혼으로 획득된 영토는 마찬가지로 결혼으로 잃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이 가문이 선택한 것은 가문 내 결혼, 더 나아가 근친 결혼이었다.

 

합스부르크의 가계도

*하늘색 선으로 연결된 것은 동일 인물

 이 합스부르크의 가계도를 보면 이 가문의 결혼이 얼마나 충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근친 결혼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당대의 훌륭한 화가들이 남긴 초상화들을 통해 알 수 있다.

Albrecht Durer 알브레히트 뒤러 (1471-1528)

막시밀리안 1세 황제Emperor Maximilian I(1519)

나무에 유채Oil on lindenwood, 74 x 62 cm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뒤러가 그린 이 합스부르크 황제의 얼굴에서 특이한 점은 아래턱이 좀 나와 보인다는 것이다. 뒤러의 꼼꼼한 붓질은 황제가 입은 비단과 모피의 질감뿐 아니라 황제의 얼굴 모습, 부드러워 보이지만 힘없이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까지 빠짐 없이 묘사해 놓았다.

티치아노Tiziano (1485-1576)

카를 5세Emperor Charles(1548)-부분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Museo del Prado, Madrid

아버지로부터 에스파냐를 물려받고 할아버지로부터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물려받은 카를로스 1세(황제로는 카를 5세)는 여기서 갑옷을 차려 입고 당당하게 말에 올라탄 모습이지만 나온 턱은 숨길 수 없다. 카를로스 1세의 아내는 외가 쪽으로 친척 누이뻘 되는 포르투갈 왕의 딸 이사벨라였다. 이때부터 에스파냐 합스부르크 왕들의 근친 결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소포니스바 안귀솔라Sofonisba Anguissola (1530~1625)

묵주를 든 펠리페 2세Philip II Holding a Rosary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575

34 5/8 x 28 1/4 inches (88 x 72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Museo del Prado, Madrid

이 그림은 펠리페 2세의 궁정화가였던 코에요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에 이탈리아 출신 화가인 안귀솔라의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림 속의 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풍의 레이스 깃장식이 달린 검은 옷을 입은 근엄한 모습이다. 손에 들고 있는 묵주는 그의 신실함을 나타내지만, 에스파냐 제국이 최전성기를 달린 시대이니만큼 얼굴에는 자신감이 떠올라 있다. 이 그림에서도 우리는 합스부르크의 턱을 확인할 수 있다.

가계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펠리페 2세의 첫 왕비 마리아 마누엘라는 외사촌누이이고 네번째 왕비 마리아 안나는 조카딸이다. 조카딸, 혹은 사촌누이와의 결혼은 아래 대에서도 계속된다.

바르톨로메오 곤살레스 이 세라노GONZÁLEZ Y SERRANO, Bartolomé (1564~ 1627)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왕비Queen Margarita of Austria(1609)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16 x 100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Museo del Prado, Madrid

펠리페 2세와 마리아 안나의 아들 펠리페 3세는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와 결혼하는데, 그녀는 펠리페의 육촌 누이이다. 마르가레테 또한 자기 남편처럼 숙부와 조카딸의 결합으로 태어났는데, 가계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아버지 오스트리아 대공 카를 3세는 자신의 누이(오스트리아의 안나)의 딸인 바이에른의 마리아 안나와 결혼한 것이다. 화가가 꼼꼼히 표현한 뻣뻣하고 거창해 보이는 드레스와 그보다 열 배는 더 불편해 보이는 주름진 레이스 러프 칼라에 둘러싸인 그녀의 얼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역시 유난히 길고 앞으로 튀어나온 턱이다.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a Velasquez (1599-1660)

펠리페 4세Portrait of Philip IV(1652-1653)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8 1/2 x 14 3/4 inches (47 x 37.5 cm)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펠리페 3세의 뒤를 이은 것이 아들 펠리페 4세인데, 이 초상화를 보면 길고 지루해 보이는 얼굴에(아마도 저 휘어진 콧수염이 없었다면 얼굴은 더한층 길게 보였으리라) 부모처럼 긴 턱, 부정교합의 턱을 갖고 있어 음식이나 잘 씹을 수 있었을까 싶다. 누대에 걸친 근친 결혼은 이 가문이 갖고 있던 좋지 못한 특질을 증폭시켜 이처럼 특징적인 얼굴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생물학적 건강함보다는 가문의 재산과 영토를 지키는 것이 더 큰 중요성을 두었다. 그래서 펠리페 4세도 자신의 왕비로 조카딸을 맞이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a Velasquez (1599-1660)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안나 왕비Queen Doña Mariana of Austria-부분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652-1653

90 7/8 x 51 1/2 inches (231 x 131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Museo del Prado, Madrid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였던 벨라스케스는 19세의 성장한 마리아 안나 왕비를 그렸다. 파팅게일로 부풀린 드레스와 리본으로 장식된, 역시 옆으로 부푼 괴상한 가발을 쓴 어린 왕비는 하얀 피부와 붉은 뺨, 무표정한 얼굴로 인해 인형처럼 보인다. 외삼촌과 결혼하고, 자신의 어머니에겐 올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일일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펠리페 4세에게는 전 부인 이사벨 드 부르봉과의 사이에서 낳은 후계자 발타사르 카를로스가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대를 이을 아들을 낳는 것이 큰 과제였다. 하지만 마리아 안나 왕비는 먼저 딸을 낳았다.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Rodriguez de Silva Velasquez (1599-1660)

마르가리타 공주The Infanta Don Margarita de Austria-부분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c.1660

