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의 화가 대 피터 브뢰겔 Pieter Bruegel the Elder(1525~1569)의 작품 중에는 '눈 속의 사냥꾼', '반역 천사의 타락'등 좋아하는 작품이 많지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역시 이것이다.


 

 

 

 

 

 

 

 

 

 


대 피터 브뢰겔Pieter the Elder Bruegel (1525-1569)
바벨탑The Tower of Babel
Oil on oak, 1563
44.88 x 61.02 inches [114 x 155 cm]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브뢰겔은 이 주제로 또 하나의 그림을 그렸는데 크기가 작아 보통 '작은 바벨탑'으로 불린다.

대 피터 브뢰겔 Pieter the Elder Bruegel (1525-1569)
"작은"바벨탑The "Little" Tower of Babel
Oil on panel, 1563
23.62 x 29.33 inches [60 x 74.5 cm]
Museum Boymans-van Beuningen, Rotterdam


바벨탑의 전설은 창세기 11장에 나오는데, 노아의 후손들이 하늘에 닿는 거대한 탑을 지으려고 했고 그것 때문에 야훼의 노여움을 사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여러 다른 언어의 기원 전설로 잘 알려져 있다.
바벨탑의 모델이 되 것은 바빌로니아(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에 세워진 지구라트Ziggurat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신을 모시기 위한 일종의 제단으로 브뢰겔의 그림과는 달리 사각형 기단 위에 좀 더 작은 사각형이 쌓아 올려진, 남미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우르Ur(지금의 이라크 남부에 있는 수메르의 고대 도시)에 남아 있는 지구라트의 유적과 그 복원도

이런 지구라트의 꼭대기에는 신전이 있었고 거기서 신에게 제사를 드렸다. 그러니 성서에 나와 있는 것과는 달리 사실 이것은 신에 맞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을 모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신이 야훼는 아니었을 테니 야훼의 분노 또한 정당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브뢰겔은 원래 건조한 사막 지대에 있었을 이 탑을 자신이 살던 플랑드르의 바닷가에 세워 놓았다. 탑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꼭대기는 이미 구름에 가려 있고 발 밑의 집들을 완전히 압도하는 거대함을 자랑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이 탑은 자연적인 바위산을 토대로 삼고 있는데 전면에 보이는 비탈의 바위, 그보다 좀 올라가 오른쪽에 건물을 뚫고 나와 있는 바위를 보면 화가는 이 산의 자연적 비탈을 이용해 건축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려 한 것 같다.
화면의 가장 앞쪽에는 왕인 듯 보이는 사람이 그의 군인들을 이끌고 나와 있다. 아마도 시찰하러 온 모양이다. 석재가 흩어져 있는 가운데 몇 명의 인부들이 엎드려 무언가 애원하고 있다. 부역이 너무 과중하다고 호소하는 것인지, 더 이상 높이 쌓기는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건축 사업으로 인한 세금 부담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공사를 빨리 진척시키지 못함을 탓하는 권력자에게 한번만 봐주십사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건물을 보자. 곳곳에 비계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이 오르락 내리락 분주히 일하는 건축현장이 보인다. 탑은 위로 가면서 좁아진다는 점을 빼고는 앞에서 본 지구라트와 닮은 점이 별로 없다. 연속되는 아치가 층을 이루며 쌓인 원형 건물 - 이렇게 보면 오히려 로마 콜로세움과의 유사성이 더 두드러진다. 브뢰겔은 외벽이 다 완성되지 않은 부분을 통해 탑의 내부 구조 또한 보여준다. 거대한 건물은 마치 바퀴살처럼 뻗어 있는 내부의 버팀벽을 통해 지지된다. 버팀벽 또한 아치로 연속되면서 건물 내부의 회랑을 만든다. 마치 고딕 건축의 플라잉 버트리스Flying Butress를 건물 내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양이다.
'작은 바벨탑'을 보면 주변의 풍경도 거의 없이 화면 전체를 이 건물의 위압적인 존재로 가득 채우고 있다. 탑은 먼저 본 그림보다 더 많이 지어져 있다. 짙은 구름이건물의 3분의 2정도 되는 부분에 걸려 있고 외벽도 이미 지어진 부분까지는 거의 덮여 있다. 아치형 입구와 창문의 검은 동공은 거의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탑은 불안정하게 좀 기울어져 있다.
왜 이 그림이 내게 그렇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까를 최근까지도 잘 알지 못했었다. 얼마 전 꿈을 꾸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꿈은 엘리베이터, 이상한 계단, 끝없는 복도들이 이어지는 규모를 알 수 없는 건물을 빠져나가야 하는 내용이었는데, 이런 거대하고 기묘한 건물이 등장하는 꿈을 나는 자주 꾼다. 어쨌든 이 꿈을 꾸고 나서 나는 며칠 전에 본 브뢰겔의 바벨탑 그림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이 그림이 그토록이나 매혹적이었던 것은 내 꿈 속의 건물들과 닮아서였다는 것을 말이다. 저 아치 문 중 하나로 들어가면 꿈 속에서 자주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쫓겨 다니던 어두컴컴한 복도, 막다른 골목, 예상치 못한 곳에 위치한 문들, 계단과 사다리, 그리고 브뢰겔은 아마도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엘리베이터 들이 있을 것만 같다. 내 꿈 속의 엘리베이터들은 자주 엄청난 층수를 오르내린다. 백 층이 넘는 숫자들... 그것 역시 이 환상적인 건물과 닮아 있다.
꿈 속에서 나는 건물의 외부를 보는 적이 거의 없다. 나는 언제나 짐작할 수 없는 크기를 가진, 미로 같은 복도가 있는 건물의 속을 헤맬 뿐이다. 하지만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마 그 건물은 이런 모양을 하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물론 이 건물의 이미지는 나에게만 인상적인 건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특히 16세기의 플랑드르에서는 이런 그림들이 많이 그려진 듯 하다. 몇 개만 감상해 보자.