83 3/8 x 57 3/4 inches (212 x 147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Museo del Prado, Madrid

 

벨라스케스는 말년에 이 어린 공주를 여러 차례 그렸는데, 걸작 시녀들(Las Meninas)에 등장하는 공주 역시 마르가리타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은 합스부르크가의 외모를 가졌지만 이 어린 공주의 매력은 궁정 예절에 짓눌려 있던 당시의 에스파냐 왕가에서 삶의 활력을 느낄 만하게 해 준 요소라고 전해진다. 공주는 1666년에 고모의 아들, 즉 고종 사촌인 황제 레오폴트 1세와 결혼하는데, 그는 또한 그녀 어머니의 남동생이니까 외삼촌이기도 하다. 나이 차가 많았음에도 두 사람은 비교적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불행히도 마르가리타 공주는 출산하다가 2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마리아 안나 왕비는 펠리페 4세가 기다리던 아들을 낳기는 했지만 두 아들 모두 일찍 죽었다. 펠리페 프로스페로 왕자가 4세에, 토마스 카를로스 왕자가 한 살에 세상을 뜬 것이다. 그리하여 대를 이은 것은 펠리페 프로스페로가 죽은 해에 태어난 카를로스 2세였다. 카를로스 2세는 “엘 에치사도El Hechizado”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마법에 걸린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런 별명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나쁜 마법의 영향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전학을 알고 있는 우리들에겐 이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에스파냐 왕에게 덮친 불행이 무엇 때문인지 보다 명백하지만 말이다.

 

클라우디오 코에요Claudio Coello (1642-1693)

카를로스 2세King Charles II(1675-1680)

Oil on canvas, 25 7/8 x 22 inches (66 x 56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Museo del Prado, Madrid

  

 

주인 없이 남겨진 에스파냐의 영토를 두고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이 연관된 복잡한 계승 다툼은 마침내 왕위계승전쟁(1702~1713)을 일으켰고 에스파냐의 왕위는 몇 세대 동안 에스파냐 왕가와 혼인의 관계를 맺고 있던 프랑스 부르봉 왕가로 넘어갔다. 즉 루이 14세의 손자 필립이 펠리페 5세로서 에스파냐의 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로 에스파냐는 많은 식민지를 잃었고 펠리페 2세 시대의 누렸던 제국의 영광은 과거의 것이 되고 말았다.

 

 
초상화 만으로도 우리는 이 젊은 왕이 어딘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초상화들은 하나같이 이처럼 일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데, 합스부르크의 부정교합은 그의 얼굴에 이런 이상한 인상을 새겨 놓았다. 이것은 얼굴 모습만 이상하게 만든 게 아니라 발음도 부정확하고, 음식 먹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그는 말단비대증 또한 앓고 있었고 정신 지체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열 살이 될 때까지 아기처럼 키워진 이 허약한 왕자가 공부라는 짐을 견디지 못할까 두려워한 까닭이었다. 사정이 이랬기 때문에 통치는 어머니 마리아 안나 왕비가 맡았다. 카를로스 2세는 두 번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했다. 결국 그가 1700년 사망했을 때,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는 대가 끊어지고 말았다. 합스부르크는 가문 내 결혼으로 권력을 유지하길 원했지만 결국 그 결과는 가문의 종말이었다.
우리가 생물 시간에 배운 바로, 근친결혼이 위험한 것은 열성 유전자가 발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애초에 성(性)이 생겨난 것도, 유전자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근친 결혼은 이용 가능한 유전자를 한정된 유전자 풀에 가두어 버리고 보통 같으면 묻혀 버렸을 나쁜 형질을 증폭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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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주 2008-01-09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용이 너무너무 놀랍고 좋네요~ 제 블로그에 담아가려 해요. 출처를 밝히고 블로그에 담아가도 될런지요. 원치 않으시다면 비공개로 해놓겠습니다~ 좋은글 담아가요~^^

수영 2008-01-09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보셨다니 다행이구요, 출처만 밝혀주시면 언제든지 퍼가는 것 환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마태오 복음서 1장 18절~23절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루카 복음서 2장 6절~12절

 

이제 곧 크리스마스다. 동지가 지나고 해가 막 길어지기 시작할 무렵의 이 날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최대 축제일이고,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어쨌든 즐거운 날임에는 틀림 없다(하다못해 휴일이라는 의미라도 있으니까.).

크리스마스 하면 요즘은 주로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클로스, 선물 이런 것들이 떠오르지만 예수 탄생일이라는 원래 의미에 잘 어울리는 그림들을 볼까 한다.

코레조Correggio (1489-1534)

탄생(거룩한 밤) Nativity (Holy Night)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528-1530

100.98 x 74.02 inches [256.5 x 188 cm]

Gemaldegalerie, Dresden, Germany

 

코레조의 이 작품은 예수 탄생을 그린 그림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땅에서는 목동과 하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젊은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사랑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후경에는 나귀를 돌보는 요셉의 모습이 보인다. 어두운 가운데 화면을 신비롭게 밝혀 주는 빛은 작은 아기에게서 나오고 있다. 이 신비로운 빛 때문에 목동은 모자를 벗으면서 경의를 표하려 하고 마리아 쪽의 하녀는 눈이 부셔 미간을 좀 찡그리고 있다. 인공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이것은 후대의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대가, 카라바조를 예고한다) 명암법이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사건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고조시켜준다. 예수는 아주 작고 여리지만 그 빛으로 인하여 이 그림의 주인공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에는 정말 캐롤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썩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사들이 내려와야 하는 우주적 사건이지만 그 성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목격자들은 아주 적고 또 소박한 사람들뿐이기 때문이다.

 

카라바조 얘기가 나온 김에 이 화가가 같은 주제로 그린 그림을 한 번 보자.

카라바조Carravaggio(1571~1610)

성 프란체스코와 성 로렌초가 함께 있는 탄생 Nativity with St Francis and St Lawrence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268 x 197 cm, 1609

1969년까지 산 로렌초, 팔레르모(유실) San Lorenzo, Palermo (lost)

 

이 그림은 원래 카라바조가 만년을 보낸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 있는 산 로렌초 교회에 있던 것이었는데, 1969년 도난 당했다. 말년의 그의 그림들은 한층 깊은 어둠과 우울함을 띄고 있는데(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불행과 관계가 있다) 이 그림도 예외가 아니다. 코레조의 것처럼 인공적인, 연극의 스포트라이트 같은 한줄기 빛이 왼쪽 위에서 떨어져 이 어두컴컴한 외양간에서의 사건을 비추고 있는데, 두 그림의 분위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뭇 다르다. 코레조의 탄생이 고요한 환희라면 카라바조의 그것은 우울한 체념의 분위기가 흐르며, 갓 태어난 예수는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이 그림은 훗날 예수와 마리아가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사건, 예수의 죽음과 마리아의 슬픔, 즉 피에타와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다. 이 사건에 입회한 이들은 동시대의 인물들이 아니라 후대의 성인들이다. 두 성인은 각각 이 그림이 걸린 교회(산 로렌초)와 교단(프란체스코회)을 상징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는 팔에 ‘하느님의 영광’이라 쓴 띠를 두르고 영광스러운 탄생을 축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에 환희의 분위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림은 또다른 분위기이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

신비로운 탄생Mystic Nativity

캔버스에 템페라와 유화Tempera and oil on canvas, 1500

내셔널 갤러리, 런던National Gallery, London

 

예수 탄생을 묘사하는 도상은 보통 코레조 그림처럼 나타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그와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르다. 일단 보티첼리는 보통 따로 그려지는 양치기들의 경배와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한 화면에 집어넣었다. 오른쪽에서 천사의 인도를 받는 세 사람이 양치기들이고 왼쪽 사람들이 동방박사들이다. 천국을 상징하는 금빛 창공이 열리고 천사들은 올리브 가지와 성모를 찬양하는 문구가 적힌 두루마리를 들고 원무를 추고 있고 아래쪽에는 악마들이 황급히 땅 속으로 도망치는 가운데 천사와 인간들이 포옹하고 있다. 그들의 올리브 가지에 둘러진 두루마리에는 인간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루카 복음서의 구절이 적혀 있다. 그림 위쪽에 보티첼리는 그리스 문자로 그림에 대한 설명을 적어 놓았다.

 

, 알레산드로는 이탈리아의 분쟁 속에서, 그 때의 반이 지난 때, 요한의 11번째 예언이 이루어지는 때, 계시록의 두번째 환난 속에서, 악마가 3년 반동안 풀려난 1500년 말 이 그림을 그렸다. 12번째 예언에 따라 그가 묶인 후 우리는 이 그림에서처럼 (도망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다소 수수께끼 같은 이 설명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단순한 예수 탄생의 그림이 아니라 계시록의 예언이 실현된 새 세상의 탄생을 알리는 그림이란 것이다. 가장 이해하기 힘든 ‘그때의 반이 지난 때(half-time after the time)’라는 구절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1500년’, 즉 첫번째 밀레니엄(1000년)이 지나고 반(500년)이 지난 때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이 당시 사람들은 1500년에도 예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1948년 사보나롤라의 처형과 프랑스인들에 의한 피렌체의 점령 들을 겪으면서 보티첼리는 교회의 쇄신과 평화가 깃드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비전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리하여 이 내면적인 그림은 이 시대 이탈리아 화가들의 자연주의적 원근법과는 상관 없이, 상당히 중세적 구도를 갖고 있다. 즉 중요한 인물인 마리아와 예수는 비례에 맞지 않게 크게 그려졌고, 특히 아기 예수는 마리아에 비해서도 더욱 크게 그려졌다. 계절이 겨울이 아니라 봄이나 여름인 듯 하고 시간도 밤이 아니라 아침인 것은 새 시대의 시작에 관한 그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마태오 복음서 2장 1절~12절

 

이른바 ‘동방박사의 경배’라고 일컬어지는 사건에 대한 복음서의 설명이다. 우리말로 동방박사라고 번역되는 ‘magi’는 원래 고대 메디아Media 왕국의 한 종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메디아는 이란계 사람들이 세운 국가로 현재 이란의 북서부와 이란 북쪽과 서쪽 땅을 포함하는 지역이었다고 전해진다. 마기는 메디아에서 종교 의식과 장례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의식에는 주술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므로 이 말은 영어에서 마술, 마법을 의미하는 ‘magic’의 어원이 되었다. 성서에서 그들이 별을 보고 왔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천문에도 밝은 사람들이었을 것 같다. 미술에서 이들은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로 나타나고 보통 그들 중 한 명은 흑인이다.