알려지지 않은 플랑드르 대가Unknown Flemish Master, 16세기
바벨탑The Tower of  Babel
시에나 국립미술관Pinacoteca Nazionale, Sienna


헨드릭 반 클레베Hendrick Van Cleve, 16세기
바벨탑의 건설The Construction of Tower of Babel
크뢸러 뮐러 박물관Kroller Muller Museum, Otterlo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e(1832~1883)
 바벨탑


 
물론 어느 것도 브뢰겔이 주는 신비로움을 능가하진 못하지만 이 건물들 역시 환상적이다. 특히 헨드릭 반 클레브의 작품은 지구라트처럼 사각형의 기단부를 갖고 있으며 건물의 1층과 연결되는 일종의 고가로를 건설해 놓은 점이 독특하다. 이 바벨탑 역시 약간 기울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 오만성의 상징인 이 건물이 머지 않아 붕괴될 운명이라는 것을 나타내려 함인 것 같다.
시에나의 국립미술관에 있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가 그린 바벨탑은 마치 소라 껍질처럼 오른쪽 위로 향하는 나선형을 그리고 있다. 이것은 후대의 판화가, 삽화가인 구스타브 도레의 바벨탑 이미지와 유사하다. 도레의 바벨탑은 총안처럼 좁은 창문만 나 있어서 마치 감옥이나 요새처럼 보인다. 전혀 들어갈 마음이 나지 않는, 음울한 건물이다.


마지막으로, 바벨탑과는 상관이 없지만 H. R. 기거가 뉴욕을 주제로 그린 연작 시리즈 중 한 점을 보자. 이 스위스 태생 화가는 에일리언 시리즈의 비주얼을 창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H.R. Giger
뉴욕 시티 XI-엑조틱New York City XI-Exotic


그는 뉴욕의 마천루를 자신의 독특한 이미지들과 결합시켜 뉴욕 시리즈를 그렸다. 이런 거대한 건물들은 사람을 위압하고 길을 잃게 만들며 우리가 영화 속에서, 혹은 실제로 경험하듯이 재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위로 치솟은 이 거대한 건물들에는 괴물적인 무언가가 있다.

 

 브뢰겔 - 16세기 플랑드르 최고의 화가, 시공 아트 026 | 원제 Bruegel

월터 S. 기브슨 (지은이), 김숙 (옮긴이)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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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99 2005-08-29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이 좋아서 퍼갑니다. 감사합니다.

sun 2009-11-10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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