피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618-1619

96 3/8 x 127 7/8 inches (245 x 325 cm)

뮈제 데 보자르, 리용Musee des Beaux-Arts, Lyon

 

루벤스의 그림에서도 그런 전통적 동방박사들을 만날 수 있다. 배경은 누추하지만 여왕 같은 위엄과 아름다움을 갖춘 성모와 아기 예수가 왕과 같은 차림새의 인물들을 맞아 축복을 내리고 있다. 모피와 벨벳, 비단으로 지은 그들의 화려한 의상은 경배자들의 신분을 나타내고 터번은 그들이 중동 지역에서 왔음을 암시한다. 이 모든 화려한 인물들에도 불구하고, 또 마리아와 아기가 한쪽으로 쏠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모자가 그림의 중심으로 느껴지는 것은 역시 화면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받고 있는 것이 성모자이기 때문이다(마리아의 흰 의상도 한몫을 한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1445-1510)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475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Galleria degli Uffizi, Firenze 

 

보티첼리가 ‘신비로운 탄생’을 그리기 훨씬 전에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를 보자. 비교적 젊을 때 그린 이 그림은 ‘신비로운 탄생’보다 세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 그림은 원래 금융업으로 재산을 모았던 구아스파라 델 라마라는 사람을 위해 그려진 것으로 그는 오른쪽에 모여있는 사람들 중 흰머리에 담청색 가운을 입고 감상자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다. 종교적 그림에 주문자의 초상을 넣는 것은 이 시대엔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곧 몰락을 경험한 주문자보다 더 유명한 인물들 또한 이 그림에 있으니 보티첼리의 후원자들인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다. 아기 예수의 발을 만지고 있는 동방박사는 코시모 데 메디치이고 중앙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무릎 꿇은 사람은 그의 아들인 피에로, 오른쪽 전면에 있는 젊은 남자는 로렌초 일 마니피코로 보인다. 제단화로 주문된 이 그림에서 이렇게 많은 그 시대 피렌체 사람을 본다는 것, 더욱이 벼락부자가 된 주문자가 권력자인 메디치 가문에 아첨하는 듯한 이런 구성을 취했다는 것은 우리에겐 다소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당시엔 별로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은 것 같다.

허물어진 담 뒤에 있는 바위를 옥좌 삼아 앉은 성모는 보티첼리의 스승 프라 필리포 리피Fra Filippo Lippi의 성모들과 많이 닮았다. 인물들이 모두 15세기 이탈리아인들의 복장을 하고 있어 세속적 분위기가 더 강하다. 하지만 이 그림이 특히 유명한 것은 맨 왼쪽에 있는 보티첼리 자신의 초상 때문이다. 델 라마보다도 한결 강렬한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 젊은 화가의 초상은 명성을 얻기 시작한 자신감에 가득 차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1450-1516)

동방박사의 경배Adoration of the Magi

나무에 유채Oil on wood, c.1510

54.33 x 54.33 inches [138 x 138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Museo del Prado, Madrid

 

마지막으로 보스의 그림을 보자. 앞의 두 그림에 구경꾼들이 많았던 데 비해 이 그림에선 위쪽으로 전원과 도시 풍경이 넓게 펼쳐진 가운데 왼쪽의 농부들 몇이 이 광경을 구경하고 있을 뿐이다. 몇 명은 이 신기한 장면을 더 잘 보기 위해 지붕에까지 올라갔다. 기묘하게도 이들의 얼굴에는 경외의 표정보다는 노골적인 호기심이 드러나 있을 뿐이다. 보티첼리보다 훨씬 후에 그려졌음에도 이 플랑드르 화가의 그림에는 중세의 분위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중요 인물인 마리아와 지붕 위 구경꾼들의 비례가 맞지 않는 크기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무릎 꿇은 붉은 옷을 입은 왕은 선물로 이삭의 희생을 조각한 것을 마리아의 발치에 내려놓았다. 이것은 앞으로 예수가 치를 희생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경건함 속에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앞의 그림들과는 다른 등장 인물들 때문이다. 이 이상한 한 무리의 사람들은 오두막 문 뒤에 숨어서 이 광경을 훔쳐보고 있다. 벗은 몸에 붉은 가운만 입은 인물은 왕관을 쓰고 있어서, 아마도 염탐하러 온 헤로데 왕일 것이라는 짐작을 낳게 한다. 또는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투구에는-사실 이것은 회색 가운을 입은 두번째 왕의 것인데-악마가 그려져 있어 이 경배하는 왕들의 이교도 신분을 나타내고 있다. 원경에 보이는 이 이교도 왕들의 군대는 마치 전투를 하려 하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간다. 예수 탄생을 암시하는 신비로운 별이 푸르스름한 예루살렘의 성벽 위에 떠 있지만 그 희미한 붉은 빛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을 씻어 주지 못한다. 자세히 뜯어 보면 볼수록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다.

이 성스러운 사건의 곳곳에 숨어 있는 악의 상징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마도 보티첼리의 ‘신비한 탄생’에서처럼 예수 탄생 후 1500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창궐하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메시아의 재림을 기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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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내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롭스, 뭉크 전이 열리고 있다(10월 22일까지). ‘Man & Woman’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판화로 제작된 두 화가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뭉크Edvard Munch(1863~1944)는 ‘절규’라는 그림으로 매우 유명하지만 롭스Felicien Rops(1833~1898)는 우리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진 화가는 아니다. 국내 전시는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

뭉크의 그림들이 몽환적이고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반면에 롭스의 작품은 풍자적이고 기괴하다. 그러나 두 작가가 여성과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엔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

서양에서 여성을 악의 뿌리로 보는 것은 그다지 낯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초기 기독교의 전파와도 관련되어 있다. 원시 사회의 가혹한 생존 환경에서는 살아남고, 자손을 많이 퍼뜨리는 일, 종의 번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자손을 낳는 여성의 생산력은 그래서 무척 중요시 되었고 고대 종교들에서 여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또한 종족보존에 꼭 필요한 성적 에너지에 대한 숭배 또한 존재했다. 그러나 기독교의 일신론은 이러한 여신들의 존재를 부정해왔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승리와 함께 고대의 강력한 여신들은 ‘바빌론의 창녀’로 전락했다. 기독교는 또한 성을 악마적 힘과 동일시하고 죄악시했다. 성모의 무염시태無染始胎 신화는 이런 생각으로부터 만들어졌고 나아가서는 성모의 어머니인 성 안나 역시 마리아를 ‘죄 없이 잉태’했다는 신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신화들은 결국 기독교가 성행위를 죄악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남성의 시각으로 보자면 남성을 유혹하여 죄의 길로 빠뜨리는 여성이야 말로 악의 근원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팜므 파탈의 원형은 최초의 여자인 이브이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중 창세기, 타락과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원죄

Genesis, The Fall and Expulsion from Paradise - The Original Sin

프레스코Fresco, 1508-1512

시스티나 예배당, 바티칸Cappella Sistina, Vatican

 

19세기 말의 화가들이 특히 이런 시각으로 여성을 바라보았다는 것은 아마도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고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세기말의 데카당스는 여성의 성적 매력을 강조함으로써 유혹자로서의 여성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켰다.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씨뿌리는 사탄 Les Sataniques - Satan semant l'ivraie

컬러 인그레이빙 Colour engraving, 179x256 mm, 1906년

알베르 베르트랑 (Albert Bertrand, 1854-1912) 에 의한 사후 판화

 

롭스의 사탄 시리즈 중 하나인 ‘씨뿌리는 사탄’을 보자. 19세기 말의 파리는 예술의 중심지이지만 또한 타락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거대하지만 앙상한 사탄은 세느 강을 가로지르면서 악의 씨앗을 흩뿌리고 있다. 롭스가 본 악의 씨는 다름 아닌 여자들이다. 매혹적인 육체를 가진 이 여자들은 이 세계에 흩어져 유혹하고 타락시키는 악마의 하수인 역할을 할 것이다.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악녀들 - 스핑크스 Les Diaboliques- Le Sphinx,

수정 사진요판 Retouched heliogravure, 165x240 mm, 연도미상

 

스핑크스는 수수께끼이다. 오이디푸스 신화가 말하듯이 이 괴물은 자신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사람을 잡아먹어 버린다. 수수께끼는 또한 사람을 유혹한다. 호기심은 강력한 힘이며 호기심을 자극하는 존재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다. 스핑크스, 그리고 스핑크스와 아주 닮은 여인은 이 사람을 유혹하는 기술을 두고 이야기한다. 그들 위에서 연미복을 차려 입은 악마는 이 공모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이 시기에 스핑크스는 팜므 파탈의 상징으로 종종 사용되었다. 아름다운 얼굴을 가졌지만 사자의 발톱과 같은 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팜므 파탈의 대표적 여인인 살로메 또한 ‘남자를 잡아 먹는’ 그녀의 본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종종 호랑이 가죽과 함께 그려졌다(살로메와 세례 요한 1편 http://blog.daum.net/contessina/6769409참조). 이런 속성을 잘 드러내주는 그림이 프란츠 폰 슈투크의 다음 그림이다.

프란츠 폰 슈투크Franz von Stuck(1863~1928)

스핑크스의 키스The Kiss of the Sphinx(1895)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Szépmüvészeti Múzeum, Budapest

 

사자의 발로 남자를 꽉 껴안은 스핑크스가 그에게 키스한다. 이 키스는 그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격렬하다. 그리고 이 키스가 끝난 다음, 아마 스핑크스는 이 남자를 잡아먹어버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흡혈귀 II Vampire II

리도그래프, 우드컷 Lithograph and Woodcut (1895/1902 )

540×380  

 

뭉크의 흡혈귀는 붉은 머리를 가진 여인이다. 중세에 붉은 머리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당하기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의 목에서 피를 빠는 이 흡혈귀로부터 벗어나려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남자는, 무기력하다. 스핑크스로부터 죽음의 키스를 받는 남자처럼, 이 희생자도 ‘숙명의 여인’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다.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세상을 지배하는 매춘과 광기 La Prostitution et la folie dominant le monde,

수정 사진요판 Retouched heliogravure , 165x245 mm, 1879-1886 년

 

악마의 기술을 터득한 여자는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녀의 지배를 더 쉽게 도와주는 것은 역시 악마의 하수인인 어리석음, 혹은 광기이다. ‘매춘’을 상징하는 여자, 그리고 광기를 상징하는 어릿광대를 감싼 숄 아래로 드러난 발굽달린 발은 그들이 악마와 같은 종족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롭스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툴루즈-로트렉도 파리의 창녀들을 많이 그렸지만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다.

앙리 툴루즈-로트렉Toulouse-Lautrec, Henri(1864-1901)

물랭 거리:건강 검진 Rue des Moulins: The Medical Inspection(1894)

카드보드에 유채Oil on cardboard, 82 x 59.5 cm

국립미술관, 워싱턴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로트렉이 그린 거리의 여자들은 별로 아름답지 않다. 이 담담한 표정의 여자들은 성적 매력보다는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그녀들은 전혀 악마의 하수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로트렉은 자신이 이 여자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창부정치가 Pornocratès,

컬러 인그레이빙 Colour engraving, e450x690 mm, 1896 년

알베르 베르트랑 (Albert Bertrand, 1854-1912)에 의한 판화

 

그에 비하면 롭스의 창부는 얼마나 다른가? 눈을 가린 그녀는 옷을 거의 벗고 있으면서도 여왕처럼 당당하다. 그녀는 돼지에 의해 인도되어 이 세상을 활보한다. 우리는 돼지를 복을 주는 동물로 생각하지만 돼지에 대한 서양의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금빛 꼬리를 한 이 돼지가 상징하는 것은 부에 대한 욕심, 무절제, 악마성과 같은 것이다. 그녀의 발밑에서 조각, 음악, 시, 그림과 같은 예술들은 패배하여 한탄하고 있다.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The Sin(1902)

리도그래프 Lithograph, 405×700

 

여기 그려진 여자는 툴라 라르센이라는, 뭉크를 사랑한 여자이다. 그녀는 결혼을 원했지만 뭉크는 거부했다. 결국 라르센은 자살 소동을 벌이고 뭉크는 이 와중에 손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이 집요하게 사랑을 요구하는 여자에게 ‘죄’라는 제목을 붙였다. 정관사’the’로부터 알 수 있듯이 그 죄는 다름 아닌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이다. 길게 늘어뜨린 붉은 머리, 초록 눈동자를 가진 이 여자는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도 뭉크에겐 ‘죄’를 더하는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신과 같이 될 것이다 Eritis Similes Deo

컬러 인그레이빙 Colour engraving, 152x228 mm, 1896 년

알베르 베르트랑 (Albert Bertrand, 1854-1912) 에 의한 판화 

 

‘원죄’의 장면이 여기 있다. 뱀은 선악과를 손에 들고 이브를 유혹한다.’이걸 먹으면 신과 같이 될 것이다’라고 유혹하면서. 이브의 흡족한 표정에서, 뱀이 유혹에 성공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앞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처럼, 전통적으로 뱀은 긴 꼬리를 가진 여자로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롭스는 여기서 뱀을 남자로 그렸다. 그것은 이 유혹에 성적인 면을 더해 준다.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마돈나 Madonna(1895/1902)

리도그래프 Lithograph c. 445×605 

 

뭉크의 ‘마돈나’는 보다 복합적이다. 이 꿈꾸듯 황홀한 표정의 여인은 단순한 악의 씨앗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뭉크가 이 그림에 ‘마돈나’란 제목을 붙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림의 테두리에는 정충들과 내게는 외계인처럼 보이는 태아가 그려져 있다. 뭉크는 다시 한 번, 생명을 이어져가게 만드는 여성적 힘을 찬양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유한한 생명체가 그 유한성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자손을 남기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화가가 남긴 매우 비슷한 그림을 보자.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사춘기 Puberty(1902)

에칭 Etching 150×188

펠리시앙 롭스Felicien Rops

악녀들 - 돈 후안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 Les Diaboliques- Le Plus bel amour de Don Juan

수정 사진요판 Retouched heliogravure , 162x235 mm, 연도미상

 

두 그림은 소녀와 같은 몸매의 모델들, 그녀들의 비슷한 포즈, 그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까지 매우 닮아 있다. 두 소녀는 불안해 보이는데, ‘사춘기’에서는 그 불안감의 원인이 확실히 드러나 있지 않지만 롭스의 그림에선 검은 망토를 두른 돈 후안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사춘기 들어서면서 겪게 되는 몸의 변화는 유혹자들을 끌어 들일 것이고, 이 소녀의 삶은 앞으로 그러한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롭스의 소녀는 이미 마수에 걸려 들었다. 결국, ‘팜므 파탈’을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전시된 작품들의 이미지는 덕수궁 미술관 홈페이지 http://www.moca.go.kr/Modern/modern1/deoksugung/index.html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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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다나 강으로 즐거움을 찾으러 떠나지만 이맘때쯤 빠지지 않고 들리는 뉴스가 바로 물놀이를 하다가 익사했다는 소식이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물의 이중성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 모두 물로부터 태어났고 물 없이 살 수 없지만 때로 물은 무시무시한 속성을 드러낸다. 바로 얼마 전의 엄청난 비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엄청난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물의 이 같은 면모들 때문인지 예로부터 물 속에 산다고 믿어져 왔던 존재, 인어의 성격 역시 다소 모호하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인어는 역시 안데르센의 동화에 등장하는 그 인어일 것이다. 아마 이런 모습이 아닐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1849-1917)

인어A Mermaid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901

38.58 x 26.38 inches [98 x 67 cm]

왕립 예술 아카데미The Royal Academy of Arts, London

 

워터하우스의 이 인어는 꼬리를 둥글게 말고 바닷가에 앉아서 긴 붉은 머리를 빗고 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과연 동화 속에 나오는 인어공주가 우리에게 심어준 이미지를 배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안데르센의 인어처럼 왕자를 살려주고 자신의 목숨을 버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바다 물빛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저 붉은 머리는 어쩐지 불길하다.

존 콜리어John Collier (1850-1934)

육지의 아이The Land Baby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909

55.98 x 44.25 inches [142.2 x 112.4 cm]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콜리어의 그림에선 이질적인 두 존재가 조우하고 있다. 은빛 꼬리를 가진 인어와 맞닥뜨린 저 어린 소녀가 불안하게만 보이는 것은 나뿐일까? 소녀는 머지 않아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물에 대한 그림을 참 많이 그린 워터하우스의 또다른 그림을 보자. 이것은 그리스 신화의 아르고 호 모험에 관한 이야기 중 한 장면이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힐라스와 님프들Hylas and the Nymphs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896

38.58 x 64.17 inches [98 x 163 cm]

맨체스터 미술관Manchester City Art Galleries, Manchester

 

힐라스는 아르고 호에 탄 헤라클레스가 총애하던 소년이었는데 모험 중 들른 섬에서 물을 마시러 갔다가 그의 미모에 반한 님프들에게 이끌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헤라클레스는 힐라스를 찾기 위해 아르고 호의 원정에서 중도 하차한다.

그림에서 보이는 우윳빛 살결의 님프들은 인어와는 좀 다른 존재이다. 하지만 그녀들 역시 물의 정령으로 인어처럼 위험한 속성을 갖고 있다. 연잎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님프들은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집요하다. 그녀들은 이미 힐라스의 팔을 붙잡고 물 속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또다른 존재, 세이렌은 원래 여자의 머리에 새의 몸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그리스 시대의 항아리에는 분명 그러한 모습으로 그려진 세이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후대로 오면서 역시 물과 관계된 이 존재는 자주 님프들이나 인어와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Herbert James Draper (1863-1920)

율리시즈와 세이렌들Ulysses and the Sirens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페렌스 미술관Ferens Art Gallery, Kingston upon Hull

 

세이렌의 무기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목소리였다. 그녀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사람들을 꾀어 난파당하게 만들었다. 오딧세우스가 세이렌들과 만났을 때 그는 선원들의 귀를 막고 자신은 돛대에 묶게 함으로써 마법적인 노래의 힘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었다. 드레이퍼의 그림은 이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두 여자, 그리고 인어처럼 물고기 꼬리를 가진 세번째 세이렌이 뱃전에 매달려 선원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열과 성을 다하여 노래하고 있다. 물에 젖어 반짝거리는 피부를 가진 이 그림의 세이렌들은 아주 아름다워서 선원들의 귀뿐 아니라 눈도 가렸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카를로스 슈바베Carlos Schwabe (1877 - 1927)

우울과 이상Spleen et ideal(1907)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46 x 97 cm

개인소장

슈바베가 보들레르의 시 ‘악의 꽃(Les Fleurs du Mal)’의 삽화로 그린 이 그림에선 날개 달린 ‘이상’을 우울의 한없는 심연으로 잡아 끄는 존재가 뱀 같은 꼬리를 가진 인어로 표현되었다. ‘우울’의 꼬리에 이미 다리를 칭칭 감긴 ‘이상’은 날개를 달고 있지만 다시 날아오를 수 없을 것 같다. 이미 이 존재는 인어라기보다는 물귀신처럼 보인다.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결코 빠져 나올 수 없게 우리를 꽉 붙들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그 무서운 존재 말이다.

 

 에드워드 콜리 번-존스 경Sir Edward Coley Burne-Jones (1833-1898)

바다의 깊이The Depths of the Sea(1887)

수채와 과슈watercolor and gouache

포그 미술관Fogg Art Museum at Harvard University

 

인간은 알 수 없는 세계, 푸르스름한 심연으로 전리품을 끌고 내려온 인어의 저 눈빛은 무슨 의미일까. 그녀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승리의 미소일까. 이미 저항할 힘을 잃었는데도 인어는 결코 놓아줄 수 없다는 듯 남자를 꼭 붙들고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바닷물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공포의 밑바닥에는 바로 저런 존재들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마그리트의 기발한 인어 그림을 보자. 나는 이 그림을 어린 시절 초등학교 근처의 한 사진관에 놓여 있던 그림으로 처음 보았다. 정확히 이 그림은 아니고 이것과 같은 이미지를 사진으로 합성해 놓은 것이었는데 아무튼 이 기괴한 인어는 내가 인어공주를 통해 갖고 있던 인어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산산히 흩어 놓았다.

  

아마도 아가미를 갖고 있을 이 인어가 모래사장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모습도 그렇지만 물 속에서 입을 뻐끔거리면서 부지런히 양 발을 움직이면서 헤엄쳐 다닐 것을 생각하면 웃지 않을 수 없다. 통상적인 인어를 만들고 남은 두 부분을 붙여놓았을 뿐인데 결과물은 이렇게 다르다니, 과연 ‘집합적 발명’이라고 할 만하다.

만일 바다에서 실제로 인어를 만나게 된다면 둘 중 어느 쪽이 더 무서울까 생각해본다. 물론 마그리트의 인어가 상어 머리를 가졌다면 물어볼 필요도 없겠지만.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1898~1967)

집합적 발명Collective Invention(1934)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73.5 x 97.5 cm.

베스트팔렌 미술관Kunstsammlung Nordrhein-Westfalen, Düsseldorf,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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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8-02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어한테서 비린 내가 났을까요? ^^

수영 2006-08-0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아마도 났겠죠? 바다에서 올라온 것들이 모두 그렇듯이...

호진 2010-03-07 0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마그리트가 그린 집합적 발명이란 작품을 보고 혐오감이 드네요.
인어의 벌거벗은 상반신은 남자의 욕정을 흥분시키면서 여성의 본능적 매력을 강조하지만
성욕을 충족 시켜줄 수 없는 물고기 비늘의 하반신은 안타까움과 실망감을 일케하죠.
하지만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남자들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뿜어내는 여성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인정하지 않으려 몸부림치며 역으로 조롱까지 하고 있는 남자들이 떠오르는 군요.


수영 2010-03-14 15:01   좋아요 0 | URL
네, 호진 님의 감상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제게 이 이미지가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도 이러한 느낌과 다르지 않았을 듯 하구요. 실제로 마그리트는 여성의 육체가 불러 일으키는 매력과 욕망, 나아가 폭력이라는 문제에 관심이 있는 화가였습니다. 대표적으로 '강간(the Rape)'과 같은 작품에서 그런 면을 확실히 볼 수 있죠.
 

지난 봄 여의도에서 찍은 벚꽃

 

요즘은 외출할 때마다 놀라게 된다. 꽃들이 가득 피어나더니, 알지 못하는 새 세상은 눈에 띄게 푸르러졌다. 언제 저 나무에 저렇게 새싹이 났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직 겨울 옷들을 치우지도 않았는데, 벌써 봄이다.

루이스 애스턴 나이트Louis Aston Knight (1873-1948)

봄꽃Spring Blossoms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32 3/8 x 25 7/8 inches (82.5 x 66 cm)

레스 갤러리, 뉴욕Rehs Galleries, Inc., New York City

 

미국의 자연주의 화가인 나이트의 이 그림에선, 소박한 차림의 시골 아가씨가 활짝 핀 꽃나무 가지를 잡고 봄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이다. 실제로 생명이라곤 남아있는 것 같지 않던 가지에서 싹이 움트고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부활절이 이 즈음인 것도 그런 면에서 보면 의미가 있다. 자연의 부활, 이 시기는 그렇게 불러 마땅하지 않은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

La Primavera

패널에 유채Oil on panel, 1477-1478

80.71 x 124.02 inches [205 x 315 cm]

우피치 미술관, 피렌체Galleria degli Uffizi, Firenze

 

가운데 은회색 드레스를 입고 붉은 겉옷을 걸친 인물이 베누스이다. 오렌지 나무들과 월계수를 배경으로 땅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있는 이곳은 봄의 정원이다. 왼쪽에서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Zephyrus가 님프 클로리스Chloris를 쫓고 있다. 이 거친 봄바람에 의해 그녀는 이제 꽃의 여신 플로라Flora로 변화하며, 온통 꽃으로 치장된 드레스를 입은 플로라는 정원에 장미꽃을 흩뿌리고 있다. 비너스의 왼쪽에 춤추고 있는 세 여인은 삼미신이며 맨 왼쪽에서 자신의 지팡이 카두세우스로 구름을 쫓아버리고 있는 것은 메르쿠리우스이다. 베누스의 머리 위에서는 눈을 가린 쿠피도가 화살을 날리려 하고 있다.

이 그림은 보티첼리가 로렌초 데 메디치의 마상대회에 대해 쓴 폴리치아노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메디치가에 얽힌, 또 당시 상황과 관련된 알레고리들을 담고 있지만 젊은 로렌초의 기상을 봄의 활력, 생동감과 연결지으려 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우울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왜일까? 나 역시 몇 년 전까지 이 ‘4월의 우울증’을 경험했었다. 이 기분 나쁜 상태가 환절기의 불청객 감기와 겹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컨디션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했던 것이다. 이쯤에서 T.S.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1888~1965)의 ‘황무지(The Waste Land)’가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Memory and desire, stirring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Dull roots with spring rain.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마른 구근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 주었다.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출처 http://my.dreamwiz.com/julianne/ 

막시밀리안 렌츠Maximilian Lenz (1860-1948)

봄의 노래Fruhlingsreigen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63 3/4 x 79 1/8 inches (162 x 201 cm)

개인 소장Private collection

 

렌츠의 이 그림에 나타나 있는 것은 이른 봄이다. 땅에서는 푸른 싹들이 돋지만 나무는 아직도 앙상하다. 흰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여인들은 봄을 즐기려는 듯 보이지만 어쩐지 섬뜩한 것은 왜일까? 어쩐지 이 여자들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이 봄의 축제에 억지로 끌려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건 우리 모두에게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계절은 1년마다 순환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직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 자연의 순환은 우리에겐 종착역을 향한 발걸음을 의미한다는 것 말이다.

어쩌면 이 괴리감이야말로 봄의 우울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바로 그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기 때문에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꽃 또한 그렇다. 여왕처럼 아름답던 벚꽃도 채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꽃은 우리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존재가 된다.

빌렘 반 아엘스트Willem van Aelst (1627-1686)

시계와 꽃병Vase of Flowers with Watch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656

국립박물관, 카셀Staatliche Museen, Kassel

 

꽃 정물화는 단지 꽃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이것은 현세의 덧없음을 말하기 위한 정물, 즉 바니타스Vanitas라고 불리던 정물화의 한 종류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곧 지게 마련이라는 사실에서, 삶의 허무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그림에서 잎들은 벌레에 먹힌 구멍이 나있고 탁자 위에는 시계가 놓여 있어 그런 사실을 더욱 강조한다. 말 그대로, 시계는 모든 것을 가차 없이 파괴하는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

다른 종류의 바니타스에서는 해골이나 책, 왕관, 갑옷, 이런 것들이 등장해 우리가 삶에서 이룬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모두 사라지고 말 것임을 강조한다. 꽃피는 봄에 인생의 허무와 우울을 느끼게 되는 건 그래서 당연한지도 모른다.

로렌스 알마-타데마 경Sir Lawrence Alma-Tadema (1836-1912)

봄의 약속Promise of Spring

캔버스에 유채Oil on canvas, 1890

14 7/8 x 8 3/4 inches (38 x 22.5 cm)

개인소장Private collection

 

활짝 핀 꽃그늘 아래서 연인에게 무언가를 약속하고 있다. 봄에 잘 어울리는 정경이지만 나는 이 약속이 오래 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봄이 그렇듯이, 그리고 곧 떨어져버릴 꽃잎이 그렇듯이 이 사랑의 약속 또한 그렇게 덧없는 것일 것이다.

청춘과 꽃은 봄을 가장 잘 상징한다. 그리고 이 둘 모두에게 공통된 것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